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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본당

Free Talk
서사는 소스다 (Narrative is the Sauce)

Oros
225
2026-07-02 13:43:56 58.♡.152.39

서사가 메인 요리가 아니라 오히려 소스의 역할을 하는 영화들이 있다.


서사는 감독이 의도하는 목표까지 관객이 도달하게 하기 위해 필요한 윤활제 정도로 기능할 때가 있는 것이다.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편견에서 벗어나서 사람을, 사회를, 현상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하기 위해서


편견에 사로잡히지 말아라! 라고 외친들 관심을 가질 사람은 없다.


되려 인간은 일반적으로 저항감을 갖는다.


자신이 틀렸을 수도 있는 기분 나쁜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거부 반응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심지어는 그것은 의식 뿐만 아니라 무의식에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영역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거부 반응이 생기지 않는 종류의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은 서사와 순간의 감각에만 집중하면 된다.


당장 재밌고, 당장 야하고, 당장의 스릴을 얼마나 더 진하게 느끼게 하느냐 자체가 그들의 목표인 것이다.


목표의 종류에 위계는 없다.


1차원적인 목표라고 해서 더 열등하고, 복잡한 층위의 작업물이라고 꼭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방향이 다르고 그에 따라 몇 가지의 차이점이 생길 뿐이다.


자신이 일생 동안 정답이라 생각한 가치를 전복하는 경험을 만드는 작업물은 그렇기 때문에 서사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작업은 가치 평가를 떠나서 ,적어도 나에게는 제작의 난이도가 훨씬 어렵게 느껴졌다.


처음부터 방어태세를 단단히 하는 사람을 두고 자신의 의도대로 목표하는 바를 관철시키기란 당연히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체리의 향기, 모던 타임즈, 이키루 그리고 내 작품까지 모두 그런 방향에 놓여있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볼 때도 서사 자체보다 서사가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 먼저 보게 된다.


사람들은 주인공이 왜 죽으려 하는지, 왜 웃는지, 왜 슬퍼하는지 묻는다.


나는 감독이 왜 그런 구조를, 왜 그런 형식을 선택했는지를 먼저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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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의 향기는 마지막 장면에서 기믹같은 얄팍한 수로 관객에게 메세지를 던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영화에서의 서사는 인간이 어떤 사안을,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을 고정시켜둔다.

관객은 사안을 한 가지 잣대로만 바라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심지어 마지막 그 장면이 나온 이후까지도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 영화는 마지막 반전을 노리는 류의 영화가 아니다.

애초부터 감독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두 개의 층으로 분리된 구조를 설계한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인간이 한가지 잣대로 바라본 사안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방식은 제법 투박하다 생각한다.

영화는 너무 좋긴 했으나 투박함도 분명하달까.

물론 의도한 투박함인 것도 알겠지만 말이다.

투박함이 안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세련되지 않은 투박함만의 강한 힘은 종류가 다른 그만의 성질이 분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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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타임즈는 또 어떠한가.

유머라는 가장 큰 껍데기를 갖고 서사를 풀어나간다.

서사는 극도로 단순하다.

유머 또한 단순하다.

단순하고 가볍기 때문에 그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무거운 주제에 대해, 보기 싫은 현실에 대해, 거부감을 느낄 지점에 대해

관객이 좀 더 열린 자세를 갖추게끔 할 수 있는 것이다.

모던 타임즈는 영화 서사 속에만 푹 빠지게 하는 영화가 아니다.

연극 같기도 하고 감독이 이 구간에선 뭘 노리고 만들었는지 어떤 태도인지와 같은 메타성이 두드러진다.

바로 그런 메타성이 전면에 드러날수록 투박하다고 느낄 수 있고, 메타성이 조금도 드러나지 않은 채 이야기 속, 상황 속, 인물의 감정 속으로

깊이 빠지게 할수록 세련되게 만들었다고들 흔히 느낀다.

핵심은 메타성을 의도하고 했는지, 그 의도가 얼마나 목표를 실현시키는데 효과적으로 도움이 되었는지에 따라

투박함에 무엇보다 강력한 힘이 실리기도 하고, 하잘 것 없는 아마추어 같은 느낌, 예술병 걸린 느낌을 주기도 한다.

모던 타임즈를 보고 있으면 한 편의 우화를 보는 느낌을 받는다.

결코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는다.

그 어떤 서사 속에서도 웃음이란 포장지가 덮여져있다.

그 웃음이 한 두번 반복될 땐 유머에 그치지만 유머 사이의 보기 싫은 진실을 마주하면서 끝까지 웃음으로 포장할 때쯤엔

어느새 그 어떤 슬픈 영화보다 더 진한 슬픈 감정 이입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런 태도는 보기 싫은 진실, 경계하던 이면 따위를 한번 쯤은 다시 보게 하는 동력을 만든다.

즉 애초부터 1차원적인 웃긴 감정 혹은 슬픈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무성 영화는 음성의 부재가 오히려 감독의 의도를 강화하게 만든다.

배우가 말할 때 음성이 들리지 않기 때문에 관객은 수동적으로 관람할 수가 없다.

주도적인 자세를 취하며 영화에서 나오는 장면을 관찰하고, 판단해야지만 상황을 판단하고,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 사소한 자세의 차이는 영화를 감상하고, 본질과 이면을 마주하냐 못하냐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불편함, 부재라는 것이 상황에 따라 얼마나 뛰어난 가치를 느낄 수 있는지 관객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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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아키라의 Ikiru(한국어 제목 '살다')는 앞선 영화들을 아득히 뛰어 넘을 정도의 작품이다.

물론 나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말하는 것이다.

취향을 훌쩍 뛰어 넘으며 이보다 뛰어난 영화가 있었나 싶은 생각이 바로 들 정도이다.

영화 역사를 통틀어 탑5 안에 들어가야 할 감독이라 자신한다.

탑5라는 것도 우열을 가릴 수 없다는 측면에서의 탑5라고 말한 것일 뿐 1등이 되지 못해서 저렇게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극도로 높은 수준에선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감독이 애초에 3개의 큰 구조를 설정했다고 느꼈다.

문학, 연극, 영화까지.

이 커다란 3개의 구조는 영화 속에서 어우러지기도 하고 문득 문득 어떤 요소들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저 대중 영화와 다름을 느끼기 위한 형식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구조는 명확히 감독이 목표하는 바를 더욱 충실히 잘 실현시켜주기 때문에 정합성과 완성도는 압도적으로 살아난다.

내가 본 영화 중에 이런 영화는 없었다.

영화 속에 연극적인 요소가 있는 영화는 많다. 

책을 읽는 듯한 영화도 많지는 않지만 제법 있다.
 
그러나 이 3가지 구조가 동시에 존재하며 이렇게 조화롭고,

무엇보다 감독이 근본적으로 목표를 두고 있는 바를 잘 실현시켜 주는 형식으로 잘 작동하는 영화는 단연코 본 적이 없다.

이런 3중 구조 덕분에 영화를 본 지 고작 30-40분이 지날 무렵, 관객은 정말 다채로운 경험을 했다고 느끼게 된다.

이 영화 역시 서사만 놓고 보면 무척 단순하다.

그러나 구조 덕분에 관객은 인물을, 사안을, 사회를 평면적으로 보지 않게 된다.

설령 의식하지 못할지라도 무의식에선 작동한다.

각 구조의 완성도는 말할 것도 없다.

어두운 화면, 4:3 비율, 선명하지 않게 표현하는 등의 연출은 마치 문학 작품을 책으로 읽으며 머릿 속에 그려진 모습이 그대로 스크린에 뿌려지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문학이란 분야의 장점은 상상에 있다.

바로 그 지점을 저러한 연출을 통한 영상으로 표현함으로써 관객이 표면을 넘은 영역까지 사고하게 만든다.

이 영화 역시 감독의 메타성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영화 역사에 손꼽힐 감독이 세련되게 만들 실력이 없어서 그렇게 티나게 만들었을리 만무하다.

서사에 빠지게 하다가 불현듯 연극적인 장면이 튀어나오고 그 순간에 관객은 이질감을 느끼고 현실 속 영화를 보는 자신의 상황을 인지한다.

서사에 빠지게 하다가 불현듯 편집했어야 할 것 같은 장면들도 많다. 연기자들이 멈춰있다가 이어서 연기를 이어가는 모습의 과정까지 짧지만 드러난다.

그럴 때마다 관객은 서사 밖으로 강제로 꺼내어진다.

그리고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파악하려 노력하게 되고, 이유를 찾게 되며, 수동적인 인식에서 능동적인 뇌의 개입을 자연스럽게 만든다.

동정의 대상, 고독의 투사가 이루어지던 관객들은 그 이질감, 간극에서 다른 방식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이 글의 초반부에 썼던 대로 "편견을 갖지 말고, 입체적으로 좀 생각해!" 라는 말로 해선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서사는 소스이자 윤활유다.'

라고 말했듯 감독은 용기와 실력이 없으면 선택하기 힘든 서사를 택한다.

주인공의 죽음만을 초조하게 따라가던 관객은 갑작스런 그 결과를 목도하게 된다.

영화가 끝나기 한참 전이다.

그리고 감독은 메멘토의 그것처럼 과거를 다양한 시간, 상황에서 조명하며 단순한 서사를 마지막까지 다층적으로 해석하게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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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업은 이들이 추구하는 그 방향과 맞닿아있다.

그 작업 결과물에 대한 평가야 사람마다, 시대마다, 문화마다 다 다를 수 있겠지만,

내가 만드는 작업들 또한 서사를 통해 단순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고, 단편적인 이미지 하나로 감탄을 자아내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당장 보자마자 감탄이 튀어나오지 않게 덜어내기 위해, 이를 경계하느라 무척이나 노력하였다.

요즘 시대의 대중은 즉각적인 정보를 소비하기를 선호하고, 세계를 지배하는 플랫폼도 그런 것이 살아남는 구조를 갖고 있다.

난 그와 정반대의 길을 걸어간다.

동시에 내 작업물은 예술이라 부를만한 형식, 장르에 깔끔히 분류되지도 않는다.

그런 틀을 깨고, 규정되지 않는 간극에 위치하는 것 자체가 내 작업의 핵심 목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Oros 작업의 특징은 하나의 문제의식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일관되게 풀어낸 것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내 작업을 본 사람들의 몇 개의 댓글이 기억난다.

내 사진을 보고 다케시의 하나비가 떠오른다고 하고,

실제와 허구의 구분, 소설과 에세이의 구분을 묻기도 하고,

설명하기 힘든 감상자 본인이 어떤 간극 속에 있는 듯한 이상한 느낌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서사 속 성적인 대화를 지적하며 성적인 내용으로 글을 쓰는 저질스러움을 지적하기도 한다.

작가인 나를 조현병이라며 조롱하기도 한다.

이 모든 반응은 일반적인 작품에서 느껴지는 감상과는 어딘가 그 결이 다르다.

재밌다. 멋있다. 화려하다거나

재미없고, 글을 못쓰고, 사진을 못직는다거나

그런 식의 반응은 거의 없다.

이는 무척 흥미로운 지점이며, 적어도 내가 의도한 방향과는 크게 어긋나지 않아 보인다.

영화 이키루 속 주인공은 죽기 전 생애 첫 의미있는 자발적인 과제를 수행한다.

평생을 죽어 있던 그는 죽기 전 그 어느 때보다 살아있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장면이 낯설지 않았다.

나 역시 삶이 가장 무너진 시기에 가장 많은 작업을 남겼기 때문이다.

영화 속 주인공은 공원을 남겼고,

나는 사진과 글과 영상을 남겼다.

그것들의 가치와는 별개로,

지금의 나는 어느 때보다 살아 있다는 감각을 느낀다.

영화 속 주인공의 커다란 눈망울과 그의 웅얼거리던 노래가 맴돈다.

 








 


 *출처는 아래 signature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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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를 다양한 매체로 풀어내는 작업을 합니다.

외계인을 향한 마지막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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