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참 어렵습니다. 이제 2년을 조금 넘겼고, 애초 운동에 관심도 재능도 없었지만 뒤늦게 시작한 이 공놀이에 매일 기분이 오락가락 합니다. 잘 안 되는 경우가 훨씬 많긴 하지만 잘 맞은 기억 하나에 채를 내려놓지 못하기도 하고, 고스란히 드러나는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도 큽니다.
오픈 같은 큰 이벤트가 딱 그런 스스로를 잘 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해 클량 오픈은 신청을 못했고 올해가 처음입니다. 대신 지난해에는 조금 서먹서먹했던 인천방에서 인천 오픈을 해서 진짜 숨막히는 18홀 동안 122개를 치고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못 친다 못 친다 하지만 긴장에 티샷이 그대로 다 죽었고, 다른 것도 시원찮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서먹함에 제대로 치지도 못하니 숨이 턱턱 막힙니다. ‘왜 그렇게 손을 떠냐’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결국 전체 꼴찌를 하고 영광의 홍삼과 거리측정기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노린 거 아닙니다. ㅋㅋ)
그리고 참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후로 뻔뻔하게 인천방을 계속 기웃거리면서 스크린이든 필드든 개공을 마구마구 쳐버립니다. ‘공은 몰라도 멘탈은 어떻게든 해주겠다’는 형님들 사이에서 부산스럽게 공치는 실력이 꽤 늘었습니다. (공 치는 실력은 안 늘고...)
오픈은 개인적으로 큰 기대였지요. 작년 꼴찌를 벗어난다는 것도 있고, 더 큰 자리에서 잘 모르는 분들과도 호흡을 맞춰서 앞 뒤 팀 폐 안 끼치고 호흡 맞춰서 재밌게 치는 걸 해보고 싶었고, 늘 생각이지만 집중해서 좋은 스코어를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습니다. 레슨도 열심히 받고 연습도 부지런히 하긴 했는데 당일 아침에 솔라고에 도착하니 손이 벌벌 떨립니다.
미리 단톡방에서 인사만 나누었던 31조 분들과 실제로 뵈니까 더 긴장이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막 외로운 느낌까지는 아닌데 잘 할 수 있을지, 마음의 부담이 슬슬 오는 게 느껴집니다. 인천방이 제 주변에 골프 제일 잘 치는 사람들이었는데 뭔가 여기는 또 다른 고수들이 모이는 전국대회 같은 느낌이니다. 쌤이 얘기해 준 샷 3번에 올리고 2번 퍼팅에 끝내는 걸 기본으로 생각하자는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잘은 못 쳐도 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 참가할 수도 있을 만큼 골프를 열심히 하긴 했구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날씨도 너무 좋았고 바람도 없이 모든 조건이 너무 좋았습니다. 조원분들도 너무 잘 치십니다. 매 샷을 다 힘 안 들이고 편하게 치시는 페럼님, 흔들리지 않고 단단한 스윙이 멋지셨던 뻐디헌터님, 그리고 물 흐르듯이 매끄럽게 치시는 레지나님 사이에서 마음도 편했습니다.
라고 아웃 코스 첫 출발입니다. 첫 티샷도 나름 잘 들어갑니다. 아.. 안 죽었다는 뜻입니다. ㅎㅎ 실수가 좀 있었지만 첫홀이니 나아지겠지 싶었고, 집중해서 치려고도 했습니다. 근데 이게 또 스스로 무너집니다. 좀 바보 같지만 그냥 휘두르면 되는데, 뭔가를 자꾸 생각하고 만들어서 치려는 게 또 느껴집니다. 떨쳐내려고 해도 잘 안 되네요..
결국 트리플이 한번 나오면서 걷잡을 수 없이 계속 딸려갑니다. 티샷이 안 됩니다. ㅠㅠ 홀이 넘어가는데 정신이 안 따라옵니다.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뭘 빼먹었지? 뭘 잘못한 거지? 하는 생각과 조원분들 눈치를 겁나게 보기 시작합니다. 뭔가 라운딩이 즐거웠어야 하는데 카트에 제 걱정만 가득차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너무 죄송합니다.
그래도 계속된 응원과 빨라지는 리듬에 대해서 해주시는 말씀들 사이에서 조금씩 흐름을 찾을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긴장하고 고민할 시간에 사진을 좀 남겨보자 해서 카메라도 들고 뛰어다니다 보니 조금 힘이 빠졌고, 13홀 파5에 첫 파를 했습니다. 제 첫 파에 모든 분들이 너무 기뻐해주셔서 그때서야 몸이 좀 풀리는 느낌입니다. 이렇게 치면서 아까 왜 그랬냐고 하시는데 제 말이 그 말입니다. -_-ㅋ
어깨가, 몸이 안 돌고 있었고 손으로 공만 맞추려는 못된 습관이 계속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파3도 한번에 잘 올리고, 마지막 6홀 동안 파2개에 5오버로 집중해서 마무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다독여주시고 응원해주신 조원분들께 너무 감사합니다.
105개 스코어도, 전반의 엉망진창도 아쉽긴 합니다. 골프장에서 좋은 기억만 가져가라고들 많이 이야기를 하시는데 뭔가를 극복해낸 느낌이 컸습니다. 주변분들께 폐를 끼치긴 했지만 너그럽게 도와주시고 이끌어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점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후반 스코어, 또 그 진행들에 대한 기억들도 좋았습니다. (심리적인 부분을 조금만 극복해내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인데 이틀 뒤에 102개 친 건 안비밀.. 저주 받은 백돌이 ㅠㅠ)
골프가 다 그런 건지, 아니면 늘 좋은 분들과만 쳐서 그런 건지 이런 기분이 좋습니다. 지난해 인천 오픈도 극복해서 이후로 조금이나마 스스로 발전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또 144명이 모인 클량 오픈은 또 다른 느낌이었고, 또 뭉클하게 하는 뭔가가 있네요. 내년에 또 만나자는 인사가 또 기대가 됩니다. 내년에는 저도 조금 더 발전해 있겠죠. 이만큼이라도 칠 수 있게 된 점, 이렇게 골프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점들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쉬이 상상도 못할 이런 큰 자리를 마련해주신 해장님과 옆에서 슬쩍 봐도 고생이 많으셨던 운영진 분들, 그리고 그 안에서 운명처럼 만난 31조 페럼님, 뻐디헌터님, 레지나님 넘넘 감사했습니다. 내년에 최고 날씨 좋은 날 우리 또 만나요!
그날의 기억이 다시 생생하게 떠오르네요.
오픈이라 그런지 뭔가 더 다른 느낌이었고 저도 정신없이 지나간것 같네요.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조원 분들과 즐길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계속 좋은 날들이 있고 또 뵐수 있을거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