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은 왜 강한가에 대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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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영상 이전에도 많은 영상이 있었지만,
새로 등록 된 김에 소개해 봅니다.
무협지 영향 때문인지,
아니면 영화나 드라마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유튜브 시대에 들어서서 창의 유용성에 대한 아무리 많은 자료가 소개 되어도,
아직도 검에 대한 환상을 기본으로 하는 여러 전해지는 썰을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역사 기록이라고 해서 과장이 없다는 것이 아님을 인지 하지 못한 채 말입니다.
이런 거죠. 창이 강한 것은 알게 되었지만, 이런 점과 매칭되지 않는 전해지는 이야기도 같이 믿는...
창이 무협지의 비유처럼 검에 비해 익히기 쉬운 무기일까요.
그럴 리는 없겠죠. 익히기 쉽다는 것이 아니라 익히는 기간 대비 효율이 너무 높은 것입니다.
완전 무시할 수 없어서인지...
종종 무협지에 등장하는 양가 창술 같은 것들이 있긴 합니다.
군의 무술이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댓글 39
본인이 긴무기에 휘둘려서 제대로 못 쓰는 경우만 제외하면 길면 그만큼 길수록 유리한거죠.
측면이 열려 있어 필시 대열을 짜야 한다. 정도가 생각나네요.
괜히 사무라이하면 검술을 이야기하는게 아닙니다 실제 전쟁터에서는 창 들고 싸웠다하더라도 평시에는 칼차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전장터조차 일대일이 아닌 다대다라서 비좁은 환경에서는 또 검이 필요할 때가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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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평야에서 1대1로 싸울 시 창이 검에 비해 엄청 유리하다 전제에는 동의합니다
상호보완적인 무기로 이해하셔야합니다
실제 현대전쟁터에서 권총에 맞아죽은 사람은 몇명 안되지만 중세시기 전쟁터에서 검에 맞아죽은 사람은 엄청 많습니다
유일 하게 cc 기가 있어서 승률이 높다보니
패치 해서 갑옷도 못입게 했다고.ㅡㅡ
뭐 그냥 들고 찌르고 하는거랑은 다르게, 무도가의 입장에서 장창을 자유롭게 다루고 힘을 싣는다는건 전혀 다른 의미이고, 창끝에 힘을 실을려면 무게중심이나 힘에서 엄청난 제어력을 가져야 합니다.
역시 실전과 무도는 차이가 있군요
안된다...어후..
흑색창연환칠식...흑산포!
강호인의 특성상... 관군과는 충돌을 피해야 하는 숙명이죠..
무기 몰래 들고 다녀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휴대성도 같이 고려되야 해서 그런게 아니까여...
창들고 100명만 모여 달려가도.. 황제께서 반란인줄알고 놀라셔서 10만대군이 잡으러 몰려올거같네여 ㅎㄷㄷㄷ
무협지 쓰는 사람들도 관심 있음 알텐데 무협은 사실에 근거해서 쓰는게 아니고 그냥 판타지니까 무시하고 쓰는 거 아닐까요
익히기 상대적으로 쉽고(박자 맞춰 찌르기) 생산비 상대적으로 적게들고 (창날만 금속 기둥은 목재) 냉병기중에는 상대적으로 장거리라 실전에서 사용자 공포경감에도 그만입니다.
pikeman, halberdier 처럼 아예 무기명칭을 따서 고유명사가 된 것은 다 실전에서 증명을 해서겠지요.
그리고 무기역사에서 가장 많이 쓰인건 도부수 즉 도끼나 망치류로 알고 있습니다.
임진왜란은 특수한 경우로 보셔야 할 겁니다.
본 문은 항상 그렇게 전해지는 이야기에 대해 다루고 있고,
그 손목 치기라는 것도 길고 큰 태도로 몸을 갈랐다는 말도
일부에 불과합니다.
과장이 많다는 얘깁니다.
대부분은.... 압도적으로 창입니다.
그리고 전국시대를 거친 숙련된 군은 창과 칼을 다 잘 씁니다.
여기서 포커스를 두고 보아야 할 점은,
그 숙련도 자체입니다.
임진 왜란 전과 후... 수십년간의 기록을 보면,
탈주 무사라던지, 여러 이유로 왜구가 된 사무라이들이 있는데,
이들은 절대적으로 불리한 칼로도 창을 소지하는 이들을 제압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전장이 넓게 열린 곳에서는 아무리 숙련 되었어도 안 되는 일인데,
특수한 환경에서는 가능하고, 그 중 하나가 배 위에서의 난전입니다.
즉, 좁고 기민한 반응이 중요한 순간에
당대를 기록한 거의 대부분의 기록에서 강조 되는 대목을 종합해 보면 이렇습니다.
적군의 배로 진입할 때,
선체 내부를 이동할 때 등
공간이 제한 적인 경우 경험이 풍부한 이들은
창을 든 이들의 첫 공격을 칼로 쳐 부러뜨릴 줄 알았습니다.
이 정도로 여러 나라의 기록에 공통되게 남아 있다면,
아무래도 창의 공격을 피하고 부러뜨리는 여러 상황에 대한 훈련을 꽤 집중적으로 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이게 말이 쉽지 창의 거리는 위의 영상에서 보는 것 이상으로
1인칭으로 보게 되면... 위압감이 완전히 다릅니다.
유튜브에서도 창수를 마주 한 1인칭 시점이 종종 올라와 있으니 간접 체험해 보면,
집단전 만이 아니라 개인전으로서도 얼마나 큰 압박감인지 알 수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거리를 좁히고 상대가 내지른 창을 옆구리든 아니면 무기든
어떻게든 부러뜨리거나 순간적으로 불능에 빠트린 후
카타나로 마무리 짓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개활지라면 가능하지 않은 방식이고, 일부 가능하다고 해도
군의 전술 특성상 일본군도 창을 들고 싸우기 때문에,
왜구의 기록을 일반 전장처럼 생각해선 안 될 것 같습니다.
결론입니다.
전해지는 이야기는 인상 깊은 장면에 대한 과장이면서,
거기에 집중해 필요에 따라 부각해서 그러하지,
실은 전국 시대 때에도 임진 왜란 때에도
일본군의 주력은 창이 었습니다.
카타나에 의해 손목이 나갔다 라는 것도
진형이 붕괴된 상대를 대상으로 칼로 무장이 부실한
조선군에게 행해진 경우입니다.
군과 군이 맞붙을 때....진형이 멀쩡하고 승패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선
항상 창을 들고 싸웁니다.
물론 그 전에 조총으로 일제 사격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