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나그네식당
우금티터널 너머 공휴일 공주는
눈더미에 발이 푹푹 박혔다.
공무원들마저 쉬는 설날,
인도를 점령한 눈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눈은 그쳤지만, 양말 습도는 최절정.
2025년 1월 29일 정오는 맑고, 질척했다.
시청 옆 '나그네식당'.
나를 위한 식당인가,
이름이 별나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데,
안에 형광등이 켜있다.
열었나?
문을 밀었더니 엄지만 한 종이 딸랑대며
입장을 환영했다.
"영업하세요?"
"네에"
남자 사장은 색동옷 입은 다문화 가정 노래자랑
채널로 고개를 돌렸다.
치킨을 주워 먹은 지 두 시간도 안 되어
허기는 없었지만, 메뉴를 살폈다.
설날에 문 연 식당이 여기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결정했다. 9천 원, 소고기국밥.
남자 사장은 주전자와 컵을 놓았다.
주전자 주둥이를 미끄러져 나온 보리차,
적갈색 구수한 온기가
알루미늄 컵을 둥글게 모아 쥔 두 손으로 전도됐다.
주방에 있는 여자 사장이
LNG 가스 화구에 뚝배기를 올리자
파란 불꽃이 냄비를 감쌌다.
배식구에는 그녀가 젊을 적,
길게 줄지은 장독대를 배경으로
새끼줄로 묶은 된장을
처마에 메다는 사진이 있었다.
그녀의 개량한복과 흰색 두건, 무표정에서
젊은 한식 승계자의 비장감이 풍겼다.
마침, 다른 손님 일행이 들어왔다.
그들은 설날 문 연 식당을 수소문하다
간신히 찾은 모양이었다.
“아따, 차가 막혀가꼬
광주서 세 시간이나 걸렸어요.”
그들은 남자 사장에게 엄살을 부렸다.
내가 얼른 끼어들었다.
“어! 저도 광주에서 왔는데요. 5일 걸렸네요.”
그들은 걷는 내 이야기를 신기해했다.
남자 사장은 주방에 있는 아내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젊을 적 마라톤도 곧잘 뛰던
스포츠 우먼이었다.
개량한복 앞섬에 1472 배번을 달고
42.195km를 완주한 전통음식 연구가의
숭고한 땀방울이 떠올랐다.
곧 그녀는 사진 속 무표정 그대로
고깃국물이 골골 끓는 뚝배기를 내왔다.
그릇 바닥까지 긁어 먹고,
빈 생수병에 주전자 주둥이를 밀어 넣어
보리차를 채웠다.
주운 경광봉에 편의점에서 산
새 건전지를 끼웠지만 작동되지 않았다.
“사장님, 경광봉이 고장났나봐요.
건전지 뜯기만했지, 새 건데 쓰실래요?”
배낭 무게라도 줄일 셈으로, 여사장에게 물었다.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비췄다.
“잠깐만요. 그 주차봉,
옛날에 쓰던 게 있었던 것 같는데
한번 창고에 가볼게요.”
잠시 후 그녀는 경광봉 대신
‘마이핫’ 손난로 세 개 들고 나왔다.
그리고 발가락에 물집이 맺혔다는 내 말에
찬장에서 작은 프로폴리스 병을 꺼냈다.
“막내가 호주 여행 갔다가 사 온 거에요.
발라봐요.”
연륜 있는 마라토너는
매일 42.195km씩 걷는다는 내게
동병상련을 느꼈을 테다.
물집을 꿰뚫은 실오라기에
오스트레일리아산 프로폴리스 한 방울을 떨궜다.
갈색 용액이 실을 따라 물집 안으로 스며들었다.
창가 화단 다육식물에게 하얗게 내리쬐던
한낮의 햇살이 구름에 넌지시 물러났다.
이제 가야지.
난 양말 목을 종아리까지 끌어당겼다.
새끼줄로 묶은 된장-> 메주 가 밎을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