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봤던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저에게 큰 감동을 줬던 영화였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옛날에 봤던 영화를 다시 보는 습관이 생겨 포레스트 검프를 다시 보게 되었는데
조금 의아한 점들이 영화속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이상한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어 구글링을 해보니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리뷰들이 있더군요.
찬찬히 들여다 보면서 리뷰들을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포레스트 검프는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1994년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미국의 보수주의 백인 중산층을 겨냥해 만든 영화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저메키스는 영화 미디어의 힘을 십분 활용하여 미국의 진보세력을 조롱, 비난, 무시하고 영화를 흥행까지 시킵니다.
백인 보수주의자들을 열렬히 찬양하는데 그 논조와 어법이 제법 교모하고 치밀합니다.
등장인물을 통해 펼치는 이데올리기는 천재 수준에 가깝습니다.
우선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의 출생은 인종차별이 심했던 미국 남부 앨러배마주입니다.
성씨인 검프(Gump)는 얼간이, 멍청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입니다.
이름인 포레스트(Forrest)는 백인우월주의 단체인 KKK단의 창시자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검프는 아이큐 75의 저능아로 나옵니다. 많은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단순명료 합니다.
아무 생각없이 시키는 것만 하면서 아주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영화는 검프가 버스 정류장 벤치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회사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젊은 흑인 여성에게 이야기 해보지만 그녀는 듣는 듯 마는 듯 이내 버스를 타고 가버립니다.
대신 검프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격려까지 해주는 것은 백발의 백인 할머니입니다.
월남전에 참전한 검프는 댄 중위를 만나게 됩니다.
댄 중위는 대대로 강직한 군인 출신의 집안으로 조부가 북군으로 남북전쟁에 참여 했었고
그 또한 천민주당적인 인물임을 교묘한 대사처리를 통해 드러냅니다.
댄중위 : 자네들 아칸소에는 가보았나? 내가 거기 살았었는데... 리틀락은 괜찮은 동네더군"
아칸소와 리틀락 바로 영화가 제작될 당시 미국 대통령인 빌 클린턴의 고향이었습니다.
민주당원인 댄의 운명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복선으로 보여준 것이었을까요?
감독은 그에게 두 다리가 절단되는 설정을 부여합니다.
또 댄 중위가 두 다리를 잃은 채 구출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에서도 정치적 함의가 보입니다.
댄과 중대원들은 모두 미국의 특정 주와 연관된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 중대원들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검프가 가장 먼저 구출에 나서는 것은 텍스(TEX)라는 병사입니다.
미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신경써줘야 할 곳은 미국 보수의 본진 텍사스(TEXAS)란 이야기죠.
영화 내에서 죽은 역대 대통령들을 컴퓨터그래픽으로 살려내어 검프와 악수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케네디, 존슨, 닉슨 등이 나오는데 저메키스 감독의 시각에서는 "패배자"의 인물들이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미국의 진취적인 진보성을 대변했던 존 F. 케네디와 악수를 하며 대화를 나누는데
저메키스의 조롱이 얼마나 무례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케네디 : How do you fell? (기분이 어떤가?)
검프 : I got to pee (쌀 것 같아요)
검프의 고향 여자친구 제니는 개선된 사회를 향한 젊고 진보적인 성향의 등장인물입니다.
반전운동에 참여하고 히피문화에 빠지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역시 저메키스에 의해 철저히 조롱 당하며 영화 마지막에는 에이즈에 걸려 죽고 맙니다.
저메키스는 젊은이들의 정치 참여에 대해 이런식으로 보여줍니다.
그저 단지 나라의 윗대가리들이 시키는 대로 하고 아무 생각없이 열심히 일만하며 살면 행복해 진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봅니다.
진보성향의 등장인물 댄 중위나 제니는 결국 검프에게 굴복합니다.
다리가 잘려 나가도 검프와 손잡고 그가 하라는 대로 하니 대박이 나서 돈벌고 행복해 지고
에이즈에 걸려 결국 검프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죽어갑니다.
영화에서 수차례 등장하는 대사가 있는데 바로 "Go Home" 이라는 대사입니다.
이제 그만 방황하고 미국의 가치로 되돌아가자는 것입니다. (공화당이 늘 강조하지요)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 (Life is like a box of chocolates)
영화의 명대사로 꼽히는 대사입니다.
인생은 결국 초콜릿 박스에 초콜릿을 고르는 선택의 연속이며
쓴 럼주가 들어있는 초콜릿을 집게 되더라도 실망이나 낙담할 필요 없다고 합니다.
지금 쓴 초콜릿을 먹은 만큼 달콤한 초콜릿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지요.
정말 위로가 되고 힐링이 되는 명언이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조금 두렵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달콤한 초콜릿을 집어든 사람은 남아있는 쓴 초콜릿을 두려워 해야할 수도 있으니까요.
결국 인생은 초콜릿 박스처럼 정해져 있으며 우리의 '선택'은 의미가 없어집니다.
여기서 '선택'이 자유와 민주주의로 느껴지는 것은 저 뿐인가요?
결국 IQ75의 저능아들이라고..
from CLiOS
진보고 뭐고 그냥 결국 새우잡이 어선으로 돈 많이 버니까 행복하잖냐 이런 결말이죠.
이걸 단순히 진보다 보수다로 나누는 것 자체가 웃깁니다.
영화는 그 시대상을 담습니다. 진보고 보수고 둘다 깠습니다.
마치 진실인듯양 이야기하는 것이 보기 좋진 않네요.
그래서 비판도 많이 받았죠. 그냥 닥치고 정부 시키는대로 따르면서 살라는 영화라고.
포레스트 검프영화가 제니를 비참하게 만들어서 진보진영을 바보만들려는 의지가 있었음은 확실합니다.
그런 존재들로 인해서 미국사회가 얼마나 성숙했는지에 대한것은 보여주지 않죠.
과한해석이라는 부분이 왜 과하냐면 그런식으로 모든걸 공화당식으로 따지려고 하면 닉슨의 워터게이트사건을 검프가 발견하는장면등을 설명 못하거든요.
멍청한 검프가 돈걱정없이 살수 있게 한 원인도 댄이 사과회사에 투자한 덕분이구요. 관계가 그렇게 일방적으로 흐르지 않죠.
영화상의 재미를 위한 관용은 좀 둬야 합니다.
이제 더이상 옛날 같은 감정으로 포레스트검프를 보기 힘들겠군요..
잘된건지 안된건지.. ^^
병이 에이즈였군요........ 첨 알았네요..
이런 내용이 저메키스 위키에 있습니다만...
이 영화도 원작소설이 있는 영화라서 단지 영화가 일방적이다 하기엔 좀 그런 것 같은데요...
소설은 1980년 중반에 나왔고, 그때는 레이건 시대여서 아마 소설이 그 시대 분위기를 타겠죠..
그리고 이 영화는 1994년에 나왔고, 그때는 한참 클린턴 시대였고 한참 미국이 잘 나가던 시기 아닌가요..
공화당과의 연결고리는 영화보다는 소설에서 찾아야 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원작과는 상당히 상이한 부분도 많이 나오지요.
포레스트 검프에 관한 동화같은 느낌이라서 그리 큰 감동(?)은 없는거 같아요.
뭘 해도 잘 되는?
필라델피아를 얼마전에 보고 이 영화를 본건데요.
필라델피아가 더 마음에 남는 것 같아요. 음악도 좋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