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스를 들였습니다. 원래는 코니컬 버 그라인더를 고르고 있었는데, 이런저런 리뷰와 자료들을 보다 보니 필로스의 성향이 전형적인 플랫 버의 특징과는 조금 다를 것 같아서, 전부터 워낙 좋은 빌드 퀄리티에 끌리던 차라 마음을 정했습니다.

알고 있었지만 내 공간에 놓고 바라보고 만져보니 알고 있던 것보다도 만듦새가 좋아 만족스럽습니다. 처음 분쇄 버튼을 누르는 순간, 기동과 동시에 기기를 좌우로 흔드는 진동에 잠깐 당황하긴 했습니다. 단단한 아일랜드 식탁 인조대리석 상판인데도 이 정도 진동이면 방진 패드가 있어야겠어요.

조금 불편하다는 글을 읽은 적 있는 호퍼는, 전 그리 불편하다곤 느끼지 못했습니다. 제 오랜 추출 루틴은 포타필터를 도징컵에 직접 붙이고 뒤집어 흔드는 게 아니었는데, 필로스로는 그렇게 하려니 좁고 깊은 도징컵 하단에 원두 가루가 조금 붙어서 그걸 털어내는 게 좀 귀찮다는 느낌이었습니다. RDT를 하지 않아서(원래 하지 않습니다) 그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주변에 커피가루가 날린다는 리뷰와 달리 커피가루는 거의 주변에 날리지 않네요.

진동과 긴(=깊은) 타입의 도징컵(도징컵 형태는 전적으로 제 루틴 탓이지 필로스의 단점은 아닙니다) 외에는 모든 게 만족스럽습니다. 가장 중요한 맛은, 아직 십여 차례밖에 추출해 마셔보지 않아 단정지어 말하긴 조심스럽지만, 오랜 시간 먹어온 같은 원두를 필로스로 추출했을 때 바로 차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관적인 감각을 절대화 해 말하는 걸 꺼리는 편이라, "차이를 느꼈다고 느꼈다" 라고 쓰는 게 정확하겠습니다. 가장 지배적인 느낌은 '부드럽다' 입니다. 부드럽고 단정하게 정리된 맛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그렇다고 산미가 없어지는 건 아니고, 좀 추상적인 표현이겠지만 '산미의 모서리가 날카롭지 않고 둥글게 다듬어진' 것 같은 맛입니다. 같은 플랫 버 그라인더인 유레카 미뇽 스페셜리타로 수없이 마셔본 원두라서 그 차이에 좀 놀랐습니다. 몇 가지 원두를 더 추출해 아메리카노와 라떼로 마셔보니 이런 특징이 일관되게 느껴집니다. 대충 요약하면 >> 부드럽고 가벼운(긍정적인 의미로. 혹은 '맑은'), 즉 인텐스가 강한 커피와는 반대쪽의 특징을 가진 커피입니다. 저는 애초에 원한 게 이런 쪽이라 아주 만족했습니다. 특히 조금 굵게 갈아 7Bar로 추출하는 요즘의 제 취향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스페셜티로 산미가 강렬하고 인텐스가 강한 커피를 만들어 즐기는 분들에겐 조금 덜 적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위에도 썼듯 제 주관적인 '느낌'일 뿐이니 직접 경험하기 전인 다른 분들이 미리 기기에 대한 선입견을 갖진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필로스를 메인 그라인더로 중/중약배전 원두의 에스프레소에 사용하고, 미뇽은 아내와 딸이 마시는 라떼를 위한 중강배전 이상의 이태리 원두에 사용하는 작전(?)입니다. 더 화사한 싱글 오리진 스페셜티를 마시고 싶을 땐 코만단테로 갈아 필터로 내릴 생각이긴 한데, 필로스의 필터용 분쇄도 바로 테스트해 보긴 해야겠구요. (필로스의 필터도 깔끔하고 부드러워 좋을 것 같다는 느낌적 느낌이 들긴 하는데, 제 경우 핸드밀은 꼭 맛뿐 아니라 감성의 충족 때문에 쓰는 것이라서 아무래도 필터용 분쇄는 계속 코만단테가 우선이 될 것 같긴 해요)
일단 전체적으로 마음에 드는 구성이 되긴 했습니다. 이대로 써보고 마음에 들면 또 오래 주욱 변화없는 홈카페가 될 것 같고, 아니면 이상적(?)인 포트폴리오를 위해 미뇽을 적당한 코니컬 버 그라인더로 바꾸게 될 수도 있겠고 그렇습니다. 바꾼다면 스타시커 엣지 플러스 정도?
인테리어 효과도 있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사용해보시고 후기 부탁 드립니다.
가정용으로 쓰시에도 소규모 매장에서 쓰기에도 좋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