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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 여가수>> 이상한 이야기 - 외젠 이오네스코

천권의약속
4,605
2023-09-16 19:16:23 182.♡.19.45

이번 달 인문학 모임 도서라 이 책을 읽었다. 제목만으로는 무슨 내용일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왜 제목을 대머리 여가수라고 했는지 조금은 짐작이 간다. 얼토당토않은 비약과 맥락을 알 수 없는 대사들을 읽으며 이 책으로 연극을 했던 배우들은 대사를 어떻게 외웠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이 책에는 세 편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첫 번째 ‘대머리 여가수’에 대머리 여가수는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마틴 부부와 스미스 부부가 나온다. 누구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모르는 스미스 부부의 대화에 이어 서로 같은 곳에서 상대와 비슷한 사람을 봤다는 마틴 부부의 알 수 없는 대화들, 갑작스러운 소방대장의 등장과 그가 들려주는 황당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웃음이 피식피식 나온다. 말장난에 가까운 이들의 대화는 11장에 가서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각자 자기의 말을 하여 대화가 성립되지 않는다. 대머리 여가수에 대한 이야기는 소방대장의 “그런데 대머리 여가수는?” 스미스 부인의 “늘 같은 머리 스타일이죠.”가 끝이다. 이상한데 재미난 이야기.


두 번째 ‘수업’이라는 제목에 ‘희극적 드라마’라는 부제가 붙은 글을 읽고 나서 부제가 반어법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유토피아를 표방한 영화나 책 대부분이 ‘디스토피아’이듯이 말이다. 노교수의 서재에 18세 여학생이 수업을 받으러 온다. 활기찬 여학생이 수업을 받는 동안 지쳐 끝날 때쯤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고, 자그마하고 정중하고 소심한 교수는 점점 과격해진다. 교수의 열띤 강연 사이사이 학생의 “이가 아파요.”라는 대사가 너무 웃겼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말에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 깜짝 놀랐던 이야기.


마지막 ‘의자’는 노인과 노파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많은 문을 통해 보이지 않는 손님들이 들어와 의자에 앉고, 노인과 노파는 그들과, 혹은 서로 대화를 나눈다. 이들의 대화 역시 이해되지 않는 말들 투성이다. 보이지 않는 이들과의 대화, 황제의 등장까지 황당한 대화의 연속이다. 결말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


외젠 이오네스코는‘부조리’라는 연극 용어를 탄생시킨 작가라고 한다. ‘부조리’라는 말을 위키백과에 찾아보니 ‘불합리, 배리, 모순, 불가해’ 등을 뜻하는 단어로, 철학에서는 ‘의미를 전혀 찾을 수 없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모순되는 대사들이 반복적으로 혹은 산발적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며 사무엘 베게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떠올린 이유는 ‘부조리’를 다루었기 때문일 것이다. 부조리한 대사들 중에는 사회 비판이나 풍자가 담겨있다는 생각을 했다.


관객들을 불러놓고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대사들을 늘어놓는 이유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세상의 부조리함을 알리기 위함이라는 고차원적인 해석도 있다. 하지만 이해되지 않는 대사들을 읽으며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한 걸 보면 이상한 것 자체에서 무언가 의미를 찾아내려는 몸부림을 치는 사람들의 심리를 간파한 작가의 고도의 심리 전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목소리 리뷰

https://www.youtube.com/watch?v=L1n12zHw6W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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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권의약속 님의 게시글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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