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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와 말타툼 후 새벽버스 시승기

스마트리 · · 수정

조회 3,641 · 공감 30 · 댓글 5

예전에 와이프와 말다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닌 일인데, 그때는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서로 한마디씩 주고받다 보니 감정은 점점 올라가고, 결국 저는 홧김에 집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새벽에 친구를 찾아갈 수도 없고, 혼자 술을 마시는 것도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서울 N버스를 탔습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탔습니다.


그런데 이 버스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습니다. 왕복으로 무려 3시간 정도를 타고 있어야 했습니다. 중간에는 기사님도 잠깐 쉬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화가 나서 버스를 탔는데, 한참 앉아 있다 보니 슬슬 화가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새벽의 버스 안에는 저처럼 조용히 이동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창밖으로는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서울의 새벽 풍경이 지나갔습니다.


그냥 멍하니 앉아서 승객들을 바라보고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는 지금 앉아서 가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기사님은 이 시간에 직접 운전을 하고 계시네.


물론 기사님에게는 일이겠지만 새벽에 운전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와이프는 자고 있었습니다.


제가 화가 나서 새벽에 집을 나갔다 온 사실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조금 허무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습니다.


나는 혼자 마음속으로 그렇게 난리를 쳤는데, 정작 상대방은 아무것도 모르고 평화롭게 자고 있었던 겁니다.


결국 저는 버스를 타면서 화를 풀었고, 와이프는 아무 일 없이 숙면을 취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꽤 완벽한 윈윈이었습니다.


부부싸움이 꼭 누군가 이기고 누군가 져야 끝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가끔은 한 사람이 조용히 새벽버스를 타고 세 시간을 돌아다니다 오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다시 하라고 하면 조금 고민하겠습니다.


엉덩이가 생각보다 많이 아팠거든요.


그냥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는, 제 인생의 소소한 에피소드 하나입니다.


댓글 5

  1. 쌍문동개장수 ·
    저도 비슷한 일이 있었더랬습니다.
    싸우고 새벽에 나갔는데, 갈곳이 없어서 바구니 자전거 타고 털레털레 가다보니 한강,
    거기서 한강 자전거길 끝까지 갔다가 아라뱃길 자전거길 타고 인천까지 갔다가 왔는데..
    나중엔 뭐때문에 화 났었는지 기억도 안나고.... 그렇게 되더라고요.

    역시 시간이 약인 것 같습니다.
  2. 우우자자 · · 공감 2
    어려움이 있을 때 사람은 철학적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새벽버스 하염없이 타보고 싶네요ㅎㅎ 그리고 문득 아내 분이 정말 모르셨을까, 서로의 평안을 위해 모르는 척 해주신 건 아닐까 잠시 생각을 해봅니다^^
  3. 비티비 · · 공감 1
    일이든 인간관계든 어려움이 있을땐 한발짝 물러서서 시간을 갖다보면 안풀리던 일도, 어렵던 일도, 꼬였던 일도 생각보다 쉽게 해결되는 경우가 있더라구요.
  4. 예룰루랄라 ·
    글이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좋네요. 저도 제 감정이 너무 격앙되었다 싶을 때에는 산책을 나가요.
    주변 사람들 보면서 한시간 걷고 오면 마음이 정리가 되더라구요.
  5. 귀태건희석열 ·
    저도 와잎이랑 ㅋ싸우고 새벽에 차몰고 강릉 갔다가 밤에 복귀했는데 와이프가 잘 못했다길래 몸의 화해를 하고 푼게 생각나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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