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한국, 대만, 중국... 노력으로 후진국을 벗어난 몇안되는 이 국가들의 가장 기본적인 공통점은 경제 발전 초기단계에서 땅을 농부들에게 고루 나누어주는 토지개혁을 통하여 농업생산량을 대폭 끌어올렸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산업화 직전 단계에선 인구의 대부분이 농사일에 종사하게 됩니다. 이들 아시아국가들은 한정된 농토에도 불구하고 원래도 많았던 인구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시장에만 맡겨놓게 되면 땅을 많이 가진 대지주의 착취에 시달릴 수 밖에 없습니다. 농사짓겠다는 사람이 많으니 지대, 소작료를 팍팍올리고 농민들을 대상으로 고리대금업을 하면서 이들이 빛을 못갚으면 담보로 잡힌 땅을 뺏을 수 있게 됩니다. 이에 따라 토지겸병이 일어나고 대지주와 농민들 사이의 부익부 빈익빈 상태는 더욱 심화됩니다. 지주들은 돈을 쉽게 벌 수 있으니 토지의 생산력을 높이기 위한 투자를 할 필요가 없으며, 농민들 역시 애써 수확한 농작물의 상당부분을 지주에게 뺏기게 되므로 생산의욕이 꺾일 것이니, 대지주가 토지의 대부분을 독점하는 상황에선 단위면적당 수확량 역시 극히 저조해지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조선후기-일제시대가 대략 이랬던 걸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토지개혁을 통하여 농민들에게 토지를 골고루 나누어주면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납니다. 비록 얼마안되는 땅이기는 하지만, 내 땅을 내가 농사지어 수확물은 내가 가질 수 있기때문에 온가족이 달려들어 열심히 일하고, 그 결과 생산량이 대폭 늘어나게 됩니다. 텃밭을 가꾸어 본 사람들이 동의하듯, 적은 토지면적이라 하더라도 노동력을 갈아넣으면 생산량은 놀랄 정도로 늘어나는 것이 농사의 특징입니다.(토마토 한그루에서 20kg의 토마토가 열린다니 놀랍네요) 일일이 물주고, 김을 매주고, 같은 땅에 여러가지 작물을 심고 그걸 일일히 관리해주고 이런 일들은 기계로 할 수 없으며, 다 사람이 고생고생하면서 해줘야합니다. 이러한 토지개혁의 효과는 수확물의 판로를 확보해주고 농민들에게 금융, 기술을 지원해주는 정부의 후속조치가 있어야 유지될 수 있다는 점도 저자는 지적합니다. 마침 산업화 전 아시아 국가들은 남아도는 게 인간이었기때문에, 토지개혁을 통하여 이들 인력을 농사에 투입시켜 주면 실업도 해소하면서 농업생산도 비약적으로 늘리는 것이 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렇게 농촌 사람들이 먹고살만해지면 필요한 물품을 사려는 수요가 늘어나게 되고, 이는 제조업, 공업이 생겨나게 해 주는 단초가 됩니다. 게다가 해외에서 먹거리를 비싸게 수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기술 도입이나 자본재 수입을 위해 필요한 외환보유고가 늘어나는 효과도 생기고, 경제위기가 닥치면 일자리를 잃은 도시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주는 사회안전망 역할도 해주니 토지개혁의 효과는 1타 몇피인지 계산이 힘들 정도라 할 수 있습니다.
자유시장 옹호론자들은 이윤의 극대화를 위하여, 맑시스트들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하여 소농보다는 대농장 시스템으로 가야한다고 주장하지만, 저자는 이들의 주장대로 하면 둘다 개인의 인센티브가 떨어져 결국 비효율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합니다. 경제개발 초기 단계에선 이윤의 극대화보다는 일단은 많이 생산하는 것이 1차적으로 중요하다는 말씀. 토지개혁은 (주류)경제학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보는,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완전경쟁'상태를 만들어주는 효과를 내는 것입니다. (경제학에서는 독점이 이루어지면 완전경쟁상태에 비해 생산량이 떨어지고 가격은 오르는 비효율상태가 발생한다고 가르치지요. 자본주의적인 플랜테이션, 공산주의적인 집단농장... 둘다 모두 실패로 끝난 걸 보면 저자의 주장이 맞다고 보여집니다.)
하지만 이러한 토지개혁은 실제로 성공하기가 너무너무 어렵습니다. 토지개혁의 역사와 성공, 실패사례를 통하여 저자는 왜 그런지를 설명하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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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씀이 기억나네요... 산업화의 기반은 농업, 토지개혁이라는 통찰이 놀랍습니다.
강자와 약자가 존재하는 상황을 시장에 맡겨두면 파국으로 이어진다는, 시장근본주의에 대한 근본적 비판도 눈여겨볼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