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Pontifications: How Airbus maneuvered Boeing into launching a re-engined 737)
Scott Hamilton, 2021년 9월 13일
편의를 이유로, 이해를 위해, 혹은 역자의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인한 의역과, 역자의 사견이 들어가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리며, 정확한 내용은 원문을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참고할 저의 이전 글: ‘보잉이 만들고 싶지 않아 했던 비행기, 737 MAX’ https://www.clien.net/service/board/lecture/13617978?combine=true&q=%EB%B3%B4%EC%9E%89%EC%9D%B4+%EB%A7%8C%EB%93%A4%EA%B3%A0+%EC%8B%B6%EC%A7%80&p=0&sort=recency&boardCd=&isBoard=falseCLIEN
여객기 덕후라면 잘 아실 Leeham News의 Scott Hamilton이 작성한 글입니다. Leeham News 유료계정 뽐뿌를 항상 넣어 주시는 분인데…아직은 잘 참고 있습니다. 이전의 ‘보잉이 만들고 싶지 않아 했던 비행기, 737 MAX’는 보잉의 입장에서 작성된 글이었다면, 이번 글은 에어버스와, 보잉을 위기감에 빠뜨린 주인공인 아메리칸 항공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여객기에 별 관심이 없으시더라도, 글로벌 기업의 이면에서 어떤 딜이 오가는지를 흥미진진하게 묘사한 글이어서, 이런 미국/유럽식 기업 비사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흥미를 느끼시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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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국 PBS가 보잉 737 MAX 위기를 다루는 1시간짜리 스페셜을 방영합니다. 저는 제작 과정에서 장시간의 인터뷰에 참여했으며, PBS의 Frontline 팀과 뉴욕타임즈 취재진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전 공개본을 시청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제 인터뷰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편집의 칼날로부터 살아남았는지 – 살아남긴 했다면 – 는 아직 알 길이 없습니다만, 확실히 인터뷰의 중요한 초점 중 하나는 왜 보잉이 MAX를 개발하도록 ‘내몰렸는가’였습니다.
라이온 에어 사고, 그리고 뒤이어 발생한 에티오피아 항공의 인도 받은 지 5개월밖에 되지 않은 신생아 737 MAX가 추락 사고를 낸 이후, 보잉이 이 기종을 성급하게 개발했다는 각종 의혹들이 수면 위로 부상했습니다.
Figure 1 라이온 에어 610편 사고기의 사고 전 모습
보잉이 이틀만에 MAX 프로그램을 개시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을 사실입니다. 그러나, ‘개발’이 ‘서둘러’ 진행됐다는 것은, ‘서둘러’라는 단어의 통상적인 용례를 감안할 때 사실이 아닙니다. 보잉은 훗날 MAX로 명명되게 되는 여객기와 737 Next Generation을 대체했을 지도 모를 완전 신개념의 항공기를 병행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보잉이 통상적으로 행하는 바입니다: 엔지니어들과 경영진이 어떤 차세대 항공기를 개발할 지 결정하는 동안, 복수의 컨셉을 연구하는 것이죠.
에어버스가 아메리카 항공과의 대규모 A320ceo(Current Engine Option; CFM56과 IAE V2500의, 기존 엔진을 장착한 옵션)/neo (New Engine Option; 프랫 앤 휘트니 PW1000G와 CFM LEAP-1A 의 신형 엔진을 장착한 옵션) 공급 계약을 통해 보잉을 코너로 몰아넣던 시점에, 기본 설계는 이미 완성단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어버스와 아메리칸의 계약이 성사 단계라는 사실을 알게 된 보잉은, 굉장히 짧은 시간인 이틀만에, 완전 신형 기종 개발 대신 737 엔진 교체 버전을 내놓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9월 1일 출간된 제 책 ‘항공 전쟁, 세계 시장을 놓고 벌이는 에어버스와 보잉의 전투 Air Wars, The Global Combat Between Airbus and Boeing’에, MAX가 왜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으며 에어버스가 어떤 전략으로 보잉이 737 MAX를 내놓도록 몰아갔는지를 기술했습니다. 이 책은 아마존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이어질 본문 내용은 챕터 1의 일부로, neo와 MAX 개발 역사를 그린 3개 챕터 중 하나입니다.
수십억 불 짜리 도박
2010년경, 에어버스 관계자들은 매우 어려운 결정의 순간에 직면했습니다. 몇몇 임원들은 큰 결정을 앞두고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A320 협동체기 패밀리의 판매는 순항 중이었고, 패밀리를 통틀어 7,000기 이상의 주문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에어버스의 심장이자 혼인 A320 패밀리는 125석 규모의 A319, 160석 규모의 A320, 그리고 190석 규모의 A321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때 굉장히 잘 팔리는 기종이었던 A319는, 보잉 737-700(NG)과의 경쟁에서 나름의 입지를 다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항공사들은 이들 기종보다 조금 더 큰 A320과 보잉의 737-800을 선호하고 있었죠.
Figure 2 캐나다 웨스트젯의 보잉 737-700. 단축형은 수송능력에 비해 무겁고 공기저항이 심해 연비가 떨어지는 편입니다. 737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기종이 단축형은 인기가 없는 이유죠. A220의 등장으로 A319나 737-700의 입지는 더 줄어들었습니다. 이 사이즈의 기체를 운용하는 회사들은 대부분 기단 단일화의 이득이 비효율성을 상쇄하기 때문에 운용합니다.
737-800형은 A320보다 12명을 더 수송할 수 있으며, 면적이 더 큰 날개 덕분에 항속거리도 조금 더 길었습니다 (위키피디아에 등재된 제원표에선 그렇지 않은데, 어느 쪽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페이로드에 따라 다르겠죠). 보잉의 737-700과 737-800은 A319와 A320에 대한 판매 우위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반면, 시장은 확실히 보잉의 737-900ER에 비해 A321을 선호하고 있었습니다. A321이 더 많은 승객을 수송할 수 있었고, 737-900ER의 항속거리가 더 길었습니다. 하지만 항공사들, 특히 레저 항공사들은 긴 항속거리보단 높은 수송능력을 선호했습니다. A321의 판매량은 -900ER을 3:1로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Figure 3 미국 젯블루의 A321LR. 뉴욕과 런던 사이의, 대서양 횡단 노선에도 투입되고 있습니다. 757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A321neo는 이 시장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2010년 항공사들은 여전히 2008년 대침체의 여파로부터 회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항공업계의 누적 손실은 엄청났고, 몇몇 업체들은 도산하기도 했습니다. 살아남은 회사들은 생존을 위해 비용 절감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는데, 항공사의 비용 구조상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는 바로 연료입니다. 보잉은 737을 대체하기 위한 완전 신형 기종을 항공사들에게 제안하고 있었습니다. 에어버스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방안을 선호했습니다: A320의 엔진을 프랫 앤 휘트니 (P&W; Pratt & Whitney)가 당시 야심차게 밀고 있던 GTF(Geared Turbofan)나, 경쟁사인 GE-스네크마 합작의 CFM 인터내셔널이 개발 중이던 LEAP로 바꿔 다는 것이죠.
Figure 4 프랫 앤 휘트니의 Geared Turbofan 엔진. 팬 측에 위치한 자동변소기 토크컨버터처럼 둥글넓적한 은색 파츠가 바로 유성기어 유닛입니다. 유성기어 유닛은 팬의 회전 속도를 코어에 비해 낮게 유지하도록 합니다. 이를 통해 팬의 직경을 키워 바이패스비를 높이는 한편, 팬의 날개 수를 줄이고 면적을 넓혀 최적화된 설계를 가능케 합니다. 이를 통해 연비를 높일 수 있죠. A320neo, A220, E-Jet E2 등 여러 기종이 장착하고 있습니다만, 출력에 비해 팬 직경이 큰 탓에 공간 여유가 없는 737MAX는 CFM Leap만 채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에어버스가 이 방안을 실제로 선택해서, 이 사업에 20억 달러를 투자한다면 (이 중 절반 정도는 엔진 메이커인 PW와 CFM 인터내셔널에 제공될 것), 보잉이 완전 신형기를 제안하진 않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에어버스는 A350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마지못해 보잉과 같은 결정을 내려야 했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엔진교체형을 개발하는 데에 투입된 비용은 대부분 매몰비용이 되겠죠. 여기에 더해, 완전 신형기를 개발하는 데에 100억 달러를 추가로 지출해야 할 것입니다.
A320 엔진교체형에 대한 회의
에어버스의 COO인 존 리히 John Leahy는, 적어도 공적인 자리에선 A320의 엔진교체형에 냉소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었습니다만, 곧 입장을 바꾸게 됩니다.
Figure 5 존 리히 John Leahy. 미국인으로, 이스턴 항공에의 A300 판매, 아메리칸과의 A300-600R 런치 커스터머 계약 등 미국 시장에서의 굵직한 계약을 따내 에어버스를 유럽 외 시장에 안착시킨 전설적인 세일즈맨입니다.
에어버스 북미 지사의 회장 배리 에클스톤 Barry Eccleston, 전략담당 크리스티안 쉬허러 Christian Scherer, 크리스티안의 부관 키란 라오 Kiran Rao, 그리고 에어버스 툴루즈 본사 참모진 일각의 지지 아래, 리히는 엔진 교체형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 중 하나가 됩니다. 엔진이 교체된 A320 시리즈는 더 긴 항속거리를 갖게 될 뿐만 아니라, 현행 A320과 737NG보다 상당히 좋은 연비를 자랑할 것입니다. 점점 더 많은 유럽의 환경주의자들이 상업 항공 분야를 주된 오염원으로 지목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맞서, 에어버스는 ‘그린 에비에이션’을 홍보하고자 하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었죠.
반면 당시 에어버스의 CEO였던 톰 엔더스 Tom Enders는 이 계획에 여전히 회의적이었습니다. 에어버스가 엔진 교체형 개발에 집중하는 동안 보잉이 신형 기체를 내놓으면 어쩌지? 에어버스가 제대로 된 제품을 개벌하지 못한다면? 이건 수십 수백억 달러 짜리 도박이었습니다.
이때까지 에어버스 간부들이 모르던 것은, 에어버스가 잘못된, 실존하지 않는 보잉기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보잉의 완전 신형 협동체기 말이죠. 물론 보잉이 컨셉 중 하나로 항공사들에 제안하긴 했습니다만, 보잉은 아직 내부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지 명확한 결정을 내리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보잉 일각에서는 ‘신형 경량 이중복도 기체 New Light Twin’이라는 컨셉을 강하게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보잉의 내부자들은 수년 후에는 이 컨셉이 선호되는 방안이 되었다고 증언합니다.
Figure 6 NMA의 컨셉 아트. 'NLT'는 'NMA (New Midsized Aircraft)'로도 잘려져 있습니다. 757과 767 사이의 규모를 가져, A321에 비해 대형 장거리 시장에서 맥을 못추는 737과 767에 비해 한층 커진 787 사이의 빈틈을 메꾸고자 했습니다.
이 컨셉은 4,500 해상마일 (8,334km)의 항속거리를 갖고, 180명에서 225명 정도의 승객을 수송하는 이중 통로 기체였습니다. 787드림라이너처럼 복합 소재를 광범위하게 사용했고, 특이한 타원 또는 난형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보잉은 이 항공기를 혁신적인 생산 프로세스를 통해 제작하고자 했으며, 이 ‘혁신적인 생산 프로세스’는 보잉의 사업 계획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787 드림라이너와 eT-7A 레드 호크에 이르기까지, 보잉 경영진이 이 ‘생산 혁신’에 얼마나 집착하고 있는지는 명확하죠. 아무튼 이 기체는 협동체 수준에 불과한 운용비용을 목표로 했습니다. 이에 더해, 2개의 복도 덕에 승객들의 승하기 속도가 빨라져, 항공사들이 기체의 회전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되었습니다. 3개 파생형이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Figure 7 '이중 복도' 또는 '이중 통로'라는건, 이코노미 기준 의자가 없어 사람이 지나다니는 통로가 2개라는 뜻입니다. 에어버스 A330, A350, A380, 보잉 767, 777, 787이 이중통로기입니다. 이미지는 가장 작은 이중통로기인 에어 아스타나의 보잉 767-300E입니다.
보잉의 손목 비틀기
존 리히는 에어버스가 보잉이 완전 신형 기체 대신 737의 엔진 교체형을 출시하도록 ‘강요’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리히와 에어버스 전략실 팀원들은 737의 엔진 교체형이 A320 엔진 교체형보다 열등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들은 가칭 “A320RE” (re-engine) 이 보잉 737NG나, 출시될지도 모를 (훗날 737 MAX가 되는) 737RE와의 비교에서 에어버스에게 분명한 우위를 부여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가지 기술적 이유로 인해 (그 ‘기술적’ 이유는 이전 글 참조), 이들은 737RE가 A320RE와 제대로 경쟁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리히는 이제 이사회와 엔더스 CEO를 설득해야 했습니다. 항공기 세일즈에 동물적인 감각을 갖고 있던 그는, 보잉의 주요 고객으로부터 대규모의 발주를 따내, 충격에 빠진 보잉이 완전 신형기 대신 개발 리드타임이 상대적으로 짧은 엔진 교체형을 개발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북미의 시장 환경은 에어버스에게 굉장히 불리했습니다. 아메리칸, 델타, 사우스웨스트, 그리고 유나이티드가 모두 보잉의 주요 고객이었죠. 저마다 대규모의 737 기단을 꾸리고 있던 회사들입니다. 게다가, 아메리칸은 1990년대 중반 보잉과 보잉 기체만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한 미국 항공사들 주 하나였습니다.
협동체 쌍발기로만 기단을 꾸리고 있는 사우스웨스트는, 보잉에게 회사의 존재 자체를 빚지고 있었습니다. 사우스웨스트가 재무 절벽을 맞닥뜨리고 있던, 3기에서 4기 정도의 여객기만 갖고 있던 소규모 항공사였을 때, 보잉이 이 항공사의 뒤를 봐줬습니다. 사우스웨스트가 에어버스기를 구매할 가능성은 0에 수렴했습니다.
Figure 8 사우스웨스트의 구도색 737-800.사우스웨스트는 보잉 737 계열 기종만 운용하고 있습니다.
델타와 유나이티드도 A320 몇 대를 띄우고 있었습니다. 보잉의 심장인 시애틀에도 A330neo를 굴리는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얘기지만, 당시만 해도 델타는 아메리칸과 마찬가지로 보잉과 독점 계약을 맺고 있었습니다. 델타가 운용하던 A320, A330은 노스웨스트 항공 인수로 델타에 편입된 기체들이었습니다. 델타가 노스웨스트와 합병하면서 노스웨스트의 많은 임원들이 델타의 경영진에 편입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에어버스를 선호했지만, 신기술이나 신형기를 가장 먼저 도입하는 것은 꺼려했습니다. 되돌아보면, 꽤 현명한 생각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Figure 9 노스웨스트가 발주했던 에어버스 A330. 지금은 델타가 되었습니다.
유나이티드의 A320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된 경영진이 발주한 것이었습니다. 합병 법인의 명칭이 유나이티드로 결정되긴 했지만, 실제로는 콘티넨탈이 파산 보호 중이던 유나이티드를 합병하고 유나이티드의 간판을 단 것에 가까웠습니다. 통합 법인에 잔류한 인원들은 대부분 콘티넨탈 출신이었습니다. 이후 유나이티드는 보잉과의 독점 계약을 맺는 세 번째 항공사가 됩니다. 지금 유나이티드를 통치하게 된 콘티넨탈 경영진들은 에어버스에 그다지 수용적인 태도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목표는 아메리칸
아메리칸 항공은 경영 위기를 겪고 있었고, 에어버스의 존 리히는 고객들의 위기를 기회로 삼는데 능한 인물이었습니다. 2011년경, 아메리칸은 재무적으로 벼랑 끝에 몰린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아메리칸의 기단은 3사중 가장 노후화돼 있었습니다. 아메리칸은 300기가 넘는 노후화된 보잉 MD-80 시리즈를 운용하고 있었습니다. 보잉의 인수 전, 맥도넬 더글라스가 독립적이지만 빈곤한 상업 항공기 제조사로 남아있던 시절에 도입한 기체들이죠.
Figure 10 말년의 아메리칸 MD-83
에클스톤 Eccleston은 아메리칸 항공의 회장인 제라드 아피 Gerard Arpey의 친구였습니다. 에클스톤은 “롤스로이스 재직 시절, 전 제라드 아피와 이런저런 아메리칸 항공 임원들과 여러 계약을 체결했었습니다”라고 회상합니다. “전 제라드와 친해졌고, 제라드 내외와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이가 됐습니다. 전 제라드와 톰 (톰 호튼 Tom Horton. 1985년부터 2015년 U.S. Airways 의 아메리칸 인수시까지 아메리칸 항공에 재직했으며, 당시에는 회장)과의 관계를, 논의의 발판으로 삼았습니다. 논의의 일환으로, 터틀 크릭 Turtle Creek (미국 텍사스주 달라스의 고급스러운 식당과 호텔)의 맨션에서 분기에 한 번 정도 식사 자리를 가졌습니다. 관계를 이어 나가기 위해서였죠.”
2011년 초, 아메리칸 항공과 에클스톤 사이의 논의가 열기를 띠고 있었습니다.
에클스톤은 이 시점에 아메리칸 항공은 보잉이 에어버스와 자사 간의 논의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알고 있다는 불안감을 갖기 시작했다고 회고합니다. 계약을 위한 논의는 계속 진전되어, 봄에는 계약을 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상업 항공 역사에 길이 남을 세일즈맨 존 리히가 개인적으로 개입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3월에 톰 호튼과 몇몇 주요 참모진만이 참석한 비밀 점심 미팅이 계획됐습니다. 에클스톤은 점심 미팅의 비밀성 유지를 위해 식당을 통째로 빌리는 데에 동의했습니다. 점심식사 말미에, 리히는 아메리칸이 에어버스 계약 건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는 분위기를 읽었고, 계약의 성사 가능성이 꽤 있다는 판단을 내리게 됩니다. 게다가 400기의 A320ceo와 A320neo를 구매하는 이 계약은 규모 면에서도 블록버스터 급이었습니다.
Figure 11 계약의 결과로 도입된 아메리칸의 A320neo
계약 성사의 가능성이 있다
“톰 호튼 (아메리칸 항공의 회장) 이 에어버스와 계약을 맺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던 제라드를 설득할 수 있어 보였기 때문에, 계약의 성사 가능성은 분명히 높아 보였습니다. A320neo는 훌륭한 비행기가 될 것이고, 그리고 대단한 계약이 될 것이었습니다. 에어버스기 구매는 아메리칸 항공의 미래를 바꿔 놓을 겁니다. 200여대의 항공기를 구매했단 건, 아메리칸이 우리 차세대기에 확신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죠.” 200여대의 구매에 더해, 구매 대수와 같은 수량의 옵션계약이 계약에 포함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장애물이 등장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메리칸 항공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라고 에클스톤은 말합니다. “호튼이 건 전화였는데, ‘만약에 우리가 에어버스기와 보잉기를 모두 발주해 인도받는다면, 에어버스의 기분은 어떻겠는가?’하고 묻더군요.”
어리둥절했던 에클스톤은 “아메리칸이 그런 말은 왜 하죠?”하고 물었습니다.
호튼은, “1997년에 (보잉과) 독점계약을 맺은 3개사중에 하나가 우리인 것 아시죠?” 라고 되물었습니다.
“압니다. 하지만 보잉의 맥도넬 더글라스 인수로 그 계약의 효력은 상실됐고, 유럽연합도 그 계약은 끝났다고 했어요. 그러니, 톰, 적어도 제가 생각하기엔 그게 큰 문제가 될 것 같진 않습니다.”
호튼은, 로버트 크랜달 (Robert Crandall; 90년대 당시 아메리칸의 회장이자 이사회 의장)과 론 우다드 (Ron Woodard; 당시 보잉 상용기 사업부 사장)이 독점 계약을 체결하던 당시 같은 방에 있던 사람들이 “보잉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믿었고, 그 약속을 저버리기를 두려워 했다”라고 답했습니다.
Figure 12 아메리칸 항공의 대규모 보잉기 주문과 보잉과의 독점 계약을 다루는 영국 인디펜던트 지의 기사. 원래 독점계약은 2018년까지 유지될 예정이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보잉님이 기분 나빠 하실거야
확실히 아메리칸은 에어버스기 구매가 보잉이 아주, 아주 분노할 것이라는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호튼은 계속해서 아메리칸이 737을 병행 구매했을 때 에어버스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에 대한 답을 요구해 왔습니다.
보잉이 “매우, 매우 분노”할 것이라는 에클스톤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습니다. “그리고는, 이건 꽤 이상했는데요, 호튼이 전화를 걸어와선 ‘보잉이 우리가 에어버스기를 보잉기와 섞어 사던, 에어버스기만 사던 관계없이 독점 계약 위반으로 소송을 걸 거라던데요’라고 하더군요. 호튼은 에어버스도 보잉처럼 소송을 걸 거냐고 물었습니다.”
Figure 13 2011년 에어버스기 구매 계약 당시 미국 뉴욕타임즈의 기사. '경쟁사의 쿠데타'라는 표현이 눈에 띕니다. https://www.nytimes.com/2011/07/21/business/global/american-places-record-order-with-2-jet-makers.html
어쩌면 당연하게도, 에클스톤은 에어버스는 그럴 생각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 다음에 에클스톤이 들은 것은, 보잉이 주로 변호사로 구성된 대여섯명을 텍사스 달라스의 아메리칸 항공 본사로 보내서, 보잉이 얼마나 진지하게 아메리칸과의 소송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를 보여줬다는 겁니다. 에클스톤은 “이 일로 아메리칸은 굉장히 기분 나빠 했습니다. 특히 톰이 기분 나빠 했죠. 제라드는 굉장히 부드러운 사람이고, 쉽게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인데도, 꽤 기분 나빠 했습니다”라고 회상합니다.
Figure 14 달라스 포트-워스 공항 인근에 위치한 아메리칸 항공의 구 본사. 지금은 같은 도시의 신사옥으로 이전했습니다.
종국에, 아메리칸은 에어버스기와 보잉기 모두를 구매하게 됩니다. 하지만 보잉 입장에선, 이 계약은 패배에 가까웠습니다. 아피 (아메리칸의 제라드 아피 회장)의 전화가 아니었다면, 보잉은 아메리칸의 대규모 발주계약을 완전히 놓쳐 버렸을 겁니다.
근무태만
왜 아메리칸 항공은 보잉과의 독점 계약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에어버스와의 협상 가능성을 열어 뒀을까요? “보잉은 정신줄을 놓고 있었습니다.”라고, 2020년까지도 아메리칸에서 일하고 있었던 아메리칸 항공 관계자는 회상합니다. A320neo가 발표되자, 아메리칸은 보잉에 계속해서 이에 상응하는 737NG의 후속기 개발을 요청했습니다. 반면 보잉은 아메리칸이 독점계약에서 이탈할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고, 결국 에어버스에 기회의 문을 열어주고 말았습니다. 계약 체결 후 몇 년이 지난 때에, 아메리칸 항공의 내부자는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했습니다. 천하의 보잉이 압력에 못 이겨 뭔가를 해야 했으니까요.”라고 말했습니다. “(보잉의) 몇몇은 737RE에 손발이 묶이고 싶지 않아 했습니다.”
Figure 15 A320-737 혼합 구매 당시 포브스의 기사. 해당 구매 계약이 보잉과의 독점계약을 파기함과 동시에, 보잉의 737 MAX 개발을 강요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보잉 내부자에 따르면, 아메리칸의 위태로운 재정상황 역시 보잉의 결정에 영향을 줬다고 합니다. 에어버스와 보잉은 230기의 항공기 구매 건에 대해 재무적인 보증을 서기로 했습니다. “아메리칸의 부실한 재무구조 때문에, 우리가 과연 계약을 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격론이 오갔습니다”라고 이 내부자는 말했습니다. 실제로, 400억 달러 규모의 역사적인 계약이 체결된 지 겨우 5개월이 지난 2011년 11월 29일, 아메리칸은 챕터 11 파산 (우리나라의 법정관리와 비슷)을 신청합니다. 파산 신청으로 인해, 이후 구매 계약이 “판매자에 수용”될 경우 발동되는 재무 보증이 사라졌습니다. 법적으로, 이는 파산에도 불구하고 구매계약이 살아 남았음을 의미합니다. 아메리칸은 보잉과 에어버스 양측과의 구매 계약을 모두 수용했습니다.
아메리칸 항공의 내부자에 따르면, 아메리칸의 기단 기획자들은 A320neo의 경제성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아메리칸이 다량으로 운용하고 있던 노후한 MD-80 계열기들과 비교하면, 차이는 더욱 극명했습니다. 하지만, 그에 따르면 보잉은 아메리칸이 에어버스기를 구매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제안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보잉이 아메리칸에 던진 제안은 기존에 이미 판매중이던 737NG (Next Generation) 계열의 737-800과 737-900ER이었습니다. 아메리칸 항공은 후자에는 전혀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Figure 16 대한항공의 737-900ER. NG 시절부터 큰 737은 인기가 없었습니다. A321과 비교해서 -900ER은 -800과 수송능력 면에서 큰 차이가 없고, 항속거리도 애매합니다. 랜딩기어가 짧고 날개가 작은 데에 비해 동체가 길어 착륙도 어려운 편입니다. 중장거리 항공편의 소형화 트렌드에 맞물려 A321LR과 A321XLR이 기존에 757이 갖고 있던 대양/대륙 횡단 협동체기 시장을 장악하면서, 이 시장에서 에어버스와 보잉의 실적은 더블 스코어로 벌어진 상태입니다.
런칭을 서두르다
1994년 (에어버스의) 존 리히에게 보잉과의 독점 계약 소식을 전달할 때, (아메리칸 회장) 제라드 아피는 나쁜 뉴스의 전령이었습니다. 2018년 전직 보잉 직원이 증언한 바에 따르면, 계약 당시 아피는 보잉에 전화를 걸어, 리히가 여객기 400대 계약을 위해 아메리칸 항공의 본사에 와 있으며, 보잉이 숟가락을 얹고 싶다면 당장 텍사스 포트워스의 아메리칸 본사로 사람을 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날은 화요일이었습니다. 보잉의 세일즈맨들은 밤낮을 새웠고, 수요일 밤에 737기의 엔진 교체형 개발 계획과, 구매 계약 조건을 작성했습니다. 당시 보잉의 CEO였던 GE 출신의 짐 맥너니가 이에 개입해 737기의 엔진 교체형을 런칭하기로 결정했고, (보잉 상업부문 사장) 제임스 알바 James Albaugh의 완전 신형기 개발의 꿈을 뭉개 버렸습니다.
2011년 7월 20일, 아메리칸 항공은 달라스 포트 워스 공항에 새로 개장한 자사의 애드머럴 클럽 (비즈니스 클래스 / 우수회원 라운지)에서 제라드 아피, 톰 호튼, 에어버스 CEO 톰 엔더스, 그리고 보잉 상업 항공기 부문 사장 제임스 알바, 그리고 여러 에어버스 및 보잉 중역들을 불러 놓고 계약 체결식을 거행했습니다.
에어버스는 보잉이 737 엔진교체형을 내놓도록 강요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리히는, 보잉의 주 고객으로부터 에어버스기 계약을 따내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A320neo의 미래는 이제 탄탄대로였습니다. 에어버스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보잉의 완전 신형기 개발 계획은 당분간은 관짝에서 숨을 죽이고 있을 것이었습니다. 보잉 입장에서, 완전 신형기 대신 737 엔진교체형을 내놓기로 한 결정은 굉장히 운명적이었는데, 737RE가 훗날 737 MAX가 되기 때문이죠.
눈빠지게 기다리고 있어요 ㅠㅠ
아이고..
좋은 일 가득하시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