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물타입니다. 장기러닝일기 5개월차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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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 마일리지
새해 첫달도 무사히, 목표만큼 잘 달렸습니다. 역시 전월보다 5km 늘린 기록입니다. 지난 글에서도 밝혔듯이 저번 달은 러닝 마일리지를 채울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1월 중순 출장으로 인해 1주일 정도 러닝을 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강추위로 인해서 매일 뛸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목표했던 마일리지를 채울 수 있어서 만족스럽습니다. 누적 마일리지는 어느덧 600km를 돌파했습니다.

2. 페이스
지난 달 기록에서 러닝 페이스가 너무 빠른 것 같다는 우려를 표했습니다. 그래서 페이스를 의도적으로 늦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달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몸이 풀리면서 속도를 높이고 싶다는 열망이 듭니다. 그럴 때마다 지난 글에서 소개했던 책의 문장을 떠올렸습니다.
지속적인 향상을 이루기 위해서 훈련 시스템은 반복 가능해야 한다. 하루하루, 주마다, 달마다 계속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강도 높은 달리기는 반복이 되지 않는다. 신체적으로도 그렇고, 정신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많이 하면, 마음이 먼저 지치지 않더라도 몸이 결국 탈진하고 만다.
내가 전성기 훈련 시절에 받았던 최고의 칭찬은, 내 마라톤 기록보다 한 시간이나 느린 러너에게 ‘이지 러닝(easy run)’ 중에 추월당하는 일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저 사람은 오늘 스스로를 소모하고 있군. 나는 지금 나를 만들어 가고 있는데.”
스피드 훈련이 더 ‘멋져’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웨이트 트레이너가 이틀 연속으로 고강도 훈련을 하지 않듯, 러너 역시 그래서는 안 된다. 웨이트 트레이너는 오히려 쉬는 날에 더 강해진다. 마찬가지로 러너는 대부분의 훈련을 느리게 할 때 더 빨라진다. 이상하게도, 대부분의 웨이트 트레이너들은 이 원리를 이해하는 반면, 취미로 경쟁하는 러너들은 그렇지 못하다. 지나치게 강한 훈련은 이 스포츠에서 가장 흔한 실수다.
80/20 러닝 서문
그렇다고 마냥 조깅 페이스로만 뛴 것은 아니고요. 나름 속도를 내는 즐거움도 느껴보았습니다.
2월은 전체적인 평균 러닝 페이스를 지금보다 더 늦출 예정입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노력해 봐야겠지요.
3. 즐거움
본격적으로 러닝을 시작한 지 다섯 달이 자났습니다. 여전히 시작 단계이기는 하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러닝을 시작할 때 보다 러닝이 더 즐거워졌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는데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네요.
첫째, 러닝이 몸에 익숙해졌습니다. 누적 마일리지가 어느덧 600km가 넘었습니다. 이제 추위를 뚫고 나가서 달리는 것이 밥을 먹고 세수를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둘째, 컨디션이 좋습니다. 러닝을 시작하기 전부터 고질적이었던 족저근막염 증세가 아예 사라지진 않았지만 아침에 일어난 직후를 제외하고는 거의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오른쪽 정강이의 신스프린트는 거의 완치나 다름없을 정도로 좋아졌습니다. 매일 러닝을 하고난 후 마사지볼을 사용해 꾸준히 마사지를 해 주었으며 러닝 페이스를 줄인 효과를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러닝 페이스를 줄였기 때문입니다. 속도를 줄인 만큼 확실히 달리기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신기한 게 달리다 보면 발을 땅에 내딛는 것이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일정한 템포로 달리는 과정에서 그 리듬감 자체를 즐기게 된다고 해야 할까요? 이게 참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즐거움이 있습니다. 역시 무리하지 않아야지 오래 즐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러닝을 꾸준히 하다 보면 러닝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되리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그 시기가 빨리 찾아와 반갑습니다. 러닝이 왜 즐거운지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글들이 참 많은데요. 오늘은 그 중 하나를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좀 오래된 책인데 문화인류학계에서 굉장히 유명한 책입니다. 마빈 해리스의 '작은 인간'이라는 책에 나온 내용입니다.
열, 털, 땀, 그리고 마라톤
더 큰 뇌는 에렉투스가 한낮의 태양 아래에서 달릴 수 있게 해 주었다. 대부분의 포식자들이 그 시간대에는 그늘과 물을 찾아 쉬며 사냥을 중단하는 때였다. 피알코프스키는 이 이론을, 추가적인 뇌세포를 지닌 에렉투스의 뇌가 장거리 달리기 동안 열 스트레스를 겪더라도 기능이 붕괴될 가능성이 더 낮았을 것이라는 가정에 근거하여 제시한다. 개별 뇌세포는 다른 기관의 세포들보다 열 스트레스에 더 취약하다. 뇌세포가 손상되면 인지적 혼란, 경련, 뇌졸중, 그리고 결국 죽음으로 이어진다. 정보이론의 기본 원리 가운데 하나는, 인간의 뇌처럼 고장에 취약한 요소들을 포함한 정보 체계에서는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는 요소의 수를 늘리고 그들 사이의 연결을 증가시킴으로써 체계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에렉투스의 뇌는 장거리 추적 사냥에서 발생하는 열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안전하게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 자연선택에 의해 많은 신경적 중복성을 포함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현대 인간은 동물 왕국에서 가장 빠른 달리기 선수는 결코 아니다. 단거리에서 인간이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는 시속 약 20마일 정도로, 말의 시속 45마일이나 치타의 시속 70마일에 비하면 느릿느릿한 수준이다. 그러나 장거리를 달리는 능력에 있어서는 인간이 다른 어떤 동물보다 뛰어나며, 결국 모든 동물을 앞지를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인류학자들이 연구한 여러 원주민 사회는 이러한 능력을 활용하여 먹잇감을 끈질기게 달려 쫓아가 포획하였다. 때로는 며칠 동안 계속되는 경우도 있었다. 예컨대 멕시코 북부의 타라후마라 인디언들에게서 “사슴 사냥은 사슴을 이틀 동안 쫓는 것으로 이루어지며, 하루보다 짧은 경우는 결코 없다. 타라후마라는 사슴이 끊임없이 움직이도록 만든다. 그는 가끔 먹잇감을 잠깐씩 볼 뿐이지만, 발자국을 읽는 기묘한 능력으로 그것을 정확히 추적한다. 인디언은 사슴이 완전히 지쳐 쓰러질 때까지 쫓아가며, 때로는 사슴의 발굽이 완전히 닳아 없어질 정도가 된다. 그때 사슴은 사람에게 목이 졸려 죽거나 개들에게 물려 죽는다.”라고 묘사된다.
인간은 몇 시간 동안 일정한 속도를 유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긴 달리기 끝에 갑작스러운 속도 폭발도 가능하다. 이는 시베리아의 응가나산족이 순록을 사냥하는 방식에 대한 다음 기록에서 잘 드러난다. “야생 순록은 사냥꾼에게 쫓기면 빠른 속보로 달리며, 때때로 멈춰 뒤를 돌아본다. 사냥꾼은 덤불이나 바위더미 같은 자연물 뒤에 몸을 숨기며 그것을 쫓고, 앞질러 가기 위해 소리를 지른다. 응가나산족이 달리는 속도는 놀라울 정도이다. 어떤 사냥꾼은 어린 야생 순록을 따라잡아 뒷다리를 붙잡을 수 있다. 때로는 순록을 10킬로미터나 쫓아가기도 한다. 암컷 순록은 수컷보다 더 빨리 달리고 쉽게 지치지 않기 때문에 따라잡기가 훨씬 어렵다. 부상당한 순록을 추적하는 사냥꾼은 정말로 극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파라과이의 아체족은 여전히 이런 ‘추적 사냥’ 방식으로 사슴을 사냥하며, 필리핀의 아그타족은 멧돼지를 달려서 잡는다. 나는 이러한 사냥 방식이 모든 원주민 사회에서 일반적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현대의 수렵·채집 집단들은 모두 돌이나 뼈로 만든 투사 무기, 창 던지개, 혹은 활과 화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먹잇감을 달리기로 앞지르는 능력에 의존할 필요는 거의 없다. 그러나 장거리 달리기는 투사체에 맞아 부상당한 동물을 추적하는 데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컨대 칼라하리 사막의 산족은 독이 묻은 화살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타는 듯한 태양 아래에서 몇 시간 동안 부상당한 동물을 빠르게 뒤쫓아야 한다. 이는 사자가 먼저 먹잇감을 차지하거나 독수리가 떨어진 사체를 먼저 발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다치지 않은 동물을 추적하는 것만큼 힘들지는 않지만, 이 사냥 방식 역시 사냥꾼을 상당한 열 스트레스에 노출시킨다.
피알코프스키의 이론은 에렉투스 조상들이 항상 다치지 않은 동물을 끝까지 달려서 잡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유리한 조건에서는 나무 창으로 먹잇감에 가까이 접근해 상처를 입힐 수 있었고, 그 뒤에는 동물이 약해질 때까지 달려가 추가로 창을 찔러 넣었을 것이다. 자연선택은 가볍게 다친 동물이나 다치지 않은 동물을 가장 혹독한 조건 속에서도 가장 멀리까지 추적할 수 있는 남성과 여성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피알코프스키가 열 스트레스를 에렉투스 뇌 확대의 원인으로 주목한 것은, 인간에게만 특이하게 나타나는 다른 체온 조절 특징들과도 맞물린다. 열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대부분의 포유류는 코 점막이나 입, 혀 표면에서 수분을 증발시켜 체온을 낮춘다. 그러나 인간의 냉각 시스템은 완전히 다른 원리에 기반한다. 우리는 에크린 땀샘에서 분비되는 수분으로 피부를 적셔 체온을 낮춘다. 인간은 최대 500만 개에 달하는 땀샘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어떤 포유류보다도 많다. 공기가 땀으로 젖은 피부 위를 지나가면 수분이 증발하면서 피부 가까이 흐르는 모세혈관의 혈액 온도를 낮춘다. 땀의 증발은 인간이 정상 체온을 초과하여 생성한 열의 95퍼센트를 방출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냉각 효과가 발생하려면 공기가 피부를 지나가야 하며, 공기가 건조하고 빠르게 움직일수록 냉각 효과는 커진다. 달리기는 바로 이런 조건을 만들어 준다. 또한 동아프리카 사바나의 건조한 공기는 증발 냉각에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했을 것이다.
증발 냉각은 몸의 털이 얼마나 자랄 수 있는지에도 분명한 한계를 부여한다. 숲에 사는 유인원들은 장거리 달리기처럼 강도 높은 신체 활동을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열역학적 과제는 과도한 열을 방출하는 것이 아니라, 특히 밤에 높은 습도와 폭우 속에서 체온이 떨어지는 것을 피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형 유인원들은 약간 기름지고 아래로 향하는 풍성한 털가죽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장거리 달리기 선수로서의 에렉투스와 증발 냉각 시스템의 진화는 이런 털가죽의 유지와 양립할 수 없었다. 공기는 땀샘에서 나온 수분막 위를 방해 없이 지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인간 특유의 ‘벌거벗은 몸’이 나타났다. 우리는 실제로 대형 유인원만큼 많은 모낭을 가지고 있지만, 털이 너무 얇고 짧아 털가죽을 이루지 못한다. 다만 털의 아래로 향한 방향성은 팔과 다리에서 여전히 물을 흘려내리게 하는 기능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이런 이야기를 읽고 나면, 우리가 달리는 일이 단순히 체력을 기르기 위한 운동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은 본래 가장 빠른 동물이 아니라, 가장 오래 달릴 수 있는 존재였고,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멈추지 않기 위해 땀을 흘리고 털을 버리며 진화해 온 존재였습니다. 그러니까 러닝은 어쩌면 현대인이 새롭게 만들어낸 유행이 아니라, 오래된 몸의 기억을 다시 불러오는 행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우리는 더 이상 사슴을 이틀 동안 쫓아가며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달리기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달리기의 목적과 상관없이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이 찾아옵니다. 달리기를 하다 보면 시작할 때보다 오히려 힘이 덜 들 때가 있고, 몸이 힘든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맑아지고, 고통 속에서 오히려 살아 있다는 감각이 또렷해지는 순간 말입니다. 그 감각은 어쩌면 먼 옛날 사바나에서 끝까지 목표를 추적하느라 오랜 시간 달리던 인간의 본능과 닿아 있는 것일지도요.
이번 달 러닝일기는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그럼 다음달에도 찾아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