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을 이겨낸 자들이 놓치는 방치된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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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의 내가 가장 자주 보던 문구는 어느 삽화에 적혀 있던 말이었다.
"Never Ever Give Up."
그 문구 아래에는 개구리가 두루미에게 삼켜져 목구멍까지 들어간 상태에서도, 두루미의 목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쥔 채 끝내 삼켜지지 않으려 버티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난 그런 자세로 살았다.
이가 깨지도록 바득바득 갈며 노력하고, 성취하고, 발전하는 것만이 옳은 길이라 믿었다.
그리고 성취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그런 믿음은 더욱 단단해졌다. 그 이면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느새 나도 모르게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성공의 기준으로 본다면, 내가 이룬 것은 저 인기 강사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초라할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성취할수록 그 이면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 좁아지기 쉽다.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은 끊임없이 성공한 사람에게 '당신이 옳았다'는 확신을 심어 준다.
내가 그렇게 고생해서 이뤄냈다.
내가 선택한 방식으로 성공했다.
내가 끝까지 그 생각을 놓지 않았기에 성공했다.
사회 구조의 특성과 인간이라는 존재의 특성이 맞물리면, 힘을 가진 사람일수록 이러한 확신은 자연스럽게 더욱 굳어진다.
이는 비단 성공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성공하지 못한 절대다수 역시 "저 사람은 저렇게 했기 때문에 성공했다."라는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때 베스트셀러와 유튜브를 성공담이 가득 메웠던 것도 그 사실을 잘 보여준다.
문제는 이렇게 굳어진 사고방식이,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때로는 그 무엇보다 잔인하고 폭력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하늘은 선택한 사람에게 큰 시련을 내리고, 그것을 견뎌 낸 사람은 그만큼의 결실을 얻는다.'
이러한 말은 결국 이뤄낸 사람의 시선에서 바라본 해석일 뿐이다.
시련을 견디고 또 견딘 끝에 폭력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렀다면, 그 사람에게는 결코 적용될 수 없는 이야기다.
굳이 극단적인 예를 들 필요도 없다.
어떤 분야에도 재능이 없고, 노력하는 재능조차 없는 사람이 극심한 시련 속에서 저런 영상을 보며 '나도 참고 버티면 큰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 사람은 오히려 더 크게 무너질 수도 있다.
반대로 사람과 상황에 따라서는, 아무것도 될 필요 없이 존재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그 사람을 훨씬 더 큰 존재로 만들 수도 있다.
즉, 그 무엇도 절대적인 정답이 될 수는 없다.
폭력이 만들어지는 핵심 역시 여기에 있다.
누군가를 혹은 어떤 것을 유일한 기준으로 받아들이는 것.
문제는 성공한 사람만이 아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소비하는 대중 또한, 특정 대상에게 완전한 권위를 부여하는 순간 그 폭력은 비로소 완성된다.
그러나 유튜브와 SNS, 기사 등 무엇을 보더라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완전한 권위를 부여한다.
저 사람은 수천억 원의 자산을 가졌으니까.
이미지가 좋으니까.
잘생기고 예쁘니까.
학벌과 직업이 주는 권위가 있으니까.
권력이 있으니까.
착해 보이니까.
온갖 이유를 덧붙이며 불완전한 존재를 어느새 완전한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그럴수록, 이미 천편일률적인 이 사회는 더욱 단색으로 변해 간다.
오직 하나의 기준만이 옳고 마땅한 것이 되고, 그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삶과 생명은 가치 없는 것으로 취급된다.
이 나라에서 현대인이 느끼는 가장 본질적인 불행, 그리고 원인조차 설명하기 어려운 불행은 어쩌면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완벽한 존재로 만들수록,
그리고 하나의 기준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수록,
그것이 무너지는 순간 역시 더욱 처참해진다.
이 사회는 그 장면을 수도 없이 반복해 왔다.
미디어에 등장한 사람을 신처럼 떠받들며 끝없이 우상화한다.
그러다 어느 날 오점이 드러나고, 그것이 여러 계기를 통해 미디어에서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하면,
불과 얼마 전까지 신에 가까웠던 존재는 순식간에 가장 악한 사람으로 규정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람을 향해 모멸이 섞인 조롱과 욕설을 쏟아 낸다.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아주 잠깐 숨을 쉰다.
사실 그동안 숨이 막혀 있었던 이유는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낸 단 하나의 기준이 이 사회를 지나치게 경직시켜 왔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신처럼 여겨졌던 존재가 무너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는,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채 안도감을 느낀다.
결국 저 사람도 완벽한 존재는 아니었고,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비로소 숨통을 틔워 주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수도 없이 반복해서 겪었음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잘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를 떠받들고 숭배한다.
그리고 언젠가 가장 높은 곳에서 그들이 추락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또다시 안도한다.
이 사이클은 끝없이 반복된다.
그렇다면 본인만 추락하지 않으면 되는 걸까?
절대 그렇지 않다.
인간은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본질적인 불행의 시작점인지도 모른다.
오직 하나의 좁디좁은 기준선에서,
아주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쓰레기로 전락하는 사회.
그 안에서는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왜 이런 다층적인 사고는 이토록 어려운 걸까.
오늘도, 지금도 이 세상에는 수많은 말들이 떠다니며 우리의 숨통을 조여 온다.
"ㅋㅋㅋ 돈만 많으면 장땡이지. 범죄자여도 너보다 돈 많은데? ㅋㅋㅋ"
"혀를 깨물며 그 피를 마시며 공부할 정도로 노력해서 이렇게 성공했으니, 여러분도 노력하면 다 할 수 있습니다!"
겸손함의 본질은 남에게 비춰지는 태도에 있지 않다.
처음 말했듯,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믿는 태도의 이면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그것을 경계하려 애쓰는 자세.
그것이야말로 겸손의 본질이다.
간신배처럼 여기저기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겸손은 아니다.
겉으로만 오만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겸손한 것도 아니다.
미디어에서는 누구보다 겸손한 사람처럼 행동하던 사람이, 실제로는 누구보다 역겨운 행동을 하는 일은 너무나 쉽고도 가볍게 벌어진다.

구조를 다양한 매체로 작업합니다.
사진과 글, 그리고 영상까지.
아래 signature에 남겨두었습니다.
출처 : https://youtube.com/shorts/-GEUiN3twF0?si=YDKqLfjntixuGe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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