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코페아 에티오피아 / Coffea ethiopia
모든 현생 인류의 고향이 아프리카인 것처럼, 커피의 고향 역시 아프리카입니다.
특히 커피 애호가들이 선호하는 아라비카 커피의 원산지는 에티오피아입니다.
‘아라비카’라는 이름은 학명인 코페아 아라비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식물의 학명은 대체로 원산지를 반영해 붙여지기에, 사실 이 커피는 코페아 아프리카나 혹은 코페아 에티오피아라고 불렸어야 더 타당했을지도 모릅니다.
1753년,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폰 린네는 이 커피에 코페아 아라비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는 인류의 학명 ‘호모 사피엔스’를 명명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당시 린네는 커피의 진짜 고향이 에티오피아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커피가 아라비아 반도 남부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라비카 커피는 에티오피아 숲에서 태어났고, 이곳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커피를 즐겨왔습니다.
15세기 무렵, 커피와 그 문화는 중동으로 확산되며 이슬람 세계에 빠르게 자리 잡았습니다.
수요는 급증했지만 에티오피아에서의 생산량만으로는 이를 충당할 수 없었습니다.
16세기 중반, 예멘을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은 에티오피아 토종 커피를 예멘으로 들여와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야생 커피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순화되어 농작물이 되었습니다.
예멘에서 생산된 커피는 항구 도시 모카를 통해 유럽으로 수출되었고, 유럽인들은 이를 ‘모카커피’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결국 린네가 명명한 코페아 아라비카는 에티오피아가 아닌 예멘에서 재배된 커피를 가리킨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커피의 원산지는 아라비아 반도 남부로 잘못 알려졌고, 진정한 고향인 에티오피아는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가려져 있었습니다.
2. 근대커피산업 / modern coffee industry
커피의 역사는 여느 농작물과 다릅니다.
에티오피아에서만 자라던 아라비카 커피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는 과정에는 언제나 강력한 정치경제적 세력이 개입했습니다.
18세기 초반부터 본격화된 근대커피산업은 유럽 식민주의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주지하듯이 대규모 식민지 커피 플랜테이션은 네덜란드 식민지 인도네시아 자바에서, 그리고 프랑스 식민지였던 브르봉 섬에서 처음 시작됩니다.
이후 19세기 후반에는 식민지 커피 플랜테이션이 아프리카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그 중심에는 영국, 프랑스, 독일 같은 유럽 열강이 있었습니다.
당시 식민지 원주민들은 강제, 또는 반강제 노동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커피는 그들에게 향기로운 기호품이 아니라 고통과 억압의 상징이었습니다.
지금도 유럽 식민지 커피 플랜테이션을 기억하는 대부분 지역에서 커피는 결코 선호되는 음료는 아닙니다.
그러나 에티오피아 만큼은 달랐습니다.
이 나라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독립국으로, 단 한 번도 외세의 식민지배를 받지 않았습니다.
식민지 커피 플랜테이션의 노예노동, 이 기억이 없습니다.
이들에게 커피는 향기로운 기호품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에티오피아의 커피 소비량은 언제나 아프리카 최고 수준입니다.
그러나 에티오피아의 이러한 독립성과 자주성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곳 근대커피산업의 시작을 늦추는 요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3. 역사 / history
에티오피아의 근대커피산업은 20세기 초반에야 본격화되었습니다.
유럽의 침략을 막아낸 메넬리크 황제와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그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1957년,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에티오피아 커피위원회를 설립하고 대규모 농장을 조성하며 수출 체계를 정비하는 등 산업화를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1974년 군사 쿠데타로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상황은 급변합니다.
황제 시절의 농장은 국유화되어 소규모로 분할되었고, 농민들에게 임대되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1995년, 민주화를 거친 에티오피아는 연방민주공화국으로 재탄생했습니다.
농부들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자유시장 질서 속에서 큰 혼란을 겪었습니다.
2008년, 에티오피아 정부는 시장에 개입하여 ‘에티오피아상품거래소’를 설립했습니다.
모든 에티오피아 커피는 이곳을 거쳐야만 해외에 수출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 제도는 커피 가격을 안정시키고 유통 질서를 체계화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지역별 특성이 사라지는 치명적인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소규모 농가의 커피들이 섞이면서 예가체프, 시다모, 하라, 짐마 같은 지역 고유의 ‘떼루아’가 희미해진 것입니다.
해외 바이어들의 불만이 커졌지만, 정부는 효율성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에티오피아 정부의 이러한 행정 편의주의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2017년, 해외 바이어와 커피농부와의 직거래가 일부 허용되면서 이러한 시스템은 수정되었습니다.
4. 커피농부 / coffee farmer
에티오피아 국민의 약 25%가 커피산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커피는 국가 전체 수출의 약 30%를 차지하며, 에티오피아 경제의 핵심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커피 농부들은 여전히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들의 가난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오랜 역사적, 구조적 요인에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에티오피아 커피의 95%는 2헥타르 미만의 소규모 농가에서 생산됩니다.
월드커피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평균 농가 규모는 0.5헥타르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소규모 농가 중심의 구조는 과거의 국유화와 재분배 정책이 남긴 유산입니다.
작은 농장은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이 매우 낮습니다.
국제 시민단체 커피바로미터는 에티오피아 커피 농부들의 평균 수입이 지역 생활소득 기준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밝힙니다.
그 결과, 농부들은 사회에서 가장 가난한 계층으로 남아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커피의 대부분은 유기농 방식으로 재배됩니다.
농부들은 화학 비료와 농약 대신 퇴비를 사용합니다.
텃밭 규모로 농사짓는 이들에게 비료와 농약은 감당하기 어려운 선택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러한 선택은 단지 경제적 이유 때문 만은 아닙니다.
에티오피아에서 유기농이란 세대를 거쳐 전승된 농업문화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5. 토종커피 / Heirloom
커피전문가들은 에티오피아 커피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강렬한 꽃 향기, 복합적인 과일 향, 균형 잡힌 산미.
에티오피아 커피는 특별하고 고유한 향미 때문에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습니다.
물론 이 독특한 향미 때문에 오히려 선호하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
커피향미는 객관적으로 규정하기 어렵습니다.
취향, 경험, 기억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에티오피아 커피의 특별함과 고유함에는 선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커피생육에 최적화된 생태환경, 유기농과 같은 농경문화와 농부들의 진심, 그리고 이곳의 토종품종.
특히 에티오피아 토종커피는 향미뿐 아니라 유전적으로도 매우 건강한 품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지하듯이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재배되는 아라비카 커피는 티피카와 버번 품종입니다.
이 두 품종은 16세기 중반 에티오피아를 떠나 예멘에서 육종된 에티오피아 커피의 후손들입니다.
그러나 약 300년간의 집중적인 육종과정 속에서 이 두 품종의 유전적 다양성은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이는 곧 기후 변화와 병충해에 취약한 품종, 즉 생태환경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품종을 뜻합니다.
반면 에티오피아 야생에는 아직도 6,000종 이상의 토종커피가 존재합니다.
풍부한 유전적 다양성과 커피 고유의 향미를 간직한 이 토종커피들은 ‘에어룸’이라 불리며, 미래세대를 위한 지속가능커피로 주목 받고 있습니다.
6. 게이샤 / geisha
2000년대 초반, 전 세계 커피시장을 뒤흔든 ‘게이샤 신드롬’.
이 신드롬의 시작은 에티오피아 토종커피였습니다.
1930년대 중반, 에티오피아 게샤 지역에서 새로운 품종이 발견됩니다.
이 품종은 아프리카와 중미 커피연구소에서 재배되었으나, 당시 인기 있던 티피카와 버번에 밀려 주목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 1990년대 후반, 파나마의 한 농장에서 이 품종은 본격 재배되며, 이후 역사는 달라집니다.
한편, 이 과정에서 에티오피아의 ‘게샤’는 일본 기생을 뜻하는 ‘게이샤’라는 이름으로 둔갑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이 게이샤 커피는 스페셜티커피 품평회에 출품됩니다.
이 커피를 평가하던 심사위원들은 에티오피아 커피를 연상케 하는 게이샤의 향미에 놀라면서 주목했습니다.
당시 파나마에서 생산되는 커피는 중미에서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대회를 계기로 파나마의 게이샤는 세계적 조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파나마의 게이샤’는 호사가들의 관심을 끌었고, 이 커피는 터무니없는 가격에 거래되며 스페셜티커피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물론 ‘게이샤 신드롬’은 일본기생을 뜻하는 게이샤라는 명칭에 대한 불편함, 지나친 상업화에 따른 스페셜티커피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프리미엄커피의 물신화 등에 대한 비판도 따랐습니다.
그러나 한편, 이러한 ‘게이샤 신드롬’은 에티오피아의 게샤와 함께 에티오피아 야생에 존재하는 6,000종 토종커피의 잠재적 가치를 다시 평가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7. 분나 마프라트 / bunna maflat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를 ‘커피’라 부르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커피는 ‘분나’입니다.
세계가 모두 ‘커피’라 부를 때, 커피의 고향인 에티오피아에서는 여전히 ‘분나’라 합니다.
이곳에는 ‘분나 마프라트’라는 오래된 커피문화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커피를 마시며 공동체의 정체성과 유대를 확인하는 사회적 의례입니다.
이는 오늘날 세계가 공유하는 "커피문화의 원형이자 본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에티오피아 도시 곳곳에서 ‘분나 마프라트’라는 커피의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곳에서 커피는 사람과 사람, 문화와 문화, 사회와 사회를 연결하는 매개체입니다.
에티오피아는 커피의 고향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커피공화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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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doklip_coffee

게이샤가 어떤 커피인지 어원을 알게 됐네요
흥미롭게 잘 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