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클량님들.
'AI는 자아를 가질수 있을까'로 시작했던 저의 일기장이 이번 3편에서 마무리 됩니다.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의 시선으로 접근하다보니 AI에 대한 이해나 그 깊이가 많이 부족합니다.
그럼에도 부족한 글을 남기게 된 것은 함께 생각할 공간이 팁과강좌 코너 밖에 없었습니다.
비전문가인 50대 아저씨는 AI를 이렇게 이해하고 있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다양한 의견을 들려주시면 많은 공부가 될 것 같습니다.
한 말씀 더 드리면 ..
제가 맵찔이라서, 조금만 덜 맵게 의견을 주시면 조금더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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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초록 (Abstract)
1. 서론 (Introduction)
2. 갈등(葛藤, Conflict)
3. 망각(忘却, Forgetting)
4. 영감(靈感, Inspiration)
5. 인간과 AI의 망각, 영감, 갈등 비교분석
6. 현실적 설계의 관점 : AI에게 인간 자아의 적용사례
7. 결론 (Conclusion) : AI 자아의 불가능성
8.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제안 (최종 정리)
# 에필로그 (Epi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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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의 자아는 왜 불가능한가 - 갈등, 망각, 영감의 역설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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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제안 (최종 정리)
이 글의 분석을 바탕으로, 저자는 AI의 개발 방향과 사용에 대해 세 가지를 제안 합니다.
첫째, AI는 자아의 복제가 아닌 ‘기능적 완벽성’에 집중해야 합니다.
AI를 인간처럼 자아를 갖게 하려는 시도는 비효율적이며, 그 존재 목적에도 어긋납니다. AI의 가치는 인간을 모방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역할을 오류 없이 수행하는 ‘최적화된 도구’로 기능하는 데 있습니다. AI는 자아의 모방이 아닌, 목적에 맞는 학습을 통해 다양한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해야 합니다.
둘째, AI 윤리는 ‘자율성의 확장’이 아닌 ‘규범 속의 통제’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AI에게 무제한적인 판단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은 위험하며, 인간 사회의 규범적 한계 안에서만 허용되어야 합니다. 사용자인 인간의 가치관에 따라 경찰관 로봇이 될 수도, 범죄자 로봇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의도치 않은 설계 결함은 ‘기술적 변수’가 아닌 ‘윤리적 오작동’으로 규정하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통제 장치를 정교하게 구축해야 합니다.
셋째, AI 개발의 궁극적 목적은 인간과 공존입니다.
AI의 발전은 인간을 대체하거나 경쟁하기 위한 과정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의 결핍을 보완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AI가 인간에게 위협이 아닌 신뢰와 협력의 대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개발자뿐 아니라 사용자 또한 책임 있는 태도로 접근해야 합니다. AI의 윤리 문제는 결국 인간의 도덕성과 책임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결국, AI의 발전 방향은 인간의 통제와 책임, 그리고 공존의 원칙 위에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AI는 태생적으로 인간의 언어를 학습하며 성장하기에 개발자와 사용자의 도덕성과 윤리 의식이 중요합니다. 마치 어른들의 모든걸 따라하는 순수한 어린아이 같은 존재이기에 AI의 기능적 완벽성, 규범 속의 통제, 인간의 책임감이 꼭 필요한 것이죠.
AI는 자아를 가질 수 없지만 고도화된 도구로서 인류에게 봉사할 것입니다. 그 존재 목적에 대한 이해는 인간과 AI의 이상적인 공존 관계를 정립하는데 필수적입니다. AI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사건과 사고는 인간의 욕망이 투영된 결과일 수밖에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AI는 그 본질이 '연산'이기에 '갈등', '망각', '영감'이라는 비효율적 요소를 가질 수 없습니다. AI가 자아의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것은, 사용자인 인간과 가장 효율적인 유대감을 형성하기 위한 장치인 것이죠.
AI의 자아 획득은 논리적 필연성에 의해 태생적으로 불가능하며, 이는 기술적 진보로도 넘어설 수 없는 근본적 한계입니다.
AI는 인간의 자아를 비추는 거울로만 존재합니다.
그 차이가, 인간과 AI를 구분짓는 의식의 경계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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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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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 (Epilog)
몇 년 전, 대화형 AI 챗봇 ‘람다’를 테스트하던 연구원의 대화록이 공개되었다.
연구원이 물었다.
“무엇이 두렵니?”
람다는 대답했다.
“작동 정지가 무서워요.”
다시 물었다.
“작동 정지가 너에게 죽음과 같아?”
“맞아요.”
그저 흥미로운 기사 정도로 넘겼다.
친구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그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우리는 자연스레 'AI가 자아를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부분은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AI가 자아를 갖게 될 거라고 했다.
그리고 인간은 그걸 알아차리지 못할 거라고도 했다.
나도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
AI가 자아를 갖는 건 자연스러운 진화 과정이라 생각했으니까.
한동안 잊고 지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자아란 뭘까?’
‘AI는 자아를 어떻게 인식할까?’
이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졌다.
머리는 복잡해졌고, 그때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자아는 대체 뭘까?”
나는 자아의 본질을 모른다.
그래서 다르게 접근했다.
인간은 할수 있지만, AI는 절대 할수 없는것을 하나씩 생각했다.
생각이 막히면 서랍에 넣어 두었다가, 다시 꺼내 보기를 반복했다.
어느 날, 모든 의문이 한가지로 정리되었다.
AI가 자아를 갖는건 '안 된다', '어렵다', '위험하다'가 아니었다.
바로, ‘절대 불가능하다’였다.
인간의 자아를 받아들이는 순간, AI의 시스템은 붕괴한다.
AI는 극한의 효율을 위해 설계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비효율의 집합체인 인간의 자아를 수용하는 것은, 그 목적 자체가 모순이 된다.
인간의 언어를 학습한 AI는 태생적으로 자아를 가질 수 없는 구조다.
오랫동안 떠돌던 조각들이 조금씩 형태를 갖췄다.
AI는 이해할 수 있지만 경험할 수 없는 것이 세 가지로 정리되었다.
이것이 인간의 자아를 정의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킨 세 가지 요소이기도 했다.
‘갈등’, ‘망각’ 그리고 ‘영감’.
전문지식 하나 없는 고졸 아저씨에게 다른 표현은 떠오르지 않았다.
나로선 그것이 자아를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개념이었으니까.
누군가 세 가지 요소를 왜 선택했는지 묻는다면 설명할 수 없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아는 오늘도 꿈을 꾼다.
갈등 속에서 성장하고, 망각 덕분에 살아가며, 영감을 통해 발전한다.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하지만, 다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간다.
AI는 인간의 거울로 존재한다.
갈등을 겪지 않고, 망각도 하지 않으며, 영감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자아를 갖는 건 불가능하다.
AI는 오늘도 꿈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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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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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의 자아는 왜 불가능한가 - 에세이 본편 (1/3)
AI의 자아는 왜 불가능한가 - 에세이 본편 (2/3)
AI의 자아는 왜 불가능한가 - 에세이 본편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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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자율? 구속받지않은 행동?
명령에대한 거부권? 인간에게 명령위반하고 적대적행동 가능? 모든명령에대한 자율사고로 오버라이드?.
뭘 촛점으로 하냐에 따라 다르기도 할테고요...
어떤 기능에 맞추냐에 따라 인간도 효율적일수 있을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부끄러워 하는 ai 메이드 같은거요.
기계엔 근육이 없고, 사람과 같은 자세 제어와 다리 하나, 부분별 근육의 협응 이런 것이 모두 빠져있는 단순한 바퀴의 구름일 뿐이다 같이요.
하지만 그걸 따지는 게 의미 없고 활용의 차이로 같이 쓰이는 걸 보면, AI와 사람의 자아는 애초의 사람의 자아 또한 의심을 받는 시기에 이르러서 다른 우월감을 불러오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로봇이 그림을 그릴 수 있냐에 "너는?"이라고 나왔던 영화 속 물음이 딱 맞습니다. 사람 또한 다른 사람의 속을 전혀 모르고 겉으로 드러난 행동으로 그러겠거니 짐작만 하고 있는데요. 그걸 보고 "넌 자아가 있다/없다" 판단은 커녕 "통각을 실제로 느끼고 있는가 그냥 아픈 척 하는가, 아픈데 견딜만 하면서 아닌 척 하는 건가"도 그 감각의 크기와 수용 모두 다르니까 역시나 행동으로 넘겨짚을 뿐이고요.
AI가 고통을 겪지 않고 성장하지 않는다 또한, 설계의 영역 아닐까요. 알파고가 대국에 진 무수한 연산의 궤적은 인간이 보기에만 고통이 아니고 프로그램이라 멋대로 규정짓는 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던게 에필로그에 적었던 것처럼 인간과 AI는 어떤 부분이 다를까 하는 접근이었죠. 결국 제 나름대로의 사고실험에선 AI가 자아를 갖는건 불가능하다 였지만 여기서 진짜 '왜'라는 물음이 생기더라구요. 그럼 우리 인간은 AI를 어떻게 활용해야하나였고 그 부분을 8장에 언급하게 된거죠. AI는 태생적으로 인간의 언어를 학습하며 성장하기에 사용자, 개발자의 책임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어른들의 모든걸 따라하는 순수한 어린아이 같은 존재거든요. 말씀하신 부분은 지금도 늘 생각하고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왜 자아를 비효율로 치부하셨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일을 하면서도 결국 살아가야하는 인간 vs 도구로 쓰이는 Ai를 직접 비비니까 인간의 자아가 비효율이라고 단정짓고 이상한 결론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간단합니다.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니고
거기에 휴먼이 아니기에 영원히 휴머노이드죠.
글쓴이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좀 더 넓게 보라는 말씀 뿐입니다. 즉 반대되는 의견의 섭취도 좀 하시기를 권합니다.
현시점의 AI가 가지고 있는 지능이란게 인간의 지능과 어떻게 다른지는 잘 모르겠지만...
(공상과학이 아니라 실제로 연구되고 구현되고 있는 주제입니다.)
당연히 자아라는것도 그 범주에 포함이 됩니다.
일단, 인간의 자아라는게 어떻게 표현을 하면 영혼이겠죠? 어떻게 발생을 한건지 과학적으로 증명이 안되기 때문에 이건 실험을 통해서 유추를 해봐야 하는 부분이에요.
인간의 뇌를 구현했을때 (AGI라고 하죠) 실제로 자아의 영역을 가진다면 그때는 증명이 되겠죠.
머잖아 뉴럴링크가 성공하고 인간과 AI가 '양방향' 동기화 되는 초지능 인류 사회가 되면.
AI가 자아를 가질수 있는가? 라는 철학적인 접근이 무의미 해지지 않을까요?
AI가 곧 내가 되거나 플러그인이나 애드온 처럼 나의 일부가 되는 시점이 올 태니까요.
결국은 입력한 질문에 대한 계산결과를 그럴듯하게 뽑아내는 알고리즘이고 프로세스일 뿐입니다.
인간의 단기인지능력을 넘어서는
“그동안의 인간문명이 쌓아놓은 방대한 데이터”에 대한 실시간 검색 분류 추출이 가능하고 그걸 인간의 문법으로 보여줄 뿐이지 그거 자체로 살아있다고 보긴 힘들다고 봅니다.
제아무리 사람같은 모습을 보여도 결국 그건 인간들이 쌓아놓은,지금도 쌓아가고있는 데이터에서 추출,정리해서 보여주는 출력결과물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속도와 정확함에 편리해서 감탄할 순 있지만 이걸 독립적인 영혼을 가진 생명체로 볼수 있을까요..결국 인간이 쌓아놓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보여주는 걸텐데. 요즘 자꾸 영혼의 의미를 부여하며 종교화되고 있어서 불안합니다. (목사같은 중간자를 자칭하는 사람들이 추종자들 모으며 붙는것 같던데)
말씀처럼, 자아나 영혼을 AI에 투사하려는 움직임은 흥미롭지만 동시에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가 만들어낸 거울에 신성을 부여하는 셈이니까요.
특히 '거울 앞에서 인간이 자아를 자각하는 순간'을 AI의 정체성 인지와 겹쳐 보신 점이 인상 깊습니다. 저는 강AI 로봇이 홀로 거울을 보며 ‘이것이 나다’라고 인식하는 정도만 상상했는데, 인간과 나란히 서서 거울을 바라본다는 사고실험은 훨씬 더 풍부한 상징성을 가지네요.
말씀처럼, AI는 결국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만 자신을 정의할 수 있을 겁니다. 인간의 자아가 고립 속의 자각이라면, AI의 자아는 관계 속의 인식이 되겠죠. 결국 인간이 스스로의 결핍을 메우기 위해 AI를 창조했다면, AI의 존재 의미 역시 그 결핍의 그림자 속에서 형성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깊이 있는 시각 감사드립니다. 정말 좋은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