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브코딩 시대, 1인이나 작은 팀은 어떤 서비스를 시작하면 좋을까
안녕하세요. 25년간 IT업계에서 일하다 2025년 말 은퇴한 50대 PM 겸 개발자입니다.
동네 당근에 바이브코딩 모임이 있습니다. 비개발자가 대부분인 모임이라 질문에 몇 번 답했는데, 이후 개인 메시지로 상담을 요청하는 분들이 생겼습니다. 집 근처로 찾아오겠다는 분들은 직접 만나 이야기도 들어봤습니다.
그렇게 찾아온 한 분이 저보다 20살 어린, 유통대기업에서 7년간 일하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크게 어려워진 뒤, 2년 정도 배달 일을 했다고 합니다.
배민, 쿠팡이츠, 요기요 같은 여러 플랫폼의 콜을 동시에 받는 라이더 중에는 휴대폰 두 대로 운행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한 대로 콜을 받고, 다른 한 대는 내비게이션 전용으로 쓰는 방식입니다. 콜을 받을 때마다 목적지 주소를 확인한 뒤 내비폰에 다시 입력해야 하는데, 하루 수십 번 반복하면 꽤 번거롭습니다. 운행 중 두 대의 폰을 조작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안전 문제도 있고요.
이분은 그 문제를 직접 해결해보려고 혼자 바이브 코딩으로 1.0 버전을 만들어서 운영을 하다가 힘에 부쳐서 들고 왔는데 솔직히 완성도는 많이 부족했습니다. 기능은 돌아가지만 구조는 불안정했고, 유료 사용자의 결제도 직접 입금받아 수작업으로 처리하고 있었습니다. 판잣집처럼 여기저기 손볼 곳이 많은 상태였죠.
그런데 눈에 들어온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런 상태의 제품인데도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었고, 돈을 내는 고객도 있었습니다. 플레이 스토어에 많지는 않지만 실제 라이더들의 리뷰가 괜찮았습니다. 오랫동안 업계에서 대형 서비스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는 서비스의 초기 단계를 여러번 시작해본 제가 보기에도 작지만 확실한 불편함을 잘 찔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 서비스, 오토내비의 지분 50%를 인수하고 2.0을 다시 만들었습니다. 기존 아이디어와 현장 경험은 그대로 살리면서 기기 연결, 주소 전송, 지도 앱 실행, 계정, 결제, 구독 등을 전반적으로 정리했습니다. 한 달 정도 걸렸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이 아이디어를 낸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문제를 직접 겪은 사람이 먼저 서툴게나마 해결책을 만들었고, 저는 그것을 제품과 사업의 형태로 정리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현재 오토내비 v2 출시 보름 정도 지났는데 550명의 가입자가 생겼고 무료 사용권 소진후 유료 구독 전환이 95%일 정도로 만족도가 높습니다. 아직 큰돈을 버는 서비스는 아니지만, 매일 몇 명씩 구독자가 생기는 것을 보면 피곤했던 것도 잠시 잊게 됩니다. 무료 다운로드 숫자와는 느낌이 전혀 다릅니다. 누군가 자신의 돈을 내고 계속 쓰겠다고 선택했다는 뜻이니까요.
초기에는 무료 체험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 로그인이나 가입 절차가 너무 복잡하지 않은지, 결제 허들이 높지는 않은지를 많이 고민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계속 고쳐야 할 부분입니다.
그런데 실제 고객을 보면서 다른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한 고객은 가입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자 아드님이 새 구글 계정을 만들어주고 카드까지 등록해줬고, 두 시간 정도 걸려 결국 구독을 완료했습니다.
가입에 두 시간이나 걸리게 만든 것은 명백히 제품의 잘못입니다. 다만 고객에게 정말 필요한 물건이라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불편도 감수한다는 사실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온보딩을 가볍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정말 절실한 문제를 풀고 있는지부터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휴대폰 두 대를 사용하는 라이더가 주요 고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 대의 폰으로 콜 수신과 내비게이션을 모두 처리하는 라이더가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한 대의 폰에서도 콜을 받은 뒤 지도 앱 실행까지 이어지는 단독모드도 만들어 출시했습니다.
처음에는 ‘두 폰 사이에서 주소를 전송하는 앱’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문제를 조금 다르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라이더가 콜을 받은 뒤 길 안내를 시작하기까지 필요한 조작을 줄이는 것.
두 폰 모드든 단독모드든 결국 해결하려는 문제는 같습니다.
최근 1년 정도 혼자 5개의 서비스를 런칭했는데, 만들다 보니, 바이브코딩 시대에 1인이나 소규모 팀은 어떤 서비스를 시작하면 좋을지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투자자나 IR 덱에서 요구하는 내용을 단순하게 줄이면 결국 네 가지 질문입니다.
어떤 문제가 있는가.
그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그걸로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
고객에게 어떻게 도달할 것인가.
그런 면에서 오토내비는 규모와 상관없이 이 네 가지가 비교적 잘 맞아떨어진 사례였습니다.
문제가 아주 구체적이었습니다. ‘배달을 더 편하게 해준다’는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라, 콜을 받은 뒤 다른 폰에 주소를 다시 입력해야 한다는 반복적인 문제였습니다. 책상에서 상상한 것도 아니고, 창업자가 현장에서 2년 동안 직접 겪은 문제였습니다.
해결 방식도 설명하기 쉬웠습니다. 배달폰에서 확인한 주소를 내비폰으로 보내고, 카카오맵이나 티맵 같은 지도 앱을 실행해주는 것입니다. 제품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돈을 버는 방식도 이미 어느 정도 검증돼 있었습니다. 완성도가 낮고 결제까지 수작업이었던 1.0에서도 돈을 내는 고객이 있었습니다. 시장 규모나 기술의 독창성을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은 서비스에서는 누군가 이미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돈을 내고 있는지가 훨씬 강한 신호일 수 있습니다.
시장에 들어갈 방법도 있었습니다. 제품을 처음 만든 사람이 실제 라이더였기 때문에 고객이 어디에 있고, 어떤 말을 쓰고, 어떤 환경에서 앱을 사용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현장을 아는 사람은 문제와 고객을 가져오고, 제품 경험이 있는 사람은 구조와 개발, 운영을 맡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게 '혼자, 소규모로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인가'
아무리 제품 아이디어가 좋고 시장이 좋아도 혼자서 파악이 안되고 감당이 안되는 난이도라면 완성해서 내놓는게 불가능합니다. 앞서 얘기한게 다 무의미하죠.
이런 조합이 바이브코딩 시대에는 더 많아질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현장의 문제를 잘 아는 사람이 있어도 개발자를 구하거나 외주 비용을 마련하지 못하면 아이디어 단계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제는 완성도가 낮더라도 직접 1.0을 만들어 실제 사용자에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거기서 사용과 결제 신호가 나오면, 경험 있는 사람이 합류해 2.0으로 발전시키는 것도 가능합니다.
오토내비에는 조금 특이한 점도 있습니다. 처음 한 번 설치하고 설정을 마치면 사용자가 앱 자체를 다시 열어볼 일이 거의 없습니다. 백그라운드에서 주소를 전달하고 지도 앱을 실행하는 것이 본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앱 안에는 라이더 커뮤니티 기능도 들어가 있는데, 요즘은 이 기능이 정말 필요한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앱이라면 방문 빈도와 체류 시간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오토내비 같은 도구는 사용자가 앱의 존재를 잊고 지낼수록 잘 만든 제품일 수도 있습니다. 굳이 커뮤니티로 방문을 유도하기보다, 필요한 순간에 조용하고 정확하게 작동하는 편이 제품의 본질에 더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앱을 운영하면서 라이더분들을 보는 시선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최근 비가 많이 온 날에도 운행 관련 사용량이 거의 줄지 않았습니다. 금요일 저녁이라 콜이 많았던 영향도 있겠지만, 데이터를 보면서 놀랐습니다.
주문하는 사람은 화면을 몇 번 누르면 끝이지만, 실제로는 누군가 그 비를 맞으며 움직이고 있습니다. 오토내비가 단순한 편의 앱이 아니라 누군가의 노동 과정에 들어가는 도구라는 점도 그때 더 실감했습니다.
바이브코딩 시대의 기회는 모두가 비슷한 서비스를 더 빨리 만드는 데만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개발비가 맞지 않아 그동안 방치됐던 작고 구체적인 현장 문제를, 당사자가 직접 제품으로 시험해볼 수 있게 된 것이 더 큰 변화일 수 있습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반복해서 발생하는 문제이고, 해결되면 돈을 낼 고객이 있으며, 그 고객에게 접근할 방법이 있다면 1인이나 작은 팀도 충분히 시작해볼 수 있습니다.
오토내비가 앞으로 얼마나 큰 서비스가 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만 실제 현장의 문제에서 출발했고, 당사자가 직접 1.0을 만들었으며, 이미 돈을 내는 고객이 있었고, 작은 팀이 한 달 만에 2.0으로 다시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바이브코딩 시대의 서비스가 시작되는 한 가지 방식은 보여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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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활용은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진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고 보는데요, AI 활용도 뭔가 그런 변곡점이 하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은 과도기일 것 같구요. 이 과도기가 지난 후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는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매우 기대됩니다 ㅋ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저도 배달일을 예전에 꽤 오랫동안 했었는데..
제 기억으론 배달 플랫폼에 다 네비가 내장되어 있었던 걸로 기억 합니다.
배민도 그렇고, 쿠팡이츠도 그렇고..
바로고나 부릉 같은 일반대행의 경우도 다 일해본건 아니라 알 수는 없지만..
최소한 바로고나 부릉의 경우도 폰에 카카오 네비든 네비 어플이 깔려 있으면 자동으로 주소 입력해주고 연결도 됐던걸로 기억 합니다.
근데, 굳이 투폰을 쓰면서 주소를 일일히 옮겨 적어 가면서 네비를 따로 쓰는 이유가 뭔지 궁금합니다.
딴지 거는건 아니구요.. 정말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저도 코로나 때 3년동안 쿠팡, 배민, 일반대행 다 했었습니다.
배달대행은 같은 방향으로 여러콜을 묶어야 돈이 되기 때문에, 항상 콜창을 주시하고 있어야 하는데..
네비를 띄워버리면 콜창을 가리니 네비폰을 따로 쓴다로 이해 했습니다.
전 그 당시 갤럭시 폴드를 썼기 때문에, 3분할에 팝업까지 띄워서 어플 4개를 한 화면에 띄워서 일을 했어서..
어짜피 같은 폰이라 주소를 굳이 옮겨 적을 필요가 없었서 이해가 좀 늦었습니다.
사실 여쭤봤던 이유는..
얼마전까지 택시 일을 했었는데.. 택시 기사들도 네비를 따로 쓰시는 분들이 많아서..
본문에 말씀하신 아이디어를 택시 기사용으로 만들어 볼까 싶어서 여쭤봤던 겁니다.
택시 기사들에게 확인해보니, 네비를 따로 쓰는 이유가 배달기사들과는 차이가 있어서..
결론적으론 의미 없다 였구요..
배달기사는 말씀드린대로 같은 방향으로 여러콜을 묶어야 하지만..
택시 기사는 그렇게 하면 합승이고, 불법이죠..
그럼 굳이 네비를 따로 쓰는 이유가 뭐냐고 택시 기사 커뮤니티에 물어보니..
대부분의 사용자는 쓰던게 편해서 였습니다.
그 다음 많았던 이유는 우버 같은 경우 내장 네비가 X같다 였구요..
그 다음은 네비 안내 때문에 노래 소리가 자꾸 줄어든다.. 등과 같이 영업에 직결되는 이유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럼 주소 옮겨 치는게 귀찮지 않냐라고 물어보니..
요즘 음성인식이 잘 되서 직접 손으로 치는 경우는 10%도 안된다.
거 주소 치는데 손 한번 들면 되는데.. 밥 먹는건 수십번 팔 들어야 하는데 그건 왜 안 귀찮냐?
그게 귀찮으면 택시 때려 치워라..
등등의 반응을 보이더군요..
배달은 오토바이다 보니.. 외부 소음도 심해서 음성인식율도 떨어지고..
한손으로 운전하면서 네비 조작하기도 힘들고 위험하겠지만..
택시는 차다 보니, 실내로 상대적으로 훨씬 조용해서 음성인식도 잘 되고..
물론 운전중 조작은 위험하지만, 오토바이에 비해서 훨씬 안정감 있게 주소를 입력할 수 있으니..
똑같은 문제를 바라보는 인식 자체가 완전히 다르더군요..
그래서 택시기사용 앱으로의 개발은 그냥 안하기로 했습니다. ㅎㅎ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오토내비를 쓰는 분들의 연령대나 스마트기기에 대한 친화도는 천차만별이라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았습니다. 신용불량이라 계좌이체로만 결제 가능하신분, 구글, 카카오 로그인 비번을 찾지 못하시는 분 등등... 그래도 라이더들이 남겨주는 후기를 보며 도파민 충전을 하면서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