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새벽에 모두들 신나하시니 저도 덩달아서 기분이 날아거것어요. 그런데요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날이 오기까지 일등공신이 따로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지만... 누군가는 기록 해두어야 할거 같아서 당시에 그자리에 있었던 저의 기억을 더듬자면.
이거를. 이런 시스템을 맨 처음 생각하고 주장한 분이 문성근 형님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시고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러한 초안을 잡아서 당시에 명계남형이 사는 홍천 집에
밤 늦게 와서 여균동하고 같이 밤새 열변을 토했더랬죠.
"어준이 하고도 이야기 해봤는데 그 새끼는 되겠냐고 하더라. 그래도 이걸 해야 한다. 당비천원내는 당원 백만명이면 민주당 바뀐다."라는 취지로.
당시에 명계남형도 여균동도 쉽지 않다고 회의적이었는데.
문성근형은 내가 길에서 사람들 모을거다 라고 공언했죠. 이후에 암암리(?)에 노사모들 모으고
최민희씨가 당시 민언련 소속이었죠 아마.(출마전 이었으니까)합류해서 정말로 길에서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혹시나 기억 하실지는 몰라도 처음에는 "백만 민란 운동"이라고 했나..?
그러다가 어감이 너무 세다고 "백만송이 장미"라고 개명(?)하고 장장 일년넘게 문성근 형이 길에서 회원을 모았더랬죠. 이것을 제도화 하기 위해 "죽어도 정치는 안할거다"라는 본인의 약속을(?)을 깨고 민주당에 들어가 최고위원 까지 되었드랬죠. 이 제도가 안착되고 미련없이 나오죠.
(지금도 그때 노사모중에도 몇사람만 알걸요)
문성근형이 대단한 건...
그 냥반이. 배우로서는 치명적으로 약점이 있는데 유리목이에요. 조금만 오래 말하면 목이 가죠. 그런데도 거리에서 일년넘게 사람들에게 호소해서 백만송이 회원 모집을 했고. 천원당비내는 당원제도를 당에 들어가 의원들 설득해서 정착 시킨 거죠.(여기도 우여곡절이.. 당에서 조차 되겠냐 하던걸...)
그형 나름의 어이없이 돌아가신 노무현에 대한 복수? 그리고 한국 정치사를 뒤집을 이번 시스템 공천의 초석이 되는 권리당원제도를 미친듯이 정착 시킨 . 그리고 조용히 뒤로 물러난 멋진 사내죠.
그게.. 제가 홍천을 떠나온지 대략. 14년이 좀 넘은거 같으니. 아마 15년전쯤 겨울이었나 기억이 가물하네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그러나 역사의 변곡점 그 어딘가에 있던 그 사람들을 기록하고 싶어서 눈팅만 하고 잘 쓰지는 않지만 끌량에 남겨 봅니다.(딴지에도 올려놓을까..)
그르타구연.
재판과정을 통째로 외워나온것도 유명하죠
아침부터 울었습니다.
정치 혁명입니다
이제 천원짜리 당원들의 힘을 제대로 봤으니
그 파워는 더더 쎄지겠네요
문성근님 땡큐요
배우, 제작자로서 문성근은 이견없이 모두 끄덕이듯이 활동가 문성근 역시 진정성을 가진 흔치 않은 인물상을 보여주기에 존경합니다.
개인적으로 본인의 대표 선임부터 해산까지 ‘민란‘을 ‘민’의 의지에 맡긴 유일한 진보 결사체 였다고 생각합니다.
페북에 조국신당 지지 글 하나 올렸다 코꿰어 후원회장 맡았다고…. ㅋㅋ
사실 그때는 의미도 잘몰랐고 되겠나..싶었던 기억이네요
덕분에 상기했습니다
멋진 사람입니다.
몇년 전부터는 물가도 올랐는데 당비를 좀 더 올릴까 하시길래,
저희가 더 낼테니 어머니는 유지만 하시라고 말씀드렸어요.
어머니는 올해 88세시거든요. ^^
이번에 박광온 떨어뜨리는데 일조하셨습니다. ㅋㅋ
오~ 저희 동네 신가 보군요. 저도 일조 했습니다. ^^
좋은 기억 되살려 주셔서 감사 합니다.
그르타구연
노통선거운동할때도 문성근님, 명계남님 활약 대단했었지요
제가 권리당원이 돼 있었군요
그때 무심하게 서명하라고 권유한
친구에게 감사한 마음이 드네요
https://m.ohmynews.com/NWS_Web/Mobile/amp.aspx?CNTN_CD=A0001451078
이런 역사는 몰랐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ㅠㅠ
무슨 당원해지를 팩스로 보내라고..
온라인시대에....국힘당아...
좋은글 리마인드 해주셨음 정치 관심만 있지 이런 히스토리는 몰랐네요
아니 근데 어째 배역은 늘 한결 같으신,,,
만기의 iPhone 13 Pro에서.
뭐라도 하자라는 일인들이 모이면
민란이, 혁명이 된다고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