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나에게 편지를 쓰자
2025년 1월 27일 월요일, 도보여행 3일 차.
전북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
다리미삼겹살 건물의 4층 꼭대기 계단참.
휴대전화를 켰다.
5시 40분.
여섯 시 알람보다 앞서 깬 건 빗소리 때문이었다.
어젯밤, 삼겹살에 곁들인 사이다가 방광에 가득 찼다.
마당에 냅다 뿌린 소변은 빗소리에 묻혔다.
짐을 싸고 다시 내려오니 검은 하늘은 눈을 뿌렸다.
눈송이가 앉은 일기예보 화면을 손으로 쓸었다.
월, 화, 수 꼬박 눈.
전주, 삼례를 지나
익산 왕궁면까지 40km를 걸을 참이었다.
갓 내린 눈은 미끄럽진 않지만, 신발을 적셨다.
출발 후 두 시간.
오르막 끝자락 CU금구복지점 앞
플라스틱 의자에 배낭을 부렸다.
숨을 깊게 내쉬며 어깨를 매만졌다.
길어깨에 쌓인 눈만큼 눅눅했다.
사흘째, 서울은 까마득한데,
아직도 배낭 무게에 적응 못 했다.
편의점 유리창에 붙은 '알뜰택배' 스티커.
편의점 택배는 설에도 쉬지 않는구나.
2.5톤 냉동탑차로 나를 통째로 보낼까?
그럼 청양 참치 김치 삼각김밥과
통밀 햄 토마토 샌드위치 틈에서
신선하게 배송되겠지?
하지만 난 중량 초과였다.
비쩍 말라 보라색 조끼가 깡총한
중년 사내에게 물었다.
"사장님, 알뜰택배 접수되나요?"
"네. 돼요."
"혹시 빈 박스 있을까요?"
나는 두 손으로 A4 종이만큼 가늠했다.
“글쎄요.”
잠시 후 그는 열 개들이 과일주스 상자를 내왔다.
"이 정도면 되나요?”
배낭을 뒤집어 안 쓸 물건을 추렸다.
언 땅에 박을 강철못과 램프
그리고 땀에 전 티셔츠.
탁자 위에 널브러진 짐 사이,
아메리카노 커피가 밀고 들어왔다.
"잠깐 따뜻한 차 들고 쉬어요."
방금 머신에서 내린 커피만큼
따뜻한 목소리의 사장은
멀찍이 물러나 불티나 라이터로
담뱃불을 댕기며 마저 말을 이었다.
그는 신세계에서 25년 근무하다
얼마 전 퇴직했다고 했다.
'신세계면 이마트24를 해야 하지 않나?
CU 마진이 그리 좋은가?'
오지랖 넓은 궁금증은 기관지 아래 묵혀 두었다.
"휴가 때, 한 번 서울에서 걸어왔어요.
걷다 보면 익숙해지긴 하는데,
평택쯤인가? 꽤 힘들더라고요."
"저도 눈이 많이 와서 걱정이에요."
"힘들면 좀 쉬어요.
모텔 같은 데 있잖아요.
목욕도 하고 재정비도 하고."
박스를 봉하고,
택배 저울 터치 모니터에 인적 사항을 입력했다.
열전사지에 인쇄된,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은 오로지 나였다.
전화번호까지 똑같은 완전한 도플갱어.
하지만 난 수신자를 완벽히 알지 못했다.
우리의 시공간은 서로 다르니까.
다만 2월의 그가 여행을 완주했길 바랐다.
그래서 거들먹거리는 그의 콧대가 높아지다 못해
뒤집혀 들창코가 된다 해도
잘생긴 저팔계인 양 칭송할 것이다.
핸드 스캐너가 송장 바코드를 읽자,
단말기에 꽂힌 카드에서 삼천 원이 결제됐다.
내 잘난 쌍둥이는 편의점 사용 내역이 고스란한
카드 명세서도 받아 들 테지.
그의 월급 덕택에 1.1kg 가벼워진 배낭을 메고,
식은 아메리카노를 바닥까지 비웠다.
“고맙습니다.”
나는 어떤 배려에 힘껏 인사했다.
사장님에게, 미래의 나에게.
다시 걷는다.
당겨쓴 희락을 갚으려
기꺼이 저당 잡힐 시간의 길로.
오늘 남은 32km가 조금은 가혹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