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면서>
안녕하세요.
최근 책을 읽으면서 이것저것 정리해보면서 글을 써보고 있습니다.
글을 쓰다보니 항상 주장이라는 것은 반대의견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절대적인 정답이 있는 이야기는 아니니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책이 확산되면서, 좀스럽게 구는 스승들과 논쟁을 벌이는 대신 스스로 배울 수 있게 된 것이다.”
- “다른 의견”, “이언 레슬리”
☐ 고대 그리스 아고라를 떠올려보면, 지식은 책이 아니라 말로 오갔고
- 배움의 중심에는 논쟁이 있었습니다.
- 그런데 그 시대의 논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 순수하게 진리를 찾기 위한 대화였다기보다는
- 자신의 지적 능력을 드러내기 위한 과시의 성격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 광장에서 상대를 말로 굴복시키는 것은 곧 자신의 명성을 쌓는 일이었으니까요.
소크라테스는 왜 ‘오래’ 살아남았을까
☐ 이런 문화 속에서 평생 남의 의견에 질문을 던지며 살았던 사람이 소크라테스입니다.
☐ 시카고대학의 철학 교수이자 고대 그리스 전문가인 아그네스 칼라드 교수는 그의 최후에 대해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결국 아테네시는 소크라테스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 칼라드는 이 결과가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소크라테스가 그렇게 오래 살아남은 것이 놀랍다고 했다.”
- “다른 의견”, “이언 레슬리”
☐ 사형이 놀라운 게 아니라, 그때까지 살아있었던 게 놀랍다는 것입니다.
- 남의 신념을 공개적으로 무너뜨리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 칠십 년을 살았다는 건
- 그가 그만큼 상대의 마음을 살피는 데 능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 소크라테스는 질문을 던지면서도 상대의 불안을 달래고 감정을 다독이는 데 상당한 공을 들였고
- 그 덕분에 비교적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 뒤집어 말하면, 그런 노력 없이는 남의 의견에 반박하는 일 자체가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일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뇌는 의견에 대한 공격을 몸에 대한 공격처럼 받아들입니다
☐ 왜 의견 대립이 그렇게 위험했을까요?
☐ 사람은 흔히 ‘나’와 ‘내 의견’을 분리해서 생각하라고 조언합니다.
- 하지만 우리 뇌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습니다.
☐ 신경과학자 조나스 캐플런 연구팀이 2016년에 발표한 연구가 있습니다.
- 깊이 믿고 있는 신념이 반박당할 때 우리 뇌에서는
- 신체적 위협을 감지할 때 반응하는 영역이 함께 활성화됩니다.
- 내 의견에 대한 반론을, 뇌는 내 몸에 가해지는 위해와 유사한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입니다.
* 참고 : 의견 대립은 바람직한가?
인쇄술이 바꾼 것
☐ 이 오래된 문제를 흔들어 놓은 것이 인쇄술이었습니다.
☐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 인쇄술을 완성한 것은 1440년대 일이고
- 인쇄술은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서
- 1500년 무렵에는 수백만 부의 책이 유통되고 있었습니다.
☐ 책이 흔해지자 배움의 방식 자체가
- 스승에게 도제식으로 전수받는 대신
- 스스로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책은 사람과 의견을 분리해 주었습니다
☐ 책의 결정적인 힘은, 인류가 처음으로 손에 넣은
- ‘사람'과 ‘의견’을 분리하는 기술이었습니다.
☐ 책 속의 주장에 반발해도 저자는 내 앞에 없습니다.
- 내가 틀렸다는 걸 깨달아도 그 순간을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니 체면을 잃을 일도 없습니다.
- 뇌가 위협을 감지할 대상 자체가 사라진 것입니다.
☐ 그래서 우리는 책 앞에서만큼은 방어 태세를 풀고
- 밑줄을 긋고, 덮어두고, 며칠을 곱씹고, 다시 펼쳐서 생각을 고쳐먹을 수 있습니다.
☐ 논쟁이었다면 자존심 때문에 절대 인정하지 못했을 것을, 책 앞에서는 조용히 인정하게 됩니다.
☐ 지식이 폭발적으로 발전한 것은 인쇄술 이후입니다.
☐ 저는 그 이유가 단지 정보가 많아졌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위협받지 않고 틀릴 수 있는 공간, 감정의 방어막 없이 다른 의견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 어쩌면 독서란, 인류가 발명한 가장 안전한 형태의 논쟁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