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스트와 제 페북에 올렸던 것을 그대로 복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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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Chuck (2025)
https://www.imdb.com/title/tt12908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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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지구에 걸쳐 진도 9.0 이상의 지진과 쓰나미가 일어나면서 종말의 공포가 사람들을 사로잡고 문명의 일상적 풍경이 찢겨나가는 모습을 스펙터클한 비주얼 전혀 없이 섬찟하면서도 가슴 먹먹하게 잘 그려냈다. 아직 사랑하는 전처를 다시는 못 보게 될까 두려워 밤이 이슥해지도록 쉬지 않고 걸어 그녀가 사는 이웃 소도시에 도달한 남자를 정전이 맞아준다. 그래도 밤하늘만은 여전히 밝게 빛나는 별들로 가득차 있다고 그녀와 자신을 다독이지만 이내 그 별들도 빛을 잃기 시작한다. 문자 그대로 '코즈믹' 호러다. 하지만 이 영화는 호러가 아니다. 호러적 요소와 판타지적 요소가 잘 버무려진 휴먼 드라마다. 호러적 요소의 막대한 스케일은 인간이 우주의 주인공이 아님을, 우주는 인간의 의지 및 능력이 아주 약간 이상은 닿을 수 없는 광대무변심오한 것임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다. 그래서 그 재난도 인간 탓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 명백한 사실은 인간 존재가 보잘 것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떤 스케일의 것이든 인간에게 불가항력적으로 닥치는 재난은 인간의 존재 의미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인간의 존재 의미는 존재한 동안 어떻게 존재했느냐에 달려있다. 이를테면, 그 남자는 '사랑한다'고 말한다. 이 세계가, 아니 이 우주가 끝나도 그 사랑이 있었고 그 남자가 사랑하는 사람과 마지막 순간을 나누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은 남는다. 그 외에도 우리 인간은 자신이, 이 우주 저 우주가 아닌, 결코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끝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광대무변심오한 우주의 일부라는 것을, 그 광대무변심오함을 분유한 존재라는 것을 자부할 수도 있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들려오는 휘트먼의 시의 한 구절은 그 사실을 말해준다. 별들이 또 생길 것이고 인간 비슷한 존재들이 또 생길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짧고 아무리 우발적인 재난들에 노출되어 있는 삶이라도 그 존재 중 적잖은 이들은 의미있는 삶을 살기 위해 고투하고 사랑할 것이다. 아, 그런데 그 남자는 사실 이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다. 관객은 영화 초반에서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사라지는 그를 통해 그와 같은 류의 또 다른 그의 삶이 더 밀도있고 더 풍부하게 스크린에 펼쳐질 것을 짐작하게 된다. 아직 어린 나이에 '비밀의 방'에 들어가 자신의 생이 길지 않을 것임을 알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눅들지 않고 힘껏 살아간 그, 회계사가 되었지만 하기 싫은 일을 할아버지의 소망에 밀려 억지로 선택한 것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댄서에도 적격이었던 자신의 육체적 잠재력을 망각하지도 않았던 그, 그래서 그 의미깊은 짧은 삶을 지구의 마지막 날들에 방송, 벽보, 깃발, 전광판, 스카이 라이팅 등이 일제히 약속이라도 한듯이 칭송하는, 전혀 유명인이 아니었던 그 말이다. 우주에 그런 감동적인 판타지를 '실제로' 허용하는 원리는 있을 것 같지 않지만, 고유하게 인간적인 창작물인 영화적 가상은 그런 판타지를 아주 떳떳하고 설득력 있게 창조할 수 있다!
처음엔 세상 종말 속의 휴먼드라마인가 싶었는데, 그보단 더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삼막구조가 거꾸로 진행되는 구조의 참신함도 좋았다. 한 사람의 안에 존재하는 우주라는 비유를 실체화 한 아이디어도 재밌었지만, 제일 매력적인건 역시나 춤들이었다. 인생의 즐거움 열정 향기 이런 것들의 영원한 상징인 춤이 이번에도 같은 역할을 한다. 잔잔한 감동과 생각거리를 남기며 영화가 끝났을 때 원작자의 이름에 스티븐 킹이 올라온 것은 의외였다. 공포소설의 대가가 공포영화감독과 함께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
궁금해져서 바로 원작을 찾았다. (다행히 나에겐 스티븐 킹의 대부분의 책이 이북으로 있다.) ‘피가 흐르는 곳에’라는 단편집에 실린 ‘척의 일생’ 이라는 단편이었다. 소설은 영화와 구조와 내용이 거의 같다. 숫자에 대한 찬미라던가 회계사 직업의 대물림, 성역할이 몇개 바뀐 소소한 차이만 있었다. 어느게 더 좋았냐면, 영화라고 말해야 할거 같다. 소설 안 문장 속에선 춤은 장황한 암호가 되기 쉬우니까.
종말의 전날에 사과나무를 심는게 현명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피할 수 없는 끝을 마냥 멍하니 기다리며 살 순 없는 것이다. 춤을 출 수 있을 때 땀 흘리며 추고, 내 인생에 들어온 사람들을 소중히 간직하며, 그들의 우주를 기억하면서, 무심한 척 기다리는 것.
그것이 인생을 사는 태도이면 좋을 거라고, 자칫 지루했을 한 일요일 낮에, 그들이 나에게 조언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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