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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기금설의 기초를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학설은 바로 맬서스의 인구론입니다.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은 그 임금의 재원이 되는 자본의 규모에 의하여 제약되고 노동자들의 수가 많아지면 한정된 자본 규모로 인하여 각각의 노동자는 더 적은 임금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임금기금설의 아이디어와, 인구가 지구의 식량 생산력보다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기때문에 결국 기아를 피할 수 없게 된다는 인구론의 아이디어는 서로 통하는 논리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인구론은 당대의 일반인은 물론 지식인들에게도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식인들은 인구론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그냥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컸다고 합니다. 아담 스미스로부터 시작된 임금기금설과 함께, 리카아도의 지대론도 인구론적 시각을 더욱 강화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많아지면 더 척박한 땅까지 농사를 지어야하기 때문에 기름진 땅에는 더 높은 지대를 지불해야 한다는 그의 지대론은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사람만 늘어난다는 인구론과 같은 논리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구론은 특히 당대의 기득권자들에게 있어서 면피용으로 쓰기 딱 좋은 아이디어이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사회적 재분배와 같은 개혁을 하더라도 노동자들이 애들을 마구 낳아서 인구가 늘면 결국 빈곤상태로 되돌아올 터이니 개혁같은 건 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에 인구론이 뒷받침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다윈의 진화생물학이 나오면서 이 또한 인구론의 도우미로 동원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적자생존의 투쟁이 있은 후에 더 나은 생명체들이 진화한다는 다윈의 진화생물학을 사람들은 사회 문제를 해석하는 데에도 사용했습니다. 무한경쟁은 승자가 이기고 패자는 빈곤상태로 떨어지게 만들기 때문에 빈곤이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고까지 말하는 맥컬록같은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를 진보라고 이해하고 맬서스의 인구론은 진보와는 상관없다고 보아 이 둘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다고 보지만, 생물학적 진화가 진보를 의미하는 건 아니니 저자 역시 진화론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여러가지 당대의 사조들이 인구론을 뒷받침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인구론을 비판하는 것은 거의 신성모독이나 마찬가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미 임금기금론을 성공적으로 반박했기때문에 '안타이오스의 발'을 지상에서 떨어뜨리는(즉, 가장 어려운 과정을 통과하는) 데 성공했다고 표현하며 인구론에 대한 본격적인 반박을 예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