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위의 짤에서 하는 말이 회자되곤 합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작금의 현실이 답답하고 막막하고 화가 나니 이와 같은 의문이 드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저 질문은 틀린 질문이고, 의문문이 아닌 확정형의 문장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아래와 같이요.
"악이 저렇게 거침없이 가기 때문에 선은 끊임없이 증명하고 거듭나야 한다."
인간 내면과 사회 집단에서의 악을 하나의 식물이라고 한다면..
그 악이 막 자라나기 시작할 때, 뽑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내면은 눈으로 보이지 않고, 사회는 거대하고 추상적이기 때문에...
어디서 악이 자라나고 있는지 당최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를 보기 위해서는 인간 내면에서는 지성의 빛이,
사회에서는 깨어있는 시민이 있어야 하고 강하고 밝아야 합니다.
이게 어두워질수록 악은 방해없이 자라나고, 증식합니다.
오래 자란 악일수록 점점 거대한 나무가 되어서...
작았을 때는 눈으로 보고 슥슥 뽑아도 제거가 되던 것이..
그 뿌리까지 다 파내야 비로소 새로운 가능성이 열립니다.
악(惡)의 평범성이라는 한나 아렌트의 개념도 이런 선악의 구도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리고 한나 아렌트의 전기영화에서 아래와 같은 대사가 나오지요.
"Das Böse kann nicht banal und radikal zugleich sein.
Das Böse ist immer nur extrem, niemals radikal.
Tief und radikal ist immer nur das Gute."
악함은 평범하면서 동시에 근본적일 수 없다.
악함은 항상 극단적일 뿐이며, 절대 근본적일 수 없다.
오직 선함만이 깊고 근본적일 수 있다.
여기서 근본적이라고 번역한 radikal(영어로는 radical)이란 형용사는
일반적으로 급진적이란 뜻으로 번역됩니다.
라틴어로 뿌리라는 뜻의 radix에서 파생된 단어로..
즉, 문제의 근원 혹은 뿌리부터 전체적이고 포괄적으로 이끌어내는 것을 뜻하죠.
뿌리까지 파내려 가지 않고서는, 거기까지 빛이 도달하지 않고서는
완전히 뿌리를 뽑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악은 어둠 속에서 뿌리를 내리기 때문에 치달리지요.
거침없이 뿌리를 내리지만, 그게 어디로 갈지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그 자신도 모릅니다.
그래서 온 땅을 뒤덮을만큼 평범해진다고 해도,
그 뿌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기에 극단적일 뿐 급진적이지도 근본적일 수도 없죠.
그러나 선은 지성의 빛으로, 깨어있는 시민들의 감시와 힘으로
저 깊은 곳에 있는 악의 뿌리를 찾을 수 있고, 그러기에 근본적이며 급진적일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러기에 선은 끊임없이 증명해야 합니다.
증명이란 어떠한 현상이나 대상을 관찰하고, 설명하고, 실험해서 맞다는 것을 밝히는 과정입니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과정이죠.
과학에 끝이 있나요?
무지의 바다는 끝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 내면과 사회의 어두움, 어리석음, 악의 바다도 끝이 없습니다.
쉴 새가 있나요? 끊임없이 가야지요.
야구선수가 매일 배팅 연습을 하듯,
복싱선수가 매일 주먹을 뻗듯,
죽을 듯이 연습을 계속 해서...
그냥 언제 어디서나 정확하고 강력한 한 방을 날릴 수 있게 되어야죠.
한석봉 어머니가 촛불을 끈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도 흔들림없이 떡을 썬 것처럼...
그렇게 말이죠. 그게 쉽게 될까요? 그럴리가 없지요.
끊임없이 하다보면.. 언젠가 그 경지에 오를 수 있게 되겠지요.
하지만 그 경지에 올라서도
내 자식이 내가 떡을 써는 것처럼 글씨를 쓸 수 있게 만들기가 쉬울 것이며...
내 나이가 한 살 두 살 먹어가면서 몸도 옛날 같지 않은데..
아들이 경지에 오를 때까지 버티기가 쉬울리가요.
그렇지만 해야되는 길이고,
이 길이 맞는 길이고,
이 길 밖에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우리는 스스로를 증명해야 합니다.
내 내면이 흔들리지 않는 지성과 행복으로 가득차고,
우리 사회가 깨어있는 시민들의 견고한 연대와 세상의 평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느 순간.. 외부의 일로 인해 불행해지거나...
어떠한 불상사로 인해 피해자가 되거나... 혹은 가해자가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이태원, 오송, 서이초로 이어지는 참사 속에서도..
저건 내 일이 아니니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가만히 있어도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 모두 알지요.
그러니 끊임없이 우리는 스스로를 증명해야겠습니다.
악이 스스로를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것은 악한 행위의 성과에 대해 타인의 인정을 필요치 않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가 선하다고 하는 행동은 타인과 공동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을 지칭하므로, 선한 행동이 되려면 타인의 인정이 필요하죠.
결국 선과 악이 지향하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선은 태생적으로 증명이 필요한 것 같아요.
옳은 말씀이세요..
조금만 제 생각을 덧붙여 보면
선은 타인의 인정이 필요하다기 보다
선은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끊임없이
타인을 살피고 배려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악은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타인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보기에도 남이 보기에도 맞는 것이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을 짓밟기 때문에 악은 타인의 인정이나 타인을 위한 배려는 필요치 않죠.
선은 나와 너,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기에 객관적이고 공정하고 합리적이여야 하죠.
악은 그러기에 타인을 배제하고,
선은 불공정하고 비합리적인 것을 배제할 힘이 생깁니다.
악을 몰아낼 힘이 없다면 그건 선하지 않거나 선함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선이 타인의 인정이 필요하다기보다는 선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지 고민하게 된다는 쪽이 맞겠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을 위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발전하고, 감시하고, 고발해야 하는거겠네요.
악이 온 땅에 퍼져 평범해 지지 않도록.
선은 선 자체에 목적이 있어서 그런듯...
왜 나만 가지고 그래? 저시끼들도 똑같거든? 한마디만 하면 되는데.
똑같이 다 까발리면 절대 공격 못들어올껄요. 증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융통성이 없다는 말씀이시겠지요.
곁가지로 가는 이야기기는 한데.... 유토리... 정말 싫어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빡빡하니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거든요. 부패와 이어지는 경우가 실생활에서는 대부분이지 싶습니다. 융통무애, 두루두루 통해서 막힘이 없다... 이렇게 좋은 말이 있는데 말이죠.
그리고... 올바를 필요도 없습니다. 그릇되지만 않으면 되죠. 융통성이 없어서 올바른 수단만 찾네요.
선은 더불어 사는 삶을 원하니 자신을 타인에게 증명해야하죠.
아 이부분은 달리 생각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악은 , 선이 나서서 '그것이 악이다'라고 밝혀주지 않으면 '평범'이 됩니다.
'악의 평범성'이 그런 말이지요.
누가 봐도 악인 것이 아니라
누가 말해주지 않으면 평범한 것이 되어 우리 사회에 스며듭니다.
'악'이 나서서 '선'을 가리키며 '저것이 악이다' 선동합니다.
뉴스로...유튜브로,, 카카오톡으로,....
선의 힘이 약해져.. 악의 선동에 힘겨워 하는 시대 입니다.
말해도 알아듣는 사람은 더 적은 세상이라 그런 듯 합니다.
네. 너무 안타깝습니다.
선보다 오히려 더 꾸준하게 증명하고 있다고 봅니다.
/Voll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