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하는 사회에서 함께 사는 사회로
우리 사회에는 오랫동안 학업성취와 직업적 성공, 소득과 자산, 사회적 지위를 서로 연결해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학교에서는 남보다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중요한 목표가 되고, 좋은 대학과 직업을 얻는 것이 성공의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그렇게 얻은 소득과 지위는 다시 자산 축적으로 이어지고, 자산은 다음 세대의 교육과 주거, 사회적 기회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 과정에서 경쟁은 개인의 노력과 성취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동력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경쟁 그 자체가 아니라, 경쟁의 결과가 지나치게 좁은 기준으로 평가될 때 발생합니다. 돈과 직업적 지위가 능력과 성공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면,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사회에 어떤 가치를 제공하는지보다 다른 사람보다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끊임없이 의식하게 됩니다.
전문직이나 고위직을 향한 치열한 경쟁 역시 단순히 개인의 탐욕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높은 소득과 사회적 지위에 대한 욕구가 중요한 동기로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안정성, 전문성, 사회적 영향력, 부모의 기대 등 다양한 요인이 함께 작용합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개인의 욕망 자체보다 특정한 성공의 형태에 지나치게 큰 보상이 집중되어 있는 사회적 구조일 것입니다.
자산가격의 상승 역시 이러한 경쟁을 더욱 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특히 주택과 같은 핵심 자산의 가격이 빠르게 상승하면 자산을 보유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격차가 커지고, 개인은 단순히 현재의 소득만이 아니라 미래의 자산 격차까지 걱정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산을 축적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만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 FOMO를 느끼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수많은 개인과 집단의 합리적인 선택이 모였을 때 반드시 사회 전체에 가장 좋은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특정 직업군이나 이해관계 집단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결속하는 것도 그 자체로 비정상적인 현상은 아닙니다. 그러나 집단의 이익과 사회 전체의 이익이 충돌할 때 서로 양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면 갈등은 쉽게 극단화됩니다. 반대로 이러한 집단을 바라보는 사람들 역시 그 구성원을 하나의 동질적인 집단으로 규정하고 모든 행동을 특권이나 탐욕의 관점에서 해석하기 쉽습니다.
결국 여기에는 상호 불신의 악순환이 만들어집니다.
어떤 집단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지키기 위해 강하게 결속하면 사회적 불신이 커지고, 사회적 불신이 커지면 다른 사람들은 그 집단을 더욱 적대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면 해당 집단 역시 자신들이 공격받고 있다고 느끼면서 더욱 강하게 결속하게 됩니다. 서로가 상대방의 행동을 이해하기보다 가장 부정적인 동기로 해석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순히 사람들에게 더 착해지라거나 욕심을 버리라고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욕구와 함께 타인을 돕고 사회에 기여하려는 욕구도 존재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욕구가 더 쉽게 발현되도록 사회의 규칙을 설계하느냐입니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사회는 경쟁이 없는 사회가 아니라 경쟁에서 얻은 성취가 사회 전체의 발전과 연결되는 사회일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성공의 기준을 보다 다양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높은 소득과 사회적 지위뿐 아니라 연구, 교육, 돌봄, 창업, 예술, 공공서비스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교육 역시 단순히 남보다 높은 점수를 얻는 능력만을 평가하는 방향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무엇을 알고 있는가뿐 아니라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다른 사람과 협력할 수 있는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함께 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 자산과 부모의 배경이 다음 세대의 기회를 지나치게 결정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주거와 교육의 격차가 개인의 출발선을 결정하는 구조를 완화해야 합니다. 자산을 가진 사람의 정당한 재산권을 존중하면서도, 자산 격차가 곧바로 기회의 격차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민주사회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제도를 강화해야 합니다. 의사와 환자, 기업과 노동자, 임대인과 임차인, 수도권과 지방,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에게 무조건적인 양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더라도 사회 전체가 유지될 수 있는 규칙을 만드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것은 사람들이 왜 이렇게 이기적인가라는 질문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질문은 선량한 사람들조차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경쟁하고 서로를 불신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입니다.
개인의 욕망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개인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것은 사회 발전의 중요한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개인의 합리적인 이익 추구가 다른 사람의 기회를 빼앗는 방향으로만 작동하지 않고, 자신의 성공이 사회 전체의 발전과 연결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는 경쟁을 없앤 사회가 아니라, 경쟁하면서도 서로를 적으로 만들지 않는 사회, 그리고 개인의 성공과 공동체의 번영이 가능한 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회일 것입니다.
결국 '어떻게'가 중요하겠죠...
과거 북유럽의 핀란드 교육이 좋다는 말이 있었지만 핀란드 내부에서도 공교육이 망했다는 말이 있고요.
이미 대한민국의 현실은 변별력을 지닌 수능 등 공정한 시험 경쟁이 약화되면서, 부모의 경제력과 정보력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스펙, 사교육 의존도가 훨씬 높아졌습니다.
또한 정당하게 돈을 벌었다면 부자를 대우해주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자본가, 다주택자, 고소득을 가진 국민(의사, 대기업)을 악마화하고 있습니다. 우선적으로 불법적으로 돈을 버는걸 금지하고 정당하게 돈을 버는 사람을 악마화하면 안됩니다.
대한민국 민심 보면
함께보다는
경쟁을 더 중요시하는 거 같습니다
안타깝지만 현실같아 보여요
우리가 무슨 힘이 있습니까
대세를 따를 수밖에 없죠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인간은 욕망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며, 그 욕망은 선도 악도 아닙니다. 그건 동력이지요. 욕망이 있기에 인간은 행동합니다. 욕망을 배제한다는 건 인간의 배터리를 빼겠다는 것과 매한가지죠. 이상향의 실현을 위해 여러 제한과 규제, 규칙을 세운다... 그것은 욕망의 배제가 아닌 규제의 회피와 곡해를 부르게 됩니다.
어느 정도까지라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그 어느 정도가 넘어가면 어떻게 될까요?
과거 유교는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사람들의 욕망을 어떻게 하면 제한하고 모두를 군자로 만들 수 있을까. 이상적인 세상을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유교 실험 국가라고 할 수 있는 조선에서는 재물에 대한 욕망을 제한하고자 상업을 천한 것으로, 돈을 만지기도 역겨운 물건으로 대했습니다. 그러면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모두가 군자가 되리라 생각한 거죠.
어떻게 됐을까요? 양반들은 만지기도 역겨운 돈을 하인이 들고 다니게 시켰고 천한 상업을 집안에서 가장 천한 서얼 놈이 하게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홍길동 같은 놈이 나타나 충청도를 죽음의 땅으로 만들고 사람 얼굴 가죽까지 벗기고 다녔지요. 홍길동을 잡아 죽이고도 그놈이 얼마나 잔인무도하게 굴었는지 10년 넘게 복구가 안 되어 충청도에서 세금이 안 걷힌다는 기록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아름다운 의도가 곧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게 아닙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서양의 격언을 다시금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민주주의 제도에서는 주인이 종놈의 이상향을 구현하기 위한 사회 실험의 시행착오 사례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됩니다.
만약 누군가가 글쓴이님께 '아무런 확증도 데이터도 없고 연구 결과도 서로 엇갈려 불분명하지만 이렇게 하면 좋을 수도 있고 모두에게 아름다운 결과가 나올 수도 있어. 대신 실패할 수도 있고.' 라고 했을 때, 그걸 따르실 수 있습니까? 정말 그러실 수 있어요? 글쓴이님은 그렇다 칩시다, 옆집 김씨랑 윗집 최씨는 그럴 수 있을까요?
제 생각엔 그게 가능한 건 종교 뿐입니다. 나머지는 그런 말을 믿는 사람들의 지적 능력을 의심하는 게 맞아요. 왜냐하면 거의 100%의 확률로 사기거든요.
말씀하신 바와 같이 모든 정권이 데이터를 토대로 하는 건 아닙니다. 당장 현 정권의 부동산 정책만 하더라도 데이터가 아니라 뭔가 정신이 이상한 것 같은 망상적 편집증을 토대로 진행하고 있죠. 이러면 어떻게 될까요? 제 예상으로는 총선 때 볼 만할 겁니다. 이게 민주주의에요. 종놈이 멍청한 짓거리를 하면 싹 교체하는 거.
그래서 말씀하신 이상향은 이뤄질 수 없다고 보는 겁니다. 의도가 어떻건 그 과정에서 모든 시행착오는 과오로 남아 주체가 교체 대상이 되니까요.
경쟁의 부작용은 제도로 조정하면 된다~~ 라는
당연한 얘기를 길게 늘인 수준입니다.
문제는 누가 어떤 기준으로 보상을 재배분하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비효율은 어떻게 방지할지인데
정작 알맹이가 하나도 없는 AI 글이네요.
클리앙이 어쩌다...
사람 구성이 많이 달라진거 같아요
1년전에 이런 글 쓰면
공감 취지의 댓글이 더 많이 달렸을걸요?
이 글의 댓글을 보니
다들 무한 경쟁 주의자 같아서 좀 그렇습니다
저는 경쟁과 함께가
같이 가는 사회를 꿈꾸는데
어려워보이네요
우리나라 국민들이 매년 다들 엄청나게 벌고 있다고 칩시다, 막 연수입 1억 못 벌고 서울에 집 못 사는 놈이 멍청한 그런 세상이라고 쳐보자고요. 그러면 다들 관대해지고 응 니 마음대로 해~ 할 겁니다. 세상천지 그보다 더 아름답고 착한 사람들 없을 걸요?
그게 인간입니다.
저는 사실 경쟁주의도 좋아하고
함께? 주의도 좋아합니다
사실 어디로 가든 상관없습니다
이미 먹고사는건 걱정없고
그저 남들과 조금이라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공동체를 위해서요
그렇다고 해서 경쟁이 싫은것도 아니고
부동산이 싫은것도 아니고
재개발이 싫은것도 아니고
시세차익이 싫은것도 아니랍니다
그렇기에 제 분야에서 저를 더 입증하고 싶다는 욕망이 더 크지, 돈은 그렇게까지 제 우선 순위가 아니에요. 더 까놓고 말해서 지방 내려가서는 응원하는 야구팀 구장 근처에 집 얻어 놓고 시즌권이나 끊어가며 야구 보고 살까 생각까지 할 정도고요. 그 정도는 가능할 정도로 벌어놨으니까요. 돈이 없어서, 경쟁이 필요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란 거죠.
그런 걸 떠나서 옳고 그른 것, 이뤄질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국가가 지향해야 할 것과 아닌 것에 대해선 확고한 생각이 있습니다. 그걸 말할 뿐이죠. 아닌 건 욕하고요. 개인은 의미가 없어요. 지금 서로 개인적인 삶에 대한 담론을 나누는 게 아니니까요.
AI의 도움을 받아 글을 쓰는 일 자체를 비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글쓴이도 자신의 글을 다듬는 데 활용했다고 설명했으니, 이를 근거 없이 전면 대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AI를 사용했는지와 별개로, 잘 정돈된 문장에 실제 생각과 논증이 얼마나 담겼는지는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의 아쉬움은 글의 길이와 구성에 비해 독자가 검토할 수 있는 구체적인 판단이 적다는 데 있습니다.
성공의 기준을 다양하게 하고, 기회의 격차를 줄이고, 이해관계를 조정하자는 방향에는 쉽게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가치들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무엇을 바꾸자는 주장인지 선명해지지 않습니다. 서로 좋은 가치가 충돌할 때 어느 쪽을 선택할지, 그 선택으로 누가 부담을 지게 될지 설명해야 비로소 작성자의 판단이 드러납니다. 문장을 다듬는 작업은 이 판단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댓글에서 구체적인 방법을 묻는 사람들이 나왔을 때도, 방향에 공감해 달라는 답변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본인의 생각이라는 설명은 글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알려주지만, 그 생각이 왜 설득력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독자들이 내용을 비판하는 자리에서는 작성 과정에 대한 해명보다 빠진 논거를 보충하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특히 글의 표현은 완결된 주장처럼 보이는데 핵심 질문에는 아직 고민 중이라고 답한다면, 표현의 완성도와 생각의 구체성 사이에 간극이 생깁니다.
물론 커뮤니티에 올리는 의견마다 논문 수준의 자료와 완성된 정책을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바꾸고 싶은 현실의 사례 하나, 현재 제도의 문제 하나, 자신이 선호하는 대안 하나 정도는 제시할 수 있습니다. 답을 모르는 부분은 열린 질문으로 남겨도 됩니다. 그렇게 해야 독자도 막연한 찬반을 넘어 구체적인 의견을 보탤 수 있습니다.
AI를 잘 활용했다는 평가는 문장이 얼마나 그럴듯한가보다, 자신의 생각을 얼마나 명확하게 전달하고 질문에 얼마나 충실하게 답하는가에서 나와야 합니다. 도구의 도움을 받았다는 이유로 글의 가치를 깎을 필요는 없지만, 그 도구가 만든 매끄러움이 부족한 설명까지 채워 주는 것은 아닙니다.
함께 잘사는 사회를 지향한다는 취지는 이해합니다. 그러나 좋은 목표에 동의하는 것과 그 목표를 이루는 방안에 동의하는 것은 별개입니다. 평가 기준을 다양화하면 누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지, 기회의 격차를 줄이려면 비용과 부담을 어떻게 나눌지부터 논의해야 합니다. 이런 질문에 방향만 공감해 달라고 답하면 토론은 진전되기 어렵습니다.
취지에 대한 호응을 구하기보다, 반론을 통해 자신의 제안을 구체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여기는 편하게 자기생각 쓰는 것인데 이 정도 별볼일없는 내용도 AI도움을 받으셔야 한다면 글로 사람들 마음 잡기는 힘드실 겁니다.
다음부터는 길이만 대따 긴 '뭔가 있어 보이는' 글보다는 짧지만 사람 냄새나는 글을 올려 보시지요.
듣기에만 좋은 말로 치장한 글이네요
방법론은 둘째지고, 글에서 가정하는 세상은 외부개입 없는, 대한민국 단 하나만 존재하는 세계관인가요?
글로벌 시장에서 도태되서 빈국으로 추락해서 다 같이 못먹고 못살기 위한 가이드라인이나 다름없습니다.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라 공감 여부를 논할수가 없어요. 현실과 아득히 격차가 있거든요
인간본성은 유전정보에 각인된 생존경쟁을 위한 이기주의이고 모든 이타심도 도덕적 만족감이라는 이기심에 기인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개인의 합리적 선택과 집단적 결과 사이의 괴리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각각의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더라도, 그러한 선택이 누적되면 사회 전체적으로는 과도한 경쟁이나 자원 낭비와 같은 결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교육 경쟁이나 주택시장에 대한 과도한 관심 역시 이러한 현상의 한 사례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개념이 이 글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생활수준이 과거보다 나아졌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더 빠르게 자산을 축적하거나 사회적 지위를 높여가면 자신은 상대적으로 뒤처졌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대 사회에서의 경쟁은 단순히 ‘더 많이 가지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남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한 경쟁’의 성격도 상당히 강한 것 같습니다. 최근 자주 사용되는 FOMO라는 표현도 이러한 심리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 가지 부분에서는 조금 다른 생각도 들었습니다. 글에서는 경쟁의 결과가 지나치게 좁은 기준으로 평가되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경쟁 자체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경쟁은 개인의 능력을 발전시키고 혁신을 촉진하는 중요한 동력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기업 간 경쟁이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학문이나 연구 분야에서도 성과에 대한 경쟁이 새로운 발전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따라서 문제는 경쟁이 존재한다는 사실보다 어떤 영역에서 어떤 방식의 경쟁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가 어떻게 보상되는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모든 사회적 격차를 불공정의 결과로 해석하는 것에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능력과 노력, 선택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소득이나 자산의 차이는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결과의 완전한 평등이라기보다, 개인의 출발점과 기회가 지나치게 불평등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부모의 경제력이나 사회적 배경이 자녀의 미래를 지나치게 결정하는 상황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집단 간 갈등에 대한 글의 설명에도 공감했습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이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사와 환자, 기업과 노동자, 임대인과 임차인처럼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항상 같은 결론에 도달하기는 어렵습니다. 문제는 상대방의 주장을 이해하기 전에 그 집단 전체를 이기적이거나 특권적인 집단으로 규정해버리는 순간부터 갈등이 더욱 심해진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이런 점에서 사회적 신뢰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면 상대방의 행동을 선의가 아닌 가장 부정적인 의도로 해석하게 되고, 결국 서로를 방어하기 위해 더욱 강하게 결속하게 됩니다. 사회학에서 이야기하는 사회적 자본이라는 개념도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일정 수준의 신뢰를 가지고 협력할 수 있을 때 개인의 이익과 공동체의 이익이 반드시 충돌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저는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경쟁을 없애야 한다기보다는 경쟁의 방향과 조건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욕구 자체는 사회 발전의 중요한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러한 욕구가 다른 사람을 끌어내리는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고, 자신의 성취가 사회 전체의 발전으로도 이어질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사회 구성원들에게 단순히 양보와 희생을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지속적인 협력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자신의 이익을 포기해야만 공동체가 유지되는 구조라면 결국 사람들은 협력을 선택하기보다 자신의 이익을 방어하려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개인의 이해관계와 사회 전체의 이익이 가능한 한 일치하도록 제도를 만드는 것이 더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왜 이렇게 이기적인가’라는 질문보다는 ‘왜 서로 경쟁하고 불신하는 것이 개인에게 합리적인 선택이 되었는가’라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의 욕망을 없애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반드시 바람직한 것도 아닐 것입니다. 다만 각자의 합리적인 선택이 모였을 때 사회 전체적으로도 더 나은 결과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사회의 규칙을 만들어가는 것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생각하는 ‘함께 사는 사회’는 경쟁이 없는 사회가 아니라 경쟁하면서도 서로를 적으로 만들 필요가 없는 사회입니다. 경쟁을 통해 개인의 성취를 인정하면서도 출발선의 차이가 지나치게 확대되지 않도록 하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이 갈등하더라도 대화와 제도를 통해 조정할 수 있는 사회가 보다 현실적인 목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글은 경쟁과 협력을 단순히 대립되는 개념으로 보기보다, 두 요소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님의 주장은 뭘까요? 한번 끝까지 다 읽어봤는데 시간이 아까웠습니다.
하도 이상해서(그리고 댓글들에서 ai가 쓴글이라고 의심하는 내용이 많아서)
ai한테 분석도 시켜봤습니다. 이상적인 얘기만 늘어놓지 마시고 해결책을 제시한다던가 쉽게 써주시면 안될까요?
되게 ai 어투로 쓰셨어요... 마치 헬조선 법레기들의 잠꼬대같이 주절댄 법조문 쓴거 읽는거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