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말씀드리면 원룸 건너방입니다. 영세한 원룸이라
제가 문을 열면 상대가 복도에서 출입현관으로 못 나가고, 반면
그 분이 문을 열면 제가 반대쪽 택배비품함으로 못 나가는 구조
였습니다. 사람이 겨우 지나갈 좁은 복도를 서로 비스듬히 마주보는 형태랄까요.
그 분은 102호 저는 105호를 살았어요. 이 분이 입주하고 몇 달
정도 지나다보니 신천지 신자라는 걸 알 수 있게 되더군요.
대략 이십대 후반 여성분인데 항상 겁에 질린 듯 몹시 피곤하고 불안해보였습니다. 나가고 들어오는 상황에서 마주치기만 하더라도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처럼 늘 여유가 없고 초조해보였습니다.
원룸에 사는 주민들은 원룸 내부나 건물 주변에서 전화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 102호실 분은 매일 밤 기도소리만 반복적으로
들리고 이불같은 걸 뒤집어 쓰고 전화하시는 건지 우는 소리에 묻힌 뭔가에 가로막힌 말소리가 가끔씩 들렸어요. 그리고
새벽 쯤에 웅얼웅얼하는 기도소리와 함께 바닥에 뭔가 꿍 꿍
부딪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났었습니다. 제 방문 철문 속이
텅 비어서인지 귀를 대면 복도 건너편 방들의 TV소리나 전화 소리가 선명히 들릴 정도거든요. 신천지의 기도방식은 알 수도 없고
제가 그 분을 살펴본 것은 아니지만 바닥과 뭔가 충돌하거나
연결되는 기도행위가 있지 않나싶더군요.
집에는 늘상 없고 매일 이른 아침에 뛰어 나가고 새벽에 들어오는것 같았는데요.
항상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뛰어다니다보니 그게 보통 시끄러운게 아니었어요. 뭐랄까 자기 머릿속에 급한 '어떤 일'에만 골몰하는 과학자 같았다랄까. 늘 숨겨놓은 실험실 생각만 해대는 프랑켄슈타인 박사 같았습니다.
좁은 복도에서 오다가다 목례만 드리는 정도였는데 어느날인가 늦은 밤, 원룸에 도착해 현관을 들어가려는 순간이었습니다. 102호 자기 방 문을 열어서 스토퍼까지 내려놓고는 복도 우편함과
정수기에 정성껏 신천지 유인물로 보이는 종이들을 옮기고 있더군요. 정말 정성껏... 꽃꽃이를 하듯 종이를 하나씩 말아서 우편함들에 곱게 끼우고 있었습니다. 원룸 내부 복도는 삼십초 정도 불이 켜졌다가 자동으로 꺼지는 곳이라 밤에는 바깥에서는 안이 보이는데 안에서는 바깥이 보이지 않거든요. 그래서 가끔 밤에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이 문을 열고 마주치다가 소리를 치기도 해요. 아마도 그분은 늦은 밤에 모두들 주민들이 방에 들어간 상황이라 자기가 그러는 걸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았습니다. 1층부터 3층까지 우편함과 주인댁 세금고지서함에
감히 접을 수 없어서 정성껏 동글동글 말아서 넣어두는 그 솜씨가 꽤나 서툴러 보였지만 다만 온정성을 기울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타리스트가 아끼는 기타줄 조이는 잠깐의 순간 같은 그런 정성과 조심스러움이 확 느껴지더군요. 그때 전 그 분의
뒷모습만 봤기 때문에 표정을 알 수는 없었지만 아마 엄청
행복한 표정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뒷모습에서조차 이런 정성이
느껴졌을 정도니... 지금 떠올려보면 '나의 이런 사소한 행위 하나 하나가 재림 20002 메시아님의 구원과 연결될 거야.'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훤하게 방 문을 열어둔 쪽을 보니 방 문 안쪽 전체에 무슨 신천지 문구카드와 싸인펜으로 주일과 월별 목표 같은 걸 굵게 써서 테이프로 덕지 덕지 붙여놓으셨더군요. 큰 글씨 아래로 자잘한 글이 빼곡했지만 자세히 알 수도 없었고 남의 집이 열려있다고는 해도... 그걸 바라보는게 어쩐지 매우 찜찜하게 느껴져서 손에 쥐고 있던 마트 종량제 비닐을 일부러 소리나게 흔들며 현관 앞에서 인기척을 했습니다. 말이 인기척이지 문 밖에 사람있다구요! 같은 서프라이즈였지요. 그 분은 굴에서 나왔던 여우처럼 꽁지가 빠지게 들어가서 문을 '꽝' 닫아걸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 사람의 행위로 보아 그다지 높은 책임자 위치는 아니었던 듯 하고 말단 사역꾼이거나 중간관리자로 올라가는 사람은 아니었을까 싶어요.
잠깐이지만 문 쪽을 본 바로는 원룸 방문을 오거나이저 벽판으로 쓰시는 것 같았는데 상상했던 교주회장 20002 사진이나 뭐 그런건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화장대나 침대에 붙어있을 수도)거기서 받은 상장 같은 것이 자랑스럽게 붙어있었고 자필로 신앙서약,목표,신념 같은 글귀를 정자체 비슷하게 크게 적어놓으셨더군요.
그 뒤로도 한 두 번 더 그러한 모습을 봤었는데요. 매번 그러한
용지를 꽃꽂이처럼 꽂아두지는 않고 전략을 바꿔서 우편이나 신문에 따라온 것처럼 교묘히 우편물 사이에 한 두 개 끼워두고 끝내기도 하더군요.
어떻게 아냐면 제가 정기적으로 받아 보는 우편물이 문화재청 월보와 불교 조계종 포교원 산하 간행지인데 그 틈에 신천지 홍보지를 넣어 보냈을리는 없었거든요.-_-;;(ㅋㅋㅋ)
그런데 아마 그런 그녀의 조금 어리숙하고 열정적인 모습은
저 뿐이 아니라 당시 입주민들 모두 아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원룸에 은근히 헤비스모커가 많아서 밤이나 새벽에 건물
주의를 돌며 연기를 빨아대는 사람들이 꽤 많았거든요.
한 밤 중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타들어가는 빨간 영혼들이
건물 외곽을 따라 천천히 돌아다니곤 했었죠.
그 분은 아마도 깜깜한 바깥에서 설마 누가 내부를 볼리가 없다고 생각하셨을텐데 다들 웃으며 저처럼 목격하셨던 분들이 많았을 거라고 생각되네요. 막상 작업을 치던 본인은 모르셨겠지만 캄캄한 현관문 밖 저만치에서는 인기척에 따라 불이 켜졌다 꺼졌다 반복하는 내부가 극장 스크린처럼 보이거든요..;; (히치콕의 '이창' 같네요.)
그외에 그 분이랑 심한 마찰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누가 자기 방 문을 엿본다는 그런 강박증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문을 살짝 열다가 쾅 쾅 문을 닫기를 반복할 때가 많아서 제가 한 번 문을 좀 살살
닫아주시면 안 되겠느냐고 했더니... 무슨 협박이라도 당한 것처럼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해요!!!!' 큰 소리로 외치고는 문을 바로 또 "꽝" 닫으시더라구요. (아니, 죄송하다면서 살살 좀 닫으시지.)
문제는 제가 그 이후 두 번이나 더 말씀드렸는데 항상 똑같은
행위를 하시고 죄송하다고 외치기를 반복해서 이후 그냥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아, 이 더러운 현실을 강렬하게 차단하고 신성한 신천지로 가려는 저분만의 숭고한 의식인가보다...는 개뿔, 꽝.꽝.꽝 문 소리 폭탄 터질 때마다 실시간으로 욕 엄청 했었습니다.ㅜㅜ 아마도 골몰하는 일들이 뇌내 깊숙히 따로 박혀 있다보니
타인과 공감적 의사소통이 어려워지고 자기로 인한 문제에 대해서 피드백이 되지 않는 상황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아마도 그 분은 신천지에서 받은 전도 성과와 실행 목표 이거에만 온 인생을 내던지고 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더군요. 아마 그 밖에는 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겠지요.
여덟달 가까이 근처에 살면서 또 하나 느낀 것이 누가 오고 가는 사람 하나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다른 집은 부모님이나 남친, 친구들이 휴일마다 왔다갔다 했거든요. 방음이 안 되는 저질 원룸이다보니 원치않게 사소한 생활상이 공유될 때가 많아 난감했었습니다.
손님이나 가족들이 방문하면 제 방 외벽 창문 옆에서 시끄러운 주차를 하는 경우가 많았던 터라 (특히 휴일 아침엔 짜증이 멜트다운...)바로 알 수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여자분한테는 정말 아무도 오가지 않았던 것이 참 신기했어요. 표현을 해보자면 그저 숙소에 비상대기하고 있다가 호출되면 출동했다가 녹초가 되어 들어오는 무슨 전투기 조종사 같았습니다. (최종병기 그녀...?)
또 하나 웃긴건 제 옆 방 할머니십니다. 결벽증에 자뻑에 싸이코틱하신 터라 아무도 못말리는데 하필 또 정통 교인이세요. (락스와 세제 섞어서 쓰레기를 뜨겁게 빠는 위험한 습관이 있으신데 옆방에 사는 저에게까지 그 염소가스가 넘어올 때가 있어서 환풍기를 아예 막은 지경입니다. 이분도 새벽에 쓰레기 빨며 찬송가 부르고 하시는 걸 보면... 참 범상한 분은 아니네요.)
자기 우편물을 살피다가 신천지 유인물을 보이면 소리를 벽력같이 지르면서 쪽쪽 찢어서
정수기 앞에 흩어놓고 그러세요. 그래놓고 그 유인물이
더럽다고 생각하는지 정수기에 손을 씻고 물을 복도에 잔뜩
흘려놓고 나가시곤 하셨죠. 유인물이나 마음에 안드는 우편물
찢을 때마다 공용 정수기에 손을 닦는 그 할머니도 정통교인이라는 명색만 정상이었지 딱히 정상은
아니셨던 것 같아요.;;
어느날 102호 여자분이 자정 조금 넘어 들어와서는 찢어진 유인물들을 쭈그려 앉아서 그걸 하나 하나 정성껏 줍다가는 현관에서 저랑 마주쳤는데 정말 너무 너무 딱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때 뭔가 인간적으로 마음이 좀 아프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더군요. 한창 연애하고 직장에서 성취해갈 나이에 특정 종교에 매달려서 거기에 모든 마음을 바치고 있는 사람이란 이 얼마나
안쓰러운 노릇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유인물 하나에 그렇게 마음을 쏟을 정도면 교주와 교리에 대해서는 오죽할까 싶더군요. 그리고 그외에 다른 것들이 보이기는 할까? 싶더군요.
언뜻 본 걸로 알 수는 없지만
그 분에게는 신앙보다는 친구나 가족이 더 절실해보였었어요.
앙상한 마른 가지가 어떻게서든 태양에 더 가까이 뻗어가고픈
흡사 그런 이미지였죠. 뿌리로는 말라버린 흙만 쥐어짜면서.
아마 신천지는 그렇게 외롭고 마음에 구멍이 난 분들을 우선적으로 물들이고 포섭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왜 저런 사소한 일들이 기억이 날까... 돌이켜보니 정신적으로
피폐하고 정상이 아닌 듯 보이긴 했지만 상당히 기품도 있고
외모도 뛰어난 분이었던 것 같아요... ㅜ
아마도 교 쪽에서도 활용가치가 높으니 그 여자분을
교육시키고 바쁘게 돌렸던 거겠죠. 외로운 사람은 빠져나가기 어려운 신천지쪽 인간관계로도 확실히 촘촘히 조여놨었을 거고요.
모나미룩으로 유명한 그 교의 흑백 예배정장 스타일이나
무조건 매 주 2회씩 다닥 다닥 붙어 기도하는 방식만 떠올려봐도 그물망처럼 촘촘한 일체화를 추구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일체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어찌될지 모른다는 불안이 바로
그들을 더욱 달리고 뛰게 만드는 이유 중에 하나는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 분을 마지막으로 본 건
어느날 저녁인가 복도에 짐을 꺼내놓고 갑자기 허둥지둥 짐을 싸서 나가는 모습이었는데 정말 처음보다 더 여유가 없어보이더군요
무슨 일로 이사간 것인지는 완벽한 타인이자 일개 대각선 이웃방 주민인 저로서는 알 길이 없었습니다.
다만 나와는 정말 다른 삶을 사는 분이구나 느꼈을 뿐이죠.
요즘 신천지 사건이 터지고 나서 그 분이 자연스레 떠오르더군요.
그분을 비롯해서 비교가 되지않게 열정적인 신자들이 전국에
부지기수로 많겠죠. 어림잡아도 수십만의 사람들이 그 교를 믿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재림예수가 사실은 보통 늙어가는 병약한 사람이었을
뿐이고 그들이 기다리던 구원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면 어찌될까. 건뎌낼 수 있을까? 사회로 복귀해 녹아들 수 있을까?
영화 인셉션에서 림보 안에서 영원한 꿈을 꾸며 살다가
현실로 내던져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마리온 꼬띠아르
처럼 되는 건 아닐지 조금 우려스럽기도 하더군요.
언젠가 그들이 모든 걸 깨달을 때 쯤
인셉션의 레오처럼 꿈을 딛어내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분명 꿈보다 못한 지독한 현실이지만... 행복도 가끔 현실에 버그처럼 숨어 있으니까요.
이쁘고(잘생기고) 돈많은 것은 행복과 비례 관계가 있긴하지만 그렇다고 구멍이 없는것도 아닙니다.
신천지 포교방법은 세뇌의 예술급이에요. 문턱, 격리, 신념심기 등등
또한 장로교의 약점에 대한 분석을 철저히 해놨기 때문에 신실한 교인들이 넘어가는 경우가 흔합니다.
세뇌하고 포섭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신빠사(신천지에 빠진 사람들 )가 저부분을 지적했죠.
이런 후기들 보면서 만약 현재 이 집 가정이 개신교 집안이였으면 엄마랑 친형은 신천지에 빠졌겠구나, 100% 빠졌겠다 싶었습니다.
본인도 믿질못하니 절대자(라 말하는 것들)에 집착하게 되는... 믿는다는 자기합리화로 그 대상에 집착하는거라 생각해요
글로만 판단하는거지만 그분도 그런게 아닌가 합니다.
흡인력 짱입니다.
특히 이쁘신 그분 ㅎㅎㅎ
집중해서 읽었네요 ㅎㅎ 재미있어요
마지막 마무리 부분에 공감합니다.
저도 그럴것 같다고 보고 있는데
그런 이유로 심리? 테스트인가를 해서 공략 할테고
안타깝지만 이미 몸담으신 분들은 그 안에서 뭔가 그 구멍을
메운다고 생각할테니 스스로 헤어나오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어려운 숙제가 하나 늘어난 느낌입니다.
신천지 모임이나 시험같은거 관련해서 읽어보니 정상적인 생활하에서는 불가능해 보이더군요
좋다고 바로 느껴집니다 ㅋ
/Vollago
제가 아는 그 쓰레기가 맞는건가요..?
원래 글긴 안읽는데 그냥 혀읽지더라구요
현재 그들의 심리상태가
"완벽한 타인"이 아닌가 합니다
/Vollago
여러분 이분이 그 베이비로션 그 분 이십니다.~
상당수의 초대형 교회는? 여러 분이 더 잘 아실 겁니다. 그들이 얼마나 비 상식적인지... 그들은 곧 모아져서 아궁이에서 불 태워질 것입니다.
개신교에서도 교리는 상식과 반하지 않는다고 가르치는지요????
네 천주교에서 얘기하는 교리에
익명의 그리스도론이 개신교에서도 적용되는지 궁금했습니다..
단막극장 “신천지와 앞집아가씨”
정신이 지배당한 자의 육체의 고통이 그대로 느껴지네요.
강약 조절도 잘하시고
흡인력도 짱이시네요.
글 쓰시는 분이신가봐요?
신천지에 빠진 한 개인의 괴기한 행동들과 그를 관찰시의 으스스함이
너무 잘 전달되었습니다. 러브크래프트나 스티븐 킹 단편소설을
읽고 있는 착각이 들었네요. 감사합니다.
/Vollago
필력이ㄷㄷㄷ
헐 "'행복도 가끔 현실에 버그처럼 숨어 있으니까요." 이 절망적인 희망고문은 뭐랍니까~
근데 너무 글을 잘 쓰셔서 그냥 단편 소설 읽은거 같기도 하구요. 뭐 하시는 분인지 정말 궁금하네요.
이번기회에 신천지 해체하고 없앱시다. 반드시.
그리고 의문의 모나미 1패 . ㅋ
/Vollago
글 정말 잘 쓰시네요.
저희 어머니가 몇년전에 저 신천지 가입하도록 유도했을때의 절박한 느낌과 표정이랑 겹쳐보이네요.