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퐁 주방세제 사용기입니다.
22. 나에게 ‘집’이란?
송탄과 서탄, 동탄을 다 걷자, 기흥이었다.
사위가 어둑해져 밥 먹고 잘 곳을 찾아야 했다.
그날 밤, 나의 과녁은 기흥초등학교였다.
동탄기흥로 쿠팡 용인 2캠프를 지나
강동냉장을 우측으로 끼고 돌았다.
식당이 보였다.
더담아 숯불갈비.
'한우생불고기'라 쓰인 플래카드가 휘황했다.
휴대전화로 검색한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안심식당’이란 홍보문구는
그럴싸한 만큼 비쌌다.
법인카드로 먹어야 더욱 고소한 소고기를 지나쳐,
마을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제주돈네,
이베리코 꽃목살 2인분이면 족하리라.
그런데 2층이었다.
등산지팡이에 체중을 싣고 계단을 오르는데,
오늘 열두 시간의 중력이 집중된 발바닥은
육백 볼트의 전기뱀장어에 뒤엉킨 듯 저릿했다.
밑반찬이 나오기 전,
타이레놀 서방정 두 알을 털어 넣었다.
주인은 손님이 없어 심심했는지
광주에서 걸어왔다는 내게 물었다.
"어디서 자요?"
“텐트요.”
나는 고개를 돌려 배낭 위,
6일 동안 펴지 않은 텐트를 봤다.
‘나도 잘 데 있어요.’라는
병아리콩만 한 자존심의 알량한 눈빛이었다.
“그럼 어디서 펴요?”
“사람 없고, 눈비를 피해야 하니
학교 같은 처마 있는 곳이요.”
‘몰래 건물에 들어가서 자요.’라고
말하기 부끄러워 둘러댄 것 치고는
제법 그럴싸했다.
“혹시, 장소 추천해 드릴까요?
학교로 쭉 가다 보면 왼쪽에 다리가 보여요.
그 아래가 괜찮을 것 같아요.
비 피하기에요.”
그는 칭찬을 기다리는 소년처럼
목울대에 힘을 주었다.
그가 말한 기흥초 입구 사거리
왼쪽 경부고속도로 공세1교 밑은
주차된 차들로 빽빽했다.
그 사이에서 자다가 깔려 죽긴 싫었다.
나는 마을 안으로 더 걸었다.
공세 2통 경로당.
나는 ‘휴가철 빈집을 노리는 상습 좀도둑’처럼
딴청을 피우며 능숙하게
팔꿈치로 바깥 문을 열었다.
경로당은 바깥 문 안쪽에 또 다른 문이 있었는데,
안쪽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게 주어진 폭 70cm, 현관 발 디딤대 위에
자리를 깔았다.
렘수면의 접점에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정 롱점퍼 지퍼를
목젖까지 채우고,
점퍼에 달린 모자와 까만 마스크를 써서
눈만 내놓은 키 큰 청년이 들어왔다.
그는 누워있는 나를 본체만체,
왼손에 쥔 전화를 귓바퀴에 밀착하고,
오른손으로는 우산꽂이를 뒤적였다.
"할머니, 빨간색 긴 우산이라고 했지?
찾아보고 있는데, 빨간색은 없네.
응. 그럼 다른데 놓고 온 것 같은데. 알겠어요."
체구와 다르게 나긋한 목소리.
듣자 하니 할머니 우산 심부름하러 온
마음 착한 손자였다.
"저 거지 아니에요. 비가 와서요."
나는 그가 놀랄까 봐 핑계를 댔다.
"알아요. 트래킹하는 사람요."
그는 커다란 눈으로 나를 보며,
노르딕 스키를 타는 꿀벌인 듯
양팔을 바삐 휘저었다.
청년이 돌아간 자리에는
끝내 펼치지 않은 텐트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정작 내 몸을 기탁한 곳은
누구도 허락하지 않은 발 받침인데.
텐트는 혹한을 대비한 마지막 구원이었을까?
아니면 사람들이 내 거처를 물을 때
마지못해 답할 구실 혹은 구색이었을까?
2월 1일 새벽.
경로당 입구에 딸린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았다.
비누 대신 세면대를 차지한 자연퐁은
비린내를 확실히 없애준다는 광고문구에 걸맞게,
사흘 묵은 외간 남자의 노린내까지
여한 없이 씻겨주었다.
다시 배낭을 멨다.
여전한 무게.
쓰지도 않을 텐트를 왜 가지고 왔을까?
못해도 3kg은 줄었을 텐데.
그래도 중고나라에 올리면 오만 원은 받겠지?
아무렴, 한 번도 안 쓴 건데.
처진 어깨끈을 또 한 번 으쓱, 치켜올렸다.
옷은 빨래나 환복 없이 계속 입으셨던 건지도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