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커피향미 / coffee flavor
사람들은 커피향미를 혀와 코로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 가지 ‘공감각'이 커피향미의 전부라고 여깁니다.
물론 커피 전문가들은 여기에 마우스필, 즉 커피의 물리적 질감을 추가합니다.
마우스필, 보통 바디라고 부르는 커피의 질감은, 음식의 ‘식감'과 유사한 개념입니다.
식품공학자 최낙언의 저서 <감각, 착각, 환각>에 따르면, 미각과 후각으로 경험하는 음식의 향미는 우리가 체험하는 총체적 향미의 30%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커피향미는 미각, 후각, 촉각은 물론 우리의 청각과 시각까지, 오감을 통해 지각하고 인식하는 것입니다.
오감 중 인간은 시각이 발달해 있습니다.
늑대, 개, 여우 같은 동물이 ‘후각의 동물'인 것처럼 인간은 ‘시각의 동물'이라 불릴 만합니다.
대체로 인간과 외부 세계의 관계는 시각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식품공학자 최낙언의 인지방식에 따르면 한잔커피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란 시각과 청각 70%, 그리고 나머지 30%는 후각, 미각, 촉각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커피생태계에서 통용되는 커피향미는 ‘커핑'이라는 방식, 즉 미각, 후각, 촉각 세 가지만을 활용하여 평가되고 규정됩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식품공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러한 평가는 부분적이며 부정확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실제로 ‘커핑'이라는 방법만으로 커피향미의 본질과 실체를 온전히 밝히기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2. 미각, 후각 / taste, smell
인간의 미각은 대단히 단순합니다.
인간은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 등 다섯 가지 맛만을 구별합니다.
미식가들 또한 이러한 단순함을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사실 인간의 미각은 맛을 즐기기 위해 진화한 것이 아닙니다.
음식물의 안전 여부를 가려 삶과 죽음을 판별하기 위해 진화한 것입니다.
우리가 설탕의 단맛과 소금의 짠맛을 선호하는 이유는 이 두 가지가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부패한 음식의 신맛, 독의 쓴맛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신맛과 쓴맛, 곧 죽음에 훨씬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음식에 조금이라도 신맛이나 쓴맛이 감지되면 쉽게 알아차리고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커피 맛은 쓴맛과 신맛이 거의 전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커피를 처음 접하는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드러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어른들은 커피를 즐깁니다.
사실 특이한 현상입니다.
대부분 어른들에게 커피의 쓴맛, 신맛이란 유년의 맛을 초월하는 사회문화적인 맛일 가능성이 큽니다.
후각은 공기 중의 화학 물질, 즉 ‘향’을 구별하는 감각입니다.
미각이 다섯 가지 맛만 구별하는 데 비해, 인간의 후각은 수백만 가지 향을 식별할 수 있습니다.
또한 후각은 특정한 기억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프루스트 현상’을 일으킵니다.
예컨대 커피 향은 과거 그 향과 함께 경험했던 기억과 감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는 후각을 처리하는 뇌가 기억과 감정을 담당하는 뇌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밝혀졌습니다.
“한잔커피의 추억”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클리셰가 아니라, 후각과 연동된 인지과학적 현상입니다.
3. 촉각, 시각, 청각 / touch, sight, hearing
촉각, 곧 한잔커피의 ‘마우스필’은 커피의 온도, 점도, 질감에 즉각 반응합니다.
사실 촉각은 오감 중에서도 설명하기 가장 어려운 감각입니다.
특히 마우스필은 입안의 통점, 압점, 촉점, 냉점, 온점 등 다양한 감각 수용체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언어로는 온전히 표현하기 힘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잔커피 경험에서 촉각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마치 ‘식감’이 음식의 맛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인 것처럼.
시각은 한잔커피를 둘러싼 공간, 환경, 사람들처럼 전반적인 분위기와 더불어 커피의 색, 커피 잔의 디자인처럼 눈앞에 펼쳐진 모든 구체적 대상을 인식합니다.
실제로 시각으로 얻는 정보는 미각, 후각, 촉각, 청각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습니다.
커피에 대한 감각적 인지, 인문적 판단, 기억의 과정에서 인간의 시각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합니다.
우리가 인지하는 한잔커피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는 시각을 통해 구축됩니다.
마지막으로 청각은 소리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며, 다양한 자극을 감지하는 감각입니다.
청각은 한잔커피를 둘러싼 환경적 조건과 그 시공간의 사회문화적 상호작용을 인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나아가 시각과 함께 커피의 시간, 장소, 상황을 지각하는 핵심 정보를 형성하며, 이는 커피향미의 판단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4. 인지과학 / cognitive science
아늑한 카페에 들어섭니다.
‘에티오피아 시다모’ 한 잔을 주문합니다.
정성스레 로스팅되고 섬세하게 내려진 한잔커피가 테이블 위에 놓입니다.
이 한잔커피에 대한 다양한 정보는 앞서 언급한 대로 우선은 인간의 미각, 후각, 청각, 시각, 촉각 등 오감을 통해 형성됩니다.
그리고 이 오감의 감각 정보는 전기 신호로 변환되어 뇌로 전달됩니다.
뇌는 이 신호를 해석하고 가공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에티오피아 시다모’를 ‘지각’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지각 과정은 과학적이지도 못하고 순수하지도 않습니다.
사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또는 과학적 판단의 ‘에티오피아 시다모’란 쓴맛과 신맛의 특이한 음료일 뿐입니다.
그러나 특정 개인에게 지각된 ‘에티오피아 시다모’는 특정 개인의 세계관, 그것이 어떤 상태이든, 그 주관적인 세계관과 연동된 이미지로 존재하게 됩니다.
실제로 ‘지각’의 과정에는 특정 개인의 지식, 철학, 경험, 기억 등 ‘특정 개인의 다층적인 주관’이 개입합니다.
사실 커피향미를 인지하며 지각하고, 지각하며 인식한다는 것은 단순히 감각적 경험을 넘어, 커피에 대한 ‘앎’의 상태로의 진입을 의미합니다.
이는 한잔커피에 대한 화학적, 물리적 특성과 더불어 인문적 상상까지 아우르는 총체적인 행위를 의미합니다.
5. 인문적 향미 / humanistic flavor,
화려한 꽃 향, 열대 과일 향, 밝은 산미.
많은 커피 전문가들이 묘사하는 ‘에티오피아 시다모’의 향미입니다.
물론 이러한 묘사는 특정 커피의 정체를 기록하고 설명하는데 대단히 유효한 방식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이 그들에 의해 절대화 될 때, 한잔커피에 따른 다양한 상상은 줄어들거나 억압되기도 합니다.
역사 속에서 커피향미는 예술, 철학, 혁명과 같은 인문적 향기와 동일시되곤 했습니다.
또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사회적 매개체로 기능하기도 했습니다.
카페나 커피하우스에서 느끼는 공감각적 커피향미처럼, 커피는 사회문화적 향기로 인식되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커피향미는 화학, 물리적 차원을 넘어선 복합성을 지니며, 인문적 포용성을 획득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커피는 감성향미, 이성향미, 지성향미처럼 인간만이 체험할 수 있는 향미의 총합으로 주장되기도 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한 잔의 커피가 주는 감성, 이성, 지성의 향미는 ‘나’라는 개별 주체가 개입해 판단하는 고유한 경험을 뜻합니다.
감성은 커피에 자신을 투영해 “나는 좋다, 싫다”라는 선호를 드러내게 하고, 지성은 “이 커피를 안다, 모른다”라는 인식의 문제를 제기하며, 이성은 “옳다, 그르다”라는 윤리적 판단을 이끌어냅니다.
개인의 감성, 이성, 지성이 개입할 때 커피향미는 더욱 풍부해집니다.
이때의 향미를 ‘인문적 향미’라 부르며, 이는 곧 커피의 인문적 가치를 의미합니다.
6. 가치소비 / value conscious consumption
커피향미의 인문적 가치는 동시대 메가트렌드인 ‘가치소비’를 촉발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가치소비는 가격이나 품질 중심의 전통적 소비와는 구별됩니다.
화려한 꽃 향, 열대 과일 향, 밝은 산미, 부드러운 바디.
보통 커피전문가들이 한잔커피를 화학적, 그리고 물리적으로 판단해서 묘사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안타깝게도 보통 사람들과는 공유될 수 없기 때문에 공허한 것이 됩니다.
또한 이러한 방식과 동시대 가치소비 사이의 연결고리는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또한 이러한 방식은 대단히 본질적이며 순수해 보이지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성격을 띱니다.
오늘날의 가치소비자들은 '혀와 코의 영역'을 넘어서는 커피향미를 찾습니다.
가치소비는 인문적 상상, 윤리적 신념, 주관적 취향에 따라 특정 커피를 소비하려는 현상입니다.
가치소비는, 싱글오리진커피, 지속가능커피 등과 연결된 의식, 곧 제3물결 커피문화의 본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치소비자는 한잔커피에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을 투영합니다.
이러한 투영은 커피생태계를 건강하게 활성화하는 힘으로 작동됩니다.
이때 소비자는 단순히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소비의 주체로 전환 됩니다.
식품공학자 최낙언의 분석대로, 혀와 코로 느끼는 커피향미는 30%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나머지 70%의 커피향미는 인문적 향미일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한잔커피의 가치소비란 곧 커피향미 100%를 온전히 경험하는 것입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느끼고, 즐길 수 있다”는 말이 그대로 들어맞는 것입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