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리지 주식 투자에 대해 생각해보다가
전에 읽었던 홍대선 작가(aka 딴지일보의 필독)의 '한국인의 탄생'에 기반해서 생각해본 내용입니다.
한국의 산업화를 돌아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습니다.
가난한 농업국가가 제철소를 짓고, 자동차를 만들고,
조선소를 세우고, 마침내 반도체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의 자본과 기술, 시장 규모를 생각하면 합리적인 투자라기보다는
가진 것을 한곳에 밀어 넣는 도박에 가까웠습니다.
실패하면 기업 하나가 아니라 국가경제가 함께 흔들릴 투자였습니다.
국가는 수출산업에 자원을 몰아주었고,
기업은 빚을 내 공장을 세웠으며, 노동자는 장시간 노동을 견뎠습니다.
가정에서는 온 가족이 희생해 장남 한 명을 대학에 보냅니다.
충분히 준비한 다음 도전한 것이 아니라
먼저 벼랑에서 뛰어내린 뒤 떨어지는 동안 비행기를 조립한 셈이랄까요.
어쩌면 이것은 현대에 갑자기 생겨난 태도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홍대선 작가가 제시하는 한국인론에서
한반도는 적당한 타협과 적당한 생존이 어려운 공간입니다.
좁고 척박한 땅에서 살아가면서도 대륙의 거대한 세력과 끊임없이 마주해야 했습니다.
중국이라는 압도적인 문명과 제국은 존경하고 배워야 할 대상인 동시에,
전쟁시 평지에서 정직하게 싸워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코스믹 호러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 상대와 전쟁이 벌어지면 선택지는 극단적이었습니다.
들판의 곡식과 마을을 비우고 태워 없애고 산성으로 들어갔습니다.
자신의 생활 기반을 스스로 파괴한 뒤 성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상대가 먼저 지쳐 물러나거나, 성안의 사람들이 굶어 죽거나 둘 중 하나였습니다.
일상의 일부를 양보하고 나머지를 보존하는 온건한 대응이 아니라
오늘을 불태워 내일의 공동체를 지키는 선택이었습니다.
( 산성 전투의 패턴은 산에서뿐 아니라 바다에서 산성처럼 기능한 이순신의 수군,
베트남전에 파병된 한국군이 평지에도 세웠던 중대전술기지 등으로도 이어집니다.)
청야전술과 산성 방어는 군사전술인 동시에 하나의 생존 감각이었을 것입니다.
어차피 조금씩 잃으면 결국 전부 잃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모든 것을 걸고 판을 뒤집어야 합니다.
이후 외환위기 때 벌어진 금 모으기 운동, 삼성중공업의 기름유출사고 때의 자원봉사 같은 것들 또한
이러한 한국적 감각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위기의 원인이 평범한 국민에게 있지 않았는데도 한국인들은 다투어 나섰습니다.
경제적으로 얼마나 결정적인 효과가 있었는가와 별개로,
그 행동에는 산성의 기억과 비슷한 정서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무너지려고 할 때 함께 산성을 보수하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는.
사대부들이 설계한 조선의 정치적 이상은 이런 태도에 또 하나의 층을 더했습니다.
조선은 왕이 마음대로 백성을 지배하는 단순한 전제국가라기보다
성리학적 명분과 민본의 원리에 따라 통치자를 통제하는 이념국가를 지향했습니다.
현실의 왕권은 허수아비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념적으로 왕은 하늘과 백성의 뜻을 대신 수행하는 최고 책임자였습니다.
왕은 경연에 나가 신하들의 훈계를 들어야 했고, 언관의 비판을 견뎌야 했으며,
흉년과 재난이 닥치면 자신의 부덕을 탓해야 했습니다.
백성 또한 신문고와 상언, 격쟁 등을 통해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다는 관념을 학습했습니다.
모든 민원이 공정하게 해결됐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랏님은 내 억울함을 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관념이 오랜 시간 축적되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인은 통치자를 좀처럼 초월적 존재로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나라 혹은 권력자를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성과를 내야 하는 도구로 취급합니다.
왕이든 대통령이든 독재자든 경제를 살리고, 물가를 잡고, 내 자식의 취업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통치의 정당성 자체가 의심받습니다.
(한국인들처럼 공무원들을 막 대하는 국민들도 없다고도...)
이런 나라에서는 독재자조차 성과의 압박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한국의 독재자들은 많은 다른 나라의 경우처럼 막 나가고 무한 권력을 향유하기보다는,
국민 앞에 성장률과 수출액과 고속도로와 아파트를, 성과를 제시해야 하는 압박에 짓눌렸습니다.
한국에서 국가는 주인인 동시에 민원 처리기관이며,
지도자는 제왕인 동시에 실적을 평가받는 고용된 사장입니다.
이러한 민본적 기대는 강한 평등주의로 이어집니다.
(이런 한국인들에게 미국식 민주주의는 준비된 새 옷일 수 있었겠지요.)
한국인은 위계를 쉽게 만들지만, 그 위계가 영원히 정당하다고 인정하지는 않습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도 단순한 질투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 앞서 나갔다면
나 또한 그만큼 올라갈 수 있어야 한다는 평등의 감각이 그 안에 있습니다.
특권을 부러워하면서도 특권의 세습에는 분노하고
성공한 사람을 숭배하면서도 그 성공이 부당하다고 판단하면 가차 없이 끌어내리려고 합니다.
이런 한국에서 사람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남이 뛰면 나도 뛰어야 하고, 남의 자식이 대학에 가면 내 자식도 보내야 합니다.
교육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과정이라기보다
계층의 추락을 막거나 단번에 상승하기 위한 투자상품이 됩니다.
집안의 자원을 자녀 한 명에게 집중하고, 부모는 허리띠를 졸라매며,
실패하면 다음 기회가 없다는 마음으로 입시와 취업에 매달립니다.
현대 한국의 산업화는 이러한 생존 감각이 국가적 규모로 확대된 사건으로도 보입니다.
거기엔 차근차근히 내실을 쌓아나간다는 느낌은 희박합니다.
교과서적인 해법을 따르기보다는,
국가는 국민의 저축과 외자를 특정 기업과 산업에 몰아주었고
기업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빚을 냈습니다.
성공하면 수출과 정책금융이라는 보상이 주어졌지만
실패하면 기업과 은행과 국가가 함께 위험해졌습니다.
이것은 자유시장도 아니었고 단순한 계획경제도 아니었습니다.
국가가 판돈을 빌려주고 수출 실적으로 참가자를 평가한,
거대한 국가 주도 레버리지 투자였습니다.
국가부도 같은 사태도 겪긴 했지만, 그 베팅은 여러 차례 성공했습니다.
올인 성향은 일상에서도 반복됩니다.
조선시대엔 투전은 엄청난 열기였고, 다음 해에 수확할 농작물까지 담보로 잡히며 몰두했다고도 하며
1930년대엔 일본에 경마장이 12개 있던 시절에 식민지였던 한반도엔 8개가 있었다고도 하죠.
현대의 한국인들은 낮에는 승진과 성과를 위해 몸을 갈아 넣으며 올인하고,
밤에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술집과 노래방에 올인했습니다.
평소에는 극단적으로 절약하다가도 부동산과 주식에는 대출까지 끌어 넣습니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보다 한 번의 계층 상승을 꿈꾸며 미수와 신용, 레버리지를 사용합니다.
한국 사회는 불만을 동력으로 삼아온 것도 같습니다.
남보다 뒤처졌다는 불안, 국가가 충분히 잘하지 못한다는 분노,
자식에게 더 나은 삶을 주어야 한다는 압박이 사람을 쉬지 못하게 합니다.
개인의 불행이 사회의 에너지가 되고, 사회의 발전이 다시 개인의 기준을 높입니다.
어제의 성공은 오늘의 최저선이 됩니다.
어렵게 대학에 가면 취업이 문제가 되고, 취업하면 집이 문제가 되며,
집을 사면 더 좋은 지역과 자녀교육이 문제가 됩니다.
국가는 성장하지만 국민은 언제나 위기 직전의 산성 안에 있는 것처럼 삽니다.
바깥에는 더 큰 나라와 더 빠른 경쟁자가 있고, 성 안의 식량은 곧 떨어질 것처럼 느껴집니다.
한국의 발전은 이 불안 덕분에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홍대선 작가는 이런 한국인은 계속 불행할 것이고,
이런 한국은 계속 발전할 것이라고 봅니다.
"나는 한국인이 행복하길 바란다.
그러나 앞으로도 한국인은 화가 많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성격이 그 모양인데 행복할 수가 없다.
반면 한국이 앞으로 어떤 위기에 처할지 알 수 없지만, 결국은 극복하고 회복할 것이다.
한국의 미래는 희망적이다.
현재 상태에 만족하기엔, 한국인은 성격이 너무 나쁘기 때문이다."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운 혹독한 4계절이 있다보니
(뚜렷한 4계절이 있어 아름다운 우리나라라고 학교에서 배웠던 기억이 있는데
전 국민 가스라이팅이라고 생각합니다.)
살기 위한 모 아니면 도 측면의 접근이 많은 것은 사실 입니다만...
현재의 레버리지 사태는 코스피를 올리기 위한 작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검토 기간이 극도로 짧았고 시장의 절반이상인 종목에 레버리지 거는 건 말도 안되죠
현재는 코스닥은 레버리지에 대한 거래 제약을 주고 미장 레버리지는 막힌것으로 압니다.
미장 레버리지는 왜 막은지는 이해가 되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