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 다행이도 댓글을 남겨주신 분이 계셔서...다음 글도 올려봅니다 ㅎㅎ 혹시 나중에라도 다른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디자인 안해본 사람이 디자이너 되기
저는 개인적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보다는 아주 살짝 조금 더 어도비 제품에 대한 지식이 있습니다.
개인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거나 영상 편집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늘 썸네일을 포토샵으로 만들고, 영상을 프리미어로 제작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보드게임의 디자인을 한다는 건, 디지털 제작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실물 디자인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인쇄”라는 필수적인 과정이 들어갑니다.
저는 처음 디자인 작업을 할 때 이걸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지옥에 발을 들여놨다.
먼저, 보드게임에 들어갈 카드 일러스트 디자인을 만들어야 합니다.
일러스트는 전문 그림작가분을 섭외하려고 했습니다.
크몽에 들어가보면, 일러스트를 기깔나게 그려주는 분들이 엄청나게 많죠.

일반적인 창작 일러스트는 기본적으로 단가가 5만원 내외가 들더군요.
한 장에 5만원이니, 우리가 생각하는 총 96장의 카드를 만드려면 480만원이 필요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첫 보드게임부터 들일 수 있는 비용이 아니었습니다(물론 많이 주문하면 비용은 줄어들겠지만…)
더군다나 아무리 수정이 가능하다고 해도, 크몽을 이용해보기도, 서비스를 제공해보기도 한 입장에서 완성된 결과물을 아예 갈아엎는다던가 하는건 거의 불가능하죠ㅠ
결국, 우리는 쉬운 길을 택했습니다.

물론, 직접적으로 추천하는 방법은 아닙니다. AI로 그림을 만든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랜덤"이기 때문이죠.
프롬프트를 아무리 자세하게 넣어도 AI는 검색을 통해 해당 프롬프트에 어울릴 확률이 높은 그림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가 나온다고 장담을 할 수 없고,
특히나 손가락이나 신체 특정 부분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게 많아서 그런 부분들은 다 버려야 합니다. 이 작업만 해도 일주일 이상 걸렸습니다.

AI 사용의 장단점을 정리해봤습니다.
AI 사용의 장점
- 비용이 극단적으로 줄어든다(오픈아트의 경우 1년 이용권 대략 10만원)
- 비용대비 그림은 기깔나게 나온다.
- 수정을 몇 백번해도 상관없다. 아예 그림체를 바꿔도 상관없다.
- 여러 모델들이 있어서 취사선택이 가능하고, 다른 사람의 프롬프트를 그대로 복사해서 사용할 수도 있다.
AI 사용의 단점
- 한 일러스트를 수 백번을 뽑아도 내가 원하는대로 나오지 않을 때가 많다.
- 그림체의 일관성이 없다(같은 프롬프트를 입력해도, AI가 검색한 결과에 따라 그림체가 다소 바뀌기도 한다.)
- 내가 원하는 크기로 뽑기가 힘들다(대부분 가로x세로를 픽셀단위로 바꿀 수는 있지만, 비율을 맞추기가 힘듬)
- 일러스트는 잘 뽑아도, 카드 프레임이라던가 타이포그래피는 뽑기가 힘들다.
아무튼 이렇게 일러스트를 뽑고 나서, 카드 디자인을 시작했습니다.

목업에서 대강의 디자인 레이아웃을 정해놨기 때문에 바로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디자인의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서 프레임이나 아이콘 등은 통일시키거나 하는 단순화 작업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이 카드 전체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대략 AI 그림을 15,000장 정도 뽑았던 것 같네요;;
처음 수채화풍으로 작업한 그림이 정작 카드에 들어가자 조금 이상하게 보였기 때문에 디지털 그래픽풍으로 바꾸기도 했고(여기서 또 일주일 낭비), 카드 뒷면이나 명패 등도 다시 뽑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2차 카드 디자인이 완성됐습니다.

언뜻 보면 별로 문제가 없었긴 했는데...
이 시점에서 중국의 생산업체를 찾아서 연락을 돌렸습니다. 아시아쪽 보드게임 생산업체는 대부분 중국과 홍콩에 밀집해 있었더군요.
총 네 군데에 연락을 돌렸고, 그 중 두 군데에서 답장이 왔습니다.
처음 답장이 온 업체와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느낀건, ‘일이 좀 느리지 않나’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디자인과 관련된 메일을 오전에 보내면, 다음날 오후가 되어서야 답변이 왔습니다.
(물론, 처음 제작하는 입장에서 큰 손님대접을 바랄 순 없겠죠 ㅎㅎ)
문제는, 전체적인 생산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주지 않았고, 그저 제가 묻는 질문에만 답을 주니 일이 진행되는 속도가 너무 느렸습니다.(물론 친절하기는 엄청 친절했다.)
다른 업체를 검색해보다가, 특정 업체의 홈페이지를 발견했는데,
이 페이지에서는 자신들의 공장에서 쓰이는 실제 dieline 파일과 가이드까지 pdf로 친절하게 만들어서 배포하고 있었고, 심지어 견적을 직접 뽑아볼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특정 업체를 홍보할 생각은 없으니 사명은 굳이 밝히진 않겠습니다.)
다음은 업체와 상담하며, 혹은 가이드를 읽으며 알게된 디자인 관련 사실입니다.
1.가이드를 읽어보니, rgb 컬러가 아닌 CMYK 컬러를 사용한 일러스트를 줘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디지털 컬러는 rgb라고 알고 있는데, 대부분의 실제 인쇄작업에는 CMYK라는 컬러가 사용되는듯 했습니다.

그러니까 저런 네가지 색의 혼합비율에 따라 색을 결정하는데, 실제로 인쇄기에 저 컬러를 칠하는 부분이 네 개가 있고, 순서대로 색을 칠하기 때문에 RGB에 비해 표현될 수 있는 색이 적다는 것이죠.
또, 검은색으로 적힌 글자색은 CMY는 0%, K를 100%로 입력해야 합니다.
2. 인쇄용 디자인 파일은 주로 어도비의 일러스트레이터나 인디자인을 사용해서 작업한 후 pdf 파일로 넘겨주게 되는데, 실제로 인쇄도안처럼 파일을 만들어야 하더군요.

그래서 정확한 사이즈로 디자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포토샵에서 일러스트를 만들 때에도, 픽셀단위의 크기나 인치단위의 ppi를 설정하면 안됐습니다ㅠㅠ
밀리미터 단위로 크기를 정하고, ppi는 픽셀/센티미터로 200 이상은 설정하여 파일을 다시 만들어야 했습니다.
또, 저 그림을 보면 검은 선이 bleed line이라고 해서 실제로 인쇄 후 잘리는 부분이고, 빨간 선이 어느 정도 마진을 줘서 실제 표현될 파란 선 내부의 디자인을 지키는 부분입니다.
저 검은 선까지 디자인을 꽉 채워야 하지만, 실제로 표현될 일러스트는 파란선 안쪽에 둬야 합니다.
3. 그 밖에도 여러가지 지켜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룰북을 만들 땐 4의 배수로 페이지를 계산하여 만들어야 하고, 박스 디자인을 할 땐 대부분 쓰는 Two Pieces Box의 바깥과 안쪽의 간격이라던지 여러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 부분은 룰북마다 다를 수 있고, 박스의 경우 업체마다 조금씩 달랐습니다. 어떤 업체는 박스를 접었을 때 사이즈도 함께 고려해서 다이라인을 만들어야 했는데, 어떤 업체는 그런 세세한 부분은 스스로 수정하시는지 그냥 박스 사이즈에 맞춰서 다이라인을 보내주었습니다.)
이런 가이드라인을 참조하며 나는 또 한 번의 수정(실제로는 두세번…)을 거쳐야 했습니다.
늦은 밤까지 작업한 결과물을 다음날 일어나 수정할 부분을 발견하고 다시 작업하는 과정을 겪으며 디자인의 경험치가 조금은 쌓이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카드를 인디자인에다가 전부 넣어서 pdf로 뽑아줍니다.
왜 커뮤니티 디자이너 밈 중에 “찐막_찐찐막_최종_진짜끝_최종수정.pdf”가 나오는지 알게되는 과정이었습니다ㅠ.
포토샵에서 정확한 사이즈와 디자인을 했다면, 인디자인에서 그림을 가져올 때 저 라인 안에 ‘정확히’ 들어맞게 됩니다.

박스의 디자인도 이런 식으로 들어갔습니다.
사실 최종 컨펌 전이기 때문에 박스도 저게 최종적으로 맞는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펀딩이 아닌 실제 제품 디자인이라면 상품 바코드와 제품 인증사항도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이 부분은 현재 진행중)
한국은 EAN-13(10?)이라는 유럽식 상품 바코드를 대부분 사용하며, 한국 GS1에 가입해야 바코드를 뽑을 수 있다는데,
이게 연회비만 35만원으로 상당히 비싸기 때문에 외국에서는 대행업체를 통해 바코드를 10불 선으로 구입할 수 있게 하는데, 한국에서는 이게 될지는 모르겠네요;;
아무튼 이렇게 디자인의 과정도 마무리(는 정확히 아니지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