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포르노가 합법화되지 않는 이유를 찾아보다가 정리를 해봅니다.
- 법적 근거
한국에서 음란물 제작·유통을 규제하는 핵심 조항은
형법 제243조(음화반포죄), 제244조(음화제조죄), 그리고 정보통신망법상의 음란물 유통 금지 조항입니다.
"음란"의 개념 자체가 판례로 축적된 것인데,
대법원은 대체로 "사회 통념상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상당히 넓게 해석해왔습니다.
그래서 명시적 성행위 묘사물은 거의 자동으로 불법에 걸리는 구조입니다.
즉 "포르노를 금지하는 법"이 따로 있다기보다,
음란물 규제가 워낙 포괄적이라 사실상 상업 포르노 산업이 성립할 공간이 없는 거죠.
- 개신교의 정치적 영향력
이게 아마 가장 한국적인 변수일 것 같습니다.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개신교 인구 비중이 예외적으로 높은 나라입니다.
대만, 일본, 중국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죠.
더 중요한 건 단순히 신자가 많다는 게 아니라,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한 개신교 세력이 매우 조직화되어 있고 정치적으로 적극적이라는 점입니다.
성 관련 규제, 차별금지법 반대, 낙태, 동성애 이슈 등에서 이들은 결집된 압력집단으로 작동합니다.
유교는 이제 정서적 배경으로 남아 있지만,
개신교는 실제로 표와 조직으로 움직이는 현실 정치 세력이라는 점에서 규제 유지의 실질적 동력인 거죠.
- 여성계와 보수 진영의 '이례적 연합'
이건 서구와 상당히 다른 한국적 지형이라고 합니다.
서구에서는 대체로 성 표현물 규제를 두고 진보/자유주의 진영이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편인데,
"성 표현물 규제"라는 결론에 있어서는 보수 기독교 진영과 여성계가
(동기는 전혀 다르지만) 사실상 같은 방향으로 힘을 실어주는 구도라고...
규제를 풀자는 쪽은 정치적 우군을 양쪽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운 거죠.
-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검열 인프라
한국은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이 세계 최상위권인데, 동시에 그걸 통제하는 국가 인프라도 정교하게 발달했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웹사이트를 실시간으로 차단하는 체계가 있고
2019년 도입된 SNI 필드 차단 방식은 기술적으로도 상당히 강력한 검열 수단입니다.
일반적인 민주국가 중에서는 이례적일 정도라고...
- 디지털 성범죄 트라우마
소라넷, 웹하드 카르텔, N번방 사건 등을 거치면서
한국 사회에서 "성 콘텐츠 시장 = 착취와 범죄의 온상"이라는 인식이 매우 강하게 각인됐습니다.
다른 나라도 이런 문제가 있지만,
한국은 이 사건들이 전국적 공분과 대규모 입법(성폭력처벌법 개정 등)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강도가 다르다는 거죠.
그래서 "합법화하면 관리·양성화가 가능하다"는 논리보다
"합법화하면 착취가 더 늘어난다"는 우려가 더 설득력을 얻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 합법 산업의 부재라는 경로 의존성
일본의 경우는 역사적으로 부분 허용(모자이크)을 통해 합법 산업과 이익집단이 형성됐고, 서구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은 그 첫 단추를 한 번도 끼우지 않았기 때문에 "규제 완화를 요구할 산업 주체" 자체가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이건 문화라기보다 제도의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 문제인데,
한번 "불법"으로 시작하면 그 상태를 뒤집을 내부 세력이 생기지 않는 자기강화 구조라는 거죠.
- 도덕 규제의 전통이 있는 나라는 많이 있겠지만 한국의 특수성은
1. 정치화된 개신교
2. 검열 의지와 기술력의 결합
3. 보수-여성계의 이례적 규제 연합
4. 디지털 성범죄로 인한 강한 사회적 트라우마
이런 것들이 겹쳐 있다는 점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 상업적인 동기, 경제적 수요가 적진 않을텐데도 합법화가 안 되는 이유
실제로 한국인의 해외 성인 사이트 이용량은 세계적으로도 상위권이고, 수요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 수요가 "합법화 운동"으로 전환되지는 못하고 있죠.
이유들을 보자면,
1. 정치적 유인이 없음
성인물 합법화를 공약으로 내걸어서 표를 얻는 정치인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반대 진영(보수 기독교계, 여성계 일부, 아동·청소년 보호 단체 등)의 반발은 조직화되어 있고 강력합니다.
즉 찬성 쪽은 흩어진 다수의 소극적 선호이고,
반대 쪽은 결집된 소수의 적극적 목소리라서, 정치적으로는 반대가 훨씬 힘이 셉니다.
2. 수요가 이미 (불법적으로든) 충족되고 있음
해외 사이트, VPN 등으로 접근이 가능하다 보니 "굳이 법을 바꿔야 한다"는 절박함이 형성되지 않습니다.
불편하지만 참을 만한 상태라서 합법화의 정치적 동력이 약한 거...
3. 상업적 로비 주체가 없음
미국이나 일본처럼 합법적 성인물 산업이 존재하는 나라는
그 산업 자체가 이익집단이 되어 규제 완화를 밀어붙이지만,
한국은 산업이 불법이라 그런 로비 세력이 아예 형성될 수 없습니다.
닭이 없으니 달걀도 없는 구조...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인간의 도덕 판단은 이성적 추론이 먼저 이루어진 결과가 아니라
직관이 먼저 답을 내리고 이성은 그 답을 사후에 정당화하는 변호사 역할을 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이라는 동물의 본능이라는 면에서 보자면
저는 인류의 뇌는 무엇이 사실인가를 파악하거나, 옳고 그름을 잘 따지는 쪽으로 진화한 게 아니라,
(이기적 유전자를 많이 퍼뜨리기 위해) 생존하고 번식하기 유리한 쪽으로 진화한 거라고 봅니다.
(비록 사실이 아닐지라도) 자기 아이는 예쁘게 인식하고, 짝짓기 상대는 매력적으로 인식하고
(착시현상에서처럼) 같은 걸 다르게도 보고, 없는 걸 있는 걸로 인식하기도 하죠.
자기 아이를 예쁘다고 인식하지 않는 개체들은 도태될 확률이 높을 거고,
예쁘지 않아도 무조건 예쁘다고 인식하는 개체들이 유전자를 전달할 확률이 높을 겁니다.
이런 인류가 만든 법이나 제도, 관습이라는 것도
결국은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옳으냐 틀리냐를 따져서 만들어진 것이라기보다는
주어진 환경에서 적자생존하는 문화적 meme이 선택되어 굳어진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포르노가 합법이냐 불법이냐 라는 문제도, 마약 문제도, 낙태 문제도, 도박 문제도,
어느 쪽이 논리적으로 맞느냐를 생각해서 정해진다기보다는
어느 쪽으로 갔을 때 사회가 잘 존속해왔는가가 주요 요인이 아닐까 하는 거죠.
그런데 각 사회가 처한 종교, 역사, 경제 등의 환경은 저마다 다를 테니
"잘 존속하는" 방향은 사회에 따라 다 다를 겁니다.
그러니 각 사회는 같은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법과 제도, 관습이 만들어져온 것일 테구요.
그러다보면 인종차별, 남녀차별, 노예제, 태형, 일부다처 등이 합법인 사회도 있는 혹은 있었던 거고,
이쪽에서 보기엔 불합리한 것이 그곳에서는 생존에 유리한 것일 수도 있고,
우리 사회의 법과 관습도 어떤 사회에서는 기괴하게 보이기도 할 거고...
저 같은 성향은 "이건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하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경향이 강한 편인데
인류라는 동물에게는 그런 논리보다 이런 본능이 훨씬 더 오래되고 강한 본능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법이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답답해하는 것 자체가
애초에 그런 용도로 만들어지지 않은 도구에 엉뚱한 기대를 거는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기독교는 어떤 근거로 음란물 합법화를 반대하는지 궁금하네요. 짐작컨데, 눈으로 하는 간음도 간음이다.라는 스탠스 일 것 같은데, 사실 이런건 한국 기독교만의 특수한 스탠스가 아니라 성경의 내용으로 비롯하기에 다른 문화권/나라의 기독교도 같을거라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기독교만 더욱 특별한 영향력을 미친다? 여기까지 도달하기에는 뭔가가 빠져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급하신대로 단순히 한국의 기독교가 더욱 조직적인 힘을 가지고 있고 이게 표로 이어지기 때문일까요?
'합법화하면 착취가 더 늘어난다.' 라는 것도 글을 여러번 읽어봤지만 어떻게 저런 결론에 이르는지 저로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네요. 일단 여기서 말하는 '착취'를 좀 더 자세히 정의해야겠지만, '합법화하면 착취가 더 늘어난다.'를 뒷받침 할 수 있도록 해석하자면, 음란물 산업이 활성화되면 시장이 커지고 거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 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자의든 타의든) '착취'를 당한다고 바라보는 걸까요?
말씀 감사합니다 :-)
- 저도 한국이 "교리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교리가 정치적 힘으로 전환되는 환경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는 쪽입니다.
미국도 복음주의가 성 규제에 강하게 목소리를 내지만,
거기선 표현의 자유(수정헌법 1조)라는 맞불 세력과 거대한 합법 성인물 산업이 다른 한편에 있죠.
서유럽은 그 이전부터 교회의 정치적 영향력이 세속화로 많이 빠졌고요.
반면 한국은 본문에서 얘기했듯이 대형교회 중심의 높은 조직 동원력,
반대 세력(표현의 자유 진영, 합법 산업)의 부재, 여성계와의 이례적 방향 일치 등의 조건이 겹치는 거고...
- 우선 성매매도 그렇고, 성 산업 자체를
남녀가 평등하지 않은 조건에서 벌어지는 구조적 '착취'로 보는 관점이 있는 거겠죠.
한편으로는 말씀하신 대로 시장이 커지면 착취의 총량이 커진다는 노동 착취 관점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소라넷, N번방 같은 사건의 경험에서 나온 걸 테고...
한국은 합법 산업을 통한 '양성화'를 겪어본 적이 없고,
성 콘텐츠 시장을 접한 경험이 곧 불법촬영, 비동의 유포 같은 범죄와 거의 등치되어 각인됐을 테니.
그래서 "합법화 = 관리 가능"이라는 서구식(?) 논리보다
"시장이 커지면 저런 게 더 판친다"는 연상이 정서적으로 더 힘을 받는 게 아닐까 합니다.
본문에서 얘기했듯 저는 이게 논리적 계산의 산물이라기보다
정서, 경험에서 굳어진 인식에 가깝다고 보는 편이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