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왜 계속 치게 되는걸까요?
골프는 다른 스포츠와 좀 다릅니다. 아니 많이 다릅니다.
골프는 이상합니다.
상대를 제압하는 쾌감도 없고 팀 게임도 아니며 행위에 대한 피드백이 바로 결과로 나와 쾌감을 주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느낄 수도 없고 행운에 따른 결과값이 크지도 않습니다.
플레이 도중 신체적 고통을 극복하며 화이팅 해도 결과가 좋아지지 않고,
도전적 플레이를 성공해도 결과는 적고 , 실패에 따른 피해는 너무 큽니다.
지난 20년간 직업이 게임 디자인이었는데도 어떤 메커니즘으로 이 만큼의 동기부여를 주는지 납득이 안됩니다.
이것이 제가 트로피를 만들 게 된 이유 중 하나 이기도 합니다.
일년에 한번이라도, 보잘것 없는 트로피로라도... 그동안의 신체적 시간적 금전적 고행에 대해 자신에게 뿌듯함을 느낄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해서요.
그래서 만드는 과정이 참으로 좋았습니다. 의욕이 너무 넘쳐서 완성도가 낮아질 정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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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욕적으로 준비한 트로피를 들고, 현장 각인해드릴 레이저 각인기를 챙기고, 골프장비와 간식까지 꼼꼼히 챙겨 설래는 마음으로 골프장으로 출발했습니다.
'온갖 조롱을 담아 만든 인헨시불 트로피를 내가 받으면 죽고싶겠지.. ' 이런 생각을 하며 며칠전에 몰래 갔던 솔라고 연습라운드를 복기하고 있는데...... 차가 이상합니다. 골프만큼은 아니지만
엔진이 꺼졌네요. 운 좋게 근처 졸음쉼터 입구까진 런으로 어케어케 가서 차를 대고..
보험 긴급출동에 연락하고 운영진 분들에게 연락해서 트로피만이라도 픽업 해 달라고 요청하고.. 이런 상황에도 침착한 스스로를 칭찬했죠.
긴급출동으로 기름을 넣어 주셨는데 밑으로 콸콸콸 새네요. 어쩐지 기름이 빨리 닳더라니 길에 말 그대로 뿌리고 다녔네요
차는 견인으로 보내고 견인차가 내려준 장소에서 택시를 불러 보지만 아뿔사.. 내가 사람을 너무 믿었구나..
...골프화 신고 고속도로를 걸었습니다... 그나마 골프백은 운영진 차에 실어주셔서 너무 다행이지 뭐에요..
고속도로를 벗어나니 택시는 잡혔고 도착하니 참 반가운 분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라운드는 시작됐죠
(어쩐지 익숙한) 고수의 아우라를 뿜어내시던 올드로드님과
백팔번뇌샷을 날리시며 필드를 호령하시던 재이니즘님과..
재인님 얼굴이 잘렸다구요.... 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편한한 매너로 편한하게 해 주셨던 수줍은놈님...(놈님...) 줄여서 수놈님이라고 하겠습니다.
연습한 보람이 느껴지는 전반과 멘붕의 후반을 지나고 라운드는 눈 깜짝할 새에 끝나버렸습니다.
어쨌든 꼴찌는 면했으니 성공이라 생각하며 시상식까지 마치고 감사하게도 분당방 버스에서 불쌍히 여겨 주셔서 버스를 얻어타고 감자탕까지 맛있게 먹고...
인사용으로 준비한 볼마커는 나눠 드리다 보니 이쯤에서 오링....
그렇게 버스안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죽은건 아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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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 )한 하루였구나... ' 생각이 듭니다.
신기하게 저 생각이 강하게 드는데 괄호안에 단어는 생각이 안납니다.
뭘까 하면서 오늘 하루를 돌아봤습니다.
좋더라구요
설래는 마음으로 일어났던 아침도 좋고
멈춘 차를 보시며 한마디 해주신 지나가던 어르신도 좋고
바로 달려와 도와주신 운영진 제혁님도 좋고
차는 괜찮냐며, 고생하셨다며 인사 해 주시는 여러 분들의 미소 띈 얼굴도 좋고
가끔 날리는 오잘공의 느낌도 좋고
호수에 자맥질하던 기러기도 좋고
재이니즘님의 목탁소리도 좋고
트로피가 이쁘다는 한마디도 좋고
받으시고 기뻐하시는 얼굴은 더 좋고
아.
골프가 이래서 계속 치게 되는 거구나
재미를 찾으니 답이 안 나왔던 거였구나
골프는 재미가 아니라 행복을 주는 스포츠였구나..
제겐 참 뜻깊은 깨달음이었어요. 행복이 뭔지 아직도 모르거든요. 한 조각을 알게 된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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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장문 여기까지 읽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버스안 현자타임에 생각해 뒀던 글을 이제사 적었더니...
... 부끄럽네요. 다시 읽지 않고 그대로 올리겠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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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진분들의 배려로 클량 오픈 공식 굿즈를 만들어 팔수 있는 라이센스(?)를 획득했습니다.
이번 오픈에 이모저모 출혈이 너무 커서;; 이걸로 트로피 재료값이라도 벌어 볼까봐요..
판매글은 준비되면 따로 올리겠습니다. ^^;;
초월한 표정이시네요
고생하셧네요 ㅎㅎ
볼 마커 잘쓰고 있습니다~
깜짝 놀랐음.
왼쪽으로 터지던 공이 어느날부터 오른쪽으로 터지면서 잘터지는 드라이버 샷을 보여드리다보니 해탈하게 된 것 같습니다 ㅎㅎㅎ
같이 가신 올드로드님은 역시 안정적인 드라이버로 모든분의 귀감이 되어주셨고(숏펏이 아쉬웠네요 ㅠㅠㅠㅠ)
수줍님은 닉네임은 수줍으셨지만 샷은 안수줍으셨었지요 ㅎㅎㅎ
무무리안님이야 시원시원한 스윙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ㅎㅎ
저야 뭐.... 아이언은 나쁘지 않았어도 드라이버가 다터져서 ㅠㅠㅠㅠ 공을 몇개나 잃어버렸는지 모르겠네요 ㅎㅎㅎㅎ
요근랴 연습도 잘 못해서 걱정이 많았는데 그런 걱정을 날릴 수 있을 만큼 좋은분들과 함께여서 감사했었습니다. 내년에도 아니, 빠른 시일내에 또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건강하고 건승하시길
멋진 작품 잘 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