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대구분 / periodization
커피역사가들은 현대커피의 역사를 제1물결, 제2물결, 제3물결이라는 상징적인 언어로 구분합니다.
보통 역사학자들은 역사발전을 더욱 자세히 연구하기 위해 시대를 구분합니다.
예를 들어 이들은 인류역사의 일부를 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처럼 나누어 연구합니다.
물론 이러한 시대구분은 아무나, 혹은 아무렇게나 할 수는 없습니다.
보통 커피역사학자들이 커피의 역사를 구분을 하려면 다음 두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첫째, 커피의 시대를 구분할 만한 그 시대의 객관적이며 차별화된 사실들, 즉 이전 시대와 구별되는 커피문화의 새로운 내용과 형식이 존재하는가?
둘째, 새로운 커피문화의 정체성이 어떻게 해당 시대의 정치경제, 사회문화와 연동되어 있는가?
2021년, 국제무역센터에서 발행한 보고서 ‘커피가이드’에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들이 자세히 수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보시는 그림은 ‘커피가이드’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그림에 따르면, 1800년대 초반부터 첫 번째 커피물결이 형성되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결은 1960년대에 등장했으며, 세 번째 물결은 2000년대 초반에 시작된 것으로 나타납니다.
또한 이 그림에는 2015년을 기점으로 시작된 네 번째 커피물결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2. 물결 / the wave
‘물결’은 보통 운동, 혁명, 트렌드처럼 과거와 다른 새로운 사회문화적 현상, 곧 특정한 시대정신이 특정한 시대, 또는 세대와의 공감대를 형성하며 확산되는 현상을 상징합니다.
예를 들어 앨빈 토플러의 저서 ‘제3물결’에서 ‘물결’은 곧 혁명을 의미합니다.
이 책에서 제1물결은 농업혁명, 제2물결은 산업혁명, 제3물결은 정보혁명을 가리킵니다.
현대커피역사에서 ‘물결’은 사회문화적 메가트렌드를 뜻합니다.
국제무역센터 ‘커피가이드’에서 제1물결은 산업혁명과 맞물린 1800년대 이후의 커피문화, 곧 커피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다시 말해 커피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의미합니다.
제2물결은 1960년대 이후 시작된 커피문화의 ‘탈산업화’와 스타벅스와 같은 거대기업이 주도하는 체인점 커피의 독점적 세계화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제3물결’은 싱글오리진커피, 크래프트커피, 지속가능커피로 대표되는 새로운 커피문화의 등장과 이에 호응하는 ‘가치소비자’들의 등장을 가리킵니다.
용어로서 ‘제3물결’은 2002년, 여성로스터인 ‘트리시 로스게브’가 처음 사용했습니다.
이 용어는 당시 그녀가 심취되어 있었던 ‘페미니즘의 물결들’에서 차용했습니다.
사실 그녀가 차용한 ‘제3물결’은 현대페미니즘 발전 과정의 세 번째 단계를 설명하는 사회과학적 개념입니다.
물론 현대커피역사와 현대페미니즘의 발전방식에는 직접적 연관이 없습니다.
3. 트리시 로스게브 / Trish Rothgeb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트리시 로스게브는 로스터가 되었습니다.
당시 그녀는 흔하지 않은 여성 로스터이자 미국최초의 여성 ‘큐그레이더’였습니다.
1999년 그녀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일할 기회를 얻습니다.
이곳에서 그녀는 북유럽 커피문화, 즉 ‘노르딕 스타일’을 처음 접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북유럽 사람들은 커피에 진심입니다.
북유럽 사람들은 커피 본연의 향미를 즐기기 위해 커피생두를 태우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잔, 한잔, 정성껏 내린 커피를 천천히 음미했습니다.
이는 미국에서 흔한 대량생산된 공장커피나 스타벅스와 같은 체인점커피와는 전혀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글로벌 커피생태계에 밀려올 새로운 커피문화의 물결, 곧 미래 커피문화의 메가트렌드를 예감합니다.
글로벌 커피시장을 뒤흔들 거대한 파도를 예견한 것입니다.
그리고 2003년, 그녀는 미국스페셜티커피협회 로스터들의 모임인 ‘로스터스 길드’의 뉴스레터에 글을 쓸 기회를 갖게 됩니다.
이 새로운 파도가 만드는 새로운 커피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제3물결’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그녀는 커피역사학자도 아니며 커피이론, 혹은 평론가도 아닙니다.
자신이 예감하는 새로운 커피문화를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소박하게 정리했을 뿐입니다.
물론 이 용어가 등장하기 전,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미국의 카운터컬처, 인텔리젠시아, 스텀프타운과 같은 독립커피숍들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커피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스타벅스 같은 제2물결의 커피문화를 거부했으며, 그들의 한잔커피에는 싱글오리진, 크래프트, 지속가능커피라는 사회경제적 개념이 반영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이들의 한잔커피에 열광하는 새로운 커피공동체 또한 형성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들은 자신들이 거대한 물결들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 즉 현대커피역사를 관통하는 제3물결을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는 못했습니다.
4. 제1, 2물결 / 1st, 2nd wave
국제무역센터 ‘커피가이드’에 실린 그림을 다시 보겠습니다.
그림에서처럼 현대커피역사의 첫 번째 물결은 1800년대 초반부터 서서히 시작되었습니다.
잘 알려져 있듯, 1800년대는 인류문명을 뒤흔든 산업혁명, 시민혁명의 시대였습니다.
이 두 개의 혁명은 산업사회와 민주주의를 탄생시켰습니다.
산업사회는 흔히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기반으로 한 사회로 설명됩니다.
산업사회 이전, 커피는 귀족과 성직자만이 즐길 수 있는 값비싼 사치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산업사회 이후, 값싼 공장커피와 편리한 인스턴트커피가 대량생산되면서 커피는 “모두를 위한 것”이 되었습니다.
커피는 산업화되었고 커피문화는 민주화된 것입니다.
1960년대부터 두 번째 커피물결이 몰려옵니다.
1960년대는 정치경제적 변화와 사회문화적 혁명의 시대로 기억됩니다.
미국의 경제성장, 전후 베이비붐 세대의 등장, 자유주의의 확산, 68혁명과 히피문화로 대표되는 저항의 문화, 그 이후 등장하는 신자유주의와 여피문화, 그리고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탈산업사회의 징후처럼 1960년대는 변화와 혁명을 유혹하는 시대였습니다.
이때, ‘스페셜티커피’가 등장한 것입니다.
‘스페셜티커피’는 싸구려 공장커피, 맛없는 인스턴트커피, 출처가 불분명한 혼합커피, 촌스럽고 몰개성의 공산품커피 대신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세대에게 선택됩니다.
‘스페셜티커피’는 히피와 여피에게 선택된 것입니다.
주지하듯이 스타벅스는 이러한 메가트렌드를 영리하게 채용해서 세계 커피시장을 거의 독차지했고, 그렇게 제2물결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5. 제3물결커피 / 3rd wave coffee
1990년대,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세 번째 커피의 물결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세계 커피시장은 다국적 기업의 자본에 의해 대부분 독점되었고, 스타벅스처럼 세계화된 커피문화는 철저하게 상업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제2물결시대의 체인점커피는 마치 제1물결시대의 공장커피처럼 커피문화의 다양성을 훼손시키고 있었습니다.
또한 커피생산지역의 커피생산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기후위기와 지속되는 생태환경파괴, 그리고 커피농부들이 처한 사회경제적인 위기는 커피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제2물결의 커피문화에 반대하는 독립커피 로스터, 커피숍이 등장합니다.
앞서 언급한 카운터컬처와 같은 커피숍들이 등장한 것입니다.
이들은 커피농부와의 직거래를 추진하며 성공시켰습니다.
이들은 좋은 커피를 찾으면 커피농부가 원하는 대로 커피값을 지불했습니다.
때때로 이들은 커피농부가 원하는 값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스페셜티커피’ 대신, 정치경제적으로 더 착하고 사회문화적으로는 더 투명한 ‘싱글오리진커피’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다른 공장커피인 체인점커피 대신, 정성스럽게 한잔커피에 최선을 다하는 장인의 수제커피, 곧 ‘크래프트커피’를 구현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한잔커피에는 정치경제적 비용과 사회문화적 비용이 많이 소요됩니다.
당연히 이렇게 준비되는 한잔커피값은 비쌀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소비자’들은 이에 열광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트렌드는 전지구적 차원에서 수용되었습니다.
이렇게 세 번째 물결이 밀려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6. 제4물결커피 / 4th wave coffee
국제무역센터 ‘커피가이드’에 실린 그림에는 2015년을 기점으로 네 번째 커피물결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제4물결’의 역사적 존재유무는 아직 논쟁 중입니다.
현재 이렇게 진행되는 논쟁의 핵심은 제3물결 커피문화의 ‘접근성’에 대한 것입니다.
여기서 ‘접근성’에 대한 논쟁이란 가치소비자들이 아닌, 일반소비자들에게 걸림돌이 되는 어려운 제3물결 커피문화, 곧 고립된 커피문화에 대한 반성과 반추 같은 것입니다.
사실 제3물결의 커피문화는 대단히 전문적이며 전문적이기 때문에 고답적입니다.
정치경제적이며 사회문화적인 비용 때문에 한잔커피값이 비쌉니다.
이렇게 비싸기 때문에 비상업적이며, 특정 소수만을 위한 것이기에 비민주적인 측면이 존재합니다.
사실 제3물결 커피는, 제1물결 커피처럼 산업화, 민주화 되기는 어려운 속성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싱글오리진커피, 크래프트커피, 지속가능커피의 대중적 확산, 곧 제3물결 커피문화의 접근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인스턴트 스페셜티커피처럼 다양한 형식적 실험이 있었습니다.
인텔리젠시아, 스텀프타운과 같은 곳은 제3물결의 커피문화의 확산을 위해, 자신들의 독립성을 전제로 다국적 기업과 연대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과 연대가 성공했다는 후문은 아직 전해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제4물결’의 존재유무는 아직 논쟁 중입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