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인구 통계 하나 볼까요? 경상도와 전라도의 인구변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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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전라도 인구 수 추정치 : 510만. (1955년 기준 추정)
1950년대 경상도 인구 수 추정치 : 712만. (1955년 기준)
(근거자료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하겠습니다.)
현재
전라도 인구 수 : 487만.
경상도 인구 수: 1173만.
신기하죠?
경상도 인구가 2배 가까이 증가하는 동안, 전라도는 오히려 인구가 줄었습니다. 왜일까요?
답은 간단해요. 강제로 절대농지로 묶어놓고 제대로 된 공업단지 하나 만들어주지 않아서 일자리가 없었던 전라도 사람들은, 결국 가족들 중 농사지을 한 사람을 빼고는 일자리를 찾아서 수도권으로 떠나야 했던 거죠. 그 과정에서 서울의 급속한 인구 증가로 각종 문제가 발생하자, 박정희는 부하들 시켜서 도시빈민과 집이 없는 사람들을 집과 땅과 일자리를 준다고 속여, 남한산성 옆 산골짜기에 갖다 버리는 일이 발생하죠. 그 유명한 광주대단지 사건입니다. 김동연 전 경기지사가 직접 겪었고, 이재명 대통령님이 이 사건 직후에 들어가 엄청나게 고생해야 했던, 현재의 성남시 탄생의 계기가 된 비극적인 사건이죠. (여담이지만, 이재명 대통령님께서 소년공으로 일하시다 팔을 다쳤던 글러브 제작 회사, 상대원동 대양실업은 우리 둘째 형님도 일했던 곳입니다. 다만 우리 둘째 형은 그래도 중학교는 마치고 간 터라, 이재명 대통령님보다 조금 더 뒤에 일했지만요.)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과정에서 목숨을 잃거나 피해를 입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올라올 수 밖에 없었던 호남사람들 입니다. 경상도 사람들은 자기 지역인 부산, 마산, 창원, 포항 등지에 조선소와 제철소 등등이 건설되며 일자리가 있으니 굳이 서울로 올라갈 필요가 없었던 반면, 고작해야 한 가족을 먹여살릴 농지 말고는 먹고살 길이 막막했던 전라도 농가의 차남, 삼남, 딸들은 죄다 서울로 올라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굶지 않기 위해서요. 그러다 이런 끔찍한 일을 당했던 거죠.
눈을 감고 사시는 건 좋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이런 슬픈 일들만 겪어오다, 이제야 겨우 이재명 대통령님 만나서 성장 좀 해보려고 하는 전라도를 비웃거나 비방, 저주하진 말아주세요. 경상도 분들은 60년대, 70년대에 했던 그 발전을, 이제야 시작하려고 하는 거니까요.
댓글 11
공부해야겠습니다
이재명 대통령님도 이걸 직접 겪지는 않으셨지만, 이 사건 직후에 성남으로 이주하시면서 굉장히 힘든 시기를 사셨죠. 그렇기에 다른 민주당 정치인, 운동권 출신들과 생각이 다른 것이기도 합니다.
애초에 지금처럼 농경지의 이미지의 호남은 간척이라던가 이런게 이루어진 시점에 생긴거라
전라도 인구가 경상도를 넘은적은 한번도 없어요.
지금의 호남평야들 죄다 근대시대에는 바다물들어와서 바다거나 못쓰던 땅들입니다.
그래서 인구부양력도 영남이 언제나 높았어요
1일 KOSIS(국가통계포털) 인구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정부가 인구조사 자료를 처음 분석한 1925년 호남인구는 352만여명, 영남인구는 435만여명으로 영남이 83만여명 많았다.
해방이후인 1949년 호남인구는 509만여명, 영남인구는 634만여명으로 영남이 125만여명 많았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인 1955년엔 호남인구가 525만여명, 영남인구가 713만여명으로 인구격차가 188만여명으로 늘었다.
다만, 시작이 경상도가 더 많았다고 해도 경상도 인구가 두 배 가까이 증가할 동안, 전라도는 인구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컨테이너선이 정박할수있는 깊은수위의 항만
그리고 평야
이 3가지가 갖춰진곳이 영남지방이라서 먼저 발전한것 뿐입니다
한정된 국가자금으로 산업화를 하려면 그나마 조건갖춰진곳을 먼저 발전시키는게 합리적인거지요
하지만 제아무리 합리적 선택이라 해도, 희생을 강요당한 사람들은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희생을 강요당한 사람들에게 기회가 돌아올 차례라는 겁니다.
먼저 선택되어 개발의 과실을 누렸던 분들이, 그걸 배아파 할 이유가 없다는 거죠.
숫자가 변하는 재미있는 인구 통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