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베트남 달랏 와인을 버리셨다는 분의 글을 보고 '마이너한 지역 중에서 덜 마이너한 지역'의 와인을 리뷰할까 합니다
게다가 국제품종인 피노누아로 만들었고, 같은 와이너리의 플래그쉽은 '신의 물방울'에도 나올 정도로 훌륭합니다
작년에 시음하면서 적은 테이스팅 노트 공유해드립니다

<푸카리, 피노누아 드 푸카리 / Purcari, Pinot noir de Purcari 2020>
- 색 : 꽤 진한 자줏빛인데 스템이 보임. 잔에 맺히는 와인의 눈물이 진득하지 않은걸 보니 익숙하게 먹던 레드보다 도수가 낮은 것 같은 느낌
- 향 : 터키 여행의 필수 쇼핑목록인 장미수가 떠오르는 맑고 깔끔한 장미향이 매력적
완전히 만개한 장미밭의 진한 향보다는 적당히 열린 한 송이 느낌
곧바로 이어지는 붉은 과일들 뉘앙스가 꽤나 강한데 향의 밸런스가 기가 막힘
딸기 농사 짓는 비닐 하우스에 들어가면 느껴지는 초록초록하면서 달콤한 딸기 향
그야말로 juicy & fruity의 정석
오크 터치가 적지 않게 느껴지는데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이고, 토스트의 뉘앙스도 허접하게 구운 저렴한 오크는 아닌 것 같음
프렌치 오크 비중이 꽤 될 것 같고, 오크 터치 강도로 봤을 때 뉴오크 비중도 낮지는 않은 듯
2시간 정도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즐겼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향의 밸런스가 더 좋음!!!
- 맛 : 혀 위에 올려두고, 굴려보는데 느낌표와 물음표가 머릿속에 반복적으로 떠오른다
몰도바라고?!?!?!?! 부르고뉴 아니고??!!?!?!
부르고뉴와 겨룰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요즘 가격이 저 세상으로 가고 동시에 맛도 보내버린 어줍잖은 부르고뉴 레지오날급 와인들보다 훨씬 좋은 수준
향에서 느껴지던 딸기 같은 붉은 과실의 상큼한 산도가 탄탄! 날카롭지 않고 유려한 느낌
탄닌의 구조감도 훌륭! 과하지 않게 둥글둥글한 질감이고, 그렇다고 파워가 약하지도 않음. 바람같은 느낌으로 이와 잇몸 사이에 들어왔다가 나가는 수준의 round한 질감의 탄닌으로 정리
어딘가 모르게 씁쓸한 느낌인데 2차 숙성 계열은 아닌 것 같으니 줄기도 같이 사용해서 만든 것 같음
입 안에 머금고 있을 때 보다 삼킨 이후의 피니쉬가 더 인상적
2시간 정도 지나도 산도가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힘을 더 발휘하는 펀치력
전체적인 밸런스도 매우 훌륭
- 총평 : 블라인드였다면 부르고뉴 꼬뜨드본 쪽에서 나온 빌라쥬급 또는 잘 만드는 생산자의 레지오날급 아닐까 라고 말했을 정도로 well-made 와인
* 푸카리의 플래그쉽인 ‘네그루 드 푸카리’는 2013년 러시아 빠박이 아저씨가 국빈 방문했을 때 공식 만찬 와인으로 제공했을 정도로 러시아에서 유명한 와이너리라고 합니다. ‘푸카리 와인’이라는 칭호도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가 내려줬고, 18세기에는 프랑스인들도 푸카리에 찾아와 수도원과 협력해 와인을 만들 정도였으며, 1990년산은 여왕 엘리자베스2세가 좋아해 자주 주문했다고 할 정도이니 포트폴리오는 믿어도 되는 수준입니다.
가격이 저 세상으로 가버린 부르고뉴 피노누아가 부담스럽다면, 훌륭한 대체재로 추천드립니다.
와인의 생산지, 토양, 기후, 품종, 생산 방식 등에 대한 전반적인 깊이나 이해없이, 그리고 아직 전통적인 와인 생산지의 대표적인 와인들을 많이 경험해보지 못 한 상태에서 곧바로 인도,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 지역 와인에 대한 시도는 정말정말 모험적인 선택일 수 있습니다.
당연히 그 중에서도 좋은 와인을 만나실 수 있겠지만, 안전하게 구대륙의 훌륭한 생산자의 훌륭한 와인을 먼저 충분하게 즐기신 이후에 비교해가며 마이너한 지역으로 도전해보시는걸 추천드립니다.
오늘 소개해드린 몰도바는 그래도 구대륙에서 좀 덜 마이너한 지역에 속하니 프랑스&이태리&스페인&독일&오스트리아 와인들을 충분히 경험하셨다면 슬슬 동유럽에 도전해볼만 하다고 봅니다.
가끔 마이너한 지역 와인들 중에서 추천드릴만한 것들 좀 소개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