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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수시(학종, 농어촌)으로 애 대학 보냈습니다.

수워리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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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학종, 농어촌)로 이번(작년이라고 해야 하나)에 애 대학 보낸 아빠입니다. 제주도 시골 면단위 초중 나오고, 읍단위 고등학교 나온 아이입니다. 애초에 정시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학원 다니고 과외하는 시내 아이들하고 비빌 각이 나오지 않아서요. 수시로 하되 읍에는 딱 보습학원 정도만 있었습니다. 굳이 괜찮은 학원 보내기에는 사실 형편도 어렵고, 애도 힘들어서 학원 다니기 싫다고(왕복 거의 4시간)해서 집과 학교에서만 공부했습니다. 제 아이 같은 경우, 그리고 그 친구들의 경우 수시가 아니었다면 굉장히 힘들었을 겁니다. 수시가 큰 도움이 되었죠.

시골 학교가 으레 그렇듯 "고교학점제 시범학교"(이런 거 주로 시골 학교를 시범학교로 자주 지정합니다)가 되었지요. 뭔 소린지도 모르겠고, 내신만 좋으면 다인 것도 아니라고 하고, 사실상 응원과 조언 말고는 한 게 없습니다. 전교생 30명(한 반 아니고, 한 학년 아니고, 1~3학년 전체)인 중학교에서 맨날 1등 하다가 그마나 읍에 고등학교 들어가더니 1학년 1학기 성적 말아먹고 멘붕에 빠지더군요.

워낙 애니메이션이랑 게임 좋아하던 애라 미대 가고 싶다 했는데 입시미술이 막막하여 주저 앉혔죠. 1학년 성적 무너지고 2학년 올라가던 사이에 이것저것 알아보았는지 다시 폼을 회복했습니다. 그나마 자기 취향하고 비슷한 것이 '게임'이라 생각했는지 방향을 그쪽으로 잡더군요(컴공/컴소/디콘/게임 등). 해서 뭐 무슨무슨 수업 들어야 한다고 목(방과후)/토에 시내에 있는 고등학교 가서 코딩 같은 거 배우고, 내신 잡으면서 수행으로 뭐 이것저것 짜고 하더군요. 수강 과목을 그쪽으로 맞추기도 했고요.

문제는 애가 수학/과학을 못하는데(극문과, 국어랑 영어는 공부하는 꼴을 못 보는데 성적이 좋고, 매일 수학 과학만 붙들고 있는데 성적이 안 따르네요), 어쨌든 고생스럽게 했죠. 주로 시험보다는 수행에서 좀 성과를 낸 편입니다. 수행에서 하다 못해 지구과학 뭐 발표하는 거다 하면 "마인크래프에서 지질의 현실적 반영" 어쩌구저쩌구로 리포트 쓰고, 수학에서는 "미분 기하학과 게임 내 포탄 궤적의 물리적 구현"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쓰고, 하다 못해 음악에도 수행에 게임 사운드 어쩌구 저쩌구, 영어도 발표(수행) 자료로 "게임에서 재미를 구성하는 3요소" 뭐 그런 식으로 아예 그쪽으로 2-3학년 내내 쭉 밀고 갔습니다. 2학년 말에는 기말 끝나자마자 며칠 밤새워 게임 만들어서 수행 제출하고 그걸로 학교 축제 때 교실에 컴퓨터 30대 깔아놓고 학생들이 체험하기도 했고요.

시골 학교 특성상 공부에 욕심 낸 아이와 안 낸 아이가 극명하게 갈리는 분위기도 있었습니다. 시내에서 내신 따러 오는 똘똘한 애들도 많았고요. 애는 어쨌든 학원을 안 가니 당연히 수업 자체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그러니 선생님으로서는 수업 자체에 "협조적인" 면이 좋게 보였는지, 나중에 학생부 보니 성적은 부족한데도 어떻게든 잘 써주시려고 한 티가 나긴 하더라고요.

원서 쓸 때가 다가와서 가능한 학교와 학과들을 찾아볼 때입니다. 숫자로만 보니 욕심이 생기는데, 시골 학교 특유의 커다란 표준편차 때문에 성적표에 기재된 등급보다 0.5~0.8 등급은 깎고 봐야 한다더군요.

몇 군데 쓰고, 수능최저도 2개 필요해서 수능도 보았지요. 아무렴 수시러라 해도 이 정도 성적인데 이 정도 수능 등급도 못 따겠냐 했는데, 못 따네요. 이번 수능 어려웠다고...

어쨌든 애는 딱 원하던 대학 들어갔습니다. 서울 애들 사이에서 쫄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더라고요. 가서 보니 팀플로 뭘 개발해야 하는데, 애들이 아무것도 모르더라는 겁니다. 개발 툴을 사용해본 사람도 저 하나밖에 없고, 애들이 회의라는 것 자체도 할 줄을 모르고(그 학과가 수시 반, 정시 반 정도 뽑았어서). 결국 지가 팀장하게 됐다고 하면서 그러더군요. "고등학교 때 실무 배운 거 대학교에서 써먹는 것 같다"고요. 어쨌든 이번에 또 무슨 점핑 어드벤처 게임을 만들었다고 전시회 출품했다고 하는데, 비행기 값이랑 숙소비가 무서워서 못 가보네요.

'될놈될'이라는 말도 있긴 하지만 혹여 대입 방법이 정시뿐이었으면 어쩌면 제 아이나 그 친구들은 좀 많이 힘들었을 겁니다. 제주 애들의 숙원인 "친구야, 육지에서 만나자!"도 쉽지 않았겠지요. 다양한 입시제도 덕에 기회를 잡을 수 있었고, 자신의 성향과 취향에 따라 일찌감치 공부의 방향을 정한 것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물론 정시만 있을 때도 시골에서 서울대 간 학생들이 있죠. 원래 해마다 교과서만 가지고 공부해서 서울대 가는 애들은 꼭 있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범부의 자식들에게는 수시(요샌 학종과 교과가 많이 섞이는 분위기로 하더군요)가 제법 도움이 되는 선택지였씁니다.




PS. 제가 바로 94년 수능 두 번 본 사람입니다. 공고 다녔는데, 전공 과목이 너무 안 맞아서 고삼 2월 때 대학을 가야겠다 하고 수학의 정석을 사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3월에 개학하고 친구들 만나니 그때야 '수학' 능력이 그 '수학' 능력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7월 초에 자격증 시험(공고 졸) 보고 보름 뒤에 1차 수능을 봤죠. 2학기는 작은 공장 하시는 외삼촌께 부탁해 취업증명 받아서 학교 안 가고 도서관 다니며 공부했죠(물론 중간중간 시도 쓰고 소설도 쓰고 북한산 가서 술도 마시고...). 1차 수능 점수와 2차 수능 점수가 거의 차이 없는 매우 드문 케이스였는데, 무조건 높은 점수로만 한다는 방침에 따라 결국 1차 수능 점수로... ㅠㅠ

댓글 13

  1. 예룰루랄라 · · 공감 3
    축하드립니다, 아이의 성실함이 인정받은 거 같아 뿌듯하실 거 같아요. 저는 교육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곳의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도 수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2. 수워리정 · · 공감 1
    @예룰루랄라님 감사합니다.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이 이것저것 많이 알아봐주신 덕도 큽니다. 작전(?)도 잘 세운 편이고요.
  3. 핑소년 · · 공감 2
    축하드려요. 여러모로 대단한 아이와 부모님이네요, 비슷한 과정을 아직 겪지도 않은 아빠로서 특히 너무 대단하고 멋지게 들리네요. 맞습니다. "실제로" 수행한 것은 엄청난 자산이겠네요. 아이가 일찍부터 하고 싶은 방향을 잘 찾으면 너무 좋겠는데 싶습니다.

    저도 수능 두번 본 세대입니다. 두번째가 너무 어려웠죠.
  4. 개미상어곰탕 · · 공감 2
    여기도 입시한지 오래되시거나 아니면 자녀를 학군지에서 키우느라 수시초기 빈틈 (특이전형이나 외부상, 인턴쉽 품앗이등)이나 학군지에서의 내신경쟁의 압박때문에 부정적인 분들이 많은데 최상위권 말고 중상위부터 중하위권까지는 수시를 통해서 미리 지원할 전공 관련해서 생기부 만들면서 긍정적인 면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정시와 다르게 점수대로 지원하더라도 과를 대체로 일관성 있게 지원하죠
  5. 삼광조 · · 공감 2
    정시는 무제한 경주같은거죠. 어떤 학원을 다녔건 어떤 내신을 가졌건 어떤 학교생활을 했건 단 한번의 시험으로 결정나는....돈있으면 포뮬러카를 가져와도 되고 돈없으면 맨발로 뛰어야 되고, 물론 정부의지원도 있습니다. 교육방송같은거나 사교육보다 조금 저렴한 인강도 있구요. 하지만 포르쉐랑 티뷰론의 차이랄까요. 하지만 결과는 공정합니다. 성적으로만 평가하니까요. 관점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6. 단디똑띠 ·
    서울 일반고는 더 혜택이 없는 것 같아요. 수시도 지금 전사고나 자사고 아이들 몫이라고...일반고는 극히 일부라고 성적 전형이라고 하는 얘기들이 많거든요. 물론 선발이나 그런 아이들이 학비도 내니 생기부도 잘되고 공부도 잘 하겠죠..일반고 서울학생은 상대적으로 아무것도 없어요. 특목고 못간 죄로 부모가 별도로 돈을 때려 부으면..좀 효과가 있나 모르지만.
    특목고 4등급도 설대를 가는데 일반고 전교 2등은 서울대 가기가 힘들어요 ㅠㅠ
  7. M.D.E ·
    @단디똑띠님 특목고가 영재고나 과학고라면 4등급은 당연히 서울대를 가야죠.
    일반고 전교 2등이 의대도 아니고 서울대가 어려운 학교는 문제가 좀 있네요.
  8. indigo62026 · · 공감 2
    수시가 아이와 잘 맞으셨다니,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올바른 입시의 방식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부는 다행스럽게도 정시였다면 얻기 힘든 좋은 결과를 얻는 학생도 있겠지만, 많은 학생들은 정확한 이유도 모른채 부정적인 결과를 얻겠지요.
  9. M.D.E · · 공감 1
    지금은 학력 격차가 너무 크게 벌어져 버렸습니다.

    학군지에서 학원 뺑뺑이 돌리는 부모들 본인이 고학력자인 시대는 이미 지났고(세간의 바람과는 다르게)
    조부모가 고학력인 시대입니다.

    지금 정시로 돌아가면, 나라가 반쪽 날 겁니다.
    수시로 강남이 이득본다, 자사고, 특목고가 이득본다 하는 시대는 지났고 지금은 진짜 수시 없어지면 인서울 했다고 동네잔치 하는 시대로 돌아갈 겁니다.
  10. Augustinus · · 공감 1
    고생하셨습니다. 대학 보내본 부모님들께서는 어떤 제도건 간에 대학에 가는 게 얼마나 힘든지 이해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정시니 수시니 공정성 논란이 많지만 입시는 언제나 어렵지요.
  11. M.D.E ·
    수시가 옳다는 게 아니고, 어쩔 수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정시로 돌아가고 싶으면, 정말 큰 각오와 합의가 필요합니다.
  12. tirpleA ·
    제주도면 원래도 학교 간 밸런스가 좋은 편이고, 차로 라이딩도 용이해서 탈 대치 시대 생각하면 오히려 괜찮은 좋은 지역이라 봅니다
  13. 수워리정 ·
    @tirpleA님 제주도 학교 간 밸런스는 ... 글쎄요. 좀 극단적인 편이 아닌가 싶습니다. 차로 라이딩... 저희 집에서 시내 가려면 최소 1시간, 보통 1시간 30분인데요. 왕복하면 못할 짓이죠. 촌에 10년 넘게 살다보니 거리/시간 감각이 좀 달라진 것도 있습니다. 보니까 서울 강남 애들도 두어 시간씩 차 타고 다니면서 학원 다닌다는데... 그래서 애들이 항상 피곤한가 봐요.
    무튼, 탈대치 그런 것보다는 그냥 애들 어릴 때 좀 즐겁게 유년기를 보냈으면 하는 바람으로 내려왔습니다. 제가 그때쯤 유행하던 혁신학교 그런 거 로망이 있었는데, 육지에서는 보낼 방법이 없고, 아싸리 시골로 가자 해서 와씃ㅂ니다. 물론 그때 회사도 어렵고, 대출은 거치 기간 끝나고 원금이랑 같이 상환할 때가 됐는데 아무리 계산기 두드려도 감당도 안 되고, 아내도 우울증에 저도 번아웃 오고,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어 피신 온 것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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