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면서>
안녕하세요.
최근 글을 쓰다보면 항상 주장이라는 것은 반대의견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절대적인 정답이 있는 이야기는 아니니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직장 상사의 이유없는 부당한 지시가 있습니다.
- 그리고 갈굼이 있습니다.
- 나름대로 납득해보려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안됩니다.
- 이 이 사람도 위에서 눌리고 있으니 그런 거겠지, 하고 사정을 만들어봅니다.
- 내가 놓친 맥락이 있나 싶어 지난 대화를 처음부터 다시 떠올려봅니다.
- 그런데 아무리 굴려봐도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 이유가 없는 일에는 이유를 붙일 수가 없더군요.
☐ 새로운 회사로 이직을 해도 상황은 똑같습니다.
- 새로운 회사의 상사도 확률적으로 똘아이가 배치됩니다.
- ‘아, 똘아이 총량의 법칙은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인가.’
☐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 두 번째니까 좀 덜 아플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 이번에도 똑같이 납득이 되지 않았고 똑같이 퇴근길이 무거워집니다.
다른 건 다 늘었는데, 이것만 안 늘었습니다
☐ 보통 경험치는 사람을 성장시킵니다.
- 처음엔 반나절 걸리던 일이 한 시간이면 끝나고
- 낯설던 상황도 두 번째부터는 대충 어떻게 흘러갈지 감이 옵니다.
- 실수를 같은 자리에서는 잘 안 하게 됩니다.
☐ 그런데 인간관계는 맷집이 늘지 않습니다.
- 어제 아팠는데 오늘도 아프고 손바닥처럼 굳은 살이 박히지 않습니다.
- 그냥 덤덤하게 넘어가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경험을 통해 한 해 한 해 쌓이다 보면 어떤 방식으로든 매집이 강해져 전문가가 될 수 있는데 단 하나의 분야에서만큼은 그러기 어렵습니다. 바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인간관계에 상처가 생기는 경우입니다.” “아무리 잘해줘도 당신곁에 남지 않는다”, “전미경”
왜 여기서만 경험이 무력할까
- 규칙이 매번 바뀌기 때문입니다
☐ 심리학자 로빈 호가스는 학습 환경을 두 종류로 나눴습니다.
- 규칙이 일정하고 피드백이 빠르고 정확한 환경, 그리고 규칙이 계속 바뀌고 피드백이 늦거나 왜곡되는 환경입니다.
- 앞쪽에서는 경험이 그대로 실력이 되지만 뒤쪽에서는 경험을 아무리 쌓아도 실력으로 잘 전환되지 않습니다.
☐ 인간관계는 명백히 뒤쪽입니다.
- 어제 통했던 대응이 이번 상사에게는 오히려 역효과가 납니다.
-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끝내 알려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 심지어 같은 사람도 어제와 오늘이 다릅니다.
- 바둑이나 운전은 반복하면 늘지만 사람은 매번 판이 바뀌는 게임입니다.
- 열 번을 겪어도 열한 번째는 처음입니다.
- 예측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 우리 몸은 반복되는 자극에 익숙해집니다.
- 그런데 스트레스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 언제 올지 알 수 있고 내가 멈출 수 있는 자극에는 적응이 일어나지만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자극에는 적응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오히려 더 예민해지기도 합니다.
☐ 부당한 지시와 갈금은 정확히 후자입니다.
-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고 제가 멈출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 그러니 몸이 익숙해질 방법이 없습니다.
- 참고로 사회적 고통이 신체적 고통과 일부 겹치는 뇌 영역을 쓴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 납득되지 않는 일은 정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이유가 있는 아픔은 어떻게든 서랍에 넣을 수 있습니다.
- 내가 준비를 덜 했다, 저 사람이 그날 급했다, 이렇게 이유가 있는 아픔은 어떻게든 서랍에 넣을 수 있습니다.
- 내가 준비를 덜 했다. 저 사람이 그날 급 급했다. 이렇게 이름표를 붙이면 일단 닫힙니다.
- 그런데 이유 없는 아픔은 이름표가 없습니다.
- 서랍에 못 넣으니 계속 책상에 나와 있고 그래서 반복해서 다시 읽게 됩니다.
- 납득되지 않는 일은 끝나지 않습니다.
- 그냥 계속 재생됩니다.
- 맷집이 안 붙는 게 아니라 애초에 상처가 아물 조건이 안 갖춰진 셈입니다.
그래서 늘어난 건 맷집이 아니라 기술이었습니다
☐ 정답은 아니겠지만, 저는 인간관계를 겪을 때마다 그걸 어떻게든 경험치로 치환해 보려고 애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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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된 책도 여러 번 찾아 읽었고, 읽은 걸 다음 상황에서 하나씩 실습해 봤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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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일을 시작하고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 남은 게 무엇이냐면 부당한 일과 상식을 벗어난 일 앞에서 예쁘게 말하는 방법을 터득했다는 것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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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면 정중하게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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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본 다음에 말을 고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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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제 의견은 빼놓지않고 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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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것도 아픈 경험이 쌓이고 쌓여야 겨우 몸에 붙는 기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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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건 참는 것과는 다릅니다.
-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그러나 제 의사는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한 방법에 가깝습니다.
필요하면 적습니다.
☐ 말로 안 되는 상황도 있습니다.
- 그럴 때는 적습니다.
- 그 일에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나란히 적어 봅니다.
- 적어 놓고 봤을 때 저에게 명백한 불이익이라고 판단되면 우선 그 사실을 분명히 인지합니다.
- 당장은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는 상황이라도 기록만큼은 계속 남겨 둡니다.
- 기록이 쌓이면 나중에 선택지가 생깁니다.
- 그때그때는 밀렸어도 마지막에는 제 의지대로 결정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감정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 여전히 아프고 여전히 납득이 안 되고 여전히 굳은살은 안 생깁니다.
- 물론 이게 회피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도 압니다.
- 다만 그 상황을 대하는 제 방식만큼은 조금씩 달라진 것 같습니다.
- 맷집은 늘지 않았지만 기술은 늘었습니다.
- 10년 넘게 일하고 얻은 건 그 정도입니다.
☐ 혹시 좋은 노하우가 있으시다면 댓글로 남겨주시면 저도 좋은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결론이 없는 질문을 던지시고 결론 역시 조금은 애매하여 아쉽긴 합니다.
포기, 회피라는 것으로 급하게 마무리 된것이 아닌가해서요.
글 작성자가 경험한 긍정적인 부분도 조금 공유해주시면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고견을 부탁 드립니다.
종종 나는 왜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이해가 안되는 (즉, 원인아나 이유가 파악이 안되는) 때가 있습니다. 나도 내가 이해가 안되는데, 다른 사람이 이해될리 만무합니다.
그러니 부당하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내가 파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데, 당장은 해결이 어렵다고 판단하는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관계를 생각하기 보다는 해야할 일을 생각하고 잘 해내는데 협력하거나 혹은 협력해 달라고 요청하는게 낫다고 봅니다. 다만, 사람에 대한 믿음과 친밀함을 절대 잃지 않도록 주의하구요.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니 사람에게 why를 물어 추궁하기 보다는 how, what을 물어 상황를 파악하는게 좋다는 글을 봤습니다. 왜 그랬어? 대신 무슨 일이 있었어? 어떻게 된거야? 라고 하라는 거죠. Why는 사람이 아닌 일이나 현상에 묻고요. 괜찮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저도 사람과 사회현상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생각하고 절대적인 정답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방법을 제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참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