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희생자 전재수군(오른쪽 둘째)이 초등학교 입학을 기념해 찍은 가족사진.
전군 가족은 최근 이 사진을 발견해 묘지 영정사진으로 쓸 계획이다.
5·18유족회 제공
1978년 전군의 초등학교 입학을 기념해 새 옷을 입은 전군과 아버지, 고모 3명이 함께 찍은 사진이다. 3남 2녀 중 넷째였던 전군은 세 살 터울 막내 여동생과 함께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재룡씨는 “동생이 죽은 후 어머니는 홧병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지도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뜨셨다. 그동안 동생 사진 한장 찾지 못해 한이 됐는데, 올해 초 아버지 기일에 유품을 정리하다 아버지 사진 뒤쪽에 동생이 나온 사진이 겹쳐 있는 걸 발견했다”고 말했다.
1980년 5월24일 집앞 야산에서 친구들과 놀던 전재수군은 도로에 군인 행렬이 지나가자 손을 흔들었고 군인들은 전재수군에게 총을 난사했다.


군인 이동 경로 따라 사망자 발생.... 오인사격 화풀이로 지나가는 시민에게 총살까지
5월 24일 광주 외곽 봉쇄를 맡았던 11공수부대는 광주 비행장 쪽으로 이동합니다. 이 과정에서 민가 방향으로 무차별 총격을 가해 군인을 보고 손을 흔들던 전재수(당시 11세) 어린이와 저수지에서 놀던 방광범(당시 12세) 어린이가 사망합니다.
저수지에서 물놀이를 하며 놀다가 참변을 당한 방광범 학생은 왼쪽 두개골이 가로 16cm, 세로 18cm의 광범위한 크기로 떨어져 나갔습니다.

왼쪽 측두부 부상으로 사망한 방광범 학생 총상 부위
11공수는 광주 효천역 앞에서 만난 다른 군 부대(보병학교)와 서로 오인사격을 벌입니다. 오인사격으로 군 내부에서 사망자와 부상자가 나오자 군은 그 일대에서 닥치는 대로 화풀이 보복 살인을 저지릅니다.
중학생 아들을 마중 나간 박연옥 씨는 군인을 보고 놀라 하수관로에 몸을 숨겼지만, 군이 뒤쫓아 총을 쏘면서 하복부와 회음부에 관통 총상을 입고 숨졌습니다. 하수관로에 웅크린 채 숨어있던 여성에게까지 총을 쏜 것을 증명하는 총상입니다.
심지어 지들끼리 오인사격으로 서로 죽이는 병신짓한거 깨닫고 열받으니까
그 일대 지나가던 주부한테까지 화풀이로 살인함
중학생 아들을 마중나갔던 주부는 하수관으로 도망쳐서 웅크려 숨지만
하수관로까지 굳이 쫓아가서 화풀이성 살인을 벌임
군인들도 위에서 명령하니까 어쩔 수 없었다
-> 군인아저씨 반가워서 손 흔들던 꼬맹이나 저수지에서 물놀이하며 놀고있던 학생이나
그냥 길 지나가던 주부들까지 화풀이로 살인했던 증거가 뻔히 남아있는데
진짜 제일 듣기싫은 핑계가 아닌가 싶음
저 때 벌벌 떨면서 집에 숨어있던 여학생들도 끌어내서 강간했던 사례가 쏟아져나오는데 그것도 명령이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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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젊은 군인이었으면 아마 지금도 살아있을텐데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요?
어쩔수 없었다, 몰랐다기엔 심한 케이스들이 아주 많죠..
하수구에 숨은 엄마에게도 총을 난사....
내 어린시절 내가 저기 광주에 있었다면 난 어떻게 됐을까...
눈물이 납니다.
저걸 희화화하고 탱크데이 후렴구까지 붙인 놈들이 하는 변명이 '뭔지 몰랐다' 입니다.
무식한 것은 죄입니다. 죄를 지었으면 처벌받아죠.
야구로 프로선수 되는 것은 못하게 해야죠.
저 무서운 일을 또 벌이려고 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찢어죽여도 모자라는 놈인데 윤어게인을 외치고 내란을 일으킨 당을 지지해서 지난 번 대선에서 40퍼센트가 2번을 찍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또라이가 40퍼센트 이상이 된다는 소리입니다.
저는 추견노가 거리를 활보하고 선거 운동을 하고 있다는 걸 보고 뒤로 자빠질뻔했습니다.
그것도 박근혜를 데려와서 거리에서 홍보하게 하고요....
제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갑니다.
무차별 총격이 아니고 조준사격이었겠지요.
손까지 흔들었으니 조준하기는 좋았겠지요. 미친것들.
그후 정권이 몇번이나 바뀌었는데도 무슨 대단한 비밀작전이라도 수행한양 함구하고 어느놈하나 제대로 양심선언하는 놈들이 없었지요. 악마새끼들.
동네 국민학교 옥상마다 저격수들 배치해놓고 민가를 조준하고 있었더랬죠.
아이러니한건
초반에 시변두리부터 잔인하게 사람들이 살해당했다는 소식들이 들려오자 대부분의 광주시민들조차도 진짜 북한무장공비가 내려온줄알았어요.
그래서 우리군인들을 보면 지켜주러 왔다고 반가워했던건데 이것들이
집집마다 수색해서 대학생,하숙생들을 끌고가 죽도록 두들겨 패고 항의하는 시민들까지 대학살을 시작했던 거였어요.(이번에 내란계엄전에 영현백 주문했다는 소식 들었을때 딱 이생각 나더군요. 조대병원에 그많은 시신들 사진과 함께)
결국 시민들이 살기위해 저항을 시작했지만 이미 너무나 많은 가족친지들이 잔인하게 살해당한 후였지요.
그리고 남은 유가족들마저 김대중정부 들어서기전까지 그 오랜세월동안 형사들에게 간첩보다 더한 감시를 받고 살아야 했지요.
지금도 하는 짓보면 국힘인간들은 그때 그놈들하고 별반 차이없는 인간들입니다. 무슨 외연확장은 개뿔..
표만 아니면 다시 5.18을 폭도짓이라고 역사책에 새겨넣을 인간들입니다.
그래서 이번 윤수괴는 사형 집행까지 가야한다 봅니다!! 나라를 아주 갈기갈기 찢었습니다!!
한 놈도 군인중에 양심선언한 놈들이 없어요
그 당시 광주 투입된 군인들 명단 못 찾나요?
네..민주주의의 성역입니다.
헌법에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반드시 넣어야 할 이유고 헤이트 스피치법이 필요한 이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