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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정권을 차지한 경우는 흔하지만 무신정권의 경우 새로운 체제 내지는 국가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이성계는 조선을 세웠고,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막부체제를 만든 것에 비하면 끝이 참 허무한데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도 줄이고 줄이고 압축한 게 무려 다섯가지.
1. 집권 계기인 보현원의 변부터가 추잡했다는 것.
문신의 차별대우에 무신이 분노했다는 게 그 쿠데타 근거입니다. 하지만 강감찬과 윤관 등을 보면 알겠지만 고려는 문신이라고 해서 글만 읽는 백면서생이 아닌 무신을 겸할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신 가문이라도 커리어 시작을 무신으로 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즉 문신은 무신의 상위호환일 뿐이라 문신이 무신을 차별했다는 근거가 애매합니다. 지금처럼 문관과 무관이 칼같이 나눠지지 않은 시대입니다. 차라리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갑질한 거라면 모를까. 그런데 그걸로 반란의 근거를 삼는다?
거기에 그 보현원의 변도 문신들이 술 퍼먹고 정신 못차릴 때 기습적으로 공격하고 되도 않는 명분을 붙인 겁니다. 그러니 같은 고려 시대의 문신에서부터 조선의 사관, 현대 역사학계, 심지어 외국에서도 명분없는 난으로 여깁니다. 군부 독재 정권이나 좀 치켜세울 뿐.
2. 사실상 군인 탈을 싼 마피아, 야쿠자같은 존재들.
무신 정권의 정치는 무관들이 자기 패거리를 만들어서 서로 이권다툼만 하는 조폭의 항쟁이나 같았습니다. 그 중 가장 세력이 강한 인간이 무신정권의 수장이 됩니다. 그러니 그 아래에는 언제나 권력을 빼앗으려고 하는 무신들이 있었고, 그들이 틈만 나면 반란이나 암살을 일으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 막을 힘이 있느냐? 경대승과 최충헌의 사병집단만 해도 많아봐야 천명 정도고, 나머지는 언제든지 편을 바꿀 수 있는 어중이떠중이 내지는 국가의 군인들입니다. 그러니 쉽게 당하는 겁니다.
그러니 최충헌과 최의 정도를 빼면 장기집권을 못합니다. 거기에 카르텔에 못 들어간 은메달리스트들, 지방의 무신들은 언제나 틈만 나면 난을 일으키고, 거기에 백성들도 못살겠다고 민란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무인시대 100년동안 반란 없는 해가 거의 없습니다. 반란이 없으면 외적의 침략이 있고요.
3. 장기적인 비전이 없는 탐관오리같은 정치운영
무신 정권은 장기적으로 국가를 이끌 이데올로기가 없고 그저 자신의 즐거움을 누리는 걸 중시합니다. 당시 무신정권에는 국가를 개혁하겠다는 생각도 없고, 국가를 운영하기 위한 상식도 없습니다. 민심을 얻을 생각도 없습니다. 외교도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그냥 자기 배를 채울 생각 뿐. 최충헌의 봉사십조만 해도 딱 돈주고 사온 모범답안 수준인데 그조차도 지킬 의지가 없었죠.
그래서 고려는 무신 정권 100년을 거치며 그 고려 전기의 필요하면 원정도 불사하는 그 강건함이 사라집니다. 생각있는 엘리트 및 지식인층들도 다 숙청되고 힘없는 하급 실무관료 내지는 은둔자로 변해버리죠. 생각 있는 사람들은 죽거나 귀양을 갑니다. 고려 후기가 왜 이렇게 망가졌는지는 다 여기에 이유가 있습니다.
반대로 이성계의 조선은 체계적인 정치조직과 정치를 하는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신정권과 같이 쿠데타로 집권했지만 500년을 견디는 강력한 국가체제와 정치관을 선보였죠.
4. 고려 역사상 가장 군사적으로 허약하던 속빈 강정
무신정권이라 하니 뭔가 영웅호걸이 서로 사병을 가지고 겨루는 등 무협지같은 분위기를 기대하지만 실상은 쫄보들이 서로 눈치보다가 기회가 되면 뒷퉁수에 칼을 꽂는 참 김새는 풍경이 100년 내내 펼쳐집니다. 아이러니하게 이건 무신들이 무력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무신정권 집권자 중 가장 사병이 많던 최충헌도 천명이 채 못 됩니다. 무신들이 가진 사병은 보통은 많아봐야 한 수백 정도.
고려의 중앙 병력이 무신정권의 소유였다지만, 이성계는 고려 말기의 외국과의 실제 전쟁에서 순수한 사병으로만 2000명를 이끌고 다니며 외국의 기록에도 남은 무쌍을 찍는 무지막지한 전투와 비교하면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거기에 그 이성계의 사병은 고려와 여진, 몽골, 중국, 일본 등지에서 끌어 모은 베테랑 기병대입니다. 거기에 별볼일없는 권문세족이나 신진사대부도 수십 수백 정도의 사병은 기본이었습니다.
결국, 무신정권 중 최고의 힘을 갖춘 최충헌조차도, 이성계는커녕 이성계에게 벌벌 떠는 권문세족 수준의 무력도 없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경대승처럼 생각 있는 사람도 암살을 두려워하면서 개혁을 할 수 없습니다. 결국 놀고 먹으며 적당히 몸을 사리는 사람만 남는거죠.
5. 명성과 능력, 민심, 정치력 모두 없는 정당하지 않은 독재자
무신정권의 지배자 중 그나마 경대승 정도가 명성과 능력, 민심을 갖춘 편이지만 그는 정작 정치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오래 버티지 못하고 암살 위협을 받으며 죽습니다. 최충헌은 명성과 능력, 정치력은 있는데 민심을 얻을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니 최씨 무신 정권을 세우긴 하는데 그 체제가 가면 갈수록 용두사미가 되어갑니다.
거기에 그 무신들이 외적의 침입에 잘 맞서 싸웠는가? 몽골에게 털려 강동성으로 도망친 거란족 잔당도 못 잡아 몽골의 힘을 빌리는 판이고, 몽골의 침입 때 최우나 최항, 김준같은 집권자들이 싸우지도 않습니다. 도망치기 바빴을 뿐. 그나마 박서와 김윤후 같은 장군들이 활약을 하긴 했지만 그들은 권력이 없었죠.
반대로 이성계는 당시 명성으로 치면 국가의 구세주였고, 능력은 개인 무력과 자체 세력과 전공 모두 유래가 없을 정도의 명장입니다. 민심은 당연히 이성계 지지세력이 넘쳐날 지경이죠. 물론 개성의 안티팬이 있긴 한데 세상에 안티팬 없는 정치인이 있나요. 정치력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무신들이 100년간 고려에 기생할 때 그는 4년만에 과전법 등 개혁을 성공시키고 나라도 새로 세우죠.
요약하자면 무신정권은 별다른 업적이 없고 문신이 자신들을 차별했다는 불분명한 주장을 퍼트리며 사실상 고려왕조의 엘리트를 숙청했을 뿐이니, 권력만 잡았지 그외에는 아무것도 국가를 위한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정부를 사유화 하고, 국가를 이끌 인재들과 국가의 성장을 견제하고, 민중을 착취하며, 자기들끼리 조용히 숨어서 향락을 즐겼던, 귀족의 카르텔일 뿐입니다.
그러니 평가를 좋게 해줄 수가 없죠. 박정희나 전두환보다도 못한 사람들일 뿐입니다.
몽골 때문에 어쩔 수 없지 않았을까라고도 보지만 나오기도 들어가기도 힘든 섬에서 거사를 도모하기도 힘들죠.
빨리 수도로 진격해서 왕을 잡고 하수인을 세우든 새왕조를 열든 해야할텐데
반대로 섬으로 들어가버렸으니 성공할리가 없죠.
시간이 지날수록 자원부족에 허덕일거고..
당장의 생존을 위해서는 섬에 틀어박히는게 좋았겠죠. 다만 쿠데타 성공은 갈수록 멀어지게 됩니다. 그다음부터는 그냥 버티기가 된거죠.
어쨋든 내부의 여러사정이 있었지만 결국 섬으로 들어가자고 결정했을때 이미 운명은 결정되었다 봅니다.
성공한 쿠데타도 나라를 세우기 보다는 기존의 체제를 답습하는 예가 많으며
나라를 세우는데 성공한 쿠데타는 정말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로 매우 예가 드물어요.
쿠데타를 일으키는 데에는 무력만 있으면 되지만
그게 성공으로 이어지려면 기득권 세력의 도움이 필요하고
나라를 세우려면 기득권 세력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를 채울 신흥 세력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 성공한 쿠데타도 계속 유지되려면 새로운 명분과 이념이 필요하죠.
뒤로 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질거에요.
공민왕만 중간에 안돌아가시고 1차요동정벌 철수만 안했어도..
군벌문제 외에도 내치에 집중하기에는 개국부터 망할때까지 거란 여진 몽고 왜구 들에게 너무 시달렸죠.
조선도 사정은 똑같지 않냐? 하면
운좋게(?) 조선 개국초기에 일본도 내전에 휩싸여서 임진왜란 전까지는 잠잠하고 여진은 한창 성장중이던 누루하치가 비교적 조선에 온건한 편이었고, 명나라는 비실대기 시작하고 있어서 내치에 집중하기 좋았습니다.
이방원이 외척이고 형제고 뭐고 다죽여서 권력정리를 잘한것도 있고 세종이라는 천재를 낳고 왕으로 만든 것도 있고...
(최씨 정권과 연줄이 있던) 김경손 중심의 관군이 몽골군을 초반에는 잘 막아서기는 합니다만, 최항 정권에 이르러서는 숙청돼버리고요.
여몽전쟁에서 과연 큰 로드맵이 있기는 했을까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