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념 / concept
‘지속가능커피’라는 용어는 1999년 미국의 소비자위원회에서 펴낸 백서, <기로에 선 지속가능커피>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이 백서에는 커피생산지역의 환경적 문제, 커피생산자들이 처한 사회경제적 상황,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는 ‘NGO’들의 활동이 담겨 있었습니다.
백서는 커피생산지역의 환경적 문제로 “그늘커피 경작에서 햇빛커피 경작으로의 전환”, “이를 위한 대규모 산림벌채”, “벌채로 인한 토양유실”, 그리고 “커피의 습식가공 증가로 인한 수자원의 황폐”를 지적했습니다.
경제적 문제로는 “극도로 낮은 커피노동자들의 임금”, “예측 불가능하며 대부분 생산원가에도 못 미치는 커피수매가격”을 지적했습니다.
또한 커피농부와 노동자들이 처한 사회적 문제로는 “교육·교통과 같은 열악한 사회적 인프라와 이에 따른 노동환경”을 지적했습니다.
백서는 이러한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지속된다면 우리가 매일 마시는 커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어서 백서는 이러한 환경·경제·사회적 문제들을 타개하기 위한 <공정무역>, <열대우림동맹>과 같은 NGO들의 활동을 소개했습니다.
물론 백서에서는 이들 NGO의 한계, 즉 이들이 제도화되고 권력화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문제들도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백서는 이러한 NGO들이 인증한 커피를 ‘지속가능커피’라고 정의했습니다.
이 백서의 정의에 따르면 지속가능커피란 인증커피를 의미합니다.
‘지속가능커피’라는 개념은 당시 커피생태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가치소비자들은 이러한 개념에 열광했습니다.
이후 ‘지속가능커피’는 NGO들의 인증커피를 넘어서, 커피의 미래를 위한 환경·사회·경제적 요건을 충족시키며 생산·유통·소비되는 커피로 정의되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 말, 미국의 독립로스터들도 이러한 시류에 동참합니다.
인텔리젠시아, 카운터컬쳐와 같은 독립로스터들은 <직거래>라는 방식으로 커피를 조달합니다.
<직거래>는 NGO들의 인증커피와 함께 ‘지속가능커피’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이들은 스스로 조달한 커피를 ‘지속가능커피’라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지속가능커피라는 개념의 구현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커피생산과 소비를 둘러싼 환경·경제·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기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한편, “기후위기와 함께 유전적 다양성이 취약한 동시대 커피의 멸종”, “가난한 농부들의 커피생산 포기”와 같은 일은 실제상황입니다.
2. 환경 / environment
‘지속가능커피’의 역사는 1960년대부터 시작됩니다.
1962년 해양과학자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을 출간합니다.
살충제와 제초제로 인해 황폐해지는 자연을 그린 이 책은 모든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1960년대부터 전개된 다양한 사회문화적 운동에 ‘환경’이라는 화두를 추가했습니다.
사실상 이 책을 계기로 환경운동이 시작된 것입니다.
당시만 해도 환경파괴는 사회·경제 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비용으로 간주되었습니다.
환경파괴에 대한 문제의식은 정치·사회·문화 어느 영역에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침묵의 봄>은 이러한 통념을 뒤흔들며 당시 물질과 정신세계를 지배하던 권력과 자본의 균형을 흔들었습니다.
사회적 엘리트, 지식인들에게 <침묵의 봄>은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충격의 파장 속에서 환경문제는 사회적 의제로 선택되었습니다.
1969년. 미국 정부는 <국가환경정책법>을 제정했고, 환경에 대한 관심은 미국을 넘어 글로벌 ‘메가트렌드’로 확산됩니다.
1972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는 UN 주관으로 <인간환경선언>이 채택·선언되었습니다.
그러나 ‘환경’이라는 개념에서 결정적인 문제가 발견됩니다.
‘환경과 환경운동’이라는 담론은 “자연이 아닌 인간 중심적인 것”, “제3세계와는 무관한 백인중산층 중심적인 것”으로 한계를 보이며 주춤합니다.
마치 친환경커피, 유기농커피, 에코커피와 같은 개념들이 주춤했던 것처럼.
3. 지속가능발전 / sustainable development
1987년 환경운동을 넘어 ‘지속가능발전’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했습니다.
이 개념은 <환경과 개발에 관한 세계위원회>가 펴낸 <우리 공동의 미래>를 통해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91년, <국제자연보호연맹>, <유엔환경계획>, <세계야생동물기금>은 <지구를 아끼기: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전략>을 발간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지속가능발전을 “생태계가 수용할 수 있는 한계 안에서 인간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으로 정의했습니다.
또한 이 보고서는 “선진국과 후진국”,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 “인간과 자연”, 그리고 “생물 간의 형평성”에 주목했습니다.
지속가능발전은 환경정의·사회정의·경제정의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규정되며 확장되기 시작합니다.
이후 ‘지속가능’이라는 개념은 글로벌 메가트렌드가 되었고, 동시대 가장 많이 쓰이는 개념어가 되었습니다.
지속가능건축, 지속가능디자인, 지속가능경영, 지속가능도시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활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지속가능커피’라는 개념이 커피생태계에 등장한 것입니다.
‘지속가능커피’는 커피생태계를 관통하는 엄청난 화두가 되었으며,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거의 완벽한 개념으로 수용되었습니다.
4. 커피NGO / coffee NGO
1980년대, 지속가능커피를 위해 헌신하는 NGO들은 커피생산지역은 물론 커피소비지역에서도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인증커피는 환경·경제·사회적 문제가 최소화된 지속가능커피와 동일시 되었습니다.
그런데 커피의 공급사슬, 혹은 ‘가치사슬’ 속에서 이들 NGO의 위치가 애매합니다.
커피의 가치사슬이란 “한 알의 커피씨앗을 커피체리로 변화시키는 농부”, “커피체리를 커피생두로 가공하는 사람들”, “커피생두를 원두로 볶아내는 로스터”, “원두로 한잔커피를 추출하는 바리스타”,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잔커피를 즐기는 소비자”까지 이어지는 연결고리입니다.
이 연결고리 속에서 커피의 물리적 변화와 경제적 부가가치가 발생합니다.
커피의 가치사슬이란 커피의 생산·분배·소비가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실물경제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가치사슬에 NGO의 자리가 없습니다.
사실 NGO는 커피생태계, 커피의 실물경제와는 무관한 아웃사이더이자 제3자입니다.
사실 그들은 커피농부, 로스터, 바리스타, 커피애호가와 같은 커피전문가도 아닙니다.
그들도 스스로의 정체성을 ‘제3자’, 곧 써드파티로 규정합니다.
이러한 NGO들의 포지션과 정체성 때문에 이들은 커피생태계의 본질적인 이해와는 무관한 조직이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심지어 이들이 마치 정부·기업처럼 정치경제적 권력을 가진 제3자가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지속가능커피를 위한 헌신과 선의와는 별개로 이들은 이미 제도화된 권력기관입니다.
NGO의 인증커피와 ‘지속가능커피’를 무조건 동일시하기 불편한 이유입니다.
5. 지속가능커피 / sustainable coffee
2000년대 이후, 마치 커피 NGO처럼 지속가능커피를 인증하는 기관이 여기저기서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스타벅스의 <카페프랙티스>, 네슬레 네스프레소의 <AAA>처럼 글로벌 대기업도 지속가능커피를 인증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행위는 제3자가 아닌, 결국 당사자가 자기 커피를 지속가능커피로 인증하는 셈입니다.
고품질 커피, 프리미엄커피로 둔갑한 이들의 지속가능커피는 마케팅 아이템으로 활용됩니다.
동시에 그린워싱이 시작됩니다.
2025년 기준, 커피를 포함하는 농업 부문 인증기관은 100개가 넘습니다.
현재 이들의 인증커피, 곧 지속가능커피는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커피의 50%가 넘습니다.
환경·경제·사회적 문제들이 최소화된 지속가능커피가 전 세계 커피생산량의 50%인 500만 톤이나 생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지속가능커피’라는 개념은 대단히 혼란스럽게 변질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커피란 무엇인가?” “지속가능커피는 개념뿐 아니라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인가?”와 같은 냉소적이며 회의적인 질문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속가능커피는 구체적인 실체로서 예나 지금이나 존재하고 있습니다.
사실 공정무역, UTZ, 열대우림동맹, 조류친화인증, 4C, 유럽유기농과 같은 NGO들의 인증커피가 지속가능커피입니다.
비록 이들 NGO는 다양한 한계와 문제를 노출했지만, 이들을 제외하고 지속가능커피를 언급할 수는 없습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1989년에 시작된 공정무역은 대표적인 커피NGO입니다.
이들은 커피생산지역의 환경문제보다 농부들의 사회·경제적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이들은 사회·경제적 문제 해결에 집중합니다.
그렇다고 공정무역이 커피생산지역의 환경문제를 무시하거나 지나치는 것은 아닙니다.
공정무역은 농부들이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보다 환경 친화적인 농업 관행을 장려합니다.
실제로 공정무역 인증 농장의 50%는 유기농 인증을 동시에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공정무역커피는 지속가능커피입니다.
일부 호사가들은 “공정무역커피, 곧 지속가능커피는 품질과 향미가 나쁘다”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부적절한 맥락, 부정확한 근거에 기반한 것일 뿐입니다.
1987년 설립된 열대우림동맹은 열대우림의 생물다양성 보전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열대우림동맹은 커피벨트 열대우림 훼손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그늘커피 재배방식 같은 ‘혼농임업’을 장려합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대안 농법을 사용하도록 농부들과 함께하며, 토지와 작물을 더 풍요롭게 관리하는 방법을 공유합니다.
동시에 사회적으로는 농부들의 인권 보장을 목표로 합니다.
열대우림동맹 농장에서 생산된 커피는 대표적인 지속가능커피입니다.
2004년에 창립한 4C는 전 세계 커피생산자, 기업, 과학자 등 다양한 커피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NGO입니다.
4C의 인증은 대단히 구체적이며 섬세하고 까다롭기로 유명합니다.
특히 4C는 지속가능커피를 위한 실행 매뉴얼을 경제적 지속가능성, 사회적 지속가능성, 환경적 지속가능성으로 구분하고 이 원칙들을 커피농부들에게 강하게 요청합니다.
현재 4C의 인증커피, 곧 지속가능커피의 총량은 공정무역, 열대우림동맹보다 월등히 많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NGO들이 인증하는 커피만이 지속가능커피는 아닙니다.
아직도 커피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독립로스터들의 <직거래>가 매일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들은 이렇게 조달된 커피를 <릴레이션커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그들의 행동이 커피 NGO들처럼 광범위하게 활성화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대표적인 지속가능커피입니다.
그렇다면 “지속가능커피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게 됩니다.
사실 이 질문에 원론적인 대답을 벗어나, 실제 사례를 들면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공정무역, 열대우림동맹, 4C와 같은 NGO의 인증커피가 지속가능커피라는 주장은 다분히 현실적이며, 절충적이고, 심지어 세속적인 것으로 비판 받을 수 있습니다.
한편, 독립로스터들의 <릴레이션커피>가 지속가능커피라는 주장은 너무나 낭만적이며 이상적인 것, 즉 대단히 비현실적 주장으로 역시 비판 받을 수 있습니다.
‘지속가능커피’라는 개념은 추상적인 만큼 해석의 폭이 넓습니다.
다양한 주체의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있습니다.
“지속가능커피란 무엇인가?”
사실 이 질문의 답을 명확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커피시장의 소비자뿐입니다.
이들 가치소비자들의 선택이 답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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