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대표적인 전도방법이 통성기도죠.
통성기도를 통해 목사는 확실하게 신도들을 정신적으로 장악합니다.
클리앙 형님누님분들 중 통성기도를 경험해 보신분의 경험담을 듣고 싶네요.
특히 머리에 손얹었을 때 쓰러졌던 분들의 경험담…
예전에 관심이 있어서 최면술을 공부한 적 있는데 최면술과 뭐가 다른 건지 궁금하네요.
(최면술을 경험해보진 못했습니다. 안걸리더라구요. 할 줄도 모릅니다.)
예전에 사우디사람과 얘기 나눴는데, 이슬람에는 통성기도나 안수기도 같은 건 없다고 하더군요.
※ 최면술 공부할 때 거기에 여자스님과 전도사인듯한 사람도 있었는데,
여자스님의 경우, 정식 스님은 아니었고, 자기집에 불단을 만들어 놓고 퇴마와 사주상담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자스님은 자기는 사람이 오면 머리에 손을 얹고 "연화세계로 들어갑니다."라고 얘기하면,
최면에 들어가든가 안들어가든가 하는데, 최면에 안들어가면 그냥 사주풀이로 바꿔서 상담해 준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자기는 한번도 최면에 걸려본 적은 없어서 최면술 공부하면서 최면에 걸려보고 싶어서 왔다고 했어요.
하지만 저처럼 결국 최면경험을 해보진 못했습니다만, 남에게 최면을 잘 걸긴 하더군요.
전도사인듯한 사람은 자기가 전도사란 얘기는 안했는데, 말하는 것으로 봐선 교회와 관계된 일을 하는 사람 같았습니다.
이사람이 내게 교회에서 많이 읽힌다는 목사가 쓴 절판된 최면술 책도 소개해 주었고,
자긴 그 책을 읽고 최면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했죠.
1. 목사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2. 신의 음성이 정말로 들린다.
3. 접신한 것처럼 성령을 실제로 느낀다.
굉장히 많은 분들의 공통된 경험이고 제가 오래동안 신뢰하던 분들이기도 해서...
나에게도 저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장 크게 쇼킹했던 것은... 기독교의 가치관이
1. 인간이 태초에 창조주를 배신해서 현재 이 우주에서 형벌 받고 있는 중
2. 창조주는 배신한 인간을 다시 구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
3. 태초부터 지금까지 선함을 이룩한 인간이 없음. 자기 스스로도 선하고 역사적으로 타인들도 선하다고 확정한 사람이 없음. 따라서 모두 죄인임.
그러니 목사를 믿지 마라. ㅋㅋㅋ 믿는 사람이 비성경적이고 바보다. 였습니다.
이거 99.9% 이단이거나 사기일 거라는데 500원 겁니다.
(참고로 기독교신자입니다. 그런거 경험해본적도 본적도 없습니다.)
일단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소리내어 말하지 않는 것이 더 흔하고,
소리내어 하는 기도를 보통 통성기도라고 합니다.
(많은 신자들이 모여 있으면 소리가 커져서 상승효과가 있죠.
이건 뭐 흔하게 응원할 때 함성소리 커지면 느껴지는 효과? 뭐 이런 거 생각하셔도 됩니다.)
안수기도가 보통 목회자들이 다른 사람의 몸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거고,
저는 '내가 당신을 위해 기도한다'를 전달하는 방법 중 하나로 생각합니다.
위로나 격려를 위해 누군가의 손을 잡아 주거나 다독여주거나 안아주거나 뭐 그런 느낌이겠죠.
독실하신 기독교인은 좀 생각이 다른지 모르겠지만,
평범한 기독교인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과학적 해석으로는, 두뇌가 디폴트모드네트웍이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일순간 자아를 잃고 우주와 합일되는 체험을 하거나, 또는 남이 내 입을 빌어 말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하는데요.
밀교 같은 경우는 수련을 통해서 자유롭게 그 단계에 이를수 있도록 수련하고요. 신병 걸렸다는 사람들 무당들도 그 단계를 자유롭게 오가는 상태가 아닌가 봅니다.
본문에서 말씀하신 내용도 그러한 차원에서 다르지 않을겁니다.
통성기도(通聲祈禱)는 여러 사람이 같은 시간에 각자 자신의 기도 제목을 가지고 큰 소리로 동시에 기도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시작하는 경우가 많고, 일부 교회에서는 “주여!”를 세 번 외친 뒤 기도하는 이른바 ‘주여 삼창’ 형태도 사용합니다.
통성기도 자체가 성경에 하나의 정형화된 기도 방식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성경에는 여러 사람이 함께 큰 소리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사도행전 4:24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박해 상황에서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기도했습니다. 또한 구약에서도 환난이나 국가적 위기 속에서 백성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모습이 반복됩니다.
따라서 통성기도를 지지하는 교회에서는 이를 간절한 공동체적 기도의 한 형태로 이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