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리타니안’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으시면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모리티니안’이라는 영화의 어느 장면입니다.
시민단체 소속의 변호사 ‘낸시’는 911 테러 이후 관타나모에 수감된 북서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 ‘모리타니’ 출신의 ‘슬라히’에 대해 알게 됩니다. 법적 정의에 관한 강한 신념을 갖고 있는 낸시는 슬라히에 대한 미국 정부의 구금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녀의 경력동안 해 왔던 것처럼 미국 정부와 싸우기 위해 그를 변호하기로 합니다.
주기적으로 관타나모를 방문해 슬라히와 만나는 낸시는 그가 무죄를 주장한다는 것, 그리고 여러해 동안 가족은 물론 어머니의 목소리조차 듣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를 동정하는 동료 ‘테리’와는 달리, 슬라히의 슬픔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신념,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싸움과 승리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슬라히의 구금과 혐의를 조사하던 낸시는, 그가 빈 라덴의 전화기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이 테러에 참여한 인물들을 모집했다는 자백을 이미 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로 인해 궁지에 몰린 낸시는 슬라히에게 자백을 했다는 사실을 왜 말하지 않았는지 몰아 붙입니다. -그 때, 낸시는 언뜻, 슬라히의 ‘상처 받은’ 얼굴을 발견합니다.- 슬라히에게 연유를 설명하지 않으면 도울 수 없다는 최후 통첩을 한 채 떠난 낸시에게, 며칠 후, 슬라히가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쓴 글이 날아 옵니다. 거기에는, 구금 과정에서 어느 날부터 받게 된 고문, 신체적 고문을 압도하는 어마어마한 심리적 폭력- 그의 어머니를 강간하겠다는 -을 견디지 못하고 거짓 자백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상처 받은‘ 목소리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를 찾아간 낸시.
그동안, 낸시가 건낸 실같이 가느다란 희망으로 지옥 같은 구금 생활을 버티고 있는 슬라히는, 할 일도 없으면서 왜 왔냐고, 그녀에게 묻습니다. 그 때, 낸시는 처음으로, 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갭니다.
“너와 함께 있어주고 싶어서.”
존재에게 있어 가장 위대한 사건은, 세상의 법칙, 그러니까 존재는 존재를 위할 수 밖에 없다는 거스를 수 없는 법칙을 깨고, 자신을 타자에게 던져 넣는 순간입니다. 그의 ’상처받은 얼굴‘ 앞에서, 그녀의 신념과 그녀의 싸움은 온데 간데 없습니다. 그녀는 오직 그의 상처를 매만져 주고 싶었고, 그래서 스스로를 던져 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갭니다.
…
햄릿은 숙부의 범죄를 확인하기 위해 연극을 준비하고, 실력을 확인하려 한 배우에게 일리아드의 한 대목을 연기하게 합니다. 배우는 트로이왕이 전사하자 비통해 하는 헤큐바의 오열 장면을 연기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배우가 헤큐바의 고통을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헤큐바가 그에게 무엇이기에, 그는 헤큐바를 위해 저렇게 우는 것일까.’ 우는 배우의 얼굴, 그 ‘상처 받은‘ 얼굴을 마주한 햄릿은, 자신의 ’죽음과 삶‘의 문제조차 잊고, 상처 받은 헤큐바, 상처 받은 배우에게 몰두합니다. 그는 그 순간, 유령처럼 자신을 따라다니는 번뇌로 부터 스스로를 구해 냅니다…
바흐, ’당신이 나와 있을 때‘
존 루터, 맨체스터 카메라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