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톺아보기

'나'는 뇌라는 매트릭스 안에 갇힌 불청객일까

lcoy · · 수정

조회 17,689 · 공감 18 · 댓글 31

뇌과학에 대한 책들을 보다보면 

뇌라는 건 생물이 '운동'을 하기 위한 기관으로서 만들어진 것이고

(식물에게는 뇌가 없고, 동물인 멍게는 움직이며 지내다가 성체가 되면 자기 뇌를 먹어치우고 식물처럼 짱박혀지내고)

인간이 '나'라고 생각하는 자아, 의식이란 건 그 뇌가 작동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부산물이라고 하는 거 같습니다.


뇌도 몸의 다른 불수의근이나 내장, 세포들처럼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내가 의식이 있든없든, 잘 때도 기절했을 때도 식물인간이 될 때도 쉼없이 자율적으로 작동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몸을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은 골격근 등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즉, 몸은 그냥 '나'라는 자아와는 상관없이 유전자를 전달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고

어떠한 판단도 그런 기계적인 과정에서 뇌와 몸이 하고 있는 것이며

'자아'는 그렇게 뇌가 프로세싱한 결과값을 나중에야 받는 건데

거꾸로 '내가 뇌를 작동해 생각을 하고 몸을 움직이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일 뿐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내가 이 버튼을 누르겠다'고 생각하기 10초 전에 이미 뇌는 그걸 누르겠다고 판단했다는 실험처럼,

우리 몸과 뇌가 이미 플랜을 세워둔 것이고 '나'라는 자아는 후에 그 결정된 내용을 받은 것일 뿐.)



capture_20240811_142547_001.png




'나'는 몸이라는 기계에 영문도 모르고 올라탄 불청객인 걸까, 

'나'는 뇌의 필요에 의해 생성된 기능들, 소프트웨어 모듈들 중 하나일 뿐일까,

외부 침입자가 체내에 침투하면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몸이 알아서 백혈구 등을 동원해 처리하는 것처럼

인류가 서로 좋아하고 미워하고 협동하고 경쟁하고 문명을 만들고 하는 것도 그렇게 

'나'의 판단, 의지 같은 것과는 상관 없이 인류의 몸들(유전자 전달기계들)이 자동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작업들일까,

'나'는 몸과 뇌가 만든 매트릭스 안에서 뇌가 알아서 하고 있는 판단을 내가 한 판단이라고 착각하며 사는 것일까,

'나'는 나와 상관없이 진행되는 1인칭시점의 영화를 보고 있을 뿐인데 내가 컨트롤러를 쥐고 캐릭터를 조종하고 있는 거라고 착각하는 것일까...


그것이 완전한 사실이라 밝혀진다면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게 될까요.

'달라질 게 뭔가' 하며 그냥 똑같이 살게 될까요.



(유발 하라리 같은 경우는 고통이야말로 우리가 처리해야 할 유일한 대상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다른 건 다 허구라도 우리가 느끼는 고통은 어쩔 수가 없다....)


댓글 31

  1. lcoy · · 공감 1
    @standalone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전자책이 44,000원이라니 가격까지 커서 고통스럽네요 ㅠㅠ
  2. 도밍고808 · · 공감 2
    자유의지라는 거대한 환상에서 벗어 나기 힘들죠.

    게임으로 치면 우린 사실 NPC입니다.
  3. lacross · · 공감 1
    제가 클리앙을 줄이지 못하는 이유도 제가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뇌의 명령이었군요.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ㅎ
  4. Gisle · · 공감 2
    인간 자유의지 존재 여부는 가장 큰 미스테리죠. 다만 저런 학술 논문 한두개에 의존해서 결론 내린만한 주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5. lcoy ·
    @Gisle님
    일반적인 과학적 대상과 달리 '자아'는 관찰을 하는 주체이니 그것은 관찰 불가능하다, 관찰하는 주체 자신을 관찰할 수는 없다, 라는 식의 얘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6. 과유불급302 ·
    @lcoy님 관찰하는 자아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책을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7. 전가복 · · 공감 4
    신기하게도 자의식이 약해지면 나의 범위가 확장되는 경험을 할 수 있죠.
  8. lcoy · · 공감 2
    @전가복님
    뇌는 '자아'에게 계속 (외부의 사실과 일치할 수도 있지만 다를 수도 있는) 어떤 스토리, 환상을 만들어 제공하는데 (내 아이는 예쁘다, 내 짝짓기 상대가 매력적이다, 집단의 규칙을 어기면 신에게 벌을 받을 거다 라는 등의 것들도 그렇고.)
    보통은 외부의 상황과 비교하며 그 스토리, 환상을 보정을 한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뇌가 일상적이지 않은 자극을 받거나 아예 일상의 자극을 끊어버리는 등의 상황, 일상적인 자극 상황에서 벗어난 상황에서는 그런 보정 기능이 평소처럼 작동되지 않으니 뇌가 폭주하며 환상을 만들어간다고...

    가장 흔하게 겪는 게 잘 때 꾸는 꿈이고,
    명상, 기도 같은 걸 하면서 집중을 하며 외부 자극을 최소화할 때 밝은 빛을 본다거나 신의 목소리를 듣는다거나,
    옴마니반메홈 수리수리마수리 같은 주문을 반복적으로 외우거나 반복적인 리듬의 댄스음악을 들으며 몸을 흔드는 것처럼 반복적인 자극을 계속 받을 때, 마약 같은 것으로 인해 신경이 교란되거나 할 때 황홀경에 빠지거나 신비체험을 한다거나 하는 등의 현상이 그런 거라고 하는 것 같아요.
  9. 버나드 · · 공감 1
    (식물에게는 뇌가 없고, 동물인 멍게는 움직이며 지내다가 성체가 되면 자기 뇌를 먹어치우고 식물처럼 짱박혀지내고)

    이 귀절이 특히 인상 깊네요 . 생각을 많이 하는 나란 참 고통 스럽스럽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10. Kieth · · 공감 1
    닉 레인이 쓴 "미토콘드리아-박테리아에서 인간으로, 진화의 숨은 지배자" 일독 추천드립니다. ㅋㅋ
  11. lcoy ·
    @Kieth님
    감사합니다!
    근데 2009년에 나온 책이 ebook이 없다니... 이럼 그냥 가능성이 없는 걸까요 ㅠㅠ
  12. 과유불급302 · · 공감 2
    현재 나온 뇌과학 책중 감정에 관한 책은 리사 펠드먼 배럿의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와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이 두 책이 가장 좋습니다. 많은 뇌과학책에서 범하는 오류도 잡아주고(다마지오 비판하는 부분 제외하고) 읽기 어렵지 않아요.

    위에서 언급된 로버트 새폴스키의 책은 레퍼런스로 활용하기 좋고 닉 레인의 미토콘드리아는 뇌과학보다는 생물학에 더 치우쳐 있습니다.

    언급된 책들 다 읽어봤는데 리사 펠드먼 배럿의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부터 시작하세요. 읽어보시면 여타 뇌과학 책들과 다르다는걸 알게되실 겁니다.

    화이팅입니다~^_^*
  13. lcoy ·
    @과유불급302님
    너무 이름을 많이 들어서;;; 그냥 넘어갔던 책들인데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4. ora817 ·
    환영해요. 자 이제 불교와 천주교 성경을 한번 읽어보세요. 이슬람경전은 조금 뒤로 하구요.
    나(몸,뇌)는 누군인지 조금씩 알아가는 재미가 있으실거에요.
  15. lcoy ·
    @ora817님
    기독교 경전이야 읽어봤는데 불교 경전은 아직이네요. 언젠간 도전... ㅠㅠ
  16. Mazurka · · 공감 2
    번역품질이 안 좋다는 평이 있지만
    ’행복의 과학‘ 흥미롭게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댓글로 책 추천하신 분들 감사합니다.
  17. lcoy ·
    @Mazurka님
    이것도 제목만 보고 넘겼었는데 감사합니다 :-)
  18. 돈컴즈 · · 공감 2
    나, 또는 자아 역시 환상 아닐까요?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유추해보자면 더욱 그런것같습니다.
    이미 예전에 작은 꼬마 선충의 뉴런을 완벽하게 소프트웨어로 복제했더니 움직임마져 동일하다는 연구를 본적이 있습니다. 인간은 그 복잡한 확장의 끝에 있는 생물학적 기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19. lcoy ·
    @돈컴즈님
    생각이 점점 유물론 쪽으로 더 기울고 있는 것 같아요.
  20. lifeismarathon · · 공감 2
    내가 생물학적 기계라는 걸 알아채 버린 인간.. 그래도 워낙 복잡한 기계이기에 평소엔 그 사실을 잊어 버리고 살다가 가끔씩 '아 내가 그런 존재였지..' 하고 자각하는 것이 아예 모르고 지내는 것보다는 조금 나은 것 같습니다.
  21. lcoy ·
    @lifeismarathon님
    이 세상은 매트릭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매트릭스를 벗어나봤자 거기도 또 다른 매트릭스 속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구요. 네오도 아키텍트도 야훼도 비슈누도 무한겹의 매트릭스 속에 있는 건 아닐까....
  22. 공구공 · · 공감 3
    가벼운 불교기반 상담 책을 읽고 이어서 위빠사나 명상책을 읽고있는데, 불교는 '나'에 집착하는 것에서 모든 문제가 시작된다고 보는 것 같더라구요. 그리고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나가는 것 같습니다.
    과학이 더 발전에서, 실제로 '나'라는 것이 생각보다 별 게 아님을, '나'에 집착하는 삶이 얼마나 덧없고 의미없는 시간 낭비인지를 실증해서 보여줄 수 있다면, 사회적으로도 좋은 일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네요.
  23. lcoy · · 공감 1
    @공구공님
    유발 하라리는 AI 등의 발달로 소수는 그리스 신화의 신들처럼 큰 능력을 갖게 되고 나머지는 돼지 소 같은 가축 같은 꼴이 될 수도 있다고 하는 것 같은데 그나마 할 수 있는 것들 중 하나로 명상을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조금 시도해보다가 실패하지만 ㅠㅠ
  24. sean-H · · 공감 1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원은
    물질 또는 파동인데,
    영혼이란 물질일까요? 파동일까요?
    물질이라면 영혼도 원자번호를 가진 어떤 원자로 구성되어 있어야 할텐데,
    영혼이 소멸할 때 영혼을 구성하는 원자간의 결합이 파괴되는 걸까요?
    만약 파동이라면 파동을 발생시키는 근원이 또 존재해야 하는데,
    그럼 그 근원은 결국 다시 물질일까요?
    아님 물질도 파동도 아닌 차원을 초월하는 무언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25. lcoy ·
    @sean-H님
    '근원'이나 '초월'이라는 건 언제나 호기심의 대상이겠지만
    그런 게 있다 해도 우리의 언어나 이성으로 생각하거나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일까, 라는 점에 있어 저는 부정적인 쪽이예요.
  26. iruka41 · · 공감 1
    의식이 '유전자를 전달하지 않기로 결정'한 개체는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전달하지 않는 편이 종의 번영에 도움이 되는' 케이스 말고도 무수히 많은 케이스가 있을 듯 해서요.
  27. lcoy ·
    @iruka41님
    유전자의 전달은 개체의 문제가 아니라 유전자를 보유한 집단 전체의 문제일 거고,
    여왕개미는 유전자를 전달하고 일개미나 병정개미는 그런 여왕개미가 유전자를 전달하는 걸 돕듯이 개체 각각이 유전자를 전달할 필요는 없을 수도 있겠죠.
    새끼를 위해 희생하든 집단을 위해 희생하든, 자기는 죽더라도 집단의 다른 개체들이 전달할 수 있기만 하면 되니 각 개체 단위에서는 여러 상황이 있을 수 있겠죠.
  28. 가다보면 · · 공감 1
    @lcoy님 내용이 흥미롭네요. 어떤 책들 읽으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29. lcoy · · 공감 1
    @감자에새싹돋네님
    김주환의 내면소통이 가장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다른 책들도 읽어가고 있구요
  30. 메칸더v · · 공감 1
    좋은 글에 좋은 덧글들 잘 읽었습니다..
  31. lcoy ·
    @메칸더v님
    책 추천을 많이 받았네요 :-)

모두의공원 최근 글

모두의공원 목록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