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양말 사용기 입니다.
23. 낙생낙족
2월 1일 토요일. 마지막 날.
그간 부지런히 걸은 덕에 36km만 남았다.
아침 7시, 기흥 상갈교 사거리 설렁탕집.
빨간 삼태기 쓰레받기를 든 중국교포 점원이
주차장을 쓸다 말고 나를 맞았다.
그녀는 그 무엇도 궁금하지 않다는 듯
무색한 얼굴로 팔팔 끓는 설렁탕을 내왔다.
눈앞에 보글거리는 뚝배기는
무심한 깍두기 한 알에 용케 식었다.
끝 모르게 복닥거린 여행자의 걸음도
오늘이면 도시의 붉은 신호등 앞에 멈추겠지.
용인부터는 순조로웠다.
간간이 응달에 녹지 않은 언 눈을 밟긴 했지만,
외곽보다는 나았다.
11시 40분께
낙생고등학교 버스정류장에서 쉴 때였다.
저릿하게 소변이 마려웠는데,
왕복 9차로 대왕판교로는
차량 행렬에 끊김이 없었다.
도시 여행자로서
통유리 버스정류장 뒤에서 돈 세는 척,
시치미를 떼며 용변을 볼 수는 없었다.
길 가장자리, 낙엽이 수북한 곳으로 내려갔다.
아쉽게도 밖에서 허리춤이 보일락말락 어정쩡했다.
도시의 세련됨 때문이었을까?
뒤돌아 내깔렸던 과거와 달리,
바른생활을 읽은 것도 아닌데
수오지심에 물든 나는 더 깊숙이 들어가려다
낙엽에 가린 천연의 함정에 오른발이 쑤욱 빠졌다.
벗은 신발에선 물이 뚝뚝, 양말은 흥건했다.
18km밖에 남지 않았지만 젖은 채 걸을 수 없었다.
빨래 보따리에서 신은 게 어제인지,
첫날인지 모를 양말을 꺼내
김이 모락 피어나는 발을 욱여넣었다.
헌 양말로 축축해진 신발에 베인 물을
흡수하려는 생각이었다.
걷는 사이 물기가 양말로 옮아가면 갈아신고,
또 갈아신고.
버스 기다리는 승객의 시선은 모르쇠,
족욕한 듯 새하얗게 부르튼 맨발을 드러냈다.
판교 제2테크노밸리 정류장에서
대왕판교로 대신 경부고속도로에 나란히 붙은
달래내로 쪽으로 경로를 옮겼다.
지름길은 아니지만 안 가본 길이라 궁금했다.
호기심은 늘 대가가 따랐다.
달래내고개길 초입,
포장된 길만 있을 거라 믿었건만,
성남 금토공공주택지구 공사장에서 나온
흙탕물로 진창이 된 갓길 없는 도로를
덤프트럭에 이리저리 쫓겨가며 걸어야 했다.
1시 30분, 금토1통앞 정류장에 이르러
어김없이 양말을 바꿔 신는데,
뒷쪽 도랑에 족히 일흔이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 셋이 무언가를 잡고 있었다.
괭이 든 노인이 첫째,
어깨에 족대를 걸친 이가 둘째,
맨 뒤 바구니를 쥐고 뒤따르는 건 막내.
하나같이 표정 없는 형제 중
첫째가 바위 밑동을 들썩였지만,
잡힌 건 수초뿐인지 둘째는 족대를 털기 바빴다.
연거푸 허탕 친 그들은
어슬렁어슬렁 물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고기라고는 제사상에서나 맛봤던 어릴 적.
군청 소재지 제천시 보다 되려
단양과 풍기가 가까운,
문명의 경계에 방목된 아이들은
겨울 도랑에서 개구리를 잡았다.
소년들은 중부 내륙지방의 거친 추위에
소매가 빳빳해지도록 콧물을 훔치며
온 개울을 헤집었다.
저녁, 양동이에 가득한 개구리를,
쇠죽을 끓인 아궁이 군불에 구우면
닭 다리 맛이 났다.
개구리만이 아니었다.
참새부터 메뚜기, 잠자리, 매미까지
잡을 수 있는 건 모두 불에 지져 맛을 보았다.
누가 토끼를 잡는다고
두꺼운 철사로 둥글게 말아 만든 올가미를 들고
뒷산을 오르면, 나머지는 우르르 선두를 쫓았다.
살육은 무료한 시절의 유일한 유희였다.
주지육림이 매일 저녁 펼쳐지는 풍요로운 지금.
세 노인은 청계산 개천에서
무얼 잡으려고 한 걸까?
알량한 팔뚝으로 땅에 박힌 바위를 흔들어 재끼면
촌스런 시절의 즐거움이 겨울잠에서 깰까?
나도 마찬가지였다.
여행으로 무엇을 얻는다고.
정신승리 혹은 호르몬의 착각이 아닐까?
방바닥에 누워 양모 누빔 차렵이불을
푹 뒤집어써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텐데.
생각만 많은 호모 사피엔스는
쉬고 앉아 있을 시간이 없다는 걸
뒤늦게 알아채고,
의자에 기댄 지팡이를 화들짝 잡아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