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에 조금 관심 있는 사람이나 영상업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아는 블랙매직디자인이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아마 다빈치리졸브, BMPCC, URSA 이런 이름은 익숙하실 텐데 Grant Petty라는 이름은 낯설 거예요. 블랙매직 신제품 나올 때 등장하는 이 아재가 바로 블랙매직디자인의 CEO 그랜트 패티입니다. 그랜트 페티는 아웃소싱을 극혐해서 매출 7천억, 직원 1,500명짜리 회사의 코드를 새벽까지 직접 짜는 너드 사장입니다.
페티는 호주, 싱가폴, 인도네시아 3곳에 있는 공장의 인벤토리 데이터베이스 정보를 얻고 부품수급 공유를 원활하게 하려고 SQL 코드를 직접 짜기도 했어요.
회사 운영을 위한 코드를 짜기 위해 2020년 내내 그리고 2021년 절반 정도 항상 새벽 2시까지 일하면서 코드를 짜고, 덕분에 다빈치 리졸브는 매출 7천억, 이윤은 10배 늘어서 1400억 원, 직원 1,500명 그리고 놀랍게도 회사에 빚이 없는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사업 시작할 때 투자도 안 받았다고 해요.(마이너스 통장은 있었지만요)
보통 어느 정도 돈을 벌면 사장은 밑에 사람 두고 자기는 놀기 바쁘죠. 인생을 즐긴다는 생각에 놀러 다니기 바쁜데 사업 확장한다는 명목하에 이것저것 시도하다 말아먹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패티는 직업 선택 방법 그리고 일에 대한 마음가짐이 조금 남다릅니다.
그랜트는 1991년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졸업하고 싱가폴에서 TV Industry에서 근무하면서 자기가 생각했던 창의성과는 굉장히 큰 괴리감이 있는 분야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tv 후반작업 A/V 장비 관리 쪽에서 일했는데 해당 장비 사용을 위한 렌트비가 약 시간당 천 달러 정도였다고 해요. 일반 사람은 영상에 관심이 있더라도 절대 쳐다도 보지 못하게 비싼 시장이었죠. 비싸다는 단어는 창의성이라는 단어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결을 가진 단어죠.
영상 입문자분들은 느끼실 텐데, 지금 많이 낮아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영상의 진입장벽은 좀 높은 편이에요. 영상 촬영해보고 싶을 때, 카메라는 휴대폰으로 해결했다고 가정하더라도 사용할 소프트웨어와 각종 플러그인, 사운드 효과, 노래 사용 등에 많은 자금이 투입된다는 것에 부담 느끼게 됩니다. 그냥 영상이 재미있어 보여서, 만들어보고 싶어서 시작하고 싶은데 돈이라는 장벽이 가로막고 있는 거죠. 패티는 이런 진입장벽이 높다는 점이 단순히 돈 때문이라면 창의성에 큰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패티는 처음부터 카메라에 집중한 것이 아닌 저렴한 가격으로 사용이 가능한 캡쳐카드에 집중했습니다. 2001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클라크와 함께 블랙매직디자인을 설립하고 Deck Link를 2년도 안 되는 시간에 시장에 내놓았습니다. 처음 가격이 995달러였는데 경쟁사 캡쳐카드 가격은 대략 1만 달러 정도였죠.
여기서 그랜트는 멈추지 않고 2009년 다빈치 시스템을 사들여서 mac 사용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다빈치는 원래 헐리웃에서 사용하는 컬러코렉션 시스템이었습니다. 가격이 최소 가격이 35만달러에서 85만달러까지 올라갑니다. 이런 다빈치 시스템을 사들여서 맥 플랫폼 그리고 현재는 윈도우에서 까지 사용할 수 있는 다빈치 리졸브를 만들었죠. 심지어 공짜로 풀었어요 물론 노이즈 리덕션이나 다양한 fx를 사용하려면 유료버전을 구매해야하지만 무료 기능들로도 충분히 색보정/ 컷편집/사운드 디자인 등이 가능합니다.
처음엔 다빈치 소프트웨어를 995불에 판매했다가 이다 음해에 무료 소프트웨어로 전환한 이런 사업방향이 사람들에게 창의성과 자유를 줌과 동시에 마케팅에도 효과적이었고요. 영상에서 컬러는 니치마켓이에요. 패티는 창의성, 저렴, 자유라는 컨셉을 잡고 자신이 경험한 TV 프로덕션의 바탕을 통해 영상 제작자들의 니즈를 해결해줬고 그 이미지와 콘셉트가 지금까지 유지되어 좋은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영상을 한 번이라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정보 찾아보신 분들은 돈이 창의성에 완전히 반대되는 말이라는걸 공감하실 거예요. 특히 프리미어 프로를 사용하고 있는 분이라면요. 한번 데모 버전이라도 써보고 싶은데 데모 버전은 존재하지 않고 일단 카드정보 넣어야 프로그램 설치가 가능합니다. 제일 큰 문제가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여러분들이 열심히 만든 작업물을 열어보고 싶은데 돈을 내고 있지 않다면 열어볼 수도 없습니다.
그랜트는 구독라이센스 서비스에 대해 “악덕 집주인과 같다”라고 밝힌 적 있어요. 더 충성도가 높은 사용자일수록 더 많이 고통받는다고요. 이건 우리집 멍뭉이가 사랑스러운 행동을 하면 오히려 강아지를 구타하는 것과 비슷한 거에요.
실제로 저도 어도비 제품 모두 구독해서 다 사용 중인데 스트레스받는 경우가 많아요. 프로그램이 엄청 무거워서 제대로 돌리려면 파워풀한 컴퓨터가 필요하고요. 자주 오류가 나서 프리미어 사용하면서 가끔 꿈에서도 누르는 단축키는 Ctrl+s입니다. 물론 다빈치로 오류 나서 재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안정성 면에서 프리미어보다 훨씬 좋습니다.특히 다빈치리졸브는 컬러그레이딩 파트에선 avid나 prmiere pro를 압도해요. 다양한 기능부터 해서 안정성 그리고 속도까지 말도 안 되는 수준을 갖고 있죠. 특히 트래킹 파트나 노드베이스 시스템은 컬러그레이딩에서 훨씬 이해하기 쉽고 수정도 쉽습니다. 예를 들어 비네팅을 사용할 때 프리미어느 영역 설정과 트랙킹 효과를 줄 때 효과 주는 것 자체만으로도 많은 부하가 걸려서 부드럽게 동작하지 못해요.
반면 다빈치는 아웃사이드 노드 사용해서 비네팅 효과를 더 강하게 줄 수도 있고 부하도 덜하고 트래킹도 훨씬 바르게 됩니다. 같은 컴퓨터 사양이라도 훨씬 빠르게 작업 가능한 겁니다.
노이즈 리덕션도 마찬가지예요. 프리미어는 기본 플러그인 VR noise reduction이 있긴 한데 디테일한 조절이 힘들어요. 그래서 다양한 플러그인들 사하는데 Red Giant의 denoiser나 Neat Video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합니다. Red Giant는 구독제고 Neat Video는 대략 구매에 10만 원 정도 하고요. 반면 다빈치 리졸브는 노이즈 리덕션이 유료 버전에는 그냥 포함되어 있어요. 내장된 소프트웨어기 때문에 기능도 더 다양하고 프리미어 플러그인들에 비해 훨씬 성능도 뛰어납니다.
패티는 전에 인터뷰에서
Our job is to be good at making things that don't exist. It's really easy to look at things that do exist and then that's where the disruption term comes in. It's like, "I'm doing this and now this is disrupting things." …….It's like, well, yeah; generally, what I'm trying to do is make the industry bigger. I'm trying to add new things that don't exist in the economy, plug them in, and make a bigger world.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고 이거로 더 크고 다양한 세계를 만든다. 자신이 몸담은 업계에 대한 접근 방법이 다르다 보니 이런 생각과 행동이 나오는 것 아닐까 합니다.
실제로 블랙매직 디자인 카메라는 빈자를 위한 시네마 카메라라는 수식어가 붙어있습니다. 정말 말도 안 되게 저렴한 편이에요. 현재 소니 a7s3가 대략 450만 원 정도 하는 데 반해 BMPCC 6K PRO는 350만 원 정도 합니다. 성능 똑같고 편의성이 조금 떨어지는 bmpcc 6k는 200만 원 초반대에 구매할 수 있습니다. 블랙매직 한번 써보시거나 촬영 결과물 보시면 a7 과 엄청난 차이가 있는 거 알 수 있어요. 편집용 코덱인 BRAW 경우 편집에도 유리하고 10비트에 머물고 있는 a7s3와는 다르게 12비트까지 색 표현도 가능하고요.
AF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단점이 있지만 어차피 시네마 카메라는 포커스 풀러가 포커스 잡아주니까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고요. 비슷한 성능의 시네마 카메라와 비교해보면 더 두드러집니다. Red Komodo의 경우 바디만 800만 원 가까이 하고 액세서리 이것저것 다 포함하면 1300만 원이 훌쩍 넘어갑니다.
최고 품질의 영상 퀄리티 카메라, 최고의 소프트웨어를 창의적인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거나 혹은 공짜로 풀어버리는 사업 전략 때문에 산업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얘기도 듣기도 했어요. 너무 싸게 고품질 카메라를 풀어버리니 다른 경쟁업체 입장에선 눈엣가시일 수 있죠. 이런 비난에 대해 약간 단호하게 말한 부분이 있는데
“지들이 소비자 말을 미리 들었으면 안그랬을걸? 나도 소비자인데 내말도 안듣잖아?” 라고요.
영화수준의 퀄리티와 컬러그레이딩을 위해서 수천만원짜리 카메라만이 정답이 아니란걸 몸소 증명하는 ceo가 바로 그랜트입니다.
그랜트는 일을 할 때 “내가 사회 한 분야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에서 시작했다고 해요. 결국 진득하게 오래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진정으로 관심이 있고, 더 나아가 남에게 도움이 되는 직업이 여러분들의 직업 선택에 큰 만족도를 안겨줄 수 있지 않을까 해요 ㅎㅎ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모처럼 긴 글 다 읽었습니다!
다빈치 리졸브가 왜 무료인가 의아했는데 이런사람이 있었네요.
대단합니다.
정말 완소프로그램입니다.
제가 제일 크게 느꼈던 건 EXR 파일에 지정한 해상도에서 오버마진 (가로해상도 0~1이라고 치면 -0.###이나 1.### 데이터값을 넣는 거죠) 이게 지원이 안 되어서 렌즈 디스토션 제대로 해결이 안 되더라고요;;;; 물론 표준(?) 상황에서 크게 안 벗어난 평범한 촬영에서야 대충 편법으로 넘어갈 수 있긴 한데, 3디 엄청 복잡하게 들어가는 샷에 빈티지 렌즈 쓰고 하면서 상황 ㅈㄹ나면 대응이 안 되어서;;;;
이게 아무래도 상당히 니치분야가 되다 보니 이런 저렴한 경쟁작이든 리버스엔지니어링 해서 만든 오픈소스든 간에 일단 제작자가 그런 문제를 겪어본 경험이 없어 그냥 대응 자체를 할 생각을 못 하는 그런 상황이 생기는지라... 참 아쉽더라고요.
도프룩 같은데서 중고가 가장 많이 후려쳐서 나오는 기종이 BMPCC 6K죠 ㅠㅠ
물론 카메라와 별개로 다빈치 리졸브는 아주 잘 쓰고 있습니다
재밌게 잘 읽었어요 ㅎㅎ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또 써주세요~
내가 직접 짜는게 낫다는건가요
하지만 가장큰 문제가 있죠
모든 하드웨어제품이 통보드로 만들어저있습니다
카메라이건 스위처이건 포트하나 나가면
보드를 통으로 교체해야합니다
블매의 보증기간이 보통 1년인데
1년후에 포트가 나갔다? 고장이났다?
새로 사는게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
싼건 다 싼데로 이유가 있는거라 얘기하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