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혼자 먹는 밥
2025년 1월 29일 설날 아침 6시.
논산 장마루에 눈이 잦아들었다.
가게 입구에 쌓인 눈을 쓸었다.
따뜻하게 재워 준 장마루치킨 콧수염 사장님께
당장 할 수 있는 답례였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주인 없는 깜깜한 식당에 꾸벅 고개를 숙였다.
탁, 탁, 양손에 쥔 등산 스틱이
눈이 얼어붙은 아스팔트를 두드렸다.
몇 걸음 앞 장마루 삼거리에
녹색 표지판이 서 있었다.
'공주시 탄천면'.
논산도 끝났구나.
나는 훈련소를 퇴소한 더벅머리 이등병이 되어
북으로 진군했다.
고마운 기억을 막대기 한 줄 계급장에
박음질한 채.
오전 9시 20분.
세 시간을 걸었다.
공주시 변방은 식당도, 편의점도 없었다.
배가 고팠다.
이인면 주봉리 주봉초등학교 앞
버스정류장에 배낭을 내렸다.
정류장 지붕 덕택에 눈이 들이치지 않아
의자 주위는 젖지 않은 채였다.
배낭 머리 지퍼를 열고,
어제 먹다 남은 치킨을 싼 비닐봉지를 꺼냈다.
먹는 걸 기록하려고 오른손으로 카메라를 잡았다.
왼손 검지와 엄지는 비닐봉지 속으로 기어들어가
두 조각 중 더 큰 덩이를 집었다.
별안간의 차가움이 지문으로 전도된 까닭 아니면
치킨 양념의 미끈거리는 마찰계수 탓이었을까?
치킨 조각을 쥔 손가락이
비닐 밖으로 벗어나다 말고 봉지 손잡이에 끼었다. 손가락에서 탈출한 치킨이 하늘로 솟구치더니
공중에서 다섯 바퀴 반 회전하고는
보도블록으로 곤두박질쳤다.
툭.
구르지도 않고 단번에 멈춘,
뜀틀 금메달리스트의 완벽한 착지!
살짝 눈물이 고였다.
안도와 희열의 복합적인 감정이 휘몰아쳤다.
나는 양념 묻은 왼손으로
위풍당당한 치킨을 주워들었다.
체조선수 발바닥에 뭍은 송진 같은 먼지를
오른손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살금살금 도려냈다.
껍질 사이로 속살이 드러났다.
나는 앞니로 고깃덩이를 베어냈다.
입안에서 한 바퀴 구른 고기 조각은
위아래 어금니 사이로 들어가 질겅 씹혔다.
양념과 닭 껍질이 뒤엉킨 맛이 혀 돌기에 스쳤다.
이 모든 게 기껏 해봐야 삼 초?
땅바닥을 유랑하는 뿌리혹박테리아가
치킨에 채 옮아가기도 전이었다.
“삼 초 안에 주워 먹으면 괜찮아! 아빠”
아홉 살 딸은 엘리베이터 바닥에 떨어진
새우깡을 주워 먹으며 인디언 보조개로 웃었다.
그래, 배가 불러야 슬퍼도 하지.
허기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테니.
나는 오른손에 들려있는 튀김옷을
버스정류장 밖으로 힘껏 멀리 던졌다.
먹지 못 할 슬픔의 조각은
쌓인 눈 속에 박혔다가,
이내 내린 눈 사이로 사라졌다.
잘했어.
보지 않으면 슬프지도, 아쉽지도 않을 테니.
버스정류장 밖 세상은 나무도 집도 길도,
문드러진 속살도 눈으로 온통 하얗게 덧씌워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