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페셜티커피 / specialty coffee
“스페셜티커피란 무엇인가”
이에 대한 일반적인 답은 다음처럼 두 가지로 수렴됩니다.
첫째, “엄격한 기준으로 분류되고 관리되는 고품질의 특별한 커피”
둘째, “특수하고 이상적인 기후에서 재배되어 독특한 향미와 맛을 가진 커피”
그러나 이 두 개의 답에는 다양한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이 두 개의 답은 1974년, 스페셜티커피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에르나 크누센의 의도를 왜곡할 수 있습니다.
1966년, 피츠커피를 창업하여 스페셜티커피 문화 확산에 기여한 알프레드 피트의 진심을 훼손할 수 있습니다.
사실 언급된 두 개의 답들은 스페셜티는 프리미엄을 뜻하며, 귀한 프리미엄커피는 비싸고, 따라서 스페셜티커피는 비싸다라는 공식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물론 스페셜티커피는 상대적으로 비쌀 수 있습니다.
‘한 알의 커피씨앗’에서 ‘한잔커피’까지의 투명함을 위해 더 많은 사회경제적 비용이 소요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스페셜티커피가 모두 비쌀 이유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셜티커피는 비싼 커피와 동일시 되었는데, 이러한 현상에는 ‘스페셜티커피협회’가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2. 스페셜티커피협회 / SCA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의 커피.”
스페셜티커피에 대한 스페셜티커피협회의 정의입니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협회는 이러한 정의를 알지 못한다고 부인합니다.
스페셜티커피협회는 글로벌 커피생태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곳 중 하나입니다.
스페셜티커피를 판단하고 규정하는 협회의 ‘커핑 매뉴얼’은 경전처럼 활용됩니다.
협회의 커핑 매뉴얼은 감각적 평가를 위한 것이며, 이에 근거해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의 커피”를 ‘스페셜티’라고 규정합니다.
이러한 평가방식은 ‘우열’의 법칙을 만들었습니다.
“80점 이상의 스페셜티는 품질 좋은 커피, 즉 비싼 커피”라는 절대공식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결국 “스페셜티는 프리미엄”이라는 신화가 탄생한 것입니다.
스페셜티커피는 프리미엄커피로 획일화 되었습니다.
그러나 1900년대 후반부터, 프리미엄 신화는 해체되기 시작합니다.
신화를 거부하는 독립로스터, 바리스터, 그리고 이들을 추종하는 가치소비자들이 등장한 것입니다.
새로운 커피문화, 제3물결의 시대를 예고하는 물결이 몰려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2023년이 되어서야 이들은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의 커피”라는 주장을 철회합니다.
그리고 협회는 “스페셜티커피”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에 다음과 같은 네 개의 질문들을 추가합니다.
어디서, 누구에 의해, 어떻게 생산되었는가?
어떤 품종인가?
어떻게 가공되었는가?
환경, 가치사슬 속에서 인간, 경제 그리고 다른 요소와의 관계는 무엇인가?
3. 제1물결 / 1st wave
1974년, 여성기업가 에르나 크누센은 스페셜티커피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습니다.
당시, 커피생태계는 제1물결 커피문화가 지배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때 커피는 ‘공산품’으로 간주되었으며, 커피생두는 원자재로 지정되어 유통되던 시대였습니다.
커피생두는 마치 원유, 구리, 옥수수, 면화처럼 공산품 제조를 위한 원자재로 지정되어 있었습니다.
제1물결의 시대, 원자재로서 커피생두는 다음 세 가지 특성으로 설명됩니다.
첫째, 모든 원자재에는 원산지라는 지리적 개념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마치 와인의 떼루아처럼 인문지리적 개념이 커피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에티오피아 커피생두, 과테말라 커피생두, 브라질 커피생두는 모두 같은 것, 같은 값의 원자재로 취급됩니다.
둘째, 모든 원자재의 가격은 생산자가 결정할 수 없습니다.
최소한의 생산원가도 반영되지 않습니다.
커피농부들은 누군가 정해놓은 수매가격에 맞춰 커피생두를 팔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 원유와 같은 원자재는 ‘선물투자’라는 금융 파생상품의 대상입니다.
따라서 커피생두는 커피농부, 커피소비자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금융경제의 투자, 혹은 투기의 대상입니다.
소비자들이 지불하는 한잔커피의 가격에는 투자자, 혹은 투기꾼들이 가져간 돈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1974년, 에르나 크누센의 ‘스페셜티커피’라는 개념은 이러한 정치경제적 구조를 해체시키는 혁신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4. 에르나 크누센 / Erna Knutsen
에르나 크누센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커피생두를 수입하는 무역회사의 대표였습니다.
당시 커피무역의 최소단위는 컨테이너였습니다.
이 컨테이너에는 다양한 지역의 커피생두가 섞여 있었습니다.
이렇게 커피생두는 혼합된 상태에서 거래되었고 커피공장의 원자재로 팔려가 인스턴트커피, 분쇄커피 등으로 가공되었습니다.
마치 원유가 공장에서 경유, 휘발유, 플라스틱 등으로 가공되는 것처럼.
에르나 크누센은 커피 생산지역의 생태환경, 농사관행, 가공방식, 품종에 따라 커피향미가 완벽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생산지에 따라 커피를 구분하고 독립로스터, 바리스터들에게 다양한 커피생두를 소개했습니다.
독립로스터, 바리스터들과 이들의 고객인 커피광들은 다양한 커피향미에 열광했습니다.
에르나 크누센은 당시 커피 생태계에서 큰 주목을 받게 됩니다.
1974년, 컨퍼런스에 초대됩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그녀는 커피의 인문지리적 정체성과 이에 따른 향미의 차별성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으로 ‘스페셜티’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1982년, 에르나 크누센은 스페셜티커피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미국스페셜티커피협회’를 창립했습니다.
2017년, 미국스페셜티커피협회는 유럽스페셜티커피협회와 통합되어 오늘날의 스페셜티커피협회로 재편되었습니다.
사실 그녀는 동시대 스페셜티커피협회를 창립한 사람 중 한 명입니다.
그녀는 커피광이었습니다.
특히 그녀는 인도네시아 만델링의 독특한 향미를 즐겼습니다.
그녀에게 만델링은 최고의 ‘스페셜티’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단 한 번도 만델링이 다른 지역의 커피보다 더 뛰어나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만델링의 품질이 더 좋거나, 그렇기 때문에 더 비싸야 한다고 말한 적도 없습니다.
그녀에게 스페셜티커피는 다양한 개인들의 다양한 취향을 충족시키는 커피, 곧 문화적 다양성의 담론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5. 알프레드 피트 / Alfred Peet
알프레드 피트는 스페셜티커피의 혁명가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또한 그가 1966년 창업한 피츠커피는 스페셜티커피 혁명의 진원지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현대커피역사에 몰려온 두 번째 물결은 이곳 피츠커피의 개점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에르나 크누센과는 다르게 그는 스페셜티라는 용어를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피츠커피를 스페셜티커피와 동일시하지도 않았습니다.
피트는 자신의 커피를 크래프트커피, 즉 수제커피라고 말했습니다.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공산품의 대안으로서 그는 크래프트커피의 장인정신을 추구했습니다.
에르나 크누센에게 스페셜티가 커피의 떼루아, 곧 커피의 인문지리학이라면, 알프레드 피트에게 스페셜티란 크래프트, 곧 커피장인의 공예정신과 그에 따른 미학적 경험을 의미했습니다.
이러한 맥락이라면 알프레드 피트의 크래프트, 곧 스페셜티란 결코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러한 측면에서 스페셜티커피 문화는 대단히 미국적인 현상입니다.
1960년대, 미국은 문화, 정치, 경제 영역 전반에 걸쳐 혁명과 갈등의 시대였습니다.
모든 오래된 것과 모든 새로운 것이 과격하게 충돌하던 시대였습니다.
특히 신세대와 구세대와 같은 세대 간의 갈등은 인류 역사에서 이때만큼 격렬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이때 등장한 피츠커피는 신세대, 예를 들어 베이비붐 세대, 비트, 히피와 같은 신세대들의 커피문화로 수용 됩니다.
반면 미국에서 대량 생산되던 인스턴트커피와 분쇄커피, 즉 제1물결 커피는 신세대들의 부모세대, 즉 산업화 세대를 상징하는 촌스러운 것이 됩니다.
당연히 피츠커피는 크게 성공합니다.
피츠커피는 새로운 시대와 세대를 상징하는 커피문화로 각인됩니다.
이때부터 피츠커피, 곧 크래프트커피 문화는 스페셜티커피 문화와 동일시되기 시작합니다.
에르나 크누센의 인문지리학과 알프레드 피트의 탈산업주의는 현대커피역사의 두 번째 물결, 곧 스페셜티커피 문화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 때, 영리한 기업 스타벅스는 이러한 스페셜티커피 문화를 적극 수용합니다.
그리고 스타벅스는 세계적인 공룡기업이 되었습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