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올린 글을 옮기다 보니 평어체 그대로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별것 아닌 글이지만 경어체로 바꾸면 맛이 달라지는 듯하여 그대로 올림을 혜량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블로그에는 메뉴판 이미지 정도만 더 있으니 그냥 클량에서 보셔도 충분합니다.
며칠 전, 추석을 앞두고 있음에도 전혀 나아지지 않는 매출 상황을 보며 한숨 짓고 있는데 5월에 퇴사한 전 동료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인사도 내용도 없이 식당 이름이 표기된 네이버지도 링크만 달랑. 만 10년 동안 함께 근무하며 이 친구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에는 충분히 익숙해진 터이다. 새로운 맛집을 발견했으니 점심식사를 같이 하자는 뜻인 게다. 좋다는 답장을 보냈더니 곧바로 만날 시각과 장소를 알려 온다. 극도로 효율을 중시하는 대화다.
구르카 인도레스토랑은 아마도 명동에서 가장 유명한 맛집일 게 분명한 '명동교자'와 같은 골목에 위치해 있다. 위 사진에 보이는 이마트24 편의점 옆 건물 5층에 위치해 있는데 움푹 들어간 건물 입구로 들어서면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고, 5층에 도착하여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곧바로 가게로 진입하게 되는 구조이다. 건물 입구와 가게 출입문이 각 층의 엘리베이터 문인 셈이다.
가게 안에 들어서면 그리 넓지는 않은, 그렇다고 아주 좁지도 않은 매장에 이국적인 분위기가 흐른다. 가게 이름인 '구르카'는 전설적인 용맹을 자랑하는 네팔 용병들을 가리키는 단어로, 동대문의 유명한 네팔/인도레스토랑 '에베레스트'의 오너도 부친이 구르카 용병이었다고 했다. 그 이름을 쓰는 레스토랑이니만큼 원색적인 인터리어와 소품으로 네팔의 분위기를 내고 있는 듯하다. 비록 '인도레스토랑'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긴 하지만... 본래 네팔은 인도 북부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만큼 음식에도 공통점이 많다 하고, 우리에게는 인도 요리가 좀 더 잘 알려져 있으므로 장사를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일 것이다.
평일 11시 반이니 인근 지역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을 고려하면 그리 이른 것은 아닐 터이나 가게 안에는 혼밥하는 젊은 남자 손님과 직원 한 명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거 잘못 고른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스쳤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가게로 들어서는 집들의 특성 상 발걸음을 돌리기도 쉽지 않다. 자리에 앉으니 곧 물병과 메뉴판이 서비스되었다.
“이거... 손님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것 같네요. 그렇게 이른 시간도 아닌데.”
슬쩍 물어봤지만 동행은 짐짓 딴청을 피우며 메뉴판을 몇 페이지인가 후루룩 넘기더니 ‘인도 커리 난 라이스 Lunch Time Event (am11:00~pm1:00)’라고 인쇄되어 있는 페이지를 펼쳐 보여준다.
네팔 현지인이 조리하는 커리 한 가지와 난, 밥, 그리고 약간의 샐러드를 얹은 플레이트가 단돈 6500원이다.
“...싸네요.”
커리라면 국적을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여(余)에게 이 가격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혹시라도 맛까지 좋으면 점심 때 자주 올 수밖에 없다. 양고기 특유의 풍미를 좋아하는 여는 램(lamb)이 아닌 머튼(mutton)이 들어간 커리를, 동행은 인도 콩과 크림, 버터가 들어간 달 마카니 커리를 골랐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서빙된 플레이트를 보고 ‘오... 괜찮네’ 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밥은 길쭉하고 찰기 없는 안남미, 즉 인디카 쌀로 지어서 낸다. 인도나 동남아 음식을 전문으로 내는 식당이라면 역시 인디카 쌀밥이 제격이다. 난은 동그랗게 구워서 1/4로 자른 것을 두 쪽씩 담아 주는 듯. 그리고 부족할까 걱정했던 커리의 양 또한 충분하다. 명동 한복판에서 6500원에 이 정도 양이면 “드한 야베다”(감사합니다/힌디어)이다.
구르카 레스토랑의 커리는 ‘현지화된 화려함’보다는 ‘본고장의 소박함’이 느껴지는 맛이다. 커리의 맛과 향이 매우 부드럽고,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향신료와 재료의 맛이 잘 살아 있다. 어린 양의 고기인 램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머튼 특유의 풍미도 잘 살아 있어서 만족스럽다. 비주얼만 보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난이 의외로 맛있고, 인디카 쌀밥 또한 부슬부슬하고 달달하니 뱃속에 부담 없이 술술 들어간다.
“괜찮네요?”
“괜찮군요.”
고기가 들어간 여의 커리와는 달리, 동행이 선택한 커리는 베지테리언 메뉴답게 콩이 많이 들어가 있다. 고기가 들어간 여의 커리와는 달리, 동행이 선택한 커리는 베지테리언 메뉴답게 콩이 많이 들어가 있다. 다른 곳에서도 달 마카니 커리를 먹어 본 적이 있지만, 여기처럼 대놓고 콩을 잔뜩 넣은 곳은 처음이다. 다른 곳에서도 달 마카니 커리를 먹어 본 적이 있지만, 여기처럼 대놓고 콩을 잔뜩 넣은 곳은 처음이다. 여의 머튼 커리보다 더욱 부드러운 맛이지만 은근히 올라오는 매운맛에 오히려 펀치감이 느껴진다.
추가 주문 없이 런치 메뉴 두 개만 주문해서 먹고 나오기가 미안할 만큼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구성 자체가 단순하다 보니 더 받으면 저항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듯하여 책정한 가격이겠으나, 이런 식사를 6500원에 할 수 있다면 매일이라도 올 만하다. 그래서였을까. 며칠 후 추석을 목전에 둔 토요일 오전, 출근해서 멍때리고 있는데 문자메시지가 왔다.
‘카레 안땡기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동행도 그날 식사가 꽤 만족스러웠나 보다. 주말이라 런치타임 이벤트 가격 적용 여부는 불확실했으나, 안 되면 제값 내고 다른 걸 먹어 보기로 하고 약속을 잡았다.
도착해서 보니, 직장인들을 상대로 런치타임 이벤트를 운영하는 식당들 대부분이 주변 회사들이 쉬는 주말에는 이벤트를 하지 않는 데 비해 구르카 레스토랑은 토요일에도 이벤트 메뉴를 제공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고기가 아쉬웠던 동행은 치킨 티카 & 커리를, 여는 베지테리언 메뉴인 빨락 빠니르 커리를 주문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색다른 것도 먹어 보려고 티베트 전통 차라는 버터차(4000원)와 디저트용 치즈볼 럿스 굴라(4000원)를 추가했다.
빨락 빠니르 커리는 인도 커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시금치 커리’이다. 인도식 전통 치즈인 빠니르와 시금치를 주 재료로 쓰기에 짙은 녹색을 띠며, 이 때문에 본토 커리를 처음 먹어 보는 사람들을 놀래키기에 좋은 메뉴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는 여기에 양고기나 소고기, 닭고기를 더해 먹지만 런치타임 메뉴에는 그런 선택지가 없기에 오리지널로 먹어야 한다. 지극히 담백하고 심심하지만 빠니르 특유의 고소한 뒷맛이 있어서 의외로 먹을 만하다.
동행의 치킨 티카 & 커리는 탄두리 치킨, 치킨 커리 등으로 익숙한 그 맛이다. 참고로 치킨 티카는 탄두리 치킨처럼 요거트와 향신료로 양념해서 숙성시킨 닭고기 요리인데, 먹기 편하게 한입 크기로 잘라서 조리한 뼈 없는 바비큐라고 한다. 탄두리 치킨이 일반 치킨이라면 치킨 티카는 순살 치킨이랄까. 치킨 커리 플레이트에 치킨 티카 몇 점을 곁들여 내는 셈인데, 굳이 고기를 피하는 게 아니라면 400원을 더 내고 이걸 선택하는 게 훨씬 나을 듯하다.
버터차는 티베트 찻잎과 티베트 소금으로 끓인 차에 버터를 넣은 거라는데 글자로 읽고 연상할 수 있는 그대로의 맛이다. 설탕 등을 넣지 않았으니 단맛은 당연히 없고, 찝찔한 맛이 나는 밍밍한 찻물에 버터의 느끼함을 더한 맛이다. 그야말로 현지의 맛이 아닐까 싶은데, 호기심에 한 번 마셔 본 것으로 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는 짜이나 찌아, 라씨 등을 선택하기로 하자.
인도식 치즈를 사용한 디저트 메뉴는 럿스 굴라와 굴랍 잡문(4000원) 등 두 가지가 있는데, 굴랍 잡문은 ‘우유를 발효시켜 만든 인도의 달콤한 치즈’라고 되어 있고 럿스 굴라는 ‘우유를 발효시켜 만든 인도의 매우 달콤한 치즈볼’이라고 되어 있다. 여는 ‘기왕이면’이라는 몹쓸병을 앓고 있어서 ‘매우 달콤한’ 쪽을 고른 것인데... 서빙된 모습이 메뉴판 사진과는 사뭇 달랐을뿐더러,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어 보니 ‘매우 달콤한’이 진짜 너무 매우 단맛이어서 심히 당황했다. 마치 스펀지나 수세미처럼 푸석한 느낌이 있는 치즈볼을 달디 단 소스에 푸욱 절인 것으로, 앞에 먹었던 모든 식사와 차의 맛을 한방에 지워 버리는 초강력 스위트 파워를 자랑한다. 다른 나라의 음식을 접할 때 맛을 설명하는 문장에 ‘매우’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으면 모종의 각오를 할 필요가 있음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명동 구르카 인도레스토랑은 다양한 인도와 네팔 음식을 내는 곳으로, 대부분의 메뉴는 다른 현지식 레스토랑에서도 맛볼 수 있는 것들이지만 몇 가지 독특한 메뉴들도 있어서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런 쪽 음식들이 대부분 그렇듯 가격대는 높은 편이지만, 일주일 내내 점심시간 이벤트로 단돈 6500원에 커리와 난, 인디카 쌀밥을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혜자로운 곳이기도 하다. 여는 주로 점심시간에 이곳을 찾게 되겠지만, 할인 메뉴 외에도 다양한 네팔 전통요리들을 종종 주문하여 두루 맛볼 생각이다. 이렇게 괜찮은 가게임에도 점심시간에조차 손님이 너무 없는 게, 이러다가 장사를 그만두는 게 아닐까 걱정되기도 하는데(이선생 가주우육면대왕 명동점 폐점의 아픈 기억이ㅠㅠ)... 일단은 부지런히 다녀 보기로 하며 포스팅을 마친다.
버터차는 피곤할 때 일부러 종종 찾아가 마십니다. 짭짤한 게 아주 좋아요.
콩얘기가 나올 때 두번씩 글이 보이는건 착각 아니죠?
콩얘기가 나올 때 두번씩 글이 보이는건 착각 아니죠?
콩은 두 번씩 볶아야 제맛입니다 ㅋㅋ
콩은 두 번씩 볶아야 제맛입니다 ㅋㅋ
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