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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체물리학이 최신 우주론에 본격 도입 중

Triend · ·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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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물리학계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게 벌어지고 있는 패러다임 전환에 대해 글을 써봅니다.

보통 물리학에서 극과 극을 달리는 두 분야가 있습니다.

  • 우주론(Cosmology) : 빅뱅, 은하, 암흑 물질 등 '가장 거대하고 텅 빈 시공간'을 연구함.
  • 고체물리학(Condensed Matter) : 금속, 반도체, 초전도체 등 '가장 작고 빽빽한 물질 속 전자'를 연구함.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 두 분야가 최근 하나로 합쳐지고 있습니다.  우주론의 거대한 난제들을 풀기 위해 고체물리학의 논리와 방법론을 수입하기 시작했기 때문인데, 학계에서 이를 적용하는 기묘한 두 가지 방식을 설명해봅니다.  그리고 이 이론들은 놀랍게도 최신 양자컴퓨터 엔지니어링에 사용되고 있습니다.(물리학이 확정된 후, 공학에 적용된다고 생각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들도 들어봤을 홀로그래픽 이론, 양자중력창발이론 등이 대표적인 고체물리학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온 이론들입니다.


1. 우주 자체가 창발(Emergence)된 결과물이다 (Feat. 홀로그래픽 이론 등)

보통 우주론이나 입자물리학은 세상을 더 작게 쪼개서 근본 요소를 찾는 환원주의(Reductionism)를 따라왔습니다. "우주의 궁극적인 기본 입자는 무엇인가?", "끈 이론이 정답인가?"를 쫓았던 거죠.

반면에 물분자가 모여 '습기'나 '파도'라는 완전히 새로운 성질을 만드는 것처럼,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를 연구하는 곳이 바로 고체물리학(응집물리학)입니다.

그런데 최근 우주론 학자들 사이에서 "우주 공간, 시간, 심지어 중력마저도 사실은 근본적인 게 아니라, 고체물리학처럼 하부 구조에서 '창발'된 현상일 뿐이다"라는 논리가 본격적으로 정착하고 있습니다.

환원주의의 한계에 부딪힌 우주론이, 고체물리학의 '창발 논리'를 수입해 돌파구를 찾고 있는 핵심 이유 세 가지입니다.


  (1) '유효장론(Effective Field Theory)'의 승리

고체물리학자들은 금속 안의 수억 개의 전자 움직임을 일일이 계산하지 않습니다. 대신 거시적인 상태만 묶어서 설명하는 '유효장론'을 씁니다. 현대 우주론도 이 논리를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우주 초기 인플레이션이나 암흑 에너지를 계산할 때, 미시적인 끈 이론이나 양자 중력의 복잡한 수식을 다 알 필요 없이 "거시적 규모에서 창발된 유효한 물리 법칙만 가지고도 우주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주의로 선회한 것입니다.

 (2) 공간과 중력은 근본 입자가 아니라 '창발된 현상'이다

고체 속에서 전자들이 떼지어 움직일 때, 마치 새로운 입자가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준입자(Quasiparticle)' 현상이 있습니다. 최신 우주론(특히 홀로그래피 원리나 엔트로피적 중력 이론)은 우리가 느끼는 '시공간'과 '중력' 자체를 이 준입자와 같은 개념으로 봅니다.  미시 세계의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 정보들이 얽히고설키면서, 거시 세계에 '공간'과 '중력'이라는 거대한 거시 현상으로 창발되었다는 논리입니다.

 (3) "More is Different" (많으면 달라진다)의 우주적 확장

고체물리학의 대부 필립 앤더슨의 명언 "More is Different(많으면 달라진다)"는 창발을 뜻하는 최고의 문장입니다.  최신 우주론은 초기 우주의 수많은 양자적 요동들이 '모이고 뭉치면서' 어떻게 지금의 거대 은하 구조와 대규모 우주망으로 창발되었는지를 추적합니다.  근본적인 방정식 하나가 우주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무수한 무작위성이 쌓여 완전히 새로운 우주적 규칙을 만들어냈다는 관점입니다.


2. 우주는 사실 거대한 고체일지도 모른다

 (1) 진공은 텅 빈 게 아니라 '초전도체 상태'다 (자발적 대칭성 깨짐)

우주론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영역이 바로 '초기 우주의 인플레이션(급팽창)'과 '힉스 메커니즘'입니다.  이걸 설명할 때 고체물리학의 아이디어인 '자발적 대칭성 깨짐(SSB)'과 '앤더슨-힉스 메커니즘'이 그대로 쓰입니다.  초전도체 안에서 전자들이 쌍을 이어 전류가 저항 없이 흐르듯, 우주 전체의 진공도 텅 빈 게 아니라 어떤 '응축물(Condensate)'로 가득 차 있어서 입자들에게 질량을 부여하고 시공간을 팽창시켰다는 논리죠.

 (2) 우주의 결함은 액체질소 속 소용돌이와 같다 (키블-주렉 메커니즘)

초기 우주가 식으면서 은하의 씨앗이 되는 구조(우주끈 등)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설명할 때, 고체물리학의 '키블-주렉 메커니즘(Kibble-Zurek mechanism)'이 핵심 이론으로 활약 중입니다.  액체 헬륨이나 액정이 급격히 냉각될 때 내부에 미세한 격자 결함이나 소용돌이(Vortex)가 생기는 수학적 메커니즘이, 빅뱅 직후 우주 공간에 은하와 물질들이 뭉치게 된 원리와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것이 실험실 수준에서 증명되기도 했습니다.

 (3) 암흑 물질을 설명하는 'Bose-Einstein 응축물'

최근 주목받는 암흑 물질 모델 중 하나는 초경량 입자들이 우주적 규모로 뭉쳐서 하나의 거대한 양자역학적 상태를 이루고 있다는 가설입니다. 이때 쓰이는 방정식이 고체물리학에서 초유체나 원자 포획을 다룰 때 쓰는 'Gross-Pitaevskii 방정식'입니다.  먼 우주의 거대 구조를 계산하는 데 고체물리학 책 첫 페이지에 나오는 다체계(Many-body) 양자역학 수식이 그대로 복사·붙여넣기 되고 있는 셈입니다.


3. 상상을 기술로 바꾸는 양자컴퓨터 엔지니어링

놀랍게도 이 기묘한 결합은 상상이나 가설 속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인류 과학의 최첨단에 있는 양자컴퓨터 최신 기술들은 바로 이 고체물리학의 창발 논리와 아날로그 우주론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실제 엔지니어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주가 양자 정보들로부터 시공간을 창발해 내는 수학적 구조(오류 수정 코드)를 역으로 응용하여, 양자컴퓨터의 가장 큰 난제인 계산 오류를 잡아내고 물리적인 소자를 제어하는 방식을 설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체물리학자들의 칠판 위 낙서가 인류의 미래 기술을 뒤흔드는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현대 물리학은 극과 극의 융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1부(개념)에서는 시공간과 중력이 정형화된 무대가 아니라, 미시 세계의 무수한 양자들이 한데 뭉쳐 창발(Emergence)된 거대한 결과물이라는 관점을 보여줍니다.
  • 2부(실험)에서는 우주를 직접 만질 수 없으니, 실험실 안의 초전도체나 액체 헬륨을 '미니 우주' 삼아 시뮬레이션하는 경이로운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그리고 놀랍게도 양자컴퓨터 최신 기술은 이 이론을 적극 반영해서 엔지니어링을 하고 있습니다.

댓글 3

  1. Triend ·
    이 이론에 의하면 빅뱅은 다음과 같이 설명됩니다.
    1. 처음에 에너지 덩어리가 있었다 (물이 있었다)
    2. 그 덩어리의 어느 특정 지점에서 상전이가 발생했다 (물의 특정 지점에 얼음결정이 하나 생겼다)
    3. 그 상전이가 외부로 전이되기 시작했다 (얼음결정이 외부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 빅뱅의 시작)

    놀랍게도 이 상황을 묘사하는 물질의 상전이 방정식은 우주론 방정식과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참고로 이 이론에서는 암흑에너지와 암흑물질이 필요없습니다. 오직 호수에서 물이 어는 현상을 기술하는 방정식만으로 우주의 전체 역사가 다 기술됩니다. 심지어 미래까지도...
  2. 지나가는아저씨 ·
    음 이쪽은 전공이 아니라 잘은 모르겠지만 상전이 방정식이 같다는건 그렇게 큰 일은 아닌것 같은데요
    시간에 따라 변하는 양이 어떻게 되는지를 나타내는 미분방정식이야 변하는 양이 무엇이고 매개하는 힘의 스케일때문에 상수가 달라질 뿐 생긴건 다 거기서 거기라….
  3. Triend ·
    @지나가는아저씨님 보통 선형미방일 때는 변수 몇개 조절하면 대충 그래프 모양을 맞출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호수가 얼어붙는 현상이나 우주의 가속팽창은 선형이 아니라, 경계면이 시간에 따라 스스로 변하는 Non-linear Moving Boundary Problem입니다
    방정식이 생긴게 비슷한 수준이 아니라, 방정식 내부의 각 텀들이 가지는 물리적 스케일이 정확하게 우주론과 1:1로 매핑이 됩니다.
    예를 들어 전도 저항 스케일은 물질복사 중력 스케일과 일치하고, 대류발생시 상수 플럭스 스케일은 우주상수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놀라운 대칭성이죠

    현대 우주론의 가장 큰 미스테리는 빅뱅 직후 급격히 느려지다가, 약 50억년 전 다시 빨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호수의 물얼음 상전이 방정식은 얼음이 얼면서 저항때문에 속도가 줄어들다가, 대류상전이라는 임계 타이밍이 도래하면 다시 가속 성장한다는 사실까지 수학적으로 유도해냅니다. 즉, 암흑에너지라는 이상한 유령을 도입하지 않아도 자체적으로 모든 것이 설명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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