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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공원

고려와 조선의 음서제도 15

1
llmubb2
2,704
2018-08-07 19:42:53 수정일 : 2018-08-07 19:49:12 1.♡.161.61

음서

최근 수정 시각: 2018-07-28 13:34:53

분류

 

  • 관직

蔭敍

1. 개요2. 고려3. 조선4. 현대판 음서5. 일본


1. 개요[편집]

고려와 조선에 있었던, 고위 관리의 친인척에게 아무 조건 없이 하급 관리직을 주는 관리 임명 제도. 음보(蔭補), 문음(門蔭), 음사(蔭仕), 음직(蔭職)이라고도 표기하며, 음덕(蔭德)으로도 표현한다. 음서로 선발된 관료는 음관(蔭官)으로 불렀다.

중국의 문벌귀족에게 구품관인법이 있다면 고려의 문벌귀족에게는 음서가 있었다. 귀족의 재산을 보장하는 공음전(功蔭田)과 함께 문벌귀족 형성의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2. 고려[편집]

고려를 말아먹은 대표적 폐단

삼한공신의 자손들을 후대하라는 최승로의 시무28조를 시작으로, 성종 대에 당과 송의 음보제도를 들여와서 5품 이상의 관료들에게 관직을 주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5품 이상 고관들에게 주는, 관직의 세습을 합법적으로 보장하는 제도였다. 대상 범위가 아들, 손자, 외손자, 사위에게까지 주어졌다.[1]

공음전과 함께 문벌귀족의 조건이 되는 특권으로서 부와 권력의 세습을 뒷받침해주는 제도였다. 공음전이 귀족의 수조권을 보장함으로서 귀족들의 경제적 기득권을 보장했다면 음서는 귀족 자제들의 관료 진출을 도움으로서 정치적 기득권을 보장했다.

지금으로 치자면 아버지나 아버지의 친인척, 혹은 어머니의 친인척, 혹은 삼촌, 장인 등이 고위 공직자이면 태어날 때부터 놀고 먹어도 공무원이 될 수 있는 거다.

고려시대에는 음서를 받을 수 있는 친인척 관계가 매우 광범위했다. 더구나 귀족들은 계급내혼 관계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귀족의 자제라면 거의 누구나 저 넓은 음서 수여가 가능한 혈연관계망 어디에선가는 음서를 얻을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귀족들이 계급내혼을 하고 있던 것은 이처럼 음서의 범위가 광범위함에도 지배층이 과도하게 확대되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물론 고려 사람이 바보는 아니라 음서로 받는 관직은 대개 산직일 뿐만 아니라 품계가 낮았기 때문에 이를 통해서 바로 고위 관직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음서가 주어지는 것은 대개 10대 초반이었다.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승진하기에 이처럼 빠르게 품관직을 얻는다는 것은 이후 고위 관직을 얻을 기회가 많다는 것을 의미했다. 특히 이는 오직 과거로만 입사하는 신흥세력들과의 차이를 크게 벌리는 요인이 되었다. 과거 급제자가 20대에 초직을 얻었던 반면 음서를 받은 귀족 자제들은 이미 10대부터 관직 경력을 쌓아왔기 때문에 이후 다시 과거에 급제할 경우 처음부터 과거로 입사한 이들보다 훨씬 유리하게 고위직으로 올라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직을 주는 것과 요직에 배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로, 음서로 관직을 제수받는다고 해도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지 못하면 한직에서 관료인생이 끝날 수밖에 없었다고 하니 일단 고위 관직에 무능한 놈이 들어가는건 힘들었던 모양이다. 오히려 정말 잘나가는 귀족들은 음서는 물론 과거까지 급제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실제로 도병마사나 추밀 등의 고위 구성원들의 출신성분을 보면 과거(실력)+음서(신분)가 많았다.

또한 후대인 조선만큼은 아니지만 음서로 관리가 된 자에게는 어느 정도 관직임명 제한이 있었다. 물론 고려는 조선만큼 필수관직을 무조건 못거치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고려 사회에서 높은 관직으로 나아가는 데 필수적인 인맥의 핵심인 지공거가 있었기 때문에 음서출신 관리가 딱히 돋보이는 능력이 없었다면 요직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볼 필요가 있었다. 인맥이 인맥을 견제하는 순기능을 내는 고려의 기묘한 관리임명

따라서 음서만으로는 아버지가 누렸던 정도의 고위관료가 되긴 힘들며, 나름대로 실력을 보여야 하는 것. 따라서 어떻게든 능력을 인정받을 기회를 찾으려 했고, 기회가 없었다면 스스로 공부를 해서 과거에 응시하는 일도 있었다. 물론 유능하다 쳐도 일부 기득권층 위주로 고착화되어 썩는 것은 피할 수 없었지만, 최소한 이 제도만으로 무능력자가 혈통만 믿고 날뛰는 상황은 잘 벌어지지 않는다.

실제로 음서로 출세한 뒤 권력의 정점에 올랐던 이인임 등을 보면 모두가 정치적, 군사적 역량을 충분히 갖고 있는 자들이었다. 즉 출세는 부정하게 했어도 그 뒤의 능력은 확실하게 입증된 이들이기 때문에(혹 능력이 없으면 능력을 갖추어야만 대우받을 수 있었기에) 음서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출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당시는 공식적인 제도인 만큼 '부정하게 했다'고 보기도 어렵고.

이 문단은 음서를 비판하는 서술과 변호하는 서술이 동시에 있는데, 실제 사학계도 그렇다. 현재 고려사회의 성격에 대해 귀족사회론과 관료사회론이 대립하고 있는데 음서에 대해서도 자주 행해지던 문벌귀족들의 권력기반이다.vs특수한 경우에만 행해지던 것으로 일종의 관리에 대한 포상이다.로 나뉘어 논쟁을 벌이고 있다.[2]

3. 조선[편집]

조선시대에도 음서제도는 계속 유지되었으나 고려시대에 비하면 상당히 깐깐한 조건을 유지하였다. 고려때는 5품 이상부터 남성가족등이 참여할 수 있게 넓게 포괄했지만 조선은 일단 2품 이상의 관료 또는 실직 3품 관료의 아들, 조카, 손자, 사위, 동생에 한하여 음서를 누릴 수 있었으며, 과거에서 급제한 인재들을 우대하기 위해 승진할 수 있는 상한 품계를 두었고, 관품도 대거 낮춰서 음서로 받을 수 있는 관직은 별 실권도 없는 자리나 명예직을 내줄 정도로 차별하였다. 무엇보다도 음서로 임용된 경우에는 제도적으로 청요직에 나갈 수 없었는데, 조선시대에는 청요직을 거치지 못하면 고위관료로 승진할 가능성은 0%나 마찬가지였다. 

제도적으로뿐만 아니라, 과거 출신자들의 견제와 멸시도 심했다고 한다. 고려시대의 음서는 당사자가 좀 쑥스럽기는 해도 꿀릴 건 없는 제도였던 반면에 조선시대에 음서로 관직에 진출하는 것은 상당히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보통은 문음으로 합격하더라도 이후 다시 과거에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미 벼슬을 얻은 사람도 과거를 여러 차례 보는 것은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한명회로 할아버지가 명나라에서 조선건국을 인정받아온 개국공신의 장손이였는데 과거합격을 못해서 음서로 개성의 말단직으로 일했다. 그러던중 관리들 친목모임에 참여했다가 개국공신 가문 후계자가 철저하게 무시를 당했다. 그리고 계유정난으로 사실상 조선의 2인자인 상황에서도 과거시험을 쳤다..[3] 

면신례라고 하는 관료들의 신참의 군기잡기도 음서와 관련이 있다. 고려말 과거 급제자들은 음서 출신을 아니꼽게 여겨서 갈구는 것이 이어지면서 조선시대에는 신참 관료에게 엄청난 부담이 되었다.

그런데 조선 후기로 갈수록 집권세력의 족벌체계가 확고히 자리잡으면서 음서제도는 고려시절 못지않은 유력양반들의 관직 세습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그래도 고려시대와는 달리 음서로 벼슬하면 아무리 잘해도 군수(종4품) 또는 목사(정3품)정도의 지방관료였다. 고려시대에는 실력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긴 하지만 정1품도 가능했던 것과는 차이가 있다. 물론 실제로는 고려든 이때든 그 정도쯤 되는 관리라면 거진 다 이미 과거에 합격한 사람일테니 최종 벼슬은 차이가 없었다. 대신 조선 후기에 이르면 과거시험 자체가 유명무실화되지만….

단적인 예로, 영조 대의 좌의정 이후는, 인조반정 공신 이시백의 5세손이었다.[4] 그런데 그는 노인이 되도록 30번이나 과거에 응시했지만 미역국만 먹었고, 그에 비해 그의 동생 이유는 그가 25살 때 이미 급제했다. 그래도 좋은 가문 덕분에 음서로 나주 목사를 지내고 있었음에도 과거에 합격하지 못했다는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일 때문에 잠시 한양에 올라와 있을 때, 마침 동생의 생일잔치가 있었고 꼭 참석해 달라는 동생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참석하긴 했는데, 동생을 비롯한 동석하는 대감들은 거의 다 자신보다 품계가 높은 관료들이었다. 그 때문에 스스로 말석에 가 앉았는데 주인의 형이었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권해 상석에 앉았다. 
이 때 동생이 한 점쟁이를 불러 점을 보게 했는데, 잘난척이 심하던 호조 판서가 한 명 한 명 언제 점을 보겠냐며 이 중에 누구가 가장 먼저 정승에 오르겠나 봐달라고 했더니 그 좌중에서 하필이면 나주 목사 이후를 지목했다. 이후는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 열등감 때문에,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 자신이 어떻게 정승이 되겠냐면서 화를 내고 나왔다. 그 날 밤, 형과 대면한 동생은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마침 곧 과거가 있으니 응시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했고, 응시하자 하필이면 평생 인연이 없던 과거에 덜컥 붙어 버렸다. 그의 나이 56세였으며, 동생이 과거에 합격한지 31년 만이었다. 당시 한양은 낙방도사가 드디어 급제했다고 떠들썩했다. 그리고 7년 후, 이후는 그 잔치에 동석했던 판서들보다도 먼저 우의정에 올랐다. 점쟁이의 점이 맞아떨어진 셈인데, 이후는 원래 능력만 따지자면 정승감이라고 평가되었으나 과거를 급제하지 못한 탓에 승진이 멈춰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끝은 불행했으니, 이후는 얼마 뒤 좌의정 겸 세자시강원 책임자이자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세자부에 임명되었는데, 문제는 모셔야 할 세자가 바로...... 그 뒤 어느 세자의 평양원유 사건에 연루된 그는 세자와 영조 사이에 끼여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결국 영중추부사 이천보, 우의정 민백상과 함께 음독자살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결국 과거 급제로 인해 그의 운명은 파란만장한 생으로 바뀌게 된 셈이다. 

4. 현대판 음서[편집]

이 음서 제도라는 것이 국사를 배우다 만날 수 있는 주요 개념이다 보니 오늘날 와서도 어떤 제도를 비유적으로 말할 때, 주로 언론에서 '현대판 음서제도'라는 식으로 불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뜻이 뜻이다 보니 금수저 표현과 자주 엮인다.

이런 소리를 자주 듣는 것들로는 수시[5], 입학사정관제, 기여입학제, 특별전형, 5급민간인특채, 로스쿨, 노조원 자녀 특채 등이 있다. 물론 음서와는 달리 다른 목적으로 운용되거나 직원에 대한 혜택등의 이유로 도입된 경우이므로 취지를 잘 살리면 별 문제 없는 제도들이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제대로 안 돌아갈 경우에는 그야말로 현대판 음서가 된다.

시드노벨의 개와 공주에 나오는 가상의 국가 대한왕국에서는 아직까지 남아있는 듯 하다.

연예계에서 실력도 없으면서 연기를 하는 뮤지션들이나 특채로 선발된 코메디언들이 많이 듣는 말이 낙하산 인사다.

특히나 최근 들어서는 연예인들의 2세가 아버지의 후광으로 방송에 진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서 큰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연예인 2세, 이쯤되면 금수저 넘어선 금핏줄


음서의 민족이지요! 배달민족...

'고려'와 '조선'을 '한국'으로 바꿔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말뚝이:(가운데쯤에 나와서) 쉬이. (음악과 춤 멈춘다.) 양반 나오신다아! 양반이라고 하니까 노론, 소론, 호조, 병조, 옥당을 다 지내고 삼정승, 육판서를 다 지낸 퇴로 재상으로 계신 양반인 줄 아지 마시오. 개잘량이라는 ‘양’자에 개다리소반이라는 ‘반’자 쓴 양반이 나오신단 말이오.

양반들: 야아, 이놈, 뭐야아!

말뚝이: 아, 이 양반들, 어찌 듣는지 모르갔소. 노론, 소론, 호조, 병조, 옥당을 다 지내고 삼정승, 육판서 다 지내고 퇴로 재상으로 계신 이 생원네 3형제분이 나오신다고 그리 하였소.

양반들: (합창) <이 생원이라네.> (굿거리장단으로 모두 춤을 춘다. 도령은 때때로 형들의 면상을 치며 논다. 끝까지 그런 행동을 한다.) (중략)

생원: 이놈, 너도 양반을 모시지 않고 어디로 그리 다니느냐?

말뚝이: 예에, 양반을 찾으려고 찬밥 국 말어 일조식(日早食)하고, 마구간에 들어가 노새 원님을 끌어다가 등에 솔질을 솰솰 하여 말뚝이님 내가 타고 서양 영미, 법덕, 동양3국 무른 메주 밟듯 하고, 동은 여울이요 서는 구월이라, 동여울 서구월 남드리 북향산 방방곡곡 면면촌촌이, 바위 틈틈이 모래 쨈쨈이, 참나무 결결이 다 찾아다녀도 샌님 비뚝한 놈도 없습디다. - 고등학교 <국어 상>


https://namu.wiki/w/%EC%9D%8C%EC%84%9C


유럽도 심했지요.. 그 점을 간과한 듯 싶습니다. 글삭튀는 안 하겠다고 했으니 제목을 수정하겠습니다. 잘 모르고 나대서 죄송합니다..

llmubb2 님의 게시글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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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amang
IP 223.♡.24.102
08-07 2018-08-07 19:43:40
·
scm7
IP 1.♡.77.179
08-07 2018-08-07 19:43:56
·
삭제 되었습니다.
게으른드루
IP 223.♡.8.243
08-07 2018-08-07 19:44:50
·
이민 언제 가나요? 골백번은 가시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mers4u
IP 211.♡.188.194
08-07 2018-08-07 19:45:07
·
삭제 되었습니다.
수퍼코일드
IP 117.♡.2.160
08-07 2018-08-07 19:4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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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림 하는건 세계 어느나라에나 다 있어요. 풉
36계빤쓰런
IP 121.♡.157.233
08-07 2018-08-07 19:4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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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음서제 제일 빨리 없어진게 혁명 이후 프랑스, 영국은 20세기까지 매관매직이 합법이었단걸 알면 이런글 못쓸텐데...ㅉㅉ
weakness
IP 221.♡.203.8
08-07 2018-08-07 19:5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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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옆나라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에도 음서 정도가 아니라 화족이 있었죠.
Aeroplane
IP 14.♡.248.30
08-07 2018-08-07 19:57:11
·

warugen
IP 122.♡.28.4
08-07 2018-08-07 19:57:57
·

세일러문재인
IP 175.♡.11.243
08-07 2018-08-07 19:59:22
·
퍼와도 꺼라위키를..
TNSmortersLove
IP 175.♡.22.250
08-07 2018-08-07 20:02:45
·
아이디 세탁
3G이용자
IP 118.♡.146.250
08-07 2018-08-07 20:04:12 / 수정일: 2018-08-07 20:05:36
·
과거제도를 확립해서 '실력으로 관리를 뽑는' 제도는 중국에서 시작은 했지만 완전히 정착해서 제대로 굴러간 곳은 조선 밖에 없었죠. 전 세계 통틀어 유일무이... 이 부분에서 유럽은 한참 뒤쳐지고요. 서양 사람들이 한국사 공부할 때 맨붕오는 포인트 중에 하나라고 하더군요. 서양식 역사발전 관념으로는 갑툭튀 비슷한 거라서리...
Integer
IP 117.♡.1.88
08-07 2018-08-07 20:05:07
·
성균관들고온줄..
shch6332
IP 58.♡.113.136
08-07 2018-08-07 20:39:10
·
삭제 되었습니다.
어노니머스1
IP 114.♡.131.137
08-08 2018-08-08 05:50:10
·
고려 초 중기 음서는 별로 이상한 제도는 아니었습니다만... 전쟁 나서 병력 동원할때 어디서 병력이 나오는 지 생각하면... 지금처럼 각 집안이랑 국가가 분리된 세상이 아니었죠. 나라일 필요하면 호족들이 돈도 투척하고 인력도 동원하는 그런 세상이니 오히려 과거제 하자고 하면 미친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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