· 톺아보기

적이 되는 기술, 동지가 되는 기술 – 선함을 잃지 않는 다툼

깨~몽 ·

조회 933 · 공감 0 · 댓글 0

어느 세상에서나 사람들 사이 불협화음은 있게 마련이고 마찰이나 갈등이 있다 보면 미운 놈, 싫은 놈도 있게 마련입니다.
때로는 그게 지나쳐 ‘저 놈 좀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거나 멱살이라도 잡고 주먹으로 한 대 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이 얘기를 풀기 위해 잠깐 옛날로 돌아가 봅시다.

척박한 한반도 땅에서 때는 아직도 농사가 세상의 근본이라 굳게 믿던,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했던 때 쯤이라 하고, 농사 말고는 딱히 먹고 살 거리가 없던 시골 마을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 시골 농촌에서라면 이렇게 멱살을 잡고 주먹으로 때려주고 싶더라도 감히 함부로 주먹질을 하거나 다시 안 볼 각오를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너무 옛날 얘기라 감이 안 온다면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봅시다.

옛날 농사에만 의존해서 살던 때에는 규모가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한반도는 철마다 때마다 차가 커서 딱 그 때에 해야 할 일을 미처 하지 못하면 때를 놓치게 되고 그건 1년 농사를 거의 망쳤다는 얘기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비단 농사일 뿐만이 아니라 집안에 이런 저런 일이 있어도 주변 사람 손을 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많이 바쁘거나 일손이 모자랄 때에는 옆 동네, 옆옆 동네에까지 가서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때도 많습니다.
그렇다 보면 이웃이 미운 짓을 하더라도 속에 있는 소리 다 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 한 사람이 간절하게 아쉬운 때는 곧 쉽게 찾아오고, 거기다가 그런 관계가 얽혀있는 데서 한 사람이 그 관계를 부수는 것은 공동체 전체의 관계를 틀어지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보니, 좀 싸우게 되더라도 왠만해서는 끝 간 험한 소리를 하거나 주먹질을 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하고 싶은 말 속시원히 내뱉고 싶지만 꾹꾹 눌러담아 참을 수밖에 없습니다.
착하고 싶어서나 단지 아쉬운 게 있어서가 아니라 ‘관계’를 부수었을 때 이어서 일어날 뒷감당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끔은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게 되더라도 곧 그 감정 묻어두고 친한 척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뀝니다.
시골은 더 이상 농사에만 목매지도 않고 그마저도 기계가 하거나 기계가 못 하는 일은 멀리 외국에서 데려온 사람을 시켜 하게 됩니다.
집안의 행사도 더 이상 옛날처럼 벌이지 않을 뿐더러 그것마저도 돈으로 떼우거나 장소를 사고 사람을 사서 떼우게 됩니다.
시골도 더 이상 주변 이웃 손을 빌릴 일이 점점 없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다 보면 이제 더 이상 이웃 눈치 볼 일도 줄어듭니다.
이웃이 기분 나쁘게 하면 그 기분 그대로 다 쏟아낼 수 있습니다.
더 이상 눈치를 봐야 할 이유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거기다 옛날에는 나서 죽을 때까지 늘 보던 사람만 보던 세상에서 이제는 더 이상 토박이가 의미가 없을 정도로 뒤섞이게 됩니다.
그 만큼 관계가 얕아지고 교류는 즉각적인 됩니다.
더 이상 옛날의 ‘관계’는 유지되기도, 생겨나기도 어렵습니다.

사람이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환경과 여건이 바뀐 것뿐입니다.
사람이 악해진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유지해야 할 ‘관계’가 옅어지고 없어진 것입니다.

요즘 정치 쪽을 보다 보면 마치 그 관계 끊어진 시골마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까지 같은 편이던 사람들이 오늘은 철천지 원수처럼 싸웁니다.
날카로운 말을 내뱉고 모욕하는 것에 전혀 주저함이 없습니다.(특히 요즘 매체들의 속성이 더욱 그렇습니다. 조회수,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부모, 자식도 짓밟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이기는 것이 중요하지 상대를 설득하거나 나중의 ‘관계’ 따위는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번 멈춰서 따져볼 게 있습니다.
농촌 마을 사람들이 더이상 예의에 얽매이지 않게 된 건, 정말로 관계가 필요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옆집 손을 빌릴 일이 없어지고 아쉬운 소리 할 일도 없으니, 옆집과의 관계도 자연스레 사라진 겁니다.
그런데 같은 진영 안에서 싸우는 사람들도 정말 그럴까요.

곰곰이 보면 이건 좀 다릅니다.
그 사람들은 관계가 진짜로 끝난 게 아닙니다.
선거는 또 돌아오고, 정권도 다시 잡아야 하고, 법안 하나 통과시키려 해도 결국은 옆에 있던 그 사람 손을 다시 잡아야 합니다.
즉 옆집은 필요 없어졌지만, 정치의 옆 사람은 여전히 필요합니다.
다만 지금 당장, 눈앞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에만 눈이 멀어 그 사실을 잠깐 잊고 있을 뿐입니다.
관계가 사라진 게 아니라, 사라진 척 굴고 있는 겁니다.
이게 시골 마을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입니다.

시골 마을의 예의는 사실 누가 애써 지킨 게 아니라, 구조가 알아서 강제한 것이었습니다.
아쉬운 소리 할 일이 많으니 참았던 것뿐, 거기엔 별다른 ‘기술’이랄 것도 없었습니다.(물론 그런 환경이, 사람을 더욱 착하게, 순하게 만든 측면도 적지는 않습니다만,···.)
그런데 정치판은 그 강제가 당장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 저 사람을 짓밟아도 내일 당장 내 발등을 찍힐 것 같지가 않으니, 참아야 할 이유를 스스로 잊어버리기 쉽습니다.(게다가 자극적인 말과 표현이 조회수, 시청률에는 더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 경우엔, 자연스레 생겨나길 기다릴 게 아니라 의식적으로 익히고 지켜야 할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바로 그게 이 글의 제목이기도 한, ‘기술’이고 또 ‘태도’입니다.

그 기술이라는 게 거창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사안을 다투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그 사람을 모욕하고 그 사람이 없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이미 선을 넘은 겁니다.그 가장 나쁜 예시가 바로 ‘트럼프’일 것입니다. 불편한 정책을 물어보면 언론매체를 “가짜뉴스”라거나 기자를 “패배자”(loser)라고 공격합니다.

둘째, 이기더라도 다음이 있다는 걸 전제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승리가 내일의 협력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면, 그건 이긴 게 아니라 지는 겁니다.

셋째, 안에서 할 말과 밖에서 할 말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안에서는 얼마든지 날을 세워도 좋지만, 밖으로 나가는 말에는 상대가 다시 손 내밀 여지를 남겨둬야 합니다.

넷째, 없는 사실을 지어내거나 있는 사실을 부풀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기기 위해 진실을 다치게 하면, 그 상처는 이기고 나서도 남습니다.

그리고, 그 대상이 바로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되새기는 것입니다.
‘정치’란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고, ‘사람’을 위한 일에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집 짓는 데에 목수가 마음에 안 든다고 집을 때려부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도 제가 살아야, 모두가 함께 살아야 할 집을···.

사람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환경과 여건이 바뀐 것뿐이라고 앞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시 바꿀 수 있는 것도 사람이 아니라, 그 환경 속에서 스스로 지키기로 한 태도와 기술일 것입니다.
언젠가 다시 손을 맞잡아야 할 사이라면, 지금의 싸움도 그날을 염두에 두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람도 환경과 여건의 영향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때로는 그것을 넘어 환경과 여건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이 그나마 사람이 다른 생물들과 다른 점일 것입니다.
환경과 여건이 그렇다고 그 핑계만 댈 것이 아니라 ‘사람다움‘을 지키기 위해 오히려 환경과 여건을 바꾸거나 혹은 그것을 뛰어넘어 행동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에 대한 예의‘···.
우리가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것도 결국은 이런 가치 때문이 아닐까요?
그런 가치조차 훼손하고서 얻은 세상, 그것이 과연 우리가 바라는 세상일 것이며, 그렇게 이긴 사람이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요?
누구도 세상을 얻기 위해 악마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 누구도 이웃이 밉다고 함께 마실 마을 우물에 독을 타지는 않을 것입니다.
선함을 잃지 않은 다툼이야말로, 다음 발전의 토대가 될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 이기는 길이며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지키며 가는 길이 아닐까요?


이 글의 권리는 깨몽(adreamy)에게 있으며, CC BY 4.0 을 지키시면 자유로이 쓰실 수 있습니다.

출처 : https://4dreamy.wordpress.com/2026/08/29/정치-싸움의-기술-다시-함께할-사람들의-정치-싸움/

댓글 0

모두의공원 최근 글

모두의공원 목록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