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면서>
안녕하세요.
최근 책을 읽으면서 이것저것 정리해보면서 글을 써보고 있습니다.
글을 쓰다보니 항상 주장이라는 것은 반대의견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절대적인 정답이 있는 이야기는 아니니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학창시절을 떠올리면
- 교과서엔 형광펜이 형광펜이 빼곡했고, 중요한 문장마다 자를 대고 밑줄을 그었죠.
- 색깔별로 분류까지 해가며 책 한 권을 알록달록하게 만들면
- 어쩐지 그 내용을 다 내 것으로 만든 기분이 들었습니다.
□ 그렇게 익숙해진 내용으로 객관식 시험은 그럭저럭 봤습니다.
- 눈에 익은 보기를 골라내면 됐으니까요.
- 누가 “네 말로 한번 설명해봐”라고 시키는 일은 별로 없었죠.
- 빈틈은 시험지 위에 드러나지 않았고 그래서 저는 제가 안다고 믿었습니다.
- 밑줄과 형광펜이 만들어준 익숙함은 그 시험을 통과하기엔 충분했고
- 학교에서 요구한 것은 이해보다는 눈에 익었는지 여부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 “제텔카스텐”에서 “숀케 아렌스”는
- 같은 글을 반복해서 읽는 행위가 ‘안다’라는 착각을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 여러 번 본 문장은 눈에 익습니다. 익숙해집니다.
- 그리고 우리 뇌는 그 익숙함을 ‘이해했다’는 신호로 착각합니다.
- 밑줄과 형광펜도 결국 같은 일을 합니다.
□ 이건 지난 글에서 다뤘던 ‘교양 유튜브를 아무리 봐도 왜 지식이 되지 않는가’와 정확히 같은 이야기입니다.
- 읽는 것, 보는 것은 인지적으로 편안합니다.
- 익숙함을 주고 안심을 줍니다.
- 하지만 그 익숙함과 그것을 실제로 꺼내 쓰는 능력은 전혀 다른 물건입니다.
- 입력은 출력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 그러면 진짜로 ‘알기’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 여러책들이 공통적으로 권하는 방법은 단순합니다.
1) 테스트해보는 겁니다.
- 책을 덮고 방금 읽은 내용을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 여기서 막히는 지점이 바로 내가 모르는 부분입니다.
- 우리는 한번 틀려봐야 비로소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 됩니다.
2) 내 말로 정리해보는 겁니다.
- 읽은 문장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게 아니라
- 책을 덮은 채 내 문장으로 다시 써보는 겁니다.
- 이 과정에서 빈틈이 드러나고 그 빈틈을 메우려 다시 찾아보는 동안 비로소 지식이 됩니다.
□ 그러고 보면 조금 서늘해집니다.
- 우리가 그렇게 밤새워 외우고 그었던 것들이
- 지금 와서 진짜 지식으로 남은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이요.
- 어쩌면 우리는 공부를 한 게 아니라 객관식 시험을 통과하는 훈련을 했던 건지도 모릅니다.
- 물론 여기엔 충분한 반론이 가능합니다.
- 기초는 외우며 익히는 단계도 분명 필요하고
- 모든 것을 토론식으로만 배울 수는 없으니까요.
- 다만 스스로 정리하고, 질문하고, 누군가와 토론하는 과정을 조금 더 어릴 때부터 익혔다면
- 생각의 깊이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가벼운 아쉬움이 듭니다.
□ 다음은 베껴 쓴 문장은 끝내 내 것이 되지 않고
- 내가 스스로 정리한 것
- 다시 말해 내 언어로 번역되고 내가 이미 알던 것과 연결될 때
- 비로소 남는다고 하는데 왜 그런 것인지에 대해서 풀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