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서취'라는 중국 영화가 있어요. 이게 옛날부터 영화 좋아하시는 분들은 다 아는 유명한 영화인데, 내용이나 평가가 유명해서가 아니라, 이 영화의 제작비화가 재밌어서 유명한 영화입니다. 8090을 풍미했던 홍콩의 왕가위 라는 감독이 당시 홍콩의 유명배우들을 모아 무협예술영화 <동사서독>을 찍기 시작했는데, 완벽을 기하는 성격 덕에 촬영이 지연되고 늦어졌대요.
제작비는 날이 갈수록 부족해지고 게다가 배경이 또 사막이라 열악한 환경에서 촬영시간이 점점 길어져서 배우들의 불만도 극에 달하던 때에, 마침 왕가위 감독의 친구이자 제작자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가벼운 설날용 코미디 영화를 하나 찍자, 배우들도 달래고, 우리도 제작비 충당해 영화 마무리하자"
각본 제작부터 촬영하고 편집해서 개봉하는데 단 3개월도 안 걸린 '동성서취' 라는 영화는 난잡한 수준의 설정과 스토리, 유치한 코미디와 결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명 배우들이 출연하고 액션씬은 딱히 나쁘지 않아서 설날특수로 꽤 흥행에 성공합니다. 덕분에 제작비를 충당하고 배우들의 신임도 얻은 왕가위 감독은 <동사서독>이라는 걸작 영화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네요.
설명이 길었습니다. <황야>는 딱 '동성서취' 의 마이너 버전이라고 저는 평가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작년에 개봉한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같은 제작사가 제작한 영화인데, 무슨 사정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제작사가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세트가 너무 아까웠나봐요. '황궁아파트' 라는 이름만 안 나오지 거의 모든 공간세트와 배경이 같은 (것처럼 보이거나 실제 동일한) 곳 입니다. 아니면 제작비가 부족해서 마치 <동사서독>과 '동성서취'의 관계처럼 넷플릭스에 먼저 팔아서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비용을 충당했을지도 모르죠. 다만 같은 배우들이 출연하지 않고 코미디 영화가 아니라는 것은 차이겠네요.
아까는 이러더니 이제는 왜 이러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성격의 등장인물들은 이야기의 개연성 같은 건 애저녁에 내다버립니다. 몇몇 배우는 각본이나 연출의 문제 때문인지 연기력이 형편 없어요. 그리고 마동석 배우의 출연작이 대부분이 그렇긴 했지만, 이 영화는 유독 "<범죄도시>의 마석도가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떨어졌다면?" 에서 크게 달라지지도 않습니다. 액션이나 코미디가 발생되는 부분도 거의 똑같, 아니 마이너 버전입니다. 심지어 웃기지도 않아요. 이미 <범죄도시>에서 봤던 거라서. 아! 하나 웃긴게 있긴 합니다. 거의 모든 동서양의 경찰 액션영화가 옛날 헐리우드 서부극 보안관영화에 뿌리를 두고 있거든요. 그래서 서부영화 같은 음악이 나왔던 건가 아니면 제목이 <황야>라서 <황야의 무법자>라는 걸작 서부극 영화가 생각이 났나... 그건 피식 하게 되네요.
<황야> 는 제목으로서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영화입니다. 영화보고 이렇게 마음이 안 좋은 의미로 황량해진게 참 오랜만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